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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부록 #1

살아보지 못한 삶도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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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해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너무 너무 즐거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뷰 끝에 내가 고개 숙여 인정하는 것은 살지 못한 삶도 삶이라는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나는 희망에 희망을 더하는 거랑 슬픔에 슬픔을 더하는 거랑 마음속 결론은 똑같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왔다. 인생의 많은 일들, 그 일들이 마지막 순간에 주는 가장 인간적인 메시지는 ‘오늘밤 푹 자고 나면 내일은 더 나으리라.’ 그 이상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지난주에 내가 누군가의 책에 쓴 추천의 글이었다. 그런데 써놓고 보니 이 말은 사실은 특정한 책을 위한 추천사라기보다는 모든 책을 위한 추천의 말과도 같이 느껴졌다. 희망에 희망을 더하는 거랑 슬픔에 슬픔을 더하는 거랑 마음속 행로는 같아진다는 것을 인정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내일은 아마도 더 나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모든 길 떠나는 자의 이야기, 모든 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모든 동요하는 자들의 이야기에 항상 넋을 잃곤 했다. 그건 왜였을까? 어느 날 한국을 찾은 노벨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은 이렇게 말했다.

“작가는 덫을 놓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나의 독자들이 내가 쳐놓은 복잡하고 신비로운 기분을 같이 느낄 수 있도록 나는 덫을 놓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 덫에 걸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덫은 책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복잡하고 신비로운 인간의 속성이었다. 그러므로 사람과 책이 만나는 지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한한 힌트를 준다. 왜냐하면 책이란 다름 아닌 사랑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고 결국 어떤 책을 사랑하느냐는 그 사람의 속성, 그 사람의 자존감, 그 사람의 희망, 그 사람이 꿈꾸는 미래, 그 사람이 살아온 삶, 그 사람의 포용력, 그 사람의 사랑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정확히 짚어주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해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너무 너무 즐거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뷰 끝에 내가 고개 숙여 인정하는 것은 살지 못한 삶도 삶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때로 나 자신과 다른 무엇을 상상하며 풍요로워진다. 내가 누렸던 풍요 중 일부분, 이 글에 언급된 책들 중 미흡했던 걸 좀 더 소개하는 걸(어떤 건 길게 어떤 건 짧게)로 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여기 언급된 책들은 내겐 안아주고 싶은 연인 같은 신비로운 책들이다. 끝없이 나를 현혹시키고 그럴듯하게 굴고 멋지지 않은 순간에조차 나를 미치게 하는.

* 은희경 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나는 이 책을 열대야의 밤에 즐겨 읽곤 했다. 한여름의 모시 침구까지도 시원하지 않을 때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어디서 서늘한 바람 같은 게 불어오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 바람의 느낌은 무척 낯익었다. 우리가 노스탤지어라고 부르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 바람의 끝에 우리의 어떤 기억을 호출하는. 이 책의 첫 문장은 내가 묘한 인연으로 두 번이나 선물 받았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을 처음에 읽을 때는 첫 문장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가 우리가 보통 열패감에 젖어 흔히 내뱉는 말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느낀다. 우리의 주인공 ‘기’는 자기 자신에 대해 기억을 하지 못한다. ‘기’가 자기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이야기,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모델 드뉘즈, 과연 그는 그녀를 사랑하기나 했던 것일까? 여자의 흔적을 따라가는 이야기의 중간에 수많은 사진과 메모와 이야기와 소문, 추측들이 나온다. 파리주재 그루지야 대사관, 체류허가증, 러시아 망명귀족. 자신이 살았을지도 모르던 아파트, 자신이 갖고 놀았을지 모르는 초콜릿이나 비스킷 낡은 상자, 증명사진. 자신이 피웠을지 모르는 담배, 빛바랜 사진에 우연히 찍혀 있는 사람에 대해 안타깝게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이런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살아있는 동안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도 지니지 못했던 인간들의 사연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애달픈지 모른다. 파트릭 모드리아노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 써놓은 말은 울고 있는 여자 사진에 관한 것이다.

