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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판타지의 살아있는 전설 어슐러 크로버 르귄을 만나다 - ‘서부 해안 연대기’

한 번도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는 경력 47년째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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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계의 거의 모든 상을 휩쓴 ‘헤인 시리즈’의 거장,『반지의 제왕』『나니아 연대기』와 더불어 세계 3대 판타지 소설로 꼽히는 ‘어스시 시리즈’의 작가, 어슐러 크로버 르귄이 새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어둠의 왼손』, 『빼앗긴 자들』같은 걸작을 내놓으며 SF계의 거의 모든 상을 휩쓴 ‘헤인 시리즈’의 거장,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와 더불어 세계 3대 판타지 소설로 꼽히는 ‘어스시 시리즈’의 작가, 어슐러 크로버 르귄이 새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아니, 사실 돌아왔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1962년 「파리의 4월」로 데뷔한 이래 벌써 작가 경력 47년째를 맞이하지만 한 번도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30권이 넘는 소설만이 아니라 시와 평론과 동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며 20세기 초반에 태어난 작가답지 않게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고 독자들이 편지를 보내면 사인 스티커를 보내주는 ‘센스’를 지닌, 그녀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장 활발하게 업데이트되는 코너도 작품 목록이다.

말 그대로 SF 판타지의 ‘살아있는’ 전설인 르귄이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은 ‘잘못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주인공들이 자신의 능력이 가진 진정한 의미와 그 쓰일 곳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판타지 성장 소설이다. 통칭 ‘서부 해안 연대기’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시리즈는 『기프트』, 『보이스』, 『파워』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판타지라고는 해도 어스시 시리즈와 달리 마법이 아닌 ‘능력’만이 존재하는 세계를 다룬다. 청소년 주인공의 성장담이라는 이유로 미국 출간 당시 YA(청소년 소설)로 분류되었으나, “젊은이들을 위해 쓴 르귄의 이야기는 성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어떤 소설 작품들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평을 얻었다.

사실 ‘서부 해안’의 이야기는 르귄이 창조한 세계들 중에서도 우리 세계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다. 페미니즘이나 정치 견해에 대한 세간의 평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시선을 거두지 않는 그녀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롭게 창조한 이 세계를 통해 과연 어떠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어슐러 크로버 르귄
우선 작가가 되기로 한 계기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처음 발표하신 소설은 단편 「파리의 4월」(1962)이었지만, 훨씬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신 것으로 압니다. 극적인 사건은 아니라도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작가가 ‘되기로 한’ 적은 없어요. 전 쓰는 법을 익히자마자 글을 썼어요. 아무래도 글 쓰는 것이 천성이지 싶군요. 처음에는 시를 썼고, 열 살쯤부터는 이야기도 쓰기 시작했어요. 그 후로 쭉 시와 이야기를 써왔지요…… 그러니까 70년을 쓴 셈인가요.

20대에 쓴 시 중에는 잡지에 실린 것도 있었지만 단편 소설은 몇 년이 더 지나도록 내놓을 곳을 찾지 못했어요. 「파리의 4월」이 SF & 판타지 잡지에 실린 것과 동시에 「음악에 부침」이라는 단편이 문학잡지에 실렸지요. 당시에 대부분의 문학잡지는 투고자에게 원고료를 줄 형편이 아니었던 반면에 <어메이징 스토리즈> 같은 상업 잡지들은 원고료를 줬어요. 당시 우리 부부는 돈이 없었고, 30달러면 상당한 금액이었어요. 그래서 전 SF 잡지들에 단편을 보내기 시작했고, 그 잡지들이 실어주면서…… 그렇게 해서 SF작가가 된 겁니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스스로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심미적인 요소예요. 이야기를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특질이죠. 물론 이런 특질을 딱 집어내기는 퍽 어렵지요. 특히 산문 소설에서는요. 아름다움, 언어의 아름다움, 균형 감각, 지적인 깊이와 명징성, 깊이 있는 감수성, 풍부한 상상력, 정직한 감정…… 등의 표현을 쓸 수는 있겠지만 그건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고…… 그것들을 소설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던가요. 게다가 그 모든 기준을 다 갖춘 소설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래도 제게는, 어느 정도의 미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글은 의미가 없어요. 시간 낭비죠.

어떤 식으로 집필을 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어떤 규칙이나 순서, 필요한 도구 같은 것이 있나요?

