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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리엥 소렐은 무슨 죄로 죽었을까? - 『적과 흑』

쥘리엥 소렐을 읽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허영으로서의 욕망에 얼마나 나를 맞춰야 하는지의 문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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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대한 갈구
그것이 내 아주머니인 아름다운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의 성격이었다
아주머니는 얼마 안 되어 현재 앙리 4세란 이름으로
프랑스를 통치하는 나바라 왕과 결혼했다
노름을 좋아하는 것이 이 사랑스러운
왕비가 지닌 성격의 비밀이었다
열여섯 살 되던 때부터 오빠나 동생들과 다투었다 화해했다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젊은 처녀가 무엇에 도박을 걸 수 있단 말인가?
아주머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일생 동안의 명성과 존경이었다

- 샤를 9세의 서자 앙굴렘 공작의 회상록

『적과 흑』을 처음 읽으려는 사람은 고혹적인 이자벨 아자니가 카트린 드 메디치의 딸 마고로 나오는 <여왕 마고>를 먼저 봐도 좋을 것 같다. 『적과 흑』의 여주인공 중 하나인 대귀족의 딸이자 사교계의 여왕 마틸드 양이 진실로 매료되는 시기는 바로 이런 시기들로, 마틸드는 이럴 때야말로 권태가 없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마틸드는 쥘리엥 소렐이 당통 같기를, 롤랑 같기를, 혁명의 제 1계급 같기를 그리고 바로 그런 남자를 취함으로서 자신은 끝없이 주목받기를 희망했다. 독특한 운명을 갖기를, 비범한 미래를 갖기를, 권태가 없기를.

영화 <여왕 마고>(1994)의 한 장면

1570년대의 종교전쟁 기간에 카트린 드 메디치는 마고를 신교도인 나바라 왕과 결혼시켜 신·구교의 갈등을 완화시켜 볼 맘이 있었다. 여왕 마고는 종교전쟁 와중에 자신이 사랑했던 당대의 미남 애인을 잃는다. 영화에서 뱅상 빠레가 역할을 맡은 라 몰르의 잘린 목을 여왕 마고는 그녀의 보석과 함께 묻어주라고 한다. 영원히 젊고 아름다운 그의 얼굴을 그녀의 보석이 휘감고 있도록.

“라 몰르는 나바라의 왕비 마르그리트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애인이었습니다. (…) 칠팔 년 전에 마틸드 양이 열두 살밖에 안 됐을 때 직접 내게 고백한 것이지만 마틸드 양을 감동시킨 것은 머리, 잘린 머리였어요. 나바라의 마르그리트 왕비가 대담하게도 사형 집행인으로부터 자기 애인의 잘린 목을 돌려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고서 다음 날 한밤중에 왕비는 자기 마차에 목을 싣고 몽마르트르 언덕 밑에 있는 예배당에 가서 손수 그 목을 묻었다는 것입니다.”
- 쥘리엥 소렐과 아카데미 회원의 대화 중에서

스탕달은 『적과 흑』을 1830년대의 연대기라고 표현했다. 내가 『적과 흑』에서 배운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1830년대, 다른 하나는 ‘위선과 권태와 허영과 모방’이 뭉쳐서 풍기는 근원적인 우수. 『적과 흑』을 다 읽고 나면 내면의 자연스러운 열정, 순수함, 평온 같은 것들이 못 견디게 그립고 ‘그것이 그토록 갖기 어려운 것인가’ 심장에 탐조등을 들이대보고 싶을 지경이다. 스탕달은 민주주의란 게 막 생겨나기 시작하는 19세기에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에 대한 질문을 일찌감치 던진 셈이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질문은 너무 빨랐고 너무 모던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바로 그걸 궁금해하고 있지 않는가?

소설 속에서 1830년대에 대한 묘사는 많은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자주 나온다.

- 오십 년 후에는 유럽에 공화국 대통령들만 있고 왕은 한 명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귀족도 사라지고 더러운 다수에게 아첨하는 입후보자들만 보이는 것입니다.
- 교육을 잘 받은 하층계급의 청년들 때문에 로베스피에르 같은 자가 다시 출현할지 ?릅니다.
-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1830년의 프랑스인이 아니다.
- 나를 좋아하려면 보나파르트를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인간 볼테르 같으니라고.
- 자기 정열에 몸을 바친다. 그것은 좋다. 그러나 없는 정열에 몸을 바치다니. 오, 가련한 19세기여, 권태의 시기여.
- 프랑스에서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허영심뿐입니다.
- 메마르고 오만한 허영심, 자존심의 온갖 뉘앙스, 그 이상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 나폴레옹 몰락 이후 일체의 다정다감한 면모는 지방의 풍속에서 추방되었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쫓겨날까봐 두려워했다. 위선과 권태가 더 심해졌다.