잠시 동안 나의 생각은 함수호로부터 멀리 세계의 다른 끝, 오랜 옛날에 그 사진을 찍었던 러시아의 남쪽 어느 휴양지로 나를 실어갔다. 한 어린소녀가 황혼녘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서 돌아온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울고 있다. 그 소녀는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저녁 속으로 빨리 지워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첫 문장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가 비단 기억상실증 환자의 말만은 결코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우리는 너무나 빨리 기억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어떤 더운 여름날에는 우리의 열기, 후덥지근한 공기마저도 우리를 증명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누군가 어느 날 내 이름을 부를 때, 내가 ‘예.’ 하고 대답하는 순간, 나와 같이 대답하는 나의 기억들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나일지 모른다.

『백년보다 긴 하루』



 

 

나는 이 책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주는 걸 즐겨한다. 내 이야기의 시작은 늘 이렇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죽어갈 때 한 대의 우주선이 하늘을 향해 날아 올라갔다. 죽은 이는 까잔갑이란 노인네였다. 그를 가장 잘 기억하는 사람은 에지게이였다. 이 책은 아랄해에서 태어난 두 사람 까잔갑과 에지게이가 어떻게 고향을 떠나 지독하게 외롭고 슬픈 스텝 지방의 마지막 역 부란노 부란니 역에 40년 넘게 살아가게 되었는가, 그들은 거기서 무엇을 견디며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봐도 좋다. 까잔갑이 죽었을 때 에지게이는 그의 유언대로 중앙아시아 스텝에서도 가장 유서 깊은 묘지, 아니 베이뜨에 그를 묻어주고 싶어 한다. 그의 장례 행렬이 스텝을 향해 가는 시간 동안 그의 전 인생의 이야기가 단 하루―백 년보다 긴 하루―를 회고하는 것처럼 흘러간다. 우리 인생은 어쩌면 백 년보다 긴 하루에 불과할지 모른다. 마치 육자배기 가락이 그러하듯. 에지게이가 일생 동안 아내 외에 딱 한번 사랑했던 여인이 스텝을 떠나던 날, 에지게이가 슬픔을 견디지 못해 그가 가족처럼 아꼈던 스텝 지방 최고의 멋진 수낙타를 혹독하게 매질하는 장면의 여운은 놓쳐버린 것에 대한 울부짖음으로 남는다. 그 울부짖음은 부란노 부란니역에선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세상의 끝이니까.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는 포인트는 딱 세 개다. 일단 이 책에는 악당이 한 명도 없다. 까잔갑은 선량하고 현명하며 에지게이는 심지가 굳고 근면하며 자신과 남의 일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할 줄 아는 사람이다. 조무래기 악당들이라고 해봤자 그저 소심하고 나약한 데서 오는 속성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지은이 친기즈 아이뜨마또프는 에지게이 같은 남자에게서 사회주의의 미래를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에지게이 같은 남자들의 책임감과 사랑이 지구와 이 시대를 구할 수 있기를. 두 번째 포인트는 한 사람이 죽던 날 한 대의 우주선이 발사된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죽음과 우주선의 연결고리란 무엇일까? 더 나은 어떤 것과의 만남이 힌트라면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세 번째는 사람들 모두가 영웅이 되는 것은 바로 사랑을 할 때라는 작가의 말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랑은 조국과 이념보다 앞선다. 사람들 모두가 영웅이 되는 건 바로 사랑할 때. 그럴 때 백 년보다 긴 하루는 찰나보다 황홀하고 우리는 웃으면서 죽는다. 눈물이 한 줄 흐르더라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지은이 아고타 크리스트포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나의 선배가 “나는 이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 권을 다 읽었기 때문에 올해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을 거야. 그거면 됐어!”라고 하는 바람에 한때 절판되었던 책이 다시 나오자마자 숨넘어가게 읽은 책이다. 이것은 어느 해 전쟁을 피해 시골에 내려간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옷장을 열면 새로운 환상과 모험의 나라가 펼쳐지는 『나니아 연대기』 같은 책이 아니라 처절한 운명에 대항 혹은 순응하게 위해, 결과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쌍둥이들이 얼굴을 마주보며 뺨을 때리며 훈련을 하는 이야기이다(상, 중, 하 세 권이지만 서로 꼭 연관시켜 읽을 필요는 없고 작가에게도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내가 못 견뎌서 결국 최초로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한 것은 1권 『비밀노트』 23페이지에서부터였다. 마녀 같은 할머니 밑에서 개자식이란 말을 들으며 사는 그들에게 최고의 금기는 인간적인 감정이다. 그들은 어른에게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스스로의 도덕과 행동 윤리 강령 같은 것을 만들어 나가는데 이것이 그들의 비밀노트이다. 이 글을 블랙유머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어른들의 세계가 흔들리면 아이들은 우리가 상상 못할 정도로 절박해진다.

