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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호모 루덴스, 프로로 전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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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쯤, 20세기와 21세기를 걸치는 시대를 ‘여러분은 21세기의 주역’ 소리를 어릴 때부터 들으면서 자라왔던 세대 중 누군가는, 21세기의 주역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였던 프로라는 개념에 소설로써 반기를 듭니다.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반짝하고 끝날 것 같았던 어느 TV 개그프로그램의 유행어는 꽤 오랫동안 잔향을 일으켰습니다. 누구나 농반진반으로 이 유행어를 씁니다. ‘프로페셔널’이라는 단어가 21세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훈장이 되는 것과 동시에 아마추어는 그 반대편의 어휘로 남고, 그 간극은 이제 개그와 유행어의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어느새 많은 이들의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이 프로라는 개념에 도전했던 소설이 있었습니다. 2003년쯤, 20세기와 21세기를 걸치는 시대를 ‘여러분은 21세기의 주역’ 소리를 어릴 때부터 들으면서 자라왔던 세대 중 누군가는, 21세기의 주역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였던 프로라는 개념에 소설로써 반기를 듭니다. 그 한 소년은 박민규라는 소설가이고, 그가 남긴 작품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입니다.

 

 

한국, 80년대, 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다루는 주제는 제목이 말해주듯 프로야구입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1983년 프로야구 출범과 동시에 시작했던 원년 야구 구단입니다. 동대문 운동장에서 벌어지던 고교 야구가 큰 인기를 끌던 시절, 마침내 출범한 전국 연고 체제의 프로야구는 마땅한 오락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큰 호응을 얻으면서 국민 스포츠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한편에는 정치적 의도 또한 없지 않은 것이 80년대의 한국 프로야구였습니다. 비민주적 절차에 의해 권력을 얻은 군사독재정권은 언제나 그렇듯이 민생 안정과 번영을 기치로 삼았고, 불법적인 권력 획득에 따르는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빵과 서커스’ 제공에 몰두했습니다. 일련의 해프닝으로 끝난 ‘국풍 81’과 같은 사건도 있었지만, 그중 특히 의혹의 눈초리를 받는 것은 바로 프로야구였습니다.

소설은 바로 그 지점부터 시작되는 프로야구를 주제로 이야기의 서두를 풀어나갑니다. 그렇기에 소설은 어떤 의미에서 80년대의 미시사를 정통으로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굵직한 정치적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소설은 단지 83년의 프로야구 출범과 그 배경 언저리를 이야기하면서 83년의 미시사를 건드립니다. 한국의 80년대에 프로야구를 다룬다는 뼈대만으로도 소설은 일련의 역사성을 띱니다.


 

그것도 야구가 아닌 ‘프로’ 야구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원년 프로야구의 처절한 꼴찌였던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팀을 다룹니다. 주인공과 친구는 인천에 살았고, 그랬기에 당연히 유년 시절의 꿈을 삼미 슈퍼스타즈와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우상이 된 삼미는 야구 성적으로만 친다면 정말 초라한 구단이었습니다. 삼미의 통산 승률은 약 0.1대였습니다. 열 번의 경기에서 한 번을 이겼다는 거지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불세출의 대 OB베어스 38연패(지금의 두산베어스) 덕분에 인천 지역에서는 OB맥주가 팔리지 않았던 기현상도 있었습니다. (저도 부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른들이 크라운맥주를 주문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 재킷을 입으면 놀림감이 되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주인공을 훌륭한 조직에 몸담으라는 압박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좋은 줄을 타야 한다는 강박 속에 주인공은 명문대에 입학하고, 대기업에서 근무합니다. 그러나 그조차도 안정적이진 않았습니다. IMF로 인한 구조조정, 아내와의 이혼 끝에 주인공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런 그의 앞에 옛 친구는 돌아와 이야기합니다. 삼미 슈퍼스타즈 팬클럽을 다시 만들자고.

