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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병원이 있다니!

즐거움 - 우리가 할 수 있는 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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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이 이비인후과를 찾아온 손님들이 대부분 성인 남성이라는 점이었다. ‘아저씨들이 많아서 아이를 데려가지 말라고 그랬나?’ 싶기도 했는데, 가만히 보니 아이와 동행한 남성들도 적지 않았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 근처에는 소아과가 두 곳이 있었다. 이 정도 숫자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2천 세대가 넘는 단지 규모를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예약을 하지 않고 가는 경우, 보통 한 시간, 길면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애초에 차를 몰고 다른 동네로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여섯 살짜리 딸이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갈 일이 생겼다. 워낙 폐렴이 유행이던 시기여서 어느 소아과를 가도 환자가 많을 거라는 생각으로 동네 소아과로 향했다. 몇 분 안 되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내내 ‘엄청나게 기다려야겠지?’ 대기 시간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아과 두 곳은 모두 손님이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 꼭 기다리다가 병이 더 악화될 것만 같았다. 접수를 할까? 다른 동네에 가볼까? 고민하던 차에 한 가지 대안이 떠올랐다. 어차피 감기라면 굳이 소아과만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 사실 내과나 이비인후과를 가도 무방하다. 어떤 면에선 소아과보다 나을 수도 있다. 창문 너머로 이비인후과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에게 전화해 이비인후과에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헌데 아내가 “그곳은 절대 안 돼”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아내의 거부 의사가 원채 밑도 끝도 없어서 “아니 왜?” 이유를 되물었더니, “거기는 청결하지 않다고 소문이 났어. 그리고 아이는 소아과로 데리고 가야지. 무슨 이비인후과야? 안 돼.”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소아과에서 몇 시간 기다릴 생각이 사라지고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무조건 소아과에 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됐지만, 아이들이 일반 의료원을 간다고 문제될 건 없다. 컨디션 안 좋은 아이를 두 시간 가까이 기다리게 하는 게 더 안 좋을 수 있다. 나름대로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그 이비인후과에 발을 들여놓았다. 꼭 초등학교 시절 엄마 몰래 전자오락실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과 달리 그 이비인후과는 무척 쾌적했고 고급스러웠다. 수십 마리 물고기가 춤을 추는 수족관은 언뜻 보아도 고가임이 분명했고, 구석구석 설치된 백열등은 고급스런 제과점을 연상케 했으며, 바닥에는 대리석까지 깔려 있었다. ‘분위기가 더없이 좋은데 아내는 왜 그런 소리를 했지? 진료를 형편없이 보는 것 아냐?’ 근본적인 의심을 해보지만, 진료를 받아보니 다른 곳보다 못할 것도 없었다. 더군다나 벽에 붙어 있는, 이곳 의사가 유명 연예인들을 진료하면서 찍은 열 장이 넘는 사진들은 ‘연예인도 믿고 찾는 병원’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생각할수록 아내의 ‘결사반대’ 이유를 찾아내기 힘들었다.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이 이비인후과를 찾아온 손님들이 대부분 성인 남성이라는 점이었다. ‘아저씨들이 많아서 아이를 데려가지 말라고 그랬나?’ 싶기도 했는데, 가만히 보니 아이와 동행한 남성들도 적지 않았다. ‘그럼 뭐지?’ 이 모든 의문점은 간호사들을 차례로 접하면서 자연스레 풀리게 되었다.

이곳에는 세 명의 간호사가 있었는데, 모두 굉장히 젊고 예뻤으며, 상냥하고 싹싹하게 손님들을 잘 대해줬다. 그리고 유니폼이 굉장히 섹시했다. 특히 계산대에 앉아 있는 간호사가 그 유니폼을 가장 잘 소화해내고 있었다. 아니 왜 그녀는 유니폼을 가슴골이 보일 정도로 열어놓고, 짧은 치마 속 다리는 왜 야릇하게 꼰 채 계속 흔들고 있는 건지. 계속 쳐다볼 수가 없어서 시선을 돌렸는데, 가만히 보니 아이를 데리고 온 내 또래 남자 손님들 얼굴이 모두 홍조였다. 이런 엉큼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병원이 있었다니, 이 동네로 이사 오길 정말 잘했군.’ 그동안 소아과가 적다고 투덜거렸던 태도는 어디 가고, 호감으로 급하게 돌?섰다. 그리고 그동안 이곳을 금기시 해놓았던 아내에게 울화가 치밀었다. 물론 이곳을 너무 대놓고 가면 안 된다. 다행히 받아온 처방전에 적힌 약들은 소아과 아래 병원에도 구비돼 있었다. 이비인후과에 간 줄 모르게 갈 수 있는 것이다. ‘사는 데 이런 재미도 있어야지.’ 사실 따지고 보면 별일도 아닌데, 뭐 대단한 일을 해낸 것처럼 기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했다. 솔직히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외도의 수준은 여기까지다. 혹시 ? 간호사 중 한 명과 염문이 생긴다거나 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고 가능하지도 않다. 혹시 선량한 남자들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뿐더러 다른 많은 사람들로부터 풋풋한 즐거움 하나를 빼앗아가는 행위다. 정말 너무 좋아서 가정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사랑한다면 모를까, 지금 상태가 최대한 오래 유지될 수 있게 서로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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