* 변영주 편

나쓰메 소세키



 

변영주는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나쓰메 소세키를 읽고 알았다 한다. 나의 경우엔 다른 걸 봤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그 후』를 읽다 보면 솔직히 인물이 흥미로워서 놀란다기보다는 인물이 철저하게 전형적이라 놀란다. 별 직업도 없이 머리에 든 것만 믿고 부모 형제를 시큰둥하게 여기는 집안의 애물단지를 다루는 아버지와 형, 형수의 예측 가능한 속성들은 너무 낯익어서 오히려 인간의 예의바르고 현명하듯 보이는 속성이 사실은 무척 구태의연함을 느끼게 된다. 겉보기에 안전한 것보다 겉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것에서 뭔가를 찾아내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얼마나 매력 없는 것인가? 나는 가끔 이런 글들에서 깨닫는다. 사실 그래서 『그 후』는 우리의 주인공 다이스케가 이끌고 나갈 수밖에 없는데 다이스케는 나쓰메 소세키가 만든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탐미적이고 청년다운 속성을 갖고 있긴 하다. 『그 후』가 삼각관계를 다룬 연애소설이긴 하지만 격렬한 육체적 장면은 없어서 나도 변영주처럼 혹시 식민지 시대 지식이의 글이라 그런가 다른 측면에서 생각했었다. 대신 『그 후』에는 백합꽃 향기 분분하다. 꽃향기 같은 사랑이라면 사랑의 성취보다는 마음의 행로가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 『그 후』의 사랑은 내 보기엔 미칠 듯이 빠져드는 사랑이라기보다는 복잡한 마음의 조합 같은 것일 수 있는데 그런 사랑도 엄연히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들 대부분이 그런 사랑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도련님』은 나쓰메 소세키의 전기 작품에 해당되는데 읽고 나면 유쾌한 기분이 든다. 우리의 철부지 도련님은 세상물정 모르고 마음도 다스리지 못하고 뚱하기까지 하지만 불의를 보면 분연히 떨쳐 일어나고 거짓말은 절대 안 하고 복수는 꼭 하고 시답지 않은 인간에게 신세를 지느니 목을 매고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딱 한 명 그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유모만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도련님에게 한없는 신뢰를 보낸다. 그런 사람 하나만 있으면 세상살이 아무렴 어떤가 싶을 정도다. 용기백배의 순간이다. 자기 좋다는 데 이유를 따질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의 자전적 소설 『길 위의 생』은 읽다보면 조금 고단해져서 어디 기대서 쉬고 싶다. 그 글에서 나쓰메 소세키는 이 세상에 끝나는 일이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일단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그저 여러 형태로 모양만 바뀌는 것으로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다.’ 프로메테우스의 간이나 시지프스의 신화나 나쓰메 소세키나 인생의 고단함에 대해 이야기하니 꽃향기 끝에 이슬처럼 눈물이 맺힌다.

* 진중권 편

『황금가지』



 

내겐 진정으로 너무 무서운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보고 나서 나는 『황금가지』『암흑의 핵심』을 읽었었다(<지옥의 묵시록>은 살해되는 신, 살해되는 사제, 즉 커츠 대령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책상 위에 『황금가지』 책을 살짝 올려놓은 센스를 발휘했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는 우리에겐 아주 불합리하게 느껴지더라도 그 옛날에는 아주 자연스러웠던 믿음―살해되는 사제, 영혼과 떨어져 있는 몸(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 바다로 솟구쳐 오른 바다갈매기, 아카시아 꽃나무 밑 심장. 앵무새 몸 안에 있는 마법사의 영혼, 특정한 인간과 운명을 같이하는 동식물), 태양을 보거나 발을 땅에 디디면 사멸해버리는 신성들, 겨우살이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 북유럽의 아름다운 신, 발데르. 시신을 불태우는 장례 풍습, 초경을 하는 소녀들을 가둬놓는 풍습 등등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믿음들의 끝에 가면 우리는 축축한 동굴, 어둠과 미로 속에서 헤매다 동굴 벽화를 그려놓는 사람들의 염원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비록 잘못된 유추를 통해 획득된 미개인의 풍습이라 할지라도 원하는 세상의 본질은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았단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인간이 가진 큰 욕구는 본질적으로 비슷하다는 것, 우리는 주술에서 종교로 과학으로 나가는 여정 중에 있다는 것. 주술과 과학의 공통점은 질서라는 것(한쪽은 잘못된 유추에 의한 것, 한쪽은 인내력 있는 관찰에 의한 질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프레이저는 말한다) 한 사회의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는 자기 수준의 노력이란 것.

