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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음악 여행을 떠나는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배울 것이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고, 경험하지 못한 게 많은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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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국행은 내년에 전 세계로 발매될 여섯 번째 앨범 『Voyage』, 고국에서의 공연과 더불어 데뷔 무대이기도 했던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마지막 공연 무대에서 14년 만에 ‘선녀’로 다시 서서, 노래를 부른다는 점에서 더욱 뜻 깊다.

연말이 되면 아티스트들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1년 내내 해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더라도 연말만큼은 고향, 고국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한다.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도 파리에 살면서 전 세계로 투어를 다니지만 연말에는 한국에서 공연을 하며 보낼 때가 많다.

이번 한국행은 내년에 전 세계로 발매될 여섯 번째 앨범 『Voyage』, 고국에서의 공연과 더불어 데뷔 무대이기도 했던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마지막 공연 무대에서 14년 만에 ‘선녀’로 다시 서서, 단 한 곡이라 아쉽긴 하지만 노래를 부른다는 점에서 더욱 뜻 깊다.

어제(12월 26일) 첫 무대였는데 어땠나?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만큼 떨렸다. 14년 전에는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해야 했는데 이번 무대는 노래 한 곡만 부르고 내려오면 되는 데도 많이 떨렸다. 옛날에 같이 출연했던 분들을 다시 뵈니까 눈물이 나더라. 31일에는 그동안 출연했던 분들이 다 모여 잔치라도 하듯 뒷풀이를 하기로 했다. 그리운 분들을 많이 뵐 것 같다.

지금 14년 전에 ‘선녀’ 역을 했던 자신을 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솔직히 내가 그걸 어떻게 했을까, 싶다. 정말 정신이 없었지.(웃음) 무식하면 용감하다, 라는 말은 내가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한데, 그때는 정말 무식해서 용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인간은 다행히도 망각의 동물이라 14년 동안 잊고 살았는데 이번에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니까 그 때 기억이 다 떠올라 버렸다. 그런데 지금은, 도저히 할 수 없다. 그러면 지금보다 젊었을 때가 더 나은 건가?

젊었을 때는 자신의 미숙함이나 불완전함을 잘 못 보니까 오히려 도전하긴 쉬울 것 같다. 나윤선 씨는 ‘지하철 1호선’을 안 했으면 인생이 많이 변했을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음악하고 상관없는 삶을 살 수도 있겠고.



그럴지도. ‘지하철 1호선’을 안 했다면 내 인생은 분명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이번 공연을 하면서 선후배들을 많이 만났는데 내가 많이 변했다고 하더라. 나는 내가 뭐가 변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후배들이 내 음악을 들었다, 음반을 샀다, 어디서 활동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할 때마다 왠지 가슴이 뿌듯했다. 내가 14년 동안 헛살지는 않았구나 싶어서. 그런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흰머리도 생기고, 눈가에 주름도 생기고.(웃음)

여섯 번째 앨범 『Voyage』는 나윤선에게 어떤 음반인가?

타이틀처럼 나의 새로운 음악적 여행을 담은 앨범이다. 이전까지는 프랑스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했는데 이번 앨범은 프랑스를 떠나서 북유럽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했다. 음반도 독일 레이블(ACT)에서 나오게 되었고. 새로운 여행, 새로운 도전, 새로운 시도를 담았다.

음반이 월드와이드반이라고 들었다.

한국에는 올 9월 발매되었고, 내년 2월에 전 세계에 앨범이 풀린다.

실험적인 시도를 담은 앨범들은 어딘지 긴장감이 느껴지곤 하는데 이번 앨범 『Voyage』는 편안한 느낌이었다.

음반 작업이 너무 편안했다. 북유럽 사람들이 굉장히 여유가 있다. 게다가 날씨가 그쪽 사람들이 놀랄 만큼-다들, 말도 안 되게 날씨가 좋다고-쾌청했다. 함께한 뮤지션들이 모두 그 분야에서 대가로 대접받는 분들이어서 배우는 게 많았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느긋하게, 음악적 역량이나 인간적인 도량이 깊고 넓어서 흔들림 없이 자기 음악을 하시는 분들이다. ‘어떤 시도, 어떤 모험을 해도 괜찮아, 내가 잘 받쳐줄 테니까.’ 하는 게 느껴졌다. 그런 분위기라서 자유롭고 편안하게 노래를 불렀다.

북유럽이라? 왠지 우울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직접 겪어 보니까 오히려 남부 유럽 사람보다 더 여유롭고 매사에 쿨한 편이었다. 나라가 부자고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 음악도 프랑스하고는 또 다른 개성이 있었다. 의외로 우리나라 정서에 잘 맞아서 놀랐다.

음반 작업을 하면서 함께한 뮤지션들에게 어떤 점을 느꼈나?

여유와 심플한 삶. 아름다울 정도로 단순한 삶을 산다. 음악하고 가족. 삶에 딱 이 두 개밖에 없는데, 너무나 만족하면서 산다. 불필요한 낭비나 군더더기가 없으면서, 풍요롭고 따스하다. 이번에 한국 투어를 같이한 스웨덴 뮤지션 울프 바케니우스(Ulf Wakenius)도 그렇게 살더라. 함께 투어를 하면서 지켜봤는데 눈 뜨면 기타를 치고 시간이 되면 공연하고, 맛있는 김치와 밥만 있으면 행복해한다. 굉장히 단순하게 산다. 곁다리가 없다.

