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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 할까요?’ 말의 의미 - 커피 한 잔의 기적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옆에 두고, 혹은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커피 향과 더불어 책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발자크처럼 창작에 심취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커피는 그들 모두에게 기적의 처방을 내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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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작가이기도 해요.” 하고 누가 나를 소개하는 것을 듣고 잠시 멈칫하며 낯설어했다. 글을 쓰기는 하지만, 단 한번도 내가 작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솔직히 나같이 평이하게 사는 사람이 글을 쓴다는 게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작가는 태생부터 무언가 다르고 창조적 영감을 주는 환경 속에 노출된 자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돌잔치 때 연필을 거머쥔 아기도 아니었고, 살아온 방식도 주변 환경도 내게 영감을 줄 만한 요소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특별히 신경 써 개조하지도 않은, 아파트라는 네모난 공간에 살고 있으며 찻잔을 제외한 나머지 그릇은 평범함의 극치인 코렐을 쓴다. 여유롭고 풍요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글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시간 관리를 잘 못해서 산책도 자주 못하고, 하루 종일 공기가 부족한 실내에서 틈틈이 꾸벅꾸벅 졸다가 눈물이 맺히도록 하품만 한다. 물론 단 하나, 믿고 의지하는 구석이 있기는 하다. 내 멍한 정신을 확 개이게 해주는 그것은 바로 커피다. 글 쓸 때 커피를 연달아 마시는 점으로 치자면, 적어도 그것 하나에서만큼은 나도 역사적으로 위대한 문인들의 생활 습관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

독일계 역사학자인 하인리히 야콥(Heinrich E. Jacob)은 『커피의 역사』(1935)에서 커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예전에는, 즉 커피가 발견되기 이전 시대에는 극소수의 천재들에게나 가능했던 뛰어난 업적을 이룩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한 잔의 커피는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기적, 이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다. 대단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 내가 무언가를 잘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적을 불러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오늘은 새벽 1시에 일어나서 커피를 연거푸 마시며 글자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제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진 덕에 남들 잠드는 시간에 눈을 뜬 것이다. 가만있자, 누구였더라. 그래, 맞다. 위대한 문인 발자크였구나. 늘 새벽 1시에 일어나 블랙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기 시작했었다지. 갑자기 발자크라도 된 듯 기분이 들뜬다.

발자크의 글쓰기 습관은 평생을 한결 같았기로 유명하다. 새벽 1시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면서 갈까마귀 깃털로 만든 펜대로 사각사각 조금도 쉬지 않고 내리 글을 썼다. 오전 7시가 되면 더운 물로 목욕을 한 후, 삶은 달걀과 커피로 요기를 하고 또다시 책상에 앉는다. 점심도 커피를 곁들여 책상에서 가볍게 해결하고는 글쓰기에 열중했다. 그가 책상에서 일어나는 시간은 정확히 저녁 6시였다. 그 시간에는 커피 대신 잠을 청하기 위해 와인을 한 잔 마시면서 제대로 된 저녁식사를 즐겼다. 저녁에 아는 사람들이 찾아와도 결코 그는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법이 없었다. 내일 새벽의 일정을 위해서 평소대로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는 일 중독자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오귀스트 로댕, 「발자크 기념상」, 청동, 높이 269cm, 1897~98,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품

발자크의 모습을 가장 실감나게 표현한 조각가는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일 것이다. 시 당국으로부터 발자크 기념동상을 의뢰받은 로댕은 여러 사람들에게 들은 것을 바탕으로 발자크 생전의 모습을 눈앞에 상상해 보았다. 로댕은 발자크가 막 잠에서 깨어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는 약간 한기를 느낀 듯 실내가운을 걸친 채 또 하루의 새벽을 열고 있는 모습으로 동상을 제작하였다. 마침내 그 동상이 공개되었을 때 시 당국과 시민들은 발자크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실망감에 주저앉고 말았다. 프랑스 최고의 천재 문인상이 어마어마한 재능으로 번쩍번쩍 광채를 내며 그곳에 서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땅딸하고 이상한 옷을 걸친 초라한 모습이 차마 발자크일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발자크 연구가들은 로댕의 동상이야말로 가장 발자크다운 모습일 거라고 입을 모았고, 그 덕분에 동상은 원래 놓이기로 했던 몽파르나스에 세워질 수 있었다. “그는 3만 잔의 커피를 통해 살았고 또 죽었노라.”라고 새겨진 발자크의 묘비문은 장난처럼 보이긴 하지만, 발자크 하면 커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다.

발자크가 새벽마다 마셔대던 커피는 아침의 음료이자 각성의 음료다. 유럽에 처음 커피가 소개되던 17세기 무렵 유럽인들은 수시로 알코올 성분이 있는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그냥 믿고 마실 수 있는 물을 구하기 어려웠던 까닭이었다. 당시 독일과 영국의 가정에서는 아이들도 물 대신 낮은 알코올 도수의 맥주를 마시게 했다. 그런가 하면 냄비에 맥주를 넣고 끓인 후 달걀을 풀고 빵을 잘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 네덜란드식 맥주수프도 아침에 만들어 먹었다. 그러니 식사 때마다 마시는 와인과 틈틈이 마시는 맥주로 인해 사람들은 늘 졸린 듯 취해 있었고 감각도 무딜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커피의 등장은 기적이었다.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두뇌가 ‘깨어 있는’ 진보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커피가 보급되자마자 커피하우스가 곳곳에 생겨났고, 그 인기는 대단했다. 술집에서 시끄럽게 웃고 떠들기만 했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는 제대로 된 논리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커피하우스는 제2의 캠퍼스라고 불릴 만큼 토론과 지적인 대화가 오가는 장이 되었다. 이렇듯 ‘대화’를 양성하는 커피하우스가 글의 문체에 끼친 영향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무겁고 장황하던 셰익스피어식의 문체는 사라지고 점차 대중적으로 경쾌한 대화 문체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구어체 문학이 발전하게 되었다. 누구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하게 된 것도 알고 보면 이 시기 커피하우스 덕분이다.