이런 것들에 대한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책이다.

그렇다면 황금가지의 정체란 무엇인가? 우주의 무한한 비밀을 알려줄 황금의 열쇠일까?

한때 사람들은 황금가지를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서고 있는 숲의 왕을 상상했었다. 지금은 아무도 새벽안개를 마녀의 옷자락이라 생각하지 않듯이 숲의 왕 또한 상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때 숲의 왕을 상상했던 사람들과 우리는 모두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같은 별을 바라보며 같은 빛 속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황금가지의 정체에 대한 절대적인 힌트를 하나 주고 싶다



 

베르길리우스에 의하면 지옥의 입구에는 음울한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아이네이아스는 유혹이라도 하는 듯이 나는 두 마리의 비둘기를 따라서 끝없는 숲을 헤맨 뒤에 어두운 그림자로 뒤덮인 나무들 저쪽에 황금가지의 반짝이는 빛이 뒤엉켜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쓸쓸한 가을 숲 속에서 마른 겨우살이의 노란 가지가 불씨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혼자서 저승을 헤매는 사람에게는 주위를 비추는 빛이 되고 손에 쥐면 채찍이나 지팡이가 되는 훌륭한 반려였을 것이다. 이 무기가 있다면 모험의 여행길에서 기다리고 있는 무서운 요괴들과 맞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네이아스는 숲을 빠져나와 지옥의 늪지를 구불구불 천천히 흘러가는 스틱스강의 강변에 도착해서 심술궂은 사공이 황천으로 가는 배를 태워줄 수 없다고 거부했을 때 퓸에서 천천히 황금가지를 꺼내서 위로 쳐든다…….


황금가지는 그것 하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뚫고 나갈 믿음으로서의 그 어떤 것 아니었을까? 우리에게 황금가지는 무엇인가?

『베를린의 어린 시절』



 

발터 벤야민은 1940년 9월 26일 스페인 국경지대 피레네 산맥 아래 포르부라는 마을에서 모르핀을 입안에 털어놓고 자살했다. 죽기 한 해 전에는 유대인들의 집단 수용소에 있었고 죽던 해 봄에는 다시 유대인 수용소로 한 번 끌려갈 뻔 했었다. 내가 처음 읽었던 발터 벤야민의 책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였는데 나는 그가 엄청난 궁핍 속에서 13년간 파리를 떠나지 않고 써내려갔던 그 책에서 도시의 산책자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한 강력한 힌트를 얻었다. 철도, 거울, 불쌍한 여인이 애인 대신 보게 되는 가로등. 낮 동안의 모든 음모를 꿰뚫고 있는 유리, 철골 건축물, 낡은 간판, 계단들, 소시민들의 일요일, 교량, 카드점쟁이, 즉석명함, 인쇄물들에 대한 집요한 수집가적 탐험을 해낸 그의 결론을 보들레르의 입을 빌려 내린다면 벤야민이 싫어할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악의 꽃』 마지막 시 「여행」 마지막 구절, “나는 나의 지리를 알기 위해 여행한다.” 나는, 우리의 지리는 우리의 시대, 우리의 육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책에는 흑백사진이 붙어있는 벤야민의 파리 국립도서관 출입증이 있다. 나는 그 사진에 진정으로 매료되었다. 그는 국립도서관에서의 작업은 “마치 오페라의 한 장면과도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벤야민처럼 도서관이 우주였던 사람은 1924년부터 1942년까지 바로 그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했던 조르주 바타이유였다. 나는 그 둘이 도서관 열람실에서 만나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벤야민은 다름 아닌 그의 저작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대해 힌트를 줬을 것이다. 벤야민은 죽기 전 『아케이드 프로젝트』 원고를 세 덩어리로 나누어 보관했다. 즉 1940년 6월 14일 마지막으로 파리를 떠나면서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바타이유에게 부탁해 파리 국립도서관에 숨겨놓았던 것이다. 만약, 어느 날 내가 파리 국립도서관에 가게 된다면, 나는 이 사실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유로 국립도서관 계단에 한참 앉아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읽은 벤야민의 책이 바로 『베를린의 어린 시절』『일방통행로』였다. 진중권 편의 글을 쓰면서 벤야민의 프루스트적 통찰력에 대해 몇 군데 옮겨 놓긴 했지만 『베를린의 어린 시절』을 옮겨 적는 내 마음은 각별히 애틋했다. 『베를린의 어린 시절』을 쓰는 동안, 어른 벤야민은 최초로 자살을 꿈꿨고 베를린이 아닌 지중해의 외로운 섬 이바사에 있었다. 하지만 『베를린의 어린 시절』에는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이르는 숨겨진 힌트 같은 게 한 구절 나온다.