음, 대개는 앉아서 귀를 기울이지요. 그러다가 이야기가 형성되어 스스로를 표현하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리면 더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그 이야기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기록도 조금씩 해요. 그리고 계속해서 이야기가 만들어져 가면 그때 쓰기 시작하죠. 그러려면 하루 몇 시간씩 앉아서 다른 모든 생활의 소리를 듣지 않고 귀를 기울일 만한 공간이 필요해요. 특별한 규칙은 없군요. 꼭 지키는 습관도 없고. 집중과 인내심…… 그리고 공책, 펜, 컴퓨터가 제 도구예요.

이제까지 쓰신 글을 보면서 놀랐던 점이 너무나 독특한 동시에 설득력 있는 세계를 창조하여 펼쳐 보인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어둠의 왼손』에 나오는 겨울 행성 ‘게센’이나 단편 「기의 비행자들」에 나오는 ‘기’, 또는 ‘서부 해안’ 같은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내시죠? 마음속에 떠오르는 그림을 보시나요? 아니면 이야기가 먼저고, 그 이야기에 걸맞은 정보를 모아서 적절한 세계를 만드시는 건가요?

말씀하신 것처럼일 때도 있고, 다를 때도 있지요. 때로는 이야기가 자리할 장소가 보이기 시작해요. 그 장소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이야기를 찾게 되지요. 때로는 이야기가 먼저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로 나를 끌어가기도 해요. 때로는 그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풍경이 드러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럴 때에도 길을 잃지 않으려면 멈춰 서서 필요한 정보를 모으고, 가능성들을 고려하고, 기록을 하고, 지도를 만들어야 해요. 『어둠의 왼손』, 『빼앗긴 자들』, 『언제나 집으로 돌아와』에 나오는 세계들을 만드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많은 독서와 많은 생각이 필요했어요. 그런데도 소설을 쓸 때면, 언제나 그 세계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되지요.

서부 해안 3부작에 대해서 묻고 싶은데요. 이 시리즈를 집필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특히 ‘청소년Young Adult'용 시리즈를 쓰신 게 오랜만이시죠? 물론 YA라는 꼬리표는 마케팅을 위한 구분에 불과하고, 좋은 책은 그저 좋은 책일 뿐이지만요. 전 『기프트』를 읽었을 때 20년 전에 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기도 했거든요.

이 시리즈는 판타지 소설이고, 세 권 모두 중심인물이 어른이 되어가는 젊은이죠. 미국 출판계는 이런 특징만으로도 청소년 소설이라 정의합니다. 내 에이전트는 청소년 소설의 판매 시장이 상당히 좋다는 걸 알고, 나에게 청소년용이 될 법한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지금이 내놓을 만한 적기라고 했어요. 청소년 소설을 쓴 지는 오래였지만 ‘잘못된 재능the wrong gift’을 타고난 소년이라는 아이디어는 이미 머릿속에 있었죠……. 그래서 에이전트의 제안과 내 아이디어가 마주쳐 불꽃을 일으킨 거예요.


독자들을 위해 그 ‘잘못된 재능’에 대해 조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기프트』의 주인공 오렉은 아버지가 지닌 재능 - 파괴하는 능력을 이어받으리라는 기대를 받지요. 그래서 자신이 ‘잘못된 재능’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 시를 짓는 능력을 타고났다는 걸 알고 굉장히 힘들어하게 됩니다…….

‘잘못된 재능’에 대한 생각은 미리부터 하고 계셨다고요. 그러면 다른 두 권은 어떤가요? 세 가지 이야기를 함께 생각하셨나요?

아니, 전혀 아니에요. 다 따로였죠. 특정한 장소, 특정한 인물의 이야기로요. 하지만 『보이스』의 줄거리가 떠올랐을 때, 그라이와 오렉(『기프트』의 주인공들)도 그 안에 있을 것이고 나이를 더 먹은 두 사람의 삶에 대해 보게 되리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파워』가 떠올랐을 때는 그들이 마지막에 나와야 한다는 걸 알았죠!

제목 말인데요. 각 권의 제목으로 단순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단어를 고르셨지요. 기프트(선물) - 보이스(목소리) - 파워(능력)…… 일종의 단계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런가요?

『기프트』라는 한 단어짜리 제목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동일한 상상계에서 벌어지는 다른 책에 대해서도 한 단어짜리 제목을 찾았죠.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요. 그리고 이 세 제목은 그 책이 다루는 내용 그대로이기도 하니까요…….