커피 관목 코페아 아라비카, 『보태니컬 매거진』, 1810

커피의 효능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졌다. 커피를 소개하는 17세기의 의학 책자에 의하면, “커피는 풍기(風氣)를 낫게 하고, 간과 담즙을 강화시키며, 수종(水腫)을 완화시키고, 피를 맑게 하며, 위를 안정시키고……” 여기까지는 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다음 말은 무척 양가적이다. “…… 식욕을 돋게 할 수도 있지만 떨어뜨릴 수도 있고, 졸리지 않게 해줄 수도 있지만, 수면을 촉진시키기도 한다. 우울한 사람에게는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격앙하기 쉬운 사람에게는 진정의 효과가 있다. ……” 한마디로 커피는 어디를 낫게 한다기보다는 몸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고 심성을 조화롭게 해주는 데 특효가 있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당시 커피는 만병통치약쯤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17세기에 커피하우스에서 공적인 대화를 여는 매개체로 선보였던 커피는 18세기를 거치면서 각 가정의 아침과 오후를 시작하는 커피로서, 즉 사적인 대화의 매개체로서 자리 잡아 갔다. 프랑스에서는 커다란 그릇에 따뜻한 우유와 커피를 섞은 카페오레를 개발하여 바게트와 함께 먹는 가정용 아침음식으로 변모시켰다. 어느새 커피는 가정용 식탁에서도 빠지지 않는 음료가 되었고, 커피 테이블에 둘러앉은 가족의 모습은 행복하게 대화를 꽃피우는 가족 초상화로 가장 인기 있는 소재가 되어 있었다.

해롤드 나이트, 「봄날에」, 캔버스에 유채, 132.3×158.2cm, 1908~9, 뉴캐슬 타인위어 미술관, 라잉 갤러리

커피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대화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커피 한잔 할까요?’라는 말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하는 의미가 되었다. 하얀 봄꽃이 만발한 나무 밑에서 마주 앉은 연인 사이에도 커피는 예외 없이 등장한다. 영국의 인상주의 화가인 해롤드 나이트(Harold Knight, 1874~1961)가 그린 「봄날에 In the Spring」를 보라. 남녀가 야외에서 편안하게 오후의 커피타임을 벌이고 있다. 달콤한 오렌지 파운드케이크 같은 것이 커피와 함께 곁들여져 있는 것도 눈에 띤다. 두 사람은 옷 색깔마저도 블랙커피와 밀크를 연상하게 하는, 서로가 서로를 풍부하게 하고 조화롭게 하는 관계처럼 보인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옆에 두고, 혹은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커피 향과 더불어 책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발자크처럼 창작에 심취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커피는 그들 모두에게 기적의 처방을 내려줄 것이다. 대화가 없는 심심한 연인에게는 우유거품 같은 풍성함을, 졸린 독서가에게는 쓰디 쓴 일깨?을, 머리가 지쳐버린 작가에게는 진하고 강렬한 아이디어를 선사해 줄 것이다. 기적이 필요한 분, 커피 한 잔 어떠세요?


이주은이 추천하는 관련도서

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
W. 서머싯 몸 저/권정관 역 | 개마고원 | 2008년 01월

이 책은 불멸의 작가들이 남긴 방대한 분량의 작품을 어떻게 효과적이고 유용하게 읽을 수 있는가에 대한 서머싯 몸 특유의 방법론을 담은 책이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을 비롯해, 스탕달의 『적과 흑』,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등 우리가 꼭 읽어야할 것 같은 그러나 무엇을 읽어내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게 되는 고전 열편을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규칙적인 생활로 유명한 발자크의 또 다른 생활의 모습은 무엇이었고, 그것이 소설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피는 것도 즐겁다. 발자크의 대작을 읽기 전 워밍업 단계라고 생각하며 읽어보자.

커피 한 잔 더
야마카와 나오토 글,그림/오지은 역 | 세미콜론 | 2008년 04월

이 책의 제목은 밥 딜런의 노래 「one more cup of coffee」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밥 딜런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음악인인 것처럼 이 책에서 커피는 밥 딜런 같은 가치를 지닌 추억의 시간으로 데려다주는 매개체이다. 정성들여 그린 옛날 판화 방식의 그림체라든가, 깔끔하게 구분된 칸 사이사이에서 은은한 커피향이 날 것 같은 만화책이다. 커피가 와인처럼 원산지는 물론이고 맛과 향까지 세분화되어 대중적으로 인식되는 요즘, 이번에는 이 책이 소개하는 커피에 실린 시고 진한 인생의 다양한 맛을 음미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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