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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맛]나만의 뉴욕 맛집 여행서

Freemans 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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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내 수첩은 더 이상 진열대에 숱하게 진열되어 있던 새것이 아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뉴욕 맛집 여행서였다.


뉴욕을 맛보는 또 하나의 큰 즐거움은 거리를 걸으면서 만나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이 평지고, 길이 곧게 뻗어 있어 어느 길을 걸어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고 동네마다 분위기가 무척 달라 어느 동네를 걷든지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비단 동네 분위기뿐만 아니라 거리의 사람들도 느낌이 달랐는데 제일 꼭대기 할렘Harlem은 조금 우울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의 흑인 문화를, 조금 밑으로 내려온 어퍼 사이드Upper side는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건물들과 백인 상류층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타임스퀘어 앞에서 사진을 찍는 다양한 인종의 단체관광객과 5th avenue에서 알록달록한 색색의 쇼핑백을 들고 있는 쇼핑마니아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소호soho나 첼시chelsea에는 낮고 벽에 계단이 붙어 있는 건물들 아래로 잡지에서 본 듯한 패셔너블한 사람들이 북적이지만 바로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차이나타운china town에는 영어도 잘 못하는 중국사람들이 가득했다. 소호의 조금 위쪽인 이스트빌리지east village에는 펑크족과 일본인이 뒤섞여 있었고 그 밑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는 조금 무섭지만 트랜디한 중고 패션 가게와 싸고 맛있는 맛집이 즐비했다.

날씨가 허락해주고 마음이 통하는 지인과 함께라면, 몇 십 블록이든지 거리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걸을 수 있었지만 단지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가방 속의 카메라와 레스토랑 가이드북이었다. 카메라는 또 하나의 눈과 기억이었기에 빼놓을 수가 없었지만 한두 권씩 늘어가는 레스토랑 가이드와 뉴욕 여행서는 모두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많은 가짓수와 필요 없는 정보에 그 무게가 더 힘들었다. 매일 보고 싶고 찾고 싶은 레스토랑을 쉽게 담을 생각에 그때 그때 필요한 부분을 포스트잇에 적어 지도에 붙여 들고 나갔지만 뉴욕에 레스토랑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 그 메모로는 모자라기 일쑤였다. 게다가 가방 속에 지도와 함께 뒹굴다 보면 어떤 것은 없어지고 어떤 것은 보기 싫게 구겨져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디자인 샵에 들렀다 평소에 요리노트로 애용하던 몰스킨 수첩에서 새로 나온 도시 시리즈를 발견했다. New York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노트 앞에서 눈이 반짝였다. 그래. 나만의 뉴욕가이드 수첩을 만들어 보자!

Moleskine New York City Guide

손바닥만 한 사이즈의 수첩으로는 조금은 비싼 가격이었지만 그런 것 따위야 어떤 펜으로 어떤 것부터 적을지에 대한 상상에 가려, 어서 계산을 하고 비닐을 뜯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이제는 손때가 빼곡히 묻고 모서리 곳곳이 다 닳아버린 수첩을 볼 때면 가끔 생각이 나지만 그때의 반짝이던 새것보다 손때 묻은 내 수첩이 더 예쁘게 느껴졌다.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내 수첩은 더 이상 진열대에 숱하게 진열되어 있던 새것이 아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뉴욕 맛집 여행서였다.

레스토랑 노트. 지도에는 플래그로 마크했다

모두 들고 다니기 벅찬 여러 여행서들과 잡지들의 내용 중 유용한 정보를 지도에 표시하고 정리했다. 수첩에 빼곡히 적었던 레스토랑 리스트에는 『자갓Zagat』『미슐랭Michelin』 같은 유명한 레스토랑 가이드뿐 아니라, 《New York》《Time Out》과 같은 주간지의 정보도 있었다. 이 두 개의 주간지는 뉴욕을 대표하는 생활정보지로 문화 행사, 쇼핑뿐 아니라 새롭게 열었거나 인기 있는 레스토랑 정보를 담고 있는데 매주마다 테마별로 맛집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일 년에 한두 차례 'Best of New York'이라는, 그 해 가장 인기 있었던 레스토랑을 정리하기도 해서 유용하게 보았었다.

