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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 씨, 뻥치시네

뻥 좀 쳤다고 죄를 청할 수도, 글질을 그만둘 수도 없어서 나는 두 가지를 선택했다. ‘하나. 내 뻥에 대하여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둘. 글을 특별한 것으로 취급하는 걸 그만둘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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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에는 두 가지가 있다.
거짓말,

인간은 보편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 가끔 두려움 때문에 또 가끔 자신의 이익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 가끔씩은 거짓말이 진실을 방어할 유일한 수단임을 적시에 깨닫는 바람에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 『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그리고 과장.

따지고 보면 내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유달리 더 행복했거나 불행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청소년시절부터 줄곧 비극적인 감정을 느껴왔으니, 참으로 가식적이다. 불행에 대한 이 사라질 줄 모르는 허영심이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 『두 여자 사랑하기』, 빌헬름 게나찌노

주의해야 할 것도 있다.
거짓말과 속임수에 대한 분별,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이 땅에서 우리는 행복한 존재가 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 중의 누구도 거짓말을 속임수와 혼동하지는 않아.

- 『파타고니아 특급열차』, 루이스 세풀베다

그리고 과장과 체질적 통증에 대한 분별.

부식을 체험하는 것, 거의 날마다 내리는 비의 파괴에 노출된 자신을 발견하는 것, 자신이 연약한 존재로 변모하고 있고 자신의 점점 더 많은 부분들이 강풍에 날려 가서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을 아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감정의 녹이 더 많이 슨다.

- 『한낮의 우울』, 앤드류 솔로몬

거짓말에 대하여 좀 더 쑤셔볼까. 깊이는 못 판다. 기운도 달릴뿐더러 너무 많이 파면 뱀 나온다.

우선,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무식과 아둔함, 그리고 입장과 체면 때문이다. 무식하고 아둔해서 하게 되는 거짓말이란 다 아는 척, 더 이상의 오해는 없는 척, 같이 지능과 이해력의 결핍 때문에 둘러대게 되는 그런 식의 거짓말을 말하며,

뭔가를 알려면 이해를 해야 하니까요.

- 「유리의 도시」, 폴 오스터

입장과 체면에서 비롯된 거짓말이란, 예를 들어 누가 나에게 굉장히 비판적인 리뷰를 보면 어떤 마음이 드느냐고 물었을 때, ‘뭐, 괜찮아요!’ 하는 것처럼, 쿨해 보이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하는 거짓말을 이른다.

우리가 설사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로 비판하더라도, 그리하여 상대가 ‘비록 내가 실수는 했을망정 지금 내 인격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는 경우라 해도,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판을 받는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며, 비판은 상대방의 자존감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마음상함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 『따귀 맞은 영혼』, 배르벨 바르데츠키

물론 거짓말은 나쁘다. 하지만 속맘과 겉말이 늘 일치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재앙인가.

A. C. 그레일링은 그의 저서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에서 까다롭고 민감하지만 흔해터지기도 한 명제들을 세 군데로 몰아 놓았는데 첫째, 성찰해야 할 것들의 묶음에 도덕주의, 관용, 자비, 예의, 타협, 두려움, 용기, 패배, 슬픔, 죽음, 희망, 인내, 신중함, 솔직함, 거짓말, 위증, 배반, 충성, 비난, 처벌, 망상, 사랑, 행복이 둘째, 버려야 할 것들의 자루에 민족주의, 인종차별, 동물차별, 증오, 보복, 무절제, 우울, 그리스도교, 죄, 회개, 신앙, 기적, 예언, 순결, 이교, 신성모독, 외설, 빈곤, 자본주의가 셋째, 아껴야 할 것들이란 상자에 이성, 교육, 소질, 야망, 연기, 예술, 건강, 여가, 평화, 독서, 기억, 역사, 리더십, 여행, 사생활, 가족, 나이, 선물, 사소한 것이 들어가 있다. 버려야 할 것으로 분류되어야만 할 것 같은 거짓말이 성찰해야 할 것들과 한데 섞여 있다. 성찰省察, 반성하고 살피라는 소리다.

한평생 끼고 살아야 할 거라면 부작용 정도는 알아야 할 터.