크리스마스 축제와 생일 축제가 끝날 때마다 선물을 하나 골라 새로운 장에 기증해야했는데 그곳의 열쇠는 어머니가 나 대신 보관해주셨다. 장에 보관해 두었던 것이 모두 좀 더 오랫동안 새것인 채로 있었다. 하지만 내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새로움을 그래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들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 자신이 새로운 사람으로서 오래된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오래된 것을 새롭게 하는 것, 그것이 내 서랍 안에서 진행되고 있던 수집의 과제였다. 내가 발견한 돌, 꺽은 꽃, 잡은 나비들은 벌써 나에게는 수집의 시작이었으며…….

오래된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 그건 역사가의 꿈, 수집가의 꿈, 혁명을 원하는 자의 꿈, 진보를 믿는 자의 꿈.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자의 진정한 꿈이다. 그리고 언젠가 사랑을 잃어본 적이 있는 자의 꿈이다.

* 임순례 편

『시핑 뉴스』

『브로크백 마운틴』의 작가 애니 프루에게는 너무나 미안하게도 『시핑 뉴스』 최고의 미덕은 그녀가 단돈 25센트에 『애슐리 매듭서』를 도서 세일에서 살 수 있었다는 점, 캐나다 국립 인류 박물관에서 『뉴펀들랜드 트리니티 베이 윈터톤에서의 선박 건조』를 읽을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먼 바다, 북대서양어부의 운명』을 읽은 게 아닌가 싶다.



 

『시핑 뉴스』의 각 장은 모두 『애슐리 매듭서』와 『항해 사전』 등에 빚지고 있다. 그중 몇 부분은 꼭 소개하고 싶다. 뭔가 좀 꼬인 매듭처럼 풀리지 않을 때 신기하게도 내 눈 앞에 그 문장들이 지나가므로. 내면의 유별난 빛이 없는 나로서는 모든 것의 지혜를 다 빌리고 싶다.

- 시적인 항해(『해양사전』): 안개, 고위도 지방까지 침투하는 멕시코 만류에는 안개가 많은데 특히 래브라도 한류와 만나는 그랜드 뱅크스 주위에는 수온차이가 심해서 안개 현상이 두드러진다.

- 옛날 해상에서 배 두 척이 우연히 만나면 돛의 활대를 돌리고 큰 소리로 소식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서로 가까이 만나기 위해 바람 부는 방향으로 가는 배는 큰 돛대의 활대를, 반대방향으로 가는 배는 앞 돛대의 활대를 돌렸다고 하는데 이것이 배들 간의 사교적 만남이다

- 헝클어진 밧줄을 풀려면 뒤엉킨 부분과 매듭진 부분을 느슨하게 해놓고 가장 긴 끝이 나오는 부분을 찾아 동그랗게 구멍을 낸다. …… 완력을 쓰지 말고 엉킴이 저절로 풀리게 해야 한다.

- 하루 일과(『해양사전』): 하루 일과는 최소한 정오에서 다음 정오까지의 추측 항해와 오전과 오후 시간의 경도 관측, 위도를 알기 위한 자오선 고도측정으로 이루어진다.

- 빛나는 휠캡(『애슐리 매듭서』): 아직 기록되지 않은 매듭도 있고 밧줄의 용도가 새롭게 생겨나는 한 새로운 매듭은 계속해서 탄생할 것이다.


인용된 글들 중에서 ‘배들 간의 사교적 만남’이란 표현을 제일 좋아한다. 언젠가 통영 앞바다 십자 동굴 위 바람의 방향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멀리 떨어져서도 서로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는 두 그루의 견우직녀 소나무를 보았을 때 사교적 만남이란 표현이 속으로 생각나 웃었었다. 사교적 만남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처지의 문제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여름밤의 꿈』

『한여름밤의 꿈』은 요정과 인간이 뒤엉킨 한바탕 사랑의 난리에 관한 책이다.