그런 단순한 삶에 끌리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음악을 하며 살다 보면, 모든 아티스트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늘 불안을 안고 산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계속 내 음악을 할 수 있을까 같은 음악적 불안이 있고,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음악만을 추구하면서 살아도 될까, 음악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같은 불안도 있다. 삶과 음악-혹은 예술-을 양립하는 문제는 늘 불안을 야기한다. 그런 불안이 삶에 긴장을 주기도 하지만 너무 팽팽하게 잡아당기면 어느 순간 ‘팅’ 하고 끊어질 수도 있고, 자기 삶을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모든 아티스트는 그런 불안을 억누르며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한다. 그러다 심플하게 곁가지 없이 음악을 하면서도 충분히 삶과 음악을 양립시키고, 게다가 거기에 만족해하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큰 위안을 받는다. 아, 저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저런 식으로 살 수도 있구나, 하고 깨닫는다. 일종의 역할 모델 노릇을 해주시는 셈이다.


음악이 지금 삶에 몇 퍼센트 정도 차지하는 것 같나?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부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데뷔하기 전까지 좋아하는 취미 정도였다. 음악과 가까운 환경에서 자라긴 했어도 음악을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대학 전공도 불문과였고, 학교 졸업 후에는 회사 생활도 잠시 했다. 그러다 친구가 보낸 데모 테이프 덕에 ‘지하철 1호선’의 주연으로 데뷔했다. 굉장히 우연한 기회로 음악을, 그것도 늦게 시작한 셈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음악을 해 왔는데, 음악은 내 삶에서 일이다.

일이라면 왠지 노동의 느낌인데, 뉘앙스에 따라서 오해할 수도 있겠다.

나는 아티스트라는 자의식이 없다. 음악은 내게 일이지만 누가 음악을 해서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에게 음악은 그것을 통해 뭔가-위안 같은 것-를 얻는 것도 아니고, 누리는 것도 아니다. 일이다.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음악은 나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이었다. 물론 노력해서 지금의 위치에 왔지만 누구나 노력은 다 한다. 음악을 일로 삼고, 내 일상의 닻으로 삼게 된 건 큰 행운이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다.

음악을 늦게 시작해서 좋은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배울 것이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고, 경험하지 못한 게 많은 것이 좋다. 마치 여행 떠나기 전날의 기분과 비슷하다. 어디로 떠나 누구를 만날지 모른다. 앞으로 경험하게 될 것에 대한 기대나 호기심 덕분에 삶이 충만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뮤지션들이 으레 겪는 불안이나 고독을 덜 느끼는 것 같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음악을 하고 싶다. 계속 그런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긴 외국 생활에, 일 년 내내 전 세계로 투어를 다니는데 피로감을 느끼진 않나?

아직은 없다. 계속 배우고 있는 과정이라 지루하거나 힘들다는 걸 잘 못 느낀다. 단순한 삶이라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해서 평범하게 자기만의 일을 보내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산다. 음악은 내가 누리는 뭔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이다. 음악을 ?궼 행복하고, 내 음악을 듣고 누군가가 좋아한다면 기쁜 일이지만 음악이 내게 어떤 위안을 주거나 내 삶을 지탱할 힘을 주는 것 같진 않다.

약간 불만이 있다면 여행 가방을 싸는 게 힘들다. 집에 오자마자 다시 여행 가방을 싸서 떠나야 할 때도 많다. 가방 싸고 푸는 게 지겨워서 일주일 정도 있다가 또 떠나는 일정이면 아예 여행 가방을 풀지 않는다. 1년 내내 투어를 다니다 보니 명품 가방보다 여행 가방에 관심이 많다. 가벼우면서 많이 들어가는 가방이 최고다.


전 세계를 돌아다녔으니 웬만한 곳은 다 구경했겠다.

그럴 형편이 안 된다. 아무리 유명한 곳에 가도 구경할 시간이 없다. 호텔에서 짐 풀고 리허설하고 공연하고 그 다음날 바로 떠난다. 점만 찍고 가는 거다. 워낙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니 마일리지는 많이 쌓인다. 공짜 비행기도 많이 탔다.(웃음)

공연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하루를 보내나?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다. 음악을 듣고, 뭘 꺼내 읽기도 하고. 아무튼 하루 종일 뭘 하기는 한다.(웃음)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만나는 친구가 그리 많지 않다.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왠지 지금처럼 살지 못할 것 같다. ‘아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고, 내 삶과 친구 삶을 비교하게 될 것 같고, 괜히 조급한 마음이 들 것 같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서 내가 원하는 속도대로 살 수 있는 것 같다.

돈을 많이 번다거나, 유명해진다거나 하는 세속적인 욕심은 없나?

아니, 많다.(웃음) 돈 많이 벌고 싶다.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고, 사고 싶은 음반도 너무 많다. 내가 음반 욕심이 많아서 집에 가면 아직 뜯지 않은 CD도 꽤 많이 쌓여 있다. 유럽은 CD값도 비싼 편인데, 언젠가 CD값으로 카드 한도를 넘긴 적도 있었다. 실컷 CD를 사고 공연도 많이 보러 가고 싶다.

내년 계획은 어떤가?

일단 『Voyage』가 월드와이드하게 풀리고, 투어가 잡혀 있다. 1월은 프랑스, 3, 4월은 유럽, 5, 6월은 아시아, 7, 8월은 다시 유럽으로 와서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10, 11월에는 호주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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