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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방에들어간다

‘그녀의 가방속이 궁금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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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 로드에서 마주친 레게머리 여행자의 키를 넘는 배낭이 그러했고, 하늘 가득히 사랑을 실어 나르듯 기내식을 날라주는 스튜어디스의 단아한 캐리어 가방은 매번 궁금증을 유발했다.

‘그녀의 가방속이 궁금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어떤 것도 가능할 것 같은 미친 카오산 로드에서 마주친 레게머리 여행자의 키를 넘는 배낭이 그러했고, 하늘 가득히 사랑을 실어 나르듯 기내식을 날라주는 스튜어디스의 단아한 캐리어 가방은 매번 궁금증을 유발했다.


‘무엇이 들어 있길래?’

한 달을 족히 읽어 내릴 두꺼운 책에서부터 디테일한 필요를 해결해주는 면봉에 이르기까지 “혹시 이거 있어요?”라는 질문에 막힘이 없었던 몽골여행의 동행자가 가방을 싸는데 걸린 시간은 얼마일까 예상해보기도 했고, 물 빠진 반바지와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고수하던 베트남에서 만난 단벌 여행자의 배낭 무게는 얼마일까 내기를 하기도 했다. 이처럼 나에게 여행 가방은 뜯어보고 싶은 종합 선물 셋트 같은 것이었고, 다른 사람의 세계를 관찰할 수 있는 일종의 현미경이었다. 그러나 각기 다른 세계를 담은 여행가방의 공통점은 모든 여행자의 가방 속에는 떠나는 날의 흥분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떠나는 날의 흥분을 가득 안고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여행 가방은 우아하게 끌고 다닐 수 있는 캐리어 가방으로 선택했다. 가방을 선택 할 때만해도 바퀴가 고장날거라는 예상을 못했기에 우아한 모습을 상상한 것인데 실상은 몹시 허술하여 동정심까지 유발할 정도였다.


가방 싼 지 2시간 경과 - 비행기 출발 9시간 전, 여행 가방을 싸는 일은 언제나 피곤함과 설렘을 동반한다.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피곤함이 앞서는 사람은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일 것이고 반면 떠남의 설렘 때문에 피곤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권태를 모르는 성격의 소유자 이거나 해외여행이 처음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우유부단 하기도하고 권태를 곧잘 이겨내는 성격의 소유자이기에 피곤함과 설렘이 반보 차이로 찾아왔다. 해외여행이 처음이 아닌 까닭에 피곤함이 반보 앞서는 때가 대부분이다.

이번 여행뿐만 아니라 여행 가방을 쌀 때, 피곤을 몰고 오는 가장 큰 고민은 카메라의 선택으로 인한 고민이다. 어떤 카메라를 가지고 갈 것인가는 여행의 성격과 장소 그리고 체력에 따라 달라진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나에게 꽤 많은 카메라가 있을 거라는 예상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선택의 문제는 내가 가진 카메라의 개수와 상관없다. 여행이 거듭 될수록 좋은 사진을 찍어야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린 나는 사진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여행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 매뉴얼포커스(MF) 방식의 단렌즈를 선택하기도 한다. 또는 풍경을 흑백과 컬러로 담고 싶어서 두개의 카메라를 선택하거나, 사진을 찍기 위한 취재여행의 경우는 모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갖고 있는 카메라 전부를 가져가기도 한다.

이번 간사이 여행은 한곳에 오래 머무는 여행이기에 카메라 무게에 연연하지 않고 선택을 해보았다. 여행의 필수아이템이 되어버린 lomo lc-a와 재빠르게 풍경을 낚을 수 있는 AF(autofocus) 방식의 eos55(24-70 L렌즈 대여)가 이번 여행의 선발 선수가 되었다.

카메라의 선택만큼이나 여행 가방 쌀 때 신경 쓰는 것이 ‘뭐 입지?’이다. 몇 벌 안 되는 옷에서 고르다보니 늘 한계가 있었고 그 한계를 극복하는 나만의 노하우(라고 하기엔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선택한 방식)인 현지조달법이 있었다. 현지조달의 좋은 점은 배낭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는 것과 현지인에게 친근함을 줄 수 있다는 점, 여행에서 돌아와 친구들에게 현지에서 구입한 옷이라며 너스레를 떨 구실을 마련해준다는 점이다.

“어머-! 그 옷 못 보던 옷이다. 어디서 산거야? 특이하다 ”
“어- 지난번 일본 여행했을 때 오사카에서 산거야. 나쁘지 않지?” 라고.


한 권의 책이 여행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구지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할 것이다. 공감이 안 된다면 당신은 취미란에 ‘독서’라고 한번도 쓴 적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여행 중 책읽기에 취미를 붙여보자.

간사이 여행에서 선택한 책 중에 한권은 탐미문학의 거봉이라 불리는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이다. 교토에 금각사가 있다는 것을 알기 이전에 추천받은 책이었는데 교토에서 『금각사』를 읽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복부 깊숙이 숨겨져 있는 맹장 끝이 징-하고 울리는 느낌이었다. 상하이 루쉰 공원에서 루쉰의 『아Q정전?광인일기』를 읽을 때 턱밑까지 차올랐던 감동이 다시금 온 몸에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미(美)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과 탐닉을 만날 준비를 마치고 나니 비행기 타기 3시간 전이었다.

어쩌면 여행 가방은 여행의 미리보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주 들여다봐 끝이 너덜너덜해진 지도에서 여행의 동선을 읽고, 뒤축이 닳아진 운동화에서는 여행의 피로가 전해지고, 배가 빵빵한 화장품 주머니는 여행지에서 만날 로맨스의 복선이고, 매일 빨게 될 양말 2개와 속옷 3장은 여행의 일상인 것이다. 그밖에도 여행에서 만나게 될 그리움, 분실, 적적함, 환희, 착각, 체념, 긴장이 여행 가방에 각기 다른 형태로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여행 가방을 몹시 궁금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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