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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외로운 너에게 보내는 노래 - 3집 앨범 <For Jacquline>과 첫 번째 책 『Paris Talk』를 낸 ‘정재형’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쁜 거다. 듣는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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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이 따스하다 못해 익어버린 어느 날, 그렇게 ‘음악 하는’, 이젠 ‘글도 쓰는’ 정재형을 만났다. 대체로 나지막한 음색은 봄보다는 가을을 닮았지만, 음악을, 앨범을 언급할 때는 좀더 활기차고 풍성했다.

누군가는 “오빠가 돌아왔다”고 외쳤다. 혹자는 “기쁘다. 정재형 오시네~”라고 노래를 불렀다. “어린 시절엔 고급스러운 우울함 때문에 공감하기 힘들었다”던 또 다른 누군가는 이번 앨범을 “기본의 우울하고 클래식한 정서는 그대로 한 채 전공을 최대한 살려 스토리와 그림을 입혔고, 좋은 동료들을 만나 새로운 장르에 도전도 해 본 그런 앨범”이라며 반가움을 표했다. 그래서일까. 이런 상찬도 눈에 띈다.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쁜 거다. 듣는 사람으로서.”

사실, 정재형(의 음악)이 어딜 가진 않았다. 따지고 보면, 꾸준했다. 이번 앨범 <For Jacqueline>이 6년 만의 솔로앨범이라지만, 2002년 두 번째 솔로 <두 번째 울림> 이후에도 영화음악(<중독> <오로라 공주> <Mr. 로빈 꼬시기>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과 프로듀서(엄정화 <Self Control>)까지 ‘그때그때 거기 있었다’.

그럼에도 ‘반갑다, 정재형’을 외치는 건, 그게 ‘정재형’이기 때문이다. 어떤 감성 혹은 아우라. 그것에 대한 어떤 갈증. 굳이 ‘90년대의 귀환’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 지난겨울, 토이(유희열)를 필두로 김동률, 강산에, 김광진 등의 신보 소식이 줄을 잇고, 정재형도 한 묶음으로 엮이긴 해도 그건 그냥 무시해도 좋다. 정재형은 묵묵히 자신만의 결을 따를 뿐이다. 자신과 앨범을 향해 쏟아지는 평가 내지는 궁금증과 무관하게.

그런데, 이번 앨범. 뭔가 다르다. “종전의 과잉 감성”을 덜어냈단다. ‘자기 반복’을 않았단다. ‘일렉트로닉 팝 뮤직’이라는 개념을 탑재하고. 이전 얌전우울모드에 가깝던 정재형은 어쩐 일인지, ‘뜨거운 양철’은 아니지만, ‘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살랑거리기까지 한다. “기억해줘 내 삶의 첫 페이진 그대로부터 시작됨을”(1집 ‘그대로부터의 시작’)이라고 사랑의 달콤함보다 슬픔을 더 그럴싸하게 표현하던 그가, 헉, ‘사랑은 이제 싫다’고 토해낸다. “그까짓 사랑 이제는 끝내버리자 사랑 따위”라는 격한 말로. “슬픔은 감추자”(‘일요일 오후’)고 청하거나 “노래가 세상을 흔들 수 있다”(‘1988’)는 믿음을 가졌던 고백까지.

‘아니, 종전에 알던 정재형이 아닌 거야?’라는 질문. 그것도 도리도리. 천성이 어디 쉽게 바뀌던가. 우울과 슬픔, 어쩌면 ‘정재형’을 구성하고 있는 그 대표 감성들, ‘정재형 같은’ 음악도 여전하다. ‘날개’를 달았다손, 본질이 쉬이 바뀔 리 있던가. “우~ 아~ 잊은 줄 알았는데 우~ 아~ 사랑은 또 흐른”(‘날개’)다. 사랑이 이제 싫다면서도, 번복하는 변덕도. “말해 난 혼자이고 힘들다 말해 내 사랑이 필요하다”(‘사랑은 끝을 지나 처음’)고 토로한다.

