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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네임 이즈 요조, 요조의 달콤한 첫번째 프러포즈

신인 아닌 신인 가수 요조가 들려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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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히 흥얼거리는, 나지막하지만 중독성 강한 목소리. 혹자는 그 목소리가 너무 가볍고 고와서 싫을 테고, 혹자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요조의 노래에 매혹된다.

꽤 이전부터 허밍어반스테레오, 소규모 아카시아밴드의 객원 보컬로 활동했지만 대중들이 요조의 이름에 낯이 익게 된 것은 김태희가 나온 모 디지털카메라의 CF의 배경음악으로 요조의 첫 번째 앨범, <요조(Yozoh) With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노래들이 흘러나오면서부터다. 좀 더 귀가 밝은 청자라면,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 OST에서 그녀의 노래를 듣고 반했으리라. 무심히 흥얼거리는, 나지막하지만 중독성 강한 목소리. 혹자는 그 목소리가 너무 가볍고 고와서 싫을 테고, 혹자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요조의 노래에 매혹된다. 신인 아닌 신인 가수 요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My name is Yozoh

나, 요조. 81년생.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대학에서는 불문학을 전공했다. 도서관의 외국문학 서가 쪽에 틀어박혀 매일 소설을 읽었고, 그 중 프랑스 문학이 마음에 들어 전공을 바꾸었지만 수업은 너무 재미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아멜리 노통브, 장 자크 상뻬, 아니 에르노의 작품이었는데, 수업에서 배우는 소설은 씌어진 지 100년은 넘은 고전들, 지루하다 못해 하품이 나오는 작품들이었다. 교수님에게 항의한 적도 있었다. 좀 재미있는 소설을 배우자고. 다른 소설은 재미없었지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은 재미있었다.

남들은 토익 점수 따기와 취직 준비로 바쁠 때 난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 바빴다. 학교 친구는 별로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작은 세계에서 살았다.

그러나 얼결에 가수로 데뷔했다. 2003년쯤의 일인데, 누가 곡을 만들었는데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해서 도와주는 차원에서 불렀는데 그게 앨범에 실려서 본의 아니게 데뷔를 했다. 그다음부터 코러스나 피처링 제의가 간간이 들어왔다. 그렇지만 스스로 가수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때 난 되고 싶은 게 없었다. 4학년이 되니까 동기들은 자기 길을 갔다. 고시도 보고,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고. 그런데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고민을 안 한 건 아닌데 심각하게 하지 않았다. 어떻게 되겠지, 라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난 무책임했다.

주변에선 그런 내가 신기했나 보다. 졸업 예정자가 취직에도 뜻이 없고 탱자탱자 신나게 놀고 있으니까. 어느 날, 나를 인터뷰 하겠다는 사람이 찾아왔다. 4학년이면 취업이다 토익이다 정신이 없는데 나같이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는 거다.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 궁금해서 인터뷰하고 싶단다.

“토익도 취업도 준비 안하신다면서요.” “네.” “그럼 뭐하시게요?” “음악을 좋아하니까 졸업하고 나서도 음악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세상에 이런 졸업예정자가 어디 있냐고 신기하게 보더라. 생각 없이 살아도 그걸 인터뷰하러 오는 사람도 있고 재미있었다.


가수, 이제 시작이야

관객과 대화하듯 노래부르는 가수, 요조

미래에 대한 고민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졸업을 하고 나니까 직업란에 쓸 게 없었다. ‘나는 가수인가? 뮤지션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봤는데, 직업란에 가수나 뮤지션으로 쓸 수 없었다. 쓰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장난을 많이 쳤다. 장사꾼, 백조, 철학가, 이런 식으로. 직업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맞닥뜨리기 싫어서 회피했다.

그러다 작년 11월에 첫 앨범이 나왔다. 그때부터 누가 직업을 물으면 뮤지션이라고 대답했다. 지금은 또 달라졌다. 요즘에 누가 직업을 물으면 록커라고 한다. 내가 록커 같으니까. 로큰톷하는 가수처럼 노래하진 않지만 스피릿은 로큰롤이다. 스피릿이 로큰롤이니까 나는 뽕짝을 불러도 록커다.

잘 모르는 사람은 나를 신인 가수라고 하고, 조금 아는 사람은 신인 아닌 신인 가수라고 한다. 나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옛날부터 나를 아는 사람들은 ‘드디어 앨범이 나왔다’고 하는데 나는 ‘이제 시작이야.’라고 말한다.

내 앨범이 나오기 전까지 내가 간헐적으로 부른 노래들을 ‘내 노래’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가 목소리를 빌려줘서 데코레이션 해주는 느낌. 특히 피처링은 아무래도 내 거라는 생각이 안 든다. 어디서 노래를 소개할 때 요조 씨가 부른 015B의 <처음만 힘들지>를 듣겠습니다, 라고 하진 않는다. 015B의 <처음만 힘들지>를 듣겠습니다, 그러지. 내가 무명이었기에 그런 기분을 더 느꼈던 것 같다. 그때는 누가 나를 알아보고 ‘노래 좋아요.’ 그러면 ‘좋죠. 들어보니까 좋더라고요.’ 남 이야기하듯, 덤덤하게 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내 노래를 좋다고 하면 진심으로 기쁘고 고맙다. ‘뭐가 좋아요?’ 하면서 집요하게 묻기도 하고.


