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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팔을 벌려 당신을 안는다 - 『하하 미술관』의 김홍기

읽는 사람들의 얼굴에 꽃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피우게 하는 그림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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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이다. 미간에 빨래판처럼 주름이 잡혀 있는 사람이라도 책을 읽다 보면 어느 때는 수줍은 미소로 볼이 발그레해지고, 어떤 때는 소리 내어 웃게 되고, 어떤 그림을 보고 나서는 다소 씁쓸하게 웃기도 할 것이다.

올해로 11년째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blog.daum.net/film-art)을 운영하면서 패션과 미술, 사진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그는 성실한 블로거다. 블로그 밖에서 그는 자기 일에 열심인 평범한 사회인이고, 부모님을 걱정하는 좋은 아들이고, 우리 사회가 좀더 평등하고 자유롭길 바라는 시민이며, 취미로 시작한 패션 공부로 복식 전공자들도 깜짝 놀랄만한 책,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쓴 학자ㅡ그는 이런 호칭을 쑥스럽게 여길지도 모르겠다ㅡ이기도 하다.

그의 두 번째 책 『하하 미술관』은 그가 4년 동안 블로그에 썼던 그림 관련 칼럼들을 새롭게 고쳐낸 것이다. 책 표지에서 앞니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처럼, 읽는 사람들의 얼굴에 꽃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피우게 하는 그림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림이 당신을 안아준다

그림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이다. 미간에 빨래판처럼 주름이 잡혀 있는 사람이라도 책을 읽다 보면 어느 때는 수줍은 미소로 볼이 발그레해지고, 어떤 때는 소리 내어 웃게 되고, 어떤 그림을 보고 나서는 다소 씁쓸하게 웃기도 할 것이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 이 책은 그렇게 웃음으로 읽는 이에게 행복을 전달한다.

구이진의 「손」이라는 연작 그림이 있다. 캔버스 한가운데에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자리하고, 그 뒤에 손이 있다. 커다란 손은 천사의 날개처럼 아이를 안아주고 어루만져주며 보듬어준다. 손이 보살펴주는 아이들의 표정엔 평화와 행복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그래 아무리 힘들어도 곧 괜찮아질 거야.’ 하는 믿음이 생긴다. 그림 속의 그 커다란 손이 보는 사람의 삶을 어루만져 주는 느낌마저 든다.

“이 그림을 그린 구이진 화가는 구호단체에서 도와주는 전 세계의 아픈 아이들을 보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픈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은 마음에 손을 그렸어요. 그리고 몇 달 후 필리핀으로 아픈 아이들을 만나러 갔는데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의 뒤에서 자기가 그린 ‘손’이 보이더래요. 그림처럼 그 손은 아이들을 안아주고, 보살펴주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때 뭔가 큰 것을 깨달은 느낌이었다고 했어요. 그런 느낌을 글로 쓰고 싶었어요.”


동시대를 호흡하는 그림에서 위안을 얻는다

『하하 미술관』은 여러모로 낯선 책이다. 미술에 대한 책이지만 지식을 다루진 않는다. 그리고 실려 있는 그림들도, 화가들도 모두 낯설다. 우리 시대를 살고 있는, 별로 유명하진 않지만, 마음을 건드리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그림을 그는 굳이 선택해 글을 썼다.

“미술이 일상화되고, 미술에 대한 책도 많이 나왔어요. 미술사나 화가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많고요. 그림이 투자의 대상이 되고, 그림이 비싸게 팔린 화가는 대가 대접을 받죠. 그런데 그렇게 미술에 대한 담론들이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한 장의 그림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려요.”

그 역시, 명화가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전시회에 가면 도슨트의 설명을 일일이 받아 적고 이론서를 열심히 읽고, ‘이 그림은 18세기 무슨 사조의 영향을 받았는데,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배경의 어느 부분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설명을 주변 사람들에게 했다. 그러던 그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화가들의 작품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들의 그림에는 같은 시대를 숨 쉬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그들의 그림에서 치유와 위로를 보았다.

“솔직히, 17세기, 18세기 그림들을 보면 멋지다, 잘 그렸다는 느낌은 드는데, 치유와 위로를 받느냐고 하면 ‘글쎄…….’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그에 비해서, 동시대 화가들의 그림,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을 같이하는 화가들의 그림에는 그것이 확실하게 느껴져요.”

그는 그림에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라스코의 동굴벽화를 보면 ‘배고프니까 이렇게 큰 짐승을 잡게 해 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큰 사냥감을 그렸잖아요.” 자기가 바라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것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은 고대인들. 그런 그림의 힘은 여전히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몬드리안의 이야기를 했다. “몬드리안은 혁명으로 혼란스러웠던 60년대, 질서 잡힌 세상, 조율된 세상을 꿈꾸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이 책에 있는 그림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이지만 희망을 꿈꾸는 그림들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책에는 밝히지 않은 화가들의 실제 삶을 조용히 이야기했다. 왜 그런 사연을 책에선 밝히지 않았을까? “그런 사연을 글에 담으면 책은 더 팔릴지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호객하고 싶지 않았어요. 중요한 건 그분들이 어떤 힘든 고통을 겪었느냐가 아니라 그 고통에 머물지 않고 그 이상의 세계로 넘어갔다는 거니까요. 그런 구질구질한 설명 없이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화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했던 희망의 크기와 치유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구원ㅡ기독교적 구원과는 또 다른 의미의ㅡ을 느낄 수 있습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며 구원을 받는다. 관객도 그림을 보면서 구원을 받는다.