왕권이 붕괴되고 혁명으로 평등이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는데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더 피곤해지고 취약해졌다. 특권을 파괴함으로써 누구에게나 기회는 열려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기회에서 자기만 소외될까봐 다 같이 신경이 곤두섰다. 더 경쟁하게 되고 더 불안해졌고 더 의혹에 찼다. 경쟁과 함께 질투심과 부러움은 사회에 전체적으로 퍼져 나갔다. 마틸드 같은 대귀족들은 루이 15세 시대를, 여왕 마고 시대를 반동적으로 그리워했다.

이런 와중에 쥘리엥 소렐은 수입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소도시에서 돈밖에 모르는 소렐 영감의 막내아들로 태어난다. 그는 사제에게 라틴어를 배웠고 기억력이 끔찍하게 좋은 덕택에 당시 시장인 드 레날 씨 댁의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그 마을에서 가장 부유하고 아름답고 선량한 드 레날 부인을 만나게 된다. 드 레날 부인의 남편 드 레날 씨는 다른 식으로 1830년대를 상징한다. 그는 성공한 부르주아로 자신이 우월하다는 걸 끝없이 확인하고 싶어 하고 남과 비교하고 남을 강박적으로 의식한다. 그가 남들이 자기를 몹시 부러워한다고 생각하는 근본 바탕에는 이런 생각들이 있다. “나에겐 잘 가꿔 놓은 집이 있고 현관은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고 창문마다 아름다운 초록빛 덧문이 있지 않는가?”

드 레날 부인은 남편을 판단하거나 남편에게 싫증 난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순수한 영혼으로, 남편을 그저 가장 싫지 않은 남자 정도로 여기며 만족한다. 쥘리엥이 그 집에 올 때까지 그녀는 실제로 자기 아이들에게만 관심을 보여서 아이들의 사소한 질병이 그녀의 행복보다 만 배는 중요했다.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착한 가정주부의 운명인 많은 집안 일에 완전히 몰두해 있던 드 레날 부인은 ‘사랑의 열정에 대해서는 속는 것이 확실하며 어리석은 자들이나 추구하는 행복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런데 쥘리엥에게서 영혼의 고귀함, 인간미 같은 것을 보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어머나, 내가 사랑에 빠지다니!’ 하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진정으로 살아온 것 같지가 않다고 느낀다. 그녀는 고결하고 공상적인 영혼의 소유자로 책의 초반부에서 그녀가 쥘리엥에게 느끼는 고통이라고 해봤자 자기가 쥘리엥보다 열 살이나 많다는 것, ‘그를 영원히 잃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것 정도다. 그녀에게는 사랑의 모든 면이 새롭다.

쥘리엥 소렐에게 특이한 것은, 그가 되고 싶었던 것은 순수하고 소박한 중산층 혹은 벼락출세한 부르주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출세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골백번이라도 죽음을 택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에게 이상적인 사람은 나폴레옹이었다. 그는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볼테르의 책 속에 숨겨두는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일개의 무명 중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검의 힘으로 세계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지낸 시간은 한 시간도 없는데, 그 생각이 그를 불행으로부터 위로해 주었다. 그는 고향을 경멸했고 고향에서 눈에 띄는 모든 것은 상상력을 얼어붙게 한다고 생각했으며, 어느 날엔가는 파리의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소개되고 어떤 빛나는 행동에 의해 그녀들의 관심을 끌 수 있으리란 감미로운 공상에 자주 잠기곤 했다. 특히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마음속 깊이 경멸했으므로 그는 늘 경계심에 가득 차 있었고 위선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겐 선과 악의 대결이 중요한 게 아니라 확실한 안락과 청춘의 영웅적 꿈의 대결이 중요했다. 그는 늘 위선을 떨고 있었기 때문에 고통받는 자존심의 대표 선수였고 모방의 선수였으며 오만한 고립의 대가였고 자신의 과실에 지나치게 민감했다. 그는 상류사회 인사들의 식탁에 어울리면서도 ‘내가 도달하려는 더러운 행운이란 이런 꼴이다, 나는 이런 조건에서 이런 무리와 어울려야만 행운을 얻을 수 있다.’라고 자기 자신에게 속삭인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멸시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손톱만 한 흠도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는 혁명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단지 비웃으면서 동경했을 뿐이다. ‘내게는 먹고살 천 프랑의 연수입이 없기 때문에 내 생활은 위선의 연속인 것이다.’라고 자신을 정당화하면서도 반항하는 하층민의 음울한 역할이나 하는 주제라고 끝없이 자신을 경멸하다가 지쳐버린다. 그의 민감한 감수성, 로미오 같은 몽상가적 기질, 비극적이고 사색적인 우수, 속으로는 체념에 끝없이 끌리는 자의 예민함, 감정을 깊숙이 느끼는 대신 감정을 생각해내는 것은 쥘리엥 소렐식 인간형이라고 할 만한 인간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쥘리엥을 멸시할 수도 있고 동정할 수도 있고 따라할 수도 있고 쥘리엥이 되기도 한다.