박민규 (1968~ )

 

두 사람은 ‘프로’의 기원을 생각합니다. 애초에 한국인들 스스로가 만든 개념이 프로는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프로야구가 등장한 이래, 알게 모르게 우리는 프로가 되어야 한다는 이름 모를 강박에 사로잡혔습니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프로는 동경의 대상, 아니 동경의 대상을 넘어 반드시 되어야만 할 인간의 롤 모델이 되고 말았습니다. 90년대를 주름잡았던 광고 카피,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로 대변되는 프로 지상주의는 지금까지도 유효합니다.

그런 주인공과 친구의 입장에서 삼미 슈퍼스타즈는 새롭게 태어납니다. 모두가 프로라는 이름을 향해 달려갈 때, 삼미는 프로가 아닌 야구를 합니다. 프로야구, 오직 승리와 돈을 위해 말 그대로 프로처럼 뛰는 야구 대신 삼미는 하고 싶은 야구를 합니다. 소설의 표현대로라면 ‘잡기 싫은 공은 잡지 않는다.’입니다. 가끔은 만루 수비 상황에서도 알을 까고, 득점 찬스에서 헛방망이질을 해도 그게 과연 잘못되고 욕먹을 일인지를 되묻습니다. 적어도 프로가 아니라면, 삼미의 플레이는 비난받기 어려웠습니다.

소설은 이때부터 오히려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합니다. 프로야구라는 살벌한 경쟁의 장에서 삼미는 마치 순교자처럼 프로가 아닌 야구를 보여주었고, 그런 삼미의 장렬한 모습을 추종하는 이들이 생겨납니다. ‘삼미교’쯤 될 법한 이 새로운 흐름을 통해 주인공과 친구는 삶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우리는 근본에 대한 질문을 잊고 산다. 아니 잊어버리려 한다.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고 살아가지만, 실상은 우리 삶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흐름 하나를 짚어 내면서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전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새에 우리는 프로라는 굴레를 쓰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눈 가린 마차 말 신세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자본 이윤의 경향적 저하가 이루어지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프로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뭉쳐 오늘도 이상한 자기계발에 열을 올리고,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시간을 투자합니다. 생각을 고쳐먹고 바라보면 정말 이상한 이 현상에 그러나 아무도 의문을 던지지 않았고, 소설은 바로 그 빈 공간을 찔러 들어오기에 독자의 심경은 아득합니다.

소설 말미에 주인공과 친구들, 일본의 ‘삼미교’ 신도들이 모여서 벌이는 삼미스러운 야구 시합은 소설이 제시하는 프로 없는 세상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투수의 공이 아무리 훌륭하고 가운데에 쏠렸어도 치고 싶지 않다면 치지 않고, 외야수 플라이 볼이 높게 뜨더라도 햇살이 눈 부셔서 하늘을 보기 싫다면 잡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야구의 세상입니다. 아무런 압박 없이 그저 던지고 치고 달리며 즐기는 야구, 그들이 만드는 새로운 스포츠는 그렇습니다.


 

놀이하는 인간, 인간의 본질이자 특징

인류학자 호이징가는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하는 인간이야말로 다른 종과 인간을 구별 짓는 특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놀이란, 생물의 모든 행동 중 특별한 이익이나 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면서도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호이징가는 이 ‘호모 루덴스’의 개념을 통해 예술 활동과 스포츠와 같은 인간만이 가진 특징들의 근원을 짚어낸 바 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주장하는 바 또한 호이징가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부터 삶은 삶이 아닌 프로가 되기 위한 방법론이자 수단이 되었고, 우리는 놀이하는 방법을 잊고 살아갑니다. 놀이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아니라, 프로가 되는 만족감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호모 루덴스라 규정되는 종의 특징에서 벗어나는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혹자는 이를 가리켜 진화라고 하겠고, 혹자는 이를 가리켜 동물과 다를 바 없다고 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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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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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저9,9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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