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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의 꿈

꿈. 어떤 꿈? 예를 들자면, ‘요가 엿새 만에 다리가 처음으로 꼬아지기 시작했는데 더는 하기가 싫어졌다. 뭘 하든 석 달은 버티는 인간이 되었으면 싶다.’ 할 때의 그런 꿈? 그런 꿈! 그러니까 꿈, 끝도 없는 희망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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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어떤 꿈?
예를 들자면, ‘요가 엿새 만에 다리가 처음으로 꼬아지기 시작했는데 더는 하기가 싫어졌다. 뭘 하든 석 달은 버티는 인간이 되었으면 싶다.’ 할 때의 그런 꿈?
그런 꿈!
그러니까 꿈, 끝도 없는 희망사항.

# 에피소드 1

신神의 이상은 자기 힘을 다시 찾을 것을 알면서 인간이 되는 것이고, 인간의 꿈은 개성을 잃지 않고 신神이 되는 것이다.

- 『인간조건』, A.말로

혹시 다 아는 이야기?

고대 중국 진晋나라 임금 문공文公이 19년 동안 망명생활을 할 때였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개밥그릇 속 도토리 신세에 ‘개자추介子推’라는 신하 하나만이 그를 따라다니며 충심으로 보필했다. 문헌에는 개자추가 굶주린 임금에게 제 허벅지살까지 에어내 주었다고 적혀있다고 한다. 그랬건만.

문공은 개자추를 잊었다. 나라를 되찾고 나서 수많은 사람을 등용하면서도 오로지 개자추만을 까마득하게 잊었다. ‘한낱 잊힌 인물’에 불과한 개자추는 금전산錦田山으로 들어가 자신을 감추었다.

뒤늦게야 문공이 사람을 시켜 산속을 뒤졌다. 하지만 개자추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문공, 산에 불을 질러버렸다. 개자추 스스로 산을 나오게 하려는 뜻으로. 하지만 문공에게야 그 불이 ‘어떻게든’을 의도한 마지막 수단이었는지 몰라도 개자추에게는 그 마지막이 통하지 않았다. 끝내 나오지 않고 나무 한 그루를 부둥켜안고 타죽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 날을 기억하고자 했다. 하여 해마다 그날만은 불을 피우지 않고 모두 찬밥을 먹었는데, 이것이 한식寒食 민속의 발생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학자들이 명명한 ‘개자추 콤플렉스’로 내 뜻, 내 주장, 불평과 불만을 나를 들볶아 고생시키는 이른바 자학으로 내향 처리하는 경우, 그러니까 나를 피해자로 만들어 타인의 동정을 유발하는 심리를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에서 종교를 보았다. 자신만의 가치를 위해 순교를 택했다는 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죄의식을 남겼다는 점에서.

쯧. 그만큼 찾는 거 같으면 못 이기는 척하고 나가고 말지. 나가서 욕을 해주든지, 몸으로 한판 붙든지, 것도 아님 소맷자락 부여잡고 당신 너무했어, 통곡이라도 하든지. 그러고 끝내지.

여하간, 그리하여 내 꿈은 자연사自然死.

# 에피소드 2

그녀는 미세하고 정확한 마이크로 칩과 같다. 그녀의 손길만 닿으면 모든 것이 정돈되고 순수해지며 깨끗해진다.

내 평생 들어 받잡을 만한 문장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국엔 깊은 환상이고 지나친 착각이라고 결론이 났지만 말이다. 글자를 덮은 형광 분홍색의 발광이 잦아드는 동안 나는 나대로 착실하게 너절해져온 셈이다.

매사와 범사에 결벽과 완벽을 꾀하는 B형 곱슬머리의 남자와 살다 보니 때때로 절망이다. 특히나 문서와 걸레 앞에서.

아, 이제는 온전히 놓아야 할 꿈.

# 에피소드 3

“당신은 2등 인생의 특징을 아십니까? 그들은 다른 누군가가 이루어놓은 업적에 분개하지요. 그런 소심한 사람들은 누군가의 업적이 자신의 것보다 더 훌륭하다고 판명이 날까 봐 두려워 벌벌 떨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당신이 정상에 올라서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존경하고 감탄하는 업적만큼이나 큰 외로움이지요. 그들은 쥐구멍에서 나와서는 당신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립니다. 당신이 그들 중에서 빛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을 찾으려고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그들은 마치 당신이 자신들을 그 쥐구멍에 가둬놓은 장본인인 것처럼 따져대죠. 그들은 당신이 이루어놓은 업적을 부러워합니다. 그들의 꿈이란 자기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을 이루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꿈이야말로 자신의 평범함을 드러내는 것이란 사실을 ?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뛰어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죠. 자신보다 멍청한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범인들은 짐작조차 못하지요. 증오의 기분일까요? 아닙니다. 증오가 아니라 무료함이지요. 그것도 지독하고, 전신을 마비시켜 버릴 만한 희망 없는 무료함 말입니다. 당신이 존경하지도 않는 자에게 어떻게 칭찬과 찬사를 보낸 수 있겠습니까? 멸시해야 마땅한 그 대상에게 존경이란 것이 생겨날 수 있겠습니까?”