- 자기 자신의 태생이나 현실이 인정하는 것보다 더 높은 어떤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을 때
- 동경하는 세상이 있는데도 내적 공허에 시달릴 때
- 자신에게 딱 맞는 세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느꼈을 때
-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믿음이 없을 때, 그 결과 내면이 모험을 떠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흉내만 내고 있을 때
- 자기 만족이란 없고 쉼도 없는데 운명이 시시해질까봐 주저앉을 수도 없을 때
- 누구에게도 완전한 정열과 열정으로 몸을 내던지지 못하고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해석만 하고 있을때

그에겐 사랑도 야심이어서 사랑하는 순간에도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녀의 애인이 된다는 것은 나의 의무이다.”

나중에 파리로 올라가 후작의 개인 비서로 일하며 후작 댁의 영양 마틸드의 사랑을 받게 되었을 때 그가 마틸드의 사랑으로 들뜬 과감한 편지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오늘밤에 꼭 말해야 해요
자정이 지나 한 시가 울리면 정원으로 나오세요
우물 옆에 있는 정원사의 큰 사다리를 갖다가 제 방 창문에 걸치고 제 방으로 올라오세요
오늘 밤엔 달이 밝겠군요
그러나 아무려면 어때요


를 받고 마침내 한 시에 그 방에 들어갔을 때 보인 반응은 쥘리엥의 성격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쥘리엥은 아주 거북했다.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그는 전혀 사랑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당황한 와중에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마틸드에게 키스하려고 했다. (…) 그는 행복을 느낄 수 없는 데에 놀랐다. 마침내 그는 이성의 힘을 빌려서라도 행복을 느껴보려고 했다. 오만한 처녀에게 자신이 존경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겨우 자존심이 만족되는 행복에 다다를 수 있었다. 지금 그가 느끼는 감정은 야심에서 나오는 감정이었다. 지금 쥘리엥은 무엇보다도 야심에 차 있었다. 정열적인 사랑이 그들에게는 현실이라기보다는 모방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그는 이와 비슷한 감정을 자주 토로한다.

- 그는 행복하기보다는 놀라운 기분이었다. 때때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행복감은 어떤 혁혁한 무훈을 세우고 총사령관의 특명으로 단번에 연대장에 임명받은 청년 소위의 행복과도 흡사한 것이었다.

- “나는 잠자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 천사같은 아름다움이 온전히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없으리라.”

마침내 파리의 온 귀족이 사랑했던 사교계의 오만한 꽃 마틸드를 차지하고 출세하기 일보 직전 드 레날 부인이 자신들의 과거를 폭로하는 편지를 후작 댁에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드 레날 부인에게 두 발의 총을 쏜다. 그리고 감옥으로 끌려가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영웅주의에 지쳐버린다.

지금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하고 순진하며 수줍은 애정일 텐데 마틸드의 오만한 마음은 여전히 관중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념이 필요했다. 그녀는 자기의 열렬한 사랑과 숭고함으로 대중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다는 은근한 욕망를 품고 있었다.

쥘리엥 소렐이 죽음 직전에 하는 생각 중 최고는 ‘나만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지 알고 있다. 남들에게는 나는 기껏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했지만.’인데 그것은 그의 폭풍우 같은 일생 중 거의 유일하게 남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발언이었다. 인생 최초로 ‘남들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야?’라고 외치는 거나 다름없다. 인생 최초로 남이 부럽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쥘리엥 소렐의 삶은 실상 우리가 삶이라는 외피에 어쩔 수 없이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아도 사실 그 삶이 그 사람의 본질이란 걸 보여준다. ‘삶을 산다기보다 삶을 끝없이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진짜 삶은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어느 멋진 날은 따로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 날, 쥘리엥 소렐을 생각하면 우리가 어디를 향해 어떤 방법으로 질주해야 하는지 알 것도 같다.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면 충분히 강해야 한다는 것. 싸워야 한다는 것. 자기 욕망 안에서 자기가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 자기 욕망을 남한테 평가받는 데만 주력하다 보면 공허는 필연이라는 것. 미래라는 허울로 굴욕당하는 자아가 되지 않으려면 욕망과 기쁨을 내부와 현재에서 퍼올릴 것.

