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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의 피아니스트 임동혁,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다

“바흐만큼 낭만적인 작곡가도 없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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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동혁이 2년 만에 관객에게 돌아왔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부조니가 편곡한 샤콘느와 함께. 올해 2월 연주회를 통해 골드베르크를 관객들에게 들려주었고, 4월 런던의 헨리우드 홀에서 녹음을 마친 앨범은 지난 6월 5일 발매되었다.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2년 만에 관객에게 돌아왔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부조니가 편곡한 샤콘느와 함께. 올해 2월 연주회를 통해 골드베르크를 관객들에게 들려주었고, 4월 런던의 헨리우드 홀에서 녹음을 마친 앨범은 지난 6월 5일 발매되었다. 7월에는 인터내셔널반으로 발매될 예정. 임동혁의 세 번째 앨범이며, 쇼팽 리사이틀 앨범 이후 4년 만에 나온 앨범이기도 하다.

쇼팽 콩쿠르를 마치고 2년 동안 임동혁은 피아노 곁을 떠나 있었다. 연습도 연주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슬럼프였다고 말했다. 슬럼프 끝에 선택한 곡이 바흐, 그것도 글렌 굴드를 비롯한 수많은 천재들의 레코딩이 남아있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

주변에서 말리지 않았나요? 연주회에서 바흐를 레퍼토리로 해도 레코딩은 뒤로 미루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있잖아요.

2년 동안 피아노도 안치고 연주도 안 했어요. 의도적으로 피아노를 멀리했을 때라 피아노만 친다면 뭐든 환영이라는 분위기였어요. (웃음)

왜 바흐를 선택했나요?

저는 제가 제일 좋아하고 잘하는 레퍼토리가 같아요. 쇼팽, 그리고 슈베르트.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바흐는, 굉장히 마음이 허전할 때 저한테 다가왔어요. 우연히 글렌 굴드가 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었는데 정말 대단한 연주였어요. 저는 제가 피아노를 치기 때문에 피아노 소리에 굉장히 까다롭거든요. 피아노 연주를 잘 안 들을 정도로. 그런 제가 감탄할 만큼 어설픈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없는 완벽한 연주였어요. 피아니스트로 나도 그만큼 완성도 높은 연주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악보 해석에만 1년이 걸렸죠.

굉장히 낭만적이고 달콤한 바흐였습니다.

그렇게 들렸으면 다행이에요. 제가 낭만파 음악에 강하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혹시 그렇게 들리지는 않았을까요? 의도했던 것은 나답게 바흐를 연주하는 거였지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사실, 바흐가 어떻게 연주했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때는 피아노도 없었는데.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2단 건반의 쳄발로를 위해 작곡한 클라비어곡이다.)

바흐라고 하면 낭만과 반대되는 작곡가라고 생각하는데, 전 바흐만큼 낭만적인 작곡가도 없었다고 생각해요. ‘G선상의 아리아’도, 얼마나 멜로디 라인이 아름다워요. 머리에서 나오기보단 가슴에서 나오는 멜로디죠.


피아니스트에게 바흐는 어떤 작곡가인가요?

우선 스트레스로 다가오죠. 싫든 좋든 거쳐 가야 하는 음악가고, 연주할 때는 메모리적인 문제도 있고. 푸가 같은 건 계산도 많이 해야 하고. 그런데 골드베르크는 그런 면이 거의 없어요. 푸가가 별로 없잖아요. 몇 개의 바리에이션 빼고. 굉장히 낭만적이죠. 세 번째 바리에이션 같은 부분은 정말 낭만적이에요.

문제는 원래는 2단 건반을 위해 작곡된 곡을 피아노로 치다보니까 힘든 점이 있어요. 손을 어떻게 두고 쳐야 할지 고민이 많죠. 음반으로 들을 때와 실연으로 볼 때 느낌이 다른 게 골드베르크예요. 연주자들 손 움직이는 게 재미있죠.


전국 순회 연주회가 끝난 후에 앨범이 나왔는데요.

아쉬워요. 개인적으로는 먼저 앨범을 내고 연주회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녹음 일정이나 앨범 발매 일자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거라서. 나중에 나오게 됐어요. 한국에 이번 달에 나오고, 인터내셔널반은 다음 달 말(7월)에 나와요.