돌아가신 아버지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보통사람이 철저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거짓은 늘 절로 드러나 버린다고 말이다. 그건 마치 너무 짧은 담요 같은 것이다. 발을 덮으려고 하면 머리가 드러나고 머리를 덮으면 발이 삐져나오고. 사람은 그 구실 자체가 불유쾌한 진실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숨기기 위해서 복잡한 구실을 만들어낸다. 반면에 완전한 진실은 철저하게 파괴적이고 아무런 결과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그러니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보통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조용히 서서 지켜보는 것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다. 조용히 서서 지켜보는 것.

『나의 미카엘』, 아모스 오즈

의외로 간단하군.

책 속 거짓말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거짓말은 사딕의 것이고,

태어난 지 육 개월도 안 되어서였다. 일터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난 무척 화가 났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아버지는 몸을 굽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난 질끈 눈을 감고 내게 다가올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 아버지는 아직 살아있는 거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몹시 화가 났다. 아버지는 내가 당신을 어머니로 착각하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그걸 이미 알고 있었던 나는 팔을 쭉 뻗으며 아버지를 불렀다. “엄마!” 그게 내가 한 첫 번째 거짓말이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이 녀석은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겠어!”


제일 담담했던 거짓말은

새 합병증은 그다지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씩 아프고 어딘가 불편한 것뿐이었다.

-『나의 미카엘』,아모스 오즈

이다.

그리고 떠오르는 과장 중에서 제일 섬뜩했던 과장은 사르트르의 것이고,

타인은 나의 협력자였다. 그는 존재하기 위하여 내가 필요했으며, 나는 나의 존재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그가 필요했다. 그러니 나는 나의 내부에서 존재하지 않고 그의 내부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즉 나는 그를 살게 하는 수단에 불과했고, 그는 나의 존재 이유였다.


제일 처절했던 과장은

우편함이 빨간 것도 당신 탓이야.


이다.

<활자중독> 연재 내내 나의 진실이 무엇인지 헷갈려 고통스러웠다. 소설을 쓸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소설은 처음부터 꾸미기로 작정한 것이니만큼 걸릴 게 있을 리 없었다. 오히려 더 꾸며내지 못하는 재능이 한스러웠다. <활자중독>은 그게 아니었다.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작업도 지난했거니와 매번 반복되는 사적인 고백이 양심과 정서 양쪽에서 부대꼈다. 증상은 몸에서도 나타났다. 뱃속이 부글거렸고 편두통이 잦아졌으며 전만큼 먹지 못했다. 옆구리 살이 말랐다. 어쩌면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소설 아닌 글을 쓰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든다.

애그니스 레플리어Agnes Repplier가 뭐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예술은 교훈적이지 못하고 사실을 순순히 따르지도 않으며 이론과도 싸우지 못한다. 또 설교를 받으면 죽어버린다.”

글질이 예술이라서가 아니라, 예술이란 단어를 글질로 바꿔치기해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아서 인용해보았다.

“글질은 교훈적이지 못하고 사실을 순순히 따르지도 않으며 이론과도 싸우지 못한다. 또 설교를 받으면 죽어버린다.”

나에게 글은 이렇게나 허약했다. 뻥으로 임시변통한 글이라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결국 나는 길을 잃고야 말았다.

<조금씩 깊이 들어왔어요.> 그가 말하더군. <그리고 좀더 깊이 들어오곤 했지요. 그랬더니 결국은 너무 깊이 들어오게 되어 이제는 돌아가는 방법조차 모를 지경에 이른 거죠……>

-『암흑의 핵심』, 조셉 콘래드

뻥 좀 쳤다고 죄를 청할 수도, 글질을 그만둘 수도 없어서 나는 두 가지를 선택했다.

하나. 내 뻥에 대하여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둘. 글을 특별한 것으로 취급하는 걸 그만둘 때가 됐다.



참 편리한 뻔뻔스러움이다.

+
오늘 밤 오경 중만 하더라도, 부서진 오두막집 속에서 다시금 몇 천만 명의 사람이 천만 가지 생각을 일으켜 세계에 가득 차고 넘침이 있으리라.


은근히 무서워, 그중 나에 대한 생각이 있을까봐.
이 말은 뻥이다. 거짓말일까, 과장일까?


※ 운영자가 알립니다
<김진규의 활자중독>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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