나에게 이 소설의 최고의 명장면은 아직 파리로 가기 전 쥘리엥이 10시가 울리는 바로 그 순간에 오늘밤에 실행하겠다고 종일토록 다짐한 일을 하고야 말겠다고 맹세하면서, 열 시를 알리는 마지막 종소리가 아직 울려 퍼지고 있을 때 손을 내밀어 드 레날 부인의 손을 잡는 장면이다. 이 장면의 떨림은 소심함과 자존심 사이의 문제이지 허영과 야심의 문제가 아니라서 좋다. 이 무렵의 쥘리엥은 아직 팔 월의 태양 아래 매 한 마리가 유유히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새의 힘과 고독을 부러워하고 운명을 궁금해하는 청년에 불과했다. 한 점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그가 고향을 떠날 때 고향의 종탑을 몇 번이고 돌아보는 것.

그리고 두 번의 사다리 장면. 쥘리엥 소렐은 사다리를 타고 두 애인의 방에 차례차례 올라가 더할 나위 없는 밤을 지새우는데 그 결은 너무나 다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목이 잘려나갈 때의 이 머릿속.

잘려나가려는 그 순간만큼 그의 머리가 그렇게 시적인 적은 없었다. 한때 베르지의 숲속에서 지냈던 가장 감미로운 순간들이 한꺼번에 그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이 마지막 장면은 소설 전체를 한 인간이 태어나 세상 한구석에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역으로 보여주는 듯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애틋하다. 나는 이 장면을 읽고 쥘리엥 소렐이 어떤 인간이 될 수 없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는 사랑받은 아들, 사랑받은 아빠, 소시민, 협잡꾼, 모리배, 사기꾼, 퇴폐적인 속물, 비열한 인간, 째째한 상인, 왕당파, 속 편한 연인, 술꾼, 완전히 신뢰받는 자, 성실한 가장, 쾌락주의자, 섹스중독자, 자유로운 인간, 이런 모든 것들과 무관했다. 쥘리엥에게 죄가 있다면 무엇일까? 진정한 열정을 알지 못한 것? 열정보다 허영에 휘둘린 것?

나는 솔직히 우리 모두가 쥘리엥 소렐을 맘껏 비난하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도 우리 모습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쥘리엥 소렐 편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사회에서 우리가 얼마나 발붙이기 어려웠는가에 달려있을 수도 있다. 쥘리엥 소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우리의 속마음 중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스탕달(Stendhal, 1783~1842)

쥘리엥 소렐을 읽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허영으로서의 욕망에 얼마나 나를 맞춰야 하는지의 문제일 것 같다. 우리 시대는 음모나 허영, 배신, 위선 이런 것에 마음이 몹시 끌린다. 그러므로 ‘허영으로 인한 욕망 때문에 나를 지워버리는 길을 어디까지 끌고 갈 것인가?’ 이게 우리 시대의 아슬아슬한 윤리와 미학이 될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쥘리엥 소렐이 염원하면서도 혐오했던 세계는 아직도 더한 반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뭔가의 부차적인 현상이라고 할 때, 쥘리엥 소렐은 분명히 사회 구조의 부차적인 현상인데 그 사회는 개인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서로 간의 경쟁과 욕망 안에서만 봤다. 인간이 인간으로 포착되지 않는 삶이 바로 쥘리엥 소렐 시대의 환멸인데 우리도 그 환멸 안에 그대로 놓여있다.

그래서 나는 쥘리엥 소렐이 만약 목이 잘려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말년에 했을 마지막 대사를 알고 있다. 그는 마지막 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겨우 이것이었던가!”

비곗덩어리 몸에 나비같이 섬세한 영혼을 가진 스탕달은 하나의 경구로 인간을 인식한다고 했는데 나는 이 경구에 눈을 또렷하게 뜨고 도전하는 것으로 이야길 마무리 짓고 싶다.

“허영은 규범, 열정은 예외.”

이 말만 뒤집을 수 있다면 나는 달밤에도 배회하지 않을 것이며 나와 삶에 생생하게 취해 매 순간 치마를 걷어올리고 실제의 삶을 뛰어다닐 것이며 그럴 때 고개를 들어보면 해는 점점 길어질 것이다. 그럴 때 내 존재와 내 숨결은 파닥파닥 호흡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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