2년 만에 관객에게 돌아온 피아니스트 임동혁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세계무대에서 한 사람 몫의 연주자로 살아온 이들은 또래 보다 어른스럽다. 아니, 어른스러워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 예전보다 클래식 연주자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는 줄었다. 콩쿠르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대에서는 나이도 국적도 필요 없다. 오직 음악 하나로 사람을 감동시켜야 한다. 그래서 무대는 즐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천국이 없지만 더없이 무서운 시험의 장이기도 하다. 임동혁 역시 다르지 않았다. 청중들은 그의 피아노 소리를 듣고 그의 나이를 잊게 되지만 그는 이십 대 초반의 청년. 음악가로나 평범한 생활인으로 고민이 적지 않을 나이였다.

2년 동안 왜 피아노를 멀리했어요?

지쳐 있었죠. 슬럼프라고 언론에서 많이 그랬어요. 활동 면에선 확실히 슬럼프였어요. 부담감도 있었고. 활동을 아예 접었죠. 한 번 활동을 접으니까 활동을 다시 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불러주는 데가 없으니까.

악순환이네요.

맞아요. 바로 악순환이죠. 그때 제의가 왔을 때 아예 대꾸를 안 했거든요. 한다, 안 한다, 그런 게 아니라. 그래서 사람들이 화도 많이 냈고. 그런데 그때 저한텐 재충전과 재시작이 필요했어요.

2년 동안 어땠어요?

좋지 않았어요. ‘빨리 다음 CD를 내야 하는데…….’ 하는 강박증에도 시달렸고. 그런데 피아노와 멀어지니까 피아노가 저한테 준 게 뭐였는지 알 수 있더라고요. 피아노를 치면서 느낀 수많은 감정들. 음악에 몰입했을 때 느꼈던 기분. 그런 건 피아노 말고 다른 데서는 느낄 수 없었어요.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 그날은 즐거운데 그 다음 날은 허무해요. 근데 음악은 진정한 행복과 보람을 느끼게 해 줘요. 연습하는 건 힘들지만.

평소에 연습은 어느 정도 하나요?

요즘은 말하기 힘들고, 2006년까지는 하루에 여섯 시간 정도 했어요.

언론보도나 이런 걸로 상처받진 않았어요?

많이 받았죠. 저는 스스로도 ‘좋고 싫고’가 확실한 편이에요. 그래서 다른 사람도 저에 대해서 ‘싫고 좋고’가 확실한 거 같아요. 음악가는 음악으로 평가받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사람이니까. 평가하는 사람도 사람이고, 평가받는 사람도 사람이고. 음악도요. 자기가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연주하면 좋게 들려요. 특히, 한국 관중들이 그런 것 같아요. 좋으면 확 끓어오르고, 싫으면 냉정하고. 그땐 정말 힘들었는데 이젠 제가 지고 가야 할 짐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실력이니까.

어쩌면 2년 동안 그런 부분은 편해졌는지 모르겠네요.

그런 것 같아요. 2년 동안 피아노 말고 다른 것을 많이 해봤는데 다 재미가 없었어요. ‘아, 나는 평생 피아노를 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타인에게나 본인에게나 굉장히 직선적인 성격으로 보이는데, 그 부분에 상처받을 때는 없나요?

상처는 없고요. 저는 저에 대해서 꽤 투명하게 잘 아는 편이에요. 잘하는 것이 뭔지, 못하는 것이 뭔지 똑같이 알아요. 연주하고 내려와서 꽤 오랫동안 실수나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는 편이죠.

피아니스트로 자기 장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재능은 굉장히 많이 타고났다고 생각해요. 저는 피아노에 있어서는 모든 걸 굉장히 쉽게 해요. 다른 사람이 여덟 시간 해서 그 정도 연주를 하면 저는 한 시간만 연주해도 되고.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연습을 잘 안 하게 돼요. 안 해도 남들보다 잘하니까. 재능도 이만큼이고 자기 노력도 이만큼이면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겠죠. 그런데 그렇게 안 돼요. 그게 제 약점이에요.

무대에서 굉장히 편해 보여요. 긴장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대기실에서 덜덜 떨고, 무대에 올라가면서 덜덜 떨고, 피아노에 앉아서도 덜덜 떨어요. 연주를 하기 시작해서 10분 내로 (연주가) 잘 풀리면 무아지경에 빠질 수가 있는데, 그날은 연주가 잘 되는 날이에요. 어떤 날은 긴장이 끝까지 풀리지 않는데, 그런 날은 내 연주 들을 필요가 없어요. (웃음)

음악가의 전기나 평전 같은 책은 읽나요?