어느 하루, 구입한 잡지에 담긴 재미있는 기사 중, 'Sunday Best'라는 인기 있는 브런치 레스토랑의 소개에 "To feed your inner hipster"라는 레스토랑 소개가 있었다. 제목이 재미있어 어딘가 주소를 보자 Freeman Allex, off Rivington St.라고 써있었다. 뉴욕 주소를 읽는 법을 박식한 외삼촌께 들은 터라 주소 찾기에는 상당히 자신 있었는데 이건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뉴욕 인공위성 사진

뉴욕은 우리나라랑 달리 대부분의 길이 바둑판 형식으로 잘 정리되어 있어 가로로 하우스턴Houston St.을 경계로 위쪽으로 1st St.이 시작되고 왼쪽부터 세로로 1st Avenue가 시작된다. 또한 5th Ave를 경계로 동과 서로 구분하고 주소 앞에 약자로 표시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우편번호도 5th Ave를 경계로 시작하여 양쪽으로 퍼져나가고, 한 블록당 100단위가 변화하며 홀수면 길의 북쪽, 짝수면 길의 남쪽 집이기에 주소만 듣고도 대략 어디쯤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51 W. 54th St.'이라는 주소는 4th와 5th Ave 사이에 위치한 54th St.의 북쪽 편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어디든 예외가 존재하듯, Houston St. 아래로 소호Soho, 차이나 타운China town, 트라이베카Tribeca, 월스트리트Wall street 등의 지역과 West Houston St. 바로 위쪽으로 웨스트 빌리지West village는 직선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고 길도 숫자가 아닌 이름으로 표시되어 있다. 조금 어렵지만 대부분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이로 넓고 지도가 있다면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길 표시가 잘 되어 있다.

Rivington St은 집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의 길이라 익숙했는데 그 근처를 여러 번 지나다녀도 레스토랑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지 않아서이겠거니 하는 마음이었지만 Freeman Allex라는 길 이름도 아닌 이상한 주소에다 Off Rivington St.이라는 뜻은 지도에는 아무리 보아도 알 수가 없어 궁금함이 내 안의 Hipster가 발동을 건 건지 이곳은 꼭 가보겠다고 결심했다.

숨은 골목

언제 만나도 반가운 친구가 잠시 묵을 일이 있던 어느 주말, 함께 찾아보기로 투어에 나서Rivington St.에 다다랐지만 주위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레스토랑은 보이지 않았다.

휑한 일방도로 양쪽으로 카우보이 옷을 파는 듯한 가게만 무심히 서 있었을 뿐, 아무것도 없는 듯해 주소를 잘못 적었나 하는 생각과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교차하는 찰나에 조그마한 골목이 보였다. 뉴욕에 이런 골목이 있다니, 신기해 하는 우리를 스쳐 세 명의 뉴요커(로 보이는)가 골목을 따라들어가는데도 설마 저 안쪽에 레스토랑이 있을까, 긴가민가 했다. 아마 늦은 밤이었으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을 법하게 외진 골목을 따라 들어가자, 파란 창의 문과 앞에는 앙증맞은 허브 화분들이 늘어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묘한 느낌이었다. 너무나 뉴욕스럽지 않은 모습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파란 문의 손잡이를 돌리자 삐그덕 하며 궿린 문 사이로 신나는 음악 소리가 새어나오며 북적이는 사람들 뒤편으로 바와 벽면에는 사슴박제가 보였다.

시끌벅적한 사람들

골목의 정경과 그 안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라 멍해진 우리를 향해 점원은 몇 명이냐고 시큰둥하게 묻고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자리에 앉아 찬찬히 둘러본 실내는 안쪽으로도 오래된 듯한 의자와 바랜 거울, 그리고 벽면에 붙어있는 동물의 박제와 뿔에 사냥을 즐기는 중세 귀족의 오래된 별장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슴과 산양 박제

사슴과 산양의 박제는 그로테스크하지만 시선보다 높게 위치해 있기 때문에 식사 시에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아 혐오스럽지 않았으며 오히려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가게의 독특한 느낌을 살려주었다. 거친 나무 탁자위로 기분 좋은 초록색 물병이 놓이고 우리는 벽면의 바가 너무 예뻐 칵테일을 주문했다. 뉴욕에서는 브런치에 블러디 메리Bloody mary(보드카, 토마토 주스, 레몬쥬스, 타바스코 소스 등을 넣어서 만든 칵테일)나 벨리니Bellini(샴페인에 복숭아퓨레를 섞어 만든 칵테일)를 곁들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아예 브런치를 위한 칵테일 메뉴를 따로 만들어 독특한 칵테일을 선보였다.

Bonded Breakfast Martini applejack, housemade apple butter, and lime

애플 잭Applejack은 사과 브랜디로 발효된 주스인 애플 사이다Apple cider로 만들어진다. 애플버터Apple butter는 사과 소스를 아주 졸여 만든 짙은 갈색의 소스로 19세기에 미국에서 사과소스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실제로 버터가 들어있지는 않다. 그때 당시에는 걸쭉한 액체상태를 'butter'라고 불렀기에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무척 새콤달콤한 맛의 마티니는 라임 때문인지 신맛이 강했다.