이 시리즈에서 ‘서부 해안’에 제한된 세계를 만드셨는데요. 제게는 의미심장한 작명으로 보이네요. <게르니카>와 진행하신 인터뷰에서 소련의 상황과 이라크전에 대해 언급하신 것을 보았습니다만, 사실 저는 이 세 권의 이야기에서 서구 문명 자체를 떠올렸어요. ‘서부 해안’은 의도적인 작명인가요?

전 제 세계(서구)의 서부 해안에 살지요. 내 마음 속에서 깊고 복잡한 반향을 일으키는 표현이에요.

르귄이 직접 그린 서부해안 지도

서부 해안 연대기의 두 번째 책인 『보이스』에는 사막 민족이 숭배하는 배타적인 유일신 ‘아스’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아스’는 ‘알라’로도, ‘하나님’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더군요.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종교 갈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스’가 ‘알라’로 읽히는 것은 바라지 않아요. 영적인 세계에 대해 배타적인 접근을 주장하고, 다른 신들에 대한 숭배를 참아내지 못하는 유일신교의 신이라면 다 아스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런 배타적인 종교가 공격성과 결합되면 극도로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종교가 민족주의와 결합하면…… 설령 힌두교처럼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다신교라 해도 유일신교의 공격성과 편협함을 흉내 내기 시작하지요.


Timberland Reads Together에서 강연중인 르귄

번역 중에 재미있다고 생각한 일이지만, 『파워』의 번역은 『보이스』보다 수월한 편이었어요. 어느 쪽이 더 낫다는 문제가 아니라 뭔가 다른 부분이 있다고 느꼈죠. 차이라면 『보이스』는 여성 화자를 내세웠다는 점인데요.

최근 <가제트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난 오랫동안 남성으로 글을 썼고, 내 이야기 대부분은 남자들이 중심에 있었어요. 여성으로 글 쓰는 방법을 배우는 건 내 인생 중반기에 한 제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걸 익히지 못했더라면 글쓰기를 그만뒀든가, 그렇지 않더라도 잘 쓰진 못했을 거예요.” 라고 하셨지요?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 권 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서부 해안 연대기 중에서 읽다가 눈물이 난 건 『보이스』밖에 없었거든요.


네. 여성으로, 여성으로서 나 자신의 직관을 써서 글을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렇지만 젊은 여자나 소녀의 목소리로 쓰는 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답니다. 물론 남자 목소리로 쓰는 건 언제나 쉬웠지만요! 이상한 일이죠…….

시리즈의 3번째 작품 『파워』가 2007년 9월에 출간되었습니다. 다음 작품은 무엇인가요?

다음 책은 『라비니아』라는 제목이에요. 무척 즐거운 작업이죠! 제가 쓴 다른 어느 책과도 달라요. 이 소설은 호머의 시대, 이탈리아의 청동기 시대에 일어나는데요. 라비니아는 베르길리우스의 라틴어 서사시 「아에네이드」에 나오는 조연입니다. 이 서사시에는 베르길리우스는 트로이의 파멸에서 도망친 영웅이 로마를 세운다는 신화를 이야기해요. 전 아에네아스의 이야기가 사실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운명에 떠밀려서 침략자, 정복자 역할을 해야 했던 선량한 남자의 비극이죠. 제 소설도 그걸 그리려고 합니다.

‘서부 해안’을 무대로 한 다른 책은 계획에 없나요?

지금으로서는 이 시리즈의 다른 책에 대한 계획이 없어요. 하지만 모르는 일이죠!

혹시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군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저런, 그건 안 되겠네요.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만 명은 되거든요! 노자에서부터 셸리, 사라마구까지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저도 셋 다 좋아해요. (셸리는 메리 셸리겠죠?)

퍼시와 메리, 둘 다예요.

시간을 쪼개어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겠어요?

태평양 건너에서 따뜻한 인사를 건넵니다! 한국에는 매혹적인 이야기와 문학적 전통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한국 작가들이 상상력을 끌어내는 한국만의 방식을 찾아내길 기대합니다. 어쩌면 남미 작가들이 했던 것처럼요.

[이 인터뷰 중 일부는 장르 문학 전문잡지 《판타스틱(//www.fantastique.co.kr/)》을 통해 진행, 2008년 2월호에 수록했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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