 

셰익스피어에 관한 한 헤럴드 블룸의 『세계문학의 천재들』과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영국 기행』을 참고하면 셰익스피어를 더 읽고 싶어 안달이 날 것이다. 헤럴드 볼룸은 어느 날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를 한자리에 불러놓고 세미나를 하는 상상을 하는데 나 또한 그 자리에 참석하고 싶다(비행기값이 좀 들더라도). 헤럴드 볼룸은 천국에 가 있는 사람 중 딱 한 사람만 부를 수 있다면 셰익스피어를 불러서 이렇게 물을 것이라 했다. “실제로 살아 숨 쉬는 남녀보다 더 진짜 같은 남녀 인물들을 만들어내니까 조금 위안이 되셨나요?” 난 그 질문이 셰익스피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라 생각한다.

셰익스피어의 책 중에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아하던 『템페스트(폭풍우)』를 꼭 소개하고 싶다. 프로스페로는 누구인가? 폭풍우의 프로스페로는 공기와 생각과 꿈으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가 그 세상에 입김을 불어넣으면 바다로부터 세상이 솟구쳐 오른다. 그가 다시 한 번 후 하고 불면 세상은 사라진다. 바로 이럴 때 인간은 기뻐 날뛰게 되는데 그 이유는 진실을 꿰뚫었으므로. 이 세상 전부가 한 편의 꿈이란 진실. 이 세상 전부가 한 편의 꿈이라는 말은 살아있는 모든 자에겐 각자 살 만한 장소와 방법이 있단 말만큼 비현실적인 동시에 현실적이다. 살아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꿈꾸게 하고 우리를 살게 한다는 말이 얼마나 우리를 강하게 하는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 박노자 편

『쓸쓸함보다 더 큰 힘이 어디 있으랴』(아쿠다카와 류노스케)



 

우리가 사랑하는 일본 근대의 세 작가, 나쓰메 소세키. 아쿠다카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는 이렇게 연결된다. 아쿠다카와 류노스케는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였고 그 아쿠다카와 류노스케를 존경했고 그의 자살에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제자는 다자이 오사무였다. 아쿠다카와와 다자이 오사무는 둘 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 때문에라도 묘하게 같은 울림을 준다. 그 둘을 보면서 삶을 포기하는 것은 절망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삶이나 죽음에 이끌린다 해도 그건 절망이 아니라 애착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그들에게 사랑과 반항은 일치한다. 결국 사는 동안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속한 세계와 자신을 이어주는 어떤 단서와 끈을 찾느냐 마느냐의 문제같이 느껴진다. 나는 아쿠타카와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을까 참 궁금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태어나 9개월이 되었을 때 정신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고 열한 살 때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의 작품은 『라쇼몽』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쓸쓸함보다 더 큰 힘이 어디 있으랴』를 즐겨 읽는다. 박노자 역시 이 책을 고등학교 때 알게 되어서 외우고 다닐 정도로 좋아했다 한다.

나의 경우 「도쿄」라는 짧은 글은 봄에 여행갈 때 꼭 생각이 난다.

스미다 강은 잔뜩 흐렸다. 그는 달리는 작은 증기선의 창문으로 무코우 섬의 벚꽃을 바라보았다. 활짝 핀 벚꽃은 그의 눈엔 한 줄로 늘어선 누더기처럼 우울했다. 그러나 그는 그 벚꽃에서 에도 시대부터 줄곧 그 자리를 지켜온 무코우 섬의 벚꽃에서 불현듯 그 자신을 발견했다.

예수는 만인의 거울인가. 만인의 거울이란 의미는 만인은 예수를 본받으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한 사람의 예수 안에서 만인이 그들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 통찰력은 내가 공지영 편에 언급한 오스카 와일드의 표현과 거의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 이를테면,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타인을 위해서 살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나의 생과 타인의 생은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비류코프의 톨스토이 전기를 읽다보면 톨스토이의 나의 참회나 나의 종교가 거짓말이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그 거짓말을 줄곧 이야기해왔던 톨스토이 마음만큼 애처로운 것도 없다. 그의 거짓말은 다른 사람의 진실보다도 훨씬 붉은 피를 흘리고 있다.