- 『아틀라스』, 에인 랜드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체격은 날이 갈수록 후져갔고 나는 그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성질은 날이 갈수록 망해갔고 나는 그 꿈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버리는 꿈들이 무거워져갈수록 시샘과 질투도 나날이 발전했다. 마이너리그가 지겨웠다.
이제 뭔가가 시작되고 있는 지금, 다시 꿈을 꿔도 되는 거겠지?

# 에피소드 4

더 많은 것들이 발견될수록 모르는 것은 더욱 많아진다.
- 『사랑을 위한 과학』, 토머스 루이스 外

딱 두 달 일했던 출판사. 야단맞고 지적당하고 그러느라 하루가 짧던 시절. 심부름이 떨어졌다. 아래층 총무부에 가서 어디어딘가로 팩스 보내는 일이었다. 덩치 좀 나간다는 출판사였음에도 총무부 방에만 팩스가 있었으니 내가 늙었다는 사실이 이런 데서 티가 난다.

어쨌든 의기양양하게 내려가기는 했는데 생각해보니 팩스를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는 나였다. 본 적이 없으니 보낸 적이 있을 리는 더 만무. 심장이 살을 뚫고 나오려는 걸 다독이며 들어서니, 다행스럽게도 방에는 낯익은 선배 여직원만 혼자였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잠깐의 희희낙락이 지나갔다.

한데 이 선배, 팩스 보내러 왔다는 말에 고개만 까딱하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 거였다. 자존심에 묻지도 못하고 팩스전화기에 깨알같이 써붙어 있는 설명서에 의지해 과감하게 시도를 시도. 대강 이런 뜻인가 보다 지레짐작하고 마구 떨리는 손가락으로 번호를 조심스럽게 누른 다음, 가던 신호가 멈추자마자 기계에 대고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 팩스 가요… 받으세요…! 팩스 가요… 받으세요…!

그렇게 몇 번을 질러대다 고개를 들어보니 의아한, 다행히도 의아한, 비웃는, 이 아니고 그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던 선배 왈,

- 요즘 팩스는 말도 알아듣나?

나의 무식함이 적나라해지면, 부디 투명인간이 되게 해주소서.

#에피소드 5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不信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최근의 내 꿈은 깨끗하고 맑고 자신있게 욕하는 것. 미친 삼월이 머리 풀어헤치고 널뛰듯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의식과 양심은 있으나 무식하고 비겁하게 살아가는, 그런 자의 뒷담화 말이다.

+
꿈에도 생각 못하는 일이 있다.
이런 경우.

세 살 적인가 네 살 적인가, 딸아이가 물었다.

- 옴마!
- 엉?
- 뱅기 타 밨셔요?
- 엉!
- 온제요?
- 아빠랑 결혼하고 신혼여행 갈 때.
- 음…, 뱅기 안 무셔워요?
- 처음 탈 때 쬐끔 무서웠지.
- 옴마 먼저 탔셔요? 아빠 몬저 탔셔요?
- 글쎄! 왜?
- 사다리 안 흔들려요?
- 응? 그게 무슨 말이지?
- 하늘에 뱅기가 이……케 떠 있자냐요? 그럼 사다리 타고 올라갈 때에… 막 안 흔들려요?

그리고 이런 경우.

주인은 오랜만에 메이테이 선생한테 한방 먹였다는 생각에 득의양양했다. 메이테이 선생의 눈으로 보면 주인의 가치는 고집을 부린 만큼 하락한 셈인데, 주인의 눈으로 보면 고집을 부린 덕분에 메이테이 선생보다 대단해진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일이 종종 생긴다. 고집을 끝까지 부려서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당사자의 인물 평가는 뚝 떨어져버리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고집을 부린 본인은 죽을 때까지 자기 체면을 세웠다고 굳게 믿고서 그 이후 남이 경멸해서 상대해 주지 않는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행복을 돼지의 행복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꿀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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