첫 앨범을 내면서 내 노래를 부르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와 함께 한 첫 앨범 작업은 무척 즐거웠다. 민홍이 오빠와는 너무 서로를 잘 알아서 호흡도 잘 맞았고 편했고 힘든 걸 몰랐다. 내 앨범이라고 생각하니까 더 의욕이 생겼다. 그런데 앨범을 다 만들어 발매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고민이 됐다. 술을 마시고 새벽에 앨범을 처음부터 듣고는 민홍이 오빠한테 전화를 했다. “왜 앨범을 이렇게 만들었어? 나 되게 정상적인 사람인데 앨범을 지금 들으니까 나 이상해 보여.” 오빠가 되게 당황하더라.

〈LOVE〉라는 곡을 빼고 다 이상하게 들렸다. 사람을 사이코로 만들어놓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오빠가 딱 잘라 말하더라. “너 원래 그런 사람이야. 너 원래 그래.” 그래서 “그런 거야?” 그러고 전화를 끊었다. ‘이 앨범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좋아하겠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정말 싫어하겠구나.’ 하는 예감이 딱 들었다. 어쨌거나 다 찍어놓았으니 나의 이런 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자. 안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으니까 상처받지 말고. 그리고 발매가 됐다.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타협할 부분은 타협한다

내 음악에 대한 호오는 내 목소리에 대한 호오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말할 때 목소리는 평범하다. 약간 허스키에 가까운데, 노래를 하면 그런 목소리가 된다. 어떤 분은 앵앵거린다고 하고, 예쁜 척한다고 하기도 하는데 그런 말 듣고 억울할 때도 있었다. 녹음된 노래를 듣고 나를 공주로 오해하는 분도 있는데, 실제의 난 털털하고 터프한 구석도 있다.

내 목소리를 좋아하던 시기가 있었고 혐오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내 목소리는 내 목소리라고 받아들이는 단계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감사합니다.’ 그러고 ‘내가 정말 싫어하는 목소리거든요.’ 그러면 ‘유감입니다.’ 그런다. 나는 노래로 관객을 압도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박선주 씨 같이 듣는 순간 멍하게 되는 노래 실력은 내게 없다. 내가 프로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노래 잘하는 사람을 보면 기인을 보는 것 같다. ‘어떻게 저렇게 노래를 잘하지?’ 감탄하면서 본다.

답답할 때는 있다.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내 목소리로는 할 수 없을 때. 내 목소리를 혐오할 때 특히 그게 심했다. 슬픈 노래나 뭔가 팍 터지는 노래, 그런 걸 너무 해보고 싶었는데 안 되더라. 아무리 슬프게 노래를 해도 안 슬프다. 진짜 울면서 노래를 하지 않는 이상 안 슬펐다. 팍 터지는 노래도 내가 하면 뭘 하나 씌어놓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은 답답한 노래가 됐다. 그래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기도 했다. 2005년쯤에. 한 달쯤 수업을 받았는데 선생님이 ‘언제까지 너 그렇게 앵앵거리며 노래할래?’ 그러셨다. 선생님은 나에게 자극을 주려고 그러신 거지만 나는 정체성의 혼란이 와서 노래를 더 못하게 됐다. 내 생애에서 가장 노래를 못했다. 나대로 부르지도 못하고 배운 대로 시원하게 부르지도 못했다. 선생님한테는 계속 혼나고. 카오스를 겪었다. 그러다가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타협할 부분은 타협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

앨범이 발매가 되고 좀 있다가 내 노래들이 디지털카메라 CF의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김태희 씨가 나온 그 CF 덕에 앨범도 알려지고 포탈 검색 순위에도 올랐다. 나는 그게 그렇게 큰 파급이 있을지 몰랐다. 처음 거기에서 내 음악을 쓰고 싶다고 했을 때 ‘와, 김태희 씨가 출연한다고.’ 되게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예쁜 사람이 연기하는 데 내 음악이 흐른다고, 신기하고 기뻤다. 사람들이 ‘나’와 ‘음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엔 되게 부담스럽더라.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니가 얼마나 유명하다고 부담스럽다고 난리야.’라고 사람들이 비웃을 것 같더라.

오랫동안 무명으로 있다가 갑자기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인디의 요정이네, 대중음악의 기대주네 그러니까 ‘뭐야.’ 싶었다. 부담스럽고 숨고 싶었다. 홈페이지도 없애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용량을 늘려주더라. 지금은 그것도 다 한때라고 생각한다. 이젠 마음이 편하다. 덕분에 앨범도 나갔고 이름도 알려졌다. 그것도 내 운이라고 생각한다.


삶이 힘들다고 음악도 힘들어야 하나?

나는 노래를 멜로디가 있는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부른다. 나는 관객을 압도하는 노래는 부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노래를 부른다. 공연을 하면서 나는 관객에게 질문을 많이 던진다. 그러다가 내가 한 이야기를 이해해주는 관객을 만날 때 정말 반갑고 기쁘다. 행복하기까지 하다.

지금은 앨범을 준비 중이다. 정규 앨범은 아니고 대여섯 곡 정도가 수록될 미니 앨범인데, 6월에 나올 예정이다. 그 작업 때문에 바빠서 공연을 많이 못 하고 있다. 작사, 작곡은 내가 했고, 편곡은 다른 분에게 맡겼다. 이번 앨범 색깔과는 많이 다른데, 사랑 노래가 대부분이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사랑 이야기다.

어떤 사람은 내 노래가 엉뚱하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세상 고민은 하나도 없는 공주님 같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살다 보면 힘든 일이 많은데 노래도 힘들어야 할까. 고통스러워서 죽겠다는 노래를 해야 할까? 나는 주성치를 좋아한다. 그가 옛날 인터뷰에서 삶은 힘들지만 영화는 재미있고 웃기는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크게 공감했다. 주성치의 마인드가 내 마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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