(정말이지 나는 완고한 고집불통 진실보다 번민 끝의 취약한 거짓말에 더 맘이 가는데 아쿠타카와 표현대로라면 “나는 불행히도 안다. 때론 거짓말에 의지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진실도 있음을.” 스티븐 킹의 표현대로라면 “중요한 것은 말하지 못한다.” 파스칼 카냐르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영혼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비밀이다.” 나의 표현대로라면 “거짓말에 의지하는 진실이 가장 치명적인 진실이다.”)

* 정이현 편

폴 오스터의 책들

정이현과 임순례 두 사람이 좋아하는 작가로 꼽은 폴 오스터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우리 시대의 징글징글한 이야기꾼 폴 오스터의 책 중 정이현이 좋아한다고 꼽은 것은 『빵굽는 타자기』였다. 『빵굽는 타자기』의 부제는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이다. 뉴욕의 작가 폴 오스터 식 특징, 그의 거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특징을 우선 내 식대로 정리해 보자면…….


 

- 그는 뉴욕의 작가이다. 허먼 멜빌(뉴욕항의 세관 검사관이 그의 최종적 직업이었다), 애드거 앨런 포, 휘트먼을 얼마나 자주 인용하던가? 그는 우디 앨런과는 또 다르게 뉴욕적이란 느낌이 드는데 우디 앨런이 수다스럽고 소시민적이라 한다면 폴 오스터의 탐정, 사진가, 스트리퍼 ,포르노 모델, 동성애자, 떠벌이들, 택시기사들, 출판업자들은 훨씬 더 대담하다. 그들은 대체로 어느 날 중대한 뭔가를 우연히 결심하고 혹은 우연히 만나고 그 일은 반드시 인생을 한바탕 휘저어 놓는다. 나는 폴 오스터를 읽으면서 오늘날 뉴욕적이라 한다면 그것의 정체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의 결론? 그곳에서라면 아마도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여행을 떠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모퉁이 하나만 돌아도.

-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서 한숨을 돌릴 때 쯤 곧바로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never ending story의 진수를 보여준다. ‘무료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어느 날’ 같은 것은 그의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주인공들은 실제로 극적인 사건을 겪기도 하지만 일상적인 것을 더 생생하고 극적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힘을 갖고 있다. 그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고 그때의 표현 방법은 현대판 셰익스피어적이다. 그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자기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자주 자기 인생을 되돌아본다거나 자주 자기 인생에서 만났던 사람에 대해 묘사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천부적인 이야기꾼들이 된다. 이를테면, 그의 소설 중 한군데에 ‘나는 OOO를 봤다.’ 대신 ‘나는 OOO를 목격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라고 표현하는 할아버지가 나온다. 나는 처음 읽을 때부터 그 화법이 너무 재미있어서 좀 지리멸렬한 날은 그 표현을 패러디한다. 100% 확률로 훨씬 재미있어진다. 어쨌든 그 결과 그의 주인공들에게선 하나같이 광기 또는 꿈의 맛이 난다.

하여간 『빵굽는 타자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이후 그의 소설을 관통할 모든 특징들이 그 원형으로서 다 나와 있다. 한 소년이 청년이 되어서 소설가가 되는 와중에 만났던 사람, 벌려놓았던 일. 떠났던 길, 얻었던 직업, 실패한 일들에 대한 글이라고 정리해도 되겠지만 그보다 흥미진진한 것은 실제 사건과 역사와 딱 맞아 떨어지는 가공의 인물 하나가 우뚝 탄생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실제로 살았던 것 같은 가공의 인물이야말로 소설은 삶 자체다란 말에 딱 걸맞은 주인공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폴 오스터의 소설들을 읽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말을 생각해 낸 적이 있다.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 적절한 순간에 태어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순간을 감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전 인생은 폴 오스터의 주인공들처럼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는 중일 거다. 그렇게 뛰어가다가 아름다운 장면이 나오면 한 번 더 고개를 돌려 돌아볼 수 있을지 몰라도, 아마도 우리는 계속 달려가게 될 거다. 아름다움을 연출하진 못해도 감지해내는 게 우리 몫이 아닐까? 달리면서 어느 날 하루쯤 생각하게 될 거다. 그리고 그때의 숨이 진짜 숨이다.

☞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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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혜윤 (C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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