7년 동안 발품을 팔아 썼던 『샤넬, 미술관에 가다』

김홍기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첫 번째 책,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내고서다. 그에게 패션은 영원히 연구해야 할 대상이다. “첫 책을 쓰는 데 7년이나 걸렸어요.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하고 고증하느라 힘들었지만, 독자들이 공들여 쓴 책을 알아봐 줘서 정말 기뻤어요.” 처음 책을 낼 때는 ‘과연 이 책이 팔릴까.’ 하는 걱정을 했지만 책은 4쇄를 찍었고, 의상학과의 학생들이나 교수로부터 ‘책 잘 보고 있다. 수업에 참고하고 있다.’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직업상 해외 출장이 잦은 그는, 외국에 나갈 때마다 복식 박물관과 미술관에 들러 자료를 조사하곤 했다. “박물관에 가서 하도 오랫동안 그림 앞에 앉아 있으니까, 처음엔 직원들이 ‘쟤 뭐야?’ 하는 눈빛으로 보다가 나중엔 친구가 됐어요.(웃음)”

그에게 패션은 즐겁고 신나는 숙제다. 서양 복식에 대해 책을 쓴 그의 다음 목적지는 한국과 일본, 중국의 옛 복식과, 헤어스타일, 화장, 장신구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보다 훨씬 수월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2년만 고생하면 될 것 같아요. 일본과 중국의 자료는 잘 정리되어 있어서 좋은데, 한국 쪽의 자료가 부족해서 아쉽습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 안타까웠다. “사람들은 한복이 원 패턴이라고 생각하지만, 색과 형태가 굉장히 다양한, 아름다운 옷입니다. 신윤복의 그림만 봐도 한복의 맵시가 얼마나 고운지, 한복이 얼마나 멋진 옷인지 알 수 있잖아요. 그리고 옛 여인의 장신구들도 참 멋스럽죠.”

그렇게 그는 옷에 매혹되어 있다. 앞으로 그는 복식과 미술, 문화와 역사가 통섭을 이루는 복식 박물관을 만들 계획이다. 그는 공부하면서, 외국에는 아무리 작은 도시에도 있는 복식 박물관이 한국에는 별로 없다는 점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복식을 공부하는 후배들을 위해, 옷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제대로 된 복식 박물관과 복식 자료 아카이브를 구축하려고 한다.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그는 그것을 위해 열심히 수집을 하고, 자료를 모으고 있다.


블로그는 기쁨을 나누는 공간이다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서른 살』을 읽고 나서 그는 4년 동안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뉴질랜드로 날아갔다. 그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일 욕심이 많아서 일에만 몰두하던 시절이었어요. 건강검진을 받으면, 위험하다는 표시가 한두 개가 아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의 지향점이 뭔가?’ 스스로에게 물었는데 회사에 다니는 건 아니었어요.”

그래서 뉴질랜드로 날아갔다. 공부도 하고, 학생들에게 강의도 하고 발레도 배우고, 소심한 성격 탓에 못했던 험한 스포츠도 원 없이 즐겼다. 그렇게 뉴질랜드 생활을 시작으로 그는 서서히 변해갔다. “성공에 대한 집념이 강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잘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바뀌더군요. 매일 매일을 충만하게 잘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거라고 깨달았어요. 성공에 대한 열망에 빠져 편법이나 옳지 않은 방법을 써서라도 성공하는 건 잘 사는 게 아니에요.”

또, 그전에 그는 이름만 다 아는 대기업의 사원, 경영학도라면 누구나 꿈꾸는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에서 인정받는 멤버였다는 자부심이 컸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는 유연해졌고 부드러워졌고 타인에 대해 너그러워졌다.

“진정한 자부심은 그 자리를 떠났을 때, 조직의 명함을 벗어났을 때 생깁니다. 명함에 이름 석 자만 적고도, ‘아, 그 사람!’ 하고 알아주는 게 진짜 대단한 사람인 거죠. 그런 것이 진짜 자부심이고요.” 그리고 행복은 나눔에서 온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서른두 살이 넘어가면서 행복이 나눔에 있다는 걸 알았어요. 너무 흔한 말이지만 진짜 나눔을 경험한 사람은 압니다. 그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요. 나중에 형편이 되면 뭔가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절대 나누는 삶을 살지 못해요.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죠.” 그는 예전에는 나눔이라면 돈을 나눠주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나누는 것도 돈과 같은 물질을 나누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위로를 나누어주고,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는 것도 중요한 나눔입니다.”

그런 그에게 블로그는 나눔의 공간이고 소통의 공간이고 성장의 공간이며 치유의 공간이다. 그리고 가끔은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그는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에게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그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힘도 얻을 수 있었다. 블로그로 좋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뭔가를 나눌 수 있어서 세상을 조금 더 따스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했다. 회사 일을 하랴, 글을 쓰랴, 강연을 하랴, 매일을 바쁘게 보내면서도 모든 댓글을 읽고 정성스럽게 답글을 다는 이유도, 그런 나눔이 그에겐 너무 즐겁고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하 미술관』이라는 책으로 웃음과 위로를 나눌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하 바이러스 캠페인’을 블로그에서 진행 중이다. 책에 실린 그림들로 파주 헤이리 금산 갤러리에서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책을 읽고 실물 그림이 궁금해진 사람이라면 한번쯤 발걸음을 옮겨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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