Bellini champagne, peach liquor, white peach puree

벨리니Bellini는 가장 많이 마시는 브런치 칵테일 중 하나로 보통 샴페인 잔에 담겨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특이하게 마티니 잔에 나왔다. 다른 벨리니보다 걸쭉하고 복숭아 향이 강해 직접 만든 복숭아 퓨레를 쓴 것 같아 기분 좋게 맛보았다. 브런치에 마시는 거라 술이 강하지 않아 기분 좋게 입맛을 돋우자 슬슬 배가 고파졌다.

Raised Waffle with creme fraiche, bananas and maple syrup

우리나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브런치 메뉴인 와플은 뉴욕에서는 욾주 인기 있는 메뉴는 아닌 편이다. 사람들은 그것보다 팬케이크를 더 좋아하며 에그 베네딕트나 오믈렛 같은 다양한 계란 요리를 즐기는 편이다. 이곳의 와플은 얇고 아주 바삭바삭한 스타일로 위에 시럽이 듬뿍 뿌려져 있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길거리에서 파는 1000원짜리 와플 반죽에 계란을 좀 ? 넣고 아주 바삭하게 구워 시럽을 뿌린 것 같았다. 흠.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좀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내준다면 사람들이 화를 낼 게 분명했다.

Poached eggs, roasted tomato, and cheddar cheese grits with buttered sourdough toast

포치드 에그Poached eggs는 한국에서 수란으로 불리는데 에그 베네딕트egg benedict나 샐러드 등에 자주 곁들여지는 요리 방법으로 흰자는 익고, 노른자는 반숙보다 조금 덜 익혀 흘러나오는 것이 포인트다. 칼로 통통한 노른자를 눌러 터트려 아래의 빵이나 고기에 발라 먹는 맛이 일품인데 가끔 한국에서 맛보는 포치드 에그는 노른자가 익은 게 많아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포취드 에그의 녹아내리는 노른자

밑에 깔린 체다치즈 그릿cheddar cheese grit은 걸쭉하게 만든 죽 같은데 grit은 밀로 거친 매시 포테이토에 치즈를 넣은 맛으로 보통 먹는 체다치즈보다 색이 옅고 향도 가벼웠는데 잘게 다져 위에 뿌려준 것이 살짝 씹혀 고소했다. 가니쉬로 아주 잘 익은 토마토를 그릴에 오래 구워 통후추를 뿌려 나오는데 쓱쓱 썰어 버터가 발린 사워도우sourdough 토스트와 함께 곁들이면 바삭바삭한 빵의 질감과 새콤한 토마토가 치즈의 느끼함을 씻어주었다.

그래도 가장 맛있었던 건 오래된 친구와의 수다였다. 레스토랑을 방문했을 때 음식의 질이나 레스토랑의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누구와 함께 먹었는지, 함께 그 시간을 즐겼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혀의 미뢰가 맛을 인식하고 눈이 아름다운 음식과 인테리어를 대뇌로 보내도 인간의 감정은 감각의 분석을 흐리게 하며 반대로 어떤 음식을 먹든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더 맛있게 느끼게 된다.

"For every traveler who has any taste of his own, the only useful guidebook will be the one which he himself has written."
-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수첩의 맨 앞에 적혀있던 올더스 헉슬리의 말처럼 모든 사람은 제각각의 취향과 성격을 지니기에 그 자신이 쓰는 것이 가장 잘 맞는 여행 가이드일 것이다. 어느 곳을 여행하든지, 그 여행의 길이가 어떠하든지 정보를 조금씩 모으고 적어 내려가다 보면 나만의 여행 가이드가 완성된다. 쉽게 시작하기도 힘들고 귀찮은 일이지만 나만의 것이라는 특별함은 그런 수고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어릴 적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의 상상도 못했던 인간상에 대한 모습을 읽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의 감정에 대해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감정으로 친구와의 수다를 맛있게 느끼고 때로는 맛있는 음식도 맛없게 먹겠지만 그러한 모든 것이 모여 한 장 한 장의 가이드를 채워나가는 것이 아닐까. 나의 여행 가이드는 시작되었지만 완성은 아직 먼 일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도 내 감정을 투과한 조각들로 채워나가 언젠가는 또 다른 색깔을 지닌 새로운 가이드로 만들어 가며 또한 다른 누군가가 나의 여행가이드를 보고 자기만의 여행서를 써내려갈 수 있기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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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원

대학 시절 4년간 심리학을 공부하며 내 자신에 대해, 인생의 맛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 끝에 결정한 요리 유학은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홀로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며 뉴욕과 함께 농밀한 데이트를 보냈던 1년이었다. 객관적인 시간으로는 1년이라는 것은 결코 길지 않지만 주관적인 시간으로는 10년과도 같이 지냈던 그 해를, 함께 가지 못했던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욕심을 모자란 글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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