절대 안 읽어요.

지금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해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해답도 얻을 수 있고, 참고도 되겠지만 오히려 저는 괜히 스트레스를 받아요. ?도 그렇게 위대해져야 되고, 잘해야 할 것 같은 압박도 받고. 제가 만화를 좋아하거든요. 근데 재미있다고 소문난 『노다메 칸타빌레』 안 읽어요. 절대로.

피아니스트 임동혁을 이야기하는 데 콩쿠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열 살이었던 1996년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에 나가서 2위를 차지했고,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인 콩쿠르에 나가 부조니 콩쿠르(5위), 롱-티보 콩쿠르(최연소 우승)를 비롯 세계 3대 콩쿠르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3위), 쇼팽 국제 콩쿠르(3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4위)에서 모두 수상하는 기록을 달성했지만, 임동혁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수상을 거부했다.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벌써 그로부터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임동혁’하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수상거부를 떠올린다. 하지만 임동혁은 그런 사건이 아니라 피아니스트로의 자신에 대해 좀 더 주목해주길 바랐다.

아직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대해 묻는 사람들 많지요.

지겨워요. 고만 좀 물었으면 좋겠어요.

콩쿠르에 굉장히 많이 나갔잖아요. 소모적이라는 생각 든 적 없나요?

시간낭비라는 생각 매번 하긴 하죠. 하지만 그게 내가 두드릴 수 있는 유일한 문이니까요. 클래식 연주자가 클 수 있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가 네다섯 살 때부터 신동으로 알려져 음반사에서 앨범을 내는 경우, 장영주처럼. 두 번째가 콩쿠르. 세 번째가 지휘자가 함께 협연을 하면서 연주자로 키워주는 경우인데요. 지금 첫 번째나 두 번째는 거의 불가능해요.

콩쿠르는 참가비만 내면 나갈 수 있지만 감내해야 할 부분이 많아요. 텃세도 심하고, 심사도 공정하지 않을 때가 있고……. 예전에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한 게 기사화되서 힘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콩쿠르를 통해 연주가로 데뷔하기도 힘들고 데뷔한 후에도 힘든 일이 많아요. 그래도 한국인들은 참 열심히 하고 있어요. 한국인뿐만 아니라 일본인, 요즘에는 특히 중국인들이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죠. 연주하면서 많이 만나요.


리처드 용재 오닐과 스테판 재키 등이 멤버인 앙상블 디토와의 연습은 어떤가요?

좋아요. 음악을 하는 비슷한 또래들과 만나서 연주를 하니까요. 독주나 협주를 할 때 부담감이 있는데 거기에 민감한 편이에요. 그래서 스트레스가 컸는데 실내악은 같이 의논해서 연주하니까 그런 점이 좋아요.

의견이 갈릴 때도 있을 텐데요.

저는 솔직히 ‘이거 별로다, 이 해석은 좀 이상한데.’ 이런 말 못해요. 음악가한테 음악 이야기를 하는 만큼 자존심 건드리는 것은 없거든요. 조심스럽죠. 근데, 스테판은 다 이야기해요. 솔직하고 직선적이죠. 숭어 1악장에 다른 악기들은 다 쉬고 피아노만 치는 부분이 있어요. 한 여덟 마디 되는데 그 부분이 키 파트예요. 그런데 ‘어, 그 부분 별론데.’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요?

미안해, 그랬어요. (웃음) 그렇게 부딪쳐보는 것도 재밌어요. 실내악이 재미있는 게, 뛰어난 연주자들을 모아놓는다고 해서 뛰어난 연주가 나오는 건 아니거든요. 모두가 다 자기 소리만 내려고 하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거든요. 리드하는 사람이 있고, 따라가는 사람이 있고, 자기주장을 내는 사람이 있고, 조용히 그것을 맞춰주는 사람이 있고, 그래야 돼요.

인터뷰 도중 임동혁은 ‘자신의 길을 간다’는 말을 했다. 곁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그는 성장한 것이다. 임동혁은 지금 만으로 스물셋, 글렌 굴드가 세상을 뒤흔든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했을 나이와 같은 나이다. 그의 바흐는 글렌 굴드의 바흐와는 다르다. 스물셋에만 칠 수 있었던 자신의 바흐를 연주했듯, 앞으로도 그는 누구와도 닮지 않은 그만의 피아노를 계속 칠 것이다. 그의 피아노는 더욱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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