정재형(의 3집)은 그렇다. 슬픔과 우울을 휘두른 자신의 아우라가 깨지는 것이 두려워, 음악을 숨기는 일은 않는다. “9년 동안의 프랑스 유학생활이 응축된 앨범”이라는 어떤 평. 정재형도 동감했다. “앨범은 경험의 축적이고 현재진행형인 생각에 대한 틀이다. 응축이라는 뜻이 정확히 어떤 뜻인지는 몰라도,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배우고 느낀 것이 있고, 그것을 이번 앨범에 담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도 동의할 수 있다.”

아참, 정재형은 책도 냈다. 『Paris Talk:자클린 오늘은 잠들어라』. 음악 속에 이야기를 입힌 것처럼, 문자 세계에도 자신의 감성을 담았다. 음악이 나름의 가치를 나름의 형식에 담고 있는 것처럼, 문자를 통해 발언하고픈 ‘정재형’도 있다. 문자적 세계를 통한 소통도 궁금했단다. 음악 아닌 글을 통해 만나는 정재형은 어떨까. 글쓰기라는 자유를 통해서는 어떤 감성의 결이 흩날릴까. 못내 궁금한 이유다.

봄 햇살이 따스하다 못해 익어버린 어느 날, 그렇게 ‘음악 하는’, 이젠 ‘글도 쓰는’ 정재형을 만났다. 대체로 나지막한 음색은 봄보다는 가을을 닮았지만, 음악을, 앨범을 언급할 때는 좀더 활기차고 풍성했다. 할 얘기, 소통하고픈 열망이 큰가보다. 어쩔 수 없는 음악 욕심쟁이, 우후훗. 5월 중순에는 TV출연도 생각하고 있고, 6월 중순에는 단독 공연이 있다. 이후 파리의 일상으로 갔다가 새로운 영화음악 때문에 가을쯤 한국에 들어올 것 같다는 정재형. 다시 만난 정재형을 듣고 읽기 위한 네 가지 키워드.


파리, 쥬뗌므(Je t'aime)

“파리라는 도시가 영감을 주나. 고생도 많이 했을 텐데.”

“파리라는 공간이 영감을 주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 물론 있긴 하겠지. 예전에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된다거나. 파리여서가 아니라, 태어나고 주로 생활했던 곳에서 멀어진 도시이기 때문에 생기는 감성들은 있는 것 같다. 초반에는 영감보다 고생스럽기만 했다. 제3자 입장에서 (파리를) 관찰하게 된 시기는 3~4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파리라는 곳을 느끼고 생각하는 것도 처음엔 그러지 못했다. 부딪히는 것도 많고 힘들어서. (웃음)”

“파리로 왜 떠났나. 영화음악을 처음 했던 <마리아와 여인숙>이 어떤 계기가 됐다던데.”

<마리아 여인숙> 때문에 간 것은 아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잘하는 부분도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웃음) <마리아와 여인숙>을 한 것도 클래식을 전공하고, 영화음악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구나 했다. 막상 하고 보니 음악을 위한 음악이지, 영화를 위한 음악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테크닉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그 때문에 간 것도 있지만, 나에 대한 갈증이라고 할까. 스물아홉이 될 때 남자들이 느끼곤 하는 것. 어디에 소속이 된다든가,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아야 했는데 그때 당시 불안했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느끼는 고립감 같은 게 있었다. 시스템 안에서 시스템을 새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음악 외에 다른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공부를 더 하자고 결심해 파리로 갔다.”

“한국에서 더 외롭다는 얘기는 뭔가?”

“파리는 일상이 됐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약속도 많지 않다. 시간에 대한 고민이 많다. ‘어떻게 활용할까’ 하고. 그래서인지 가사들도 소소해진 느낌이 있고. 한국에서는 만날 사람도 만나야 하고, 앨범 프로모션도 해야 하고, 부산하다. 신경 쓸 것도 많고.”

“파리에서는 카페도 많이 갔겠다. 부럽다.”

“이번에 책이 나오는데, 카페 얘기도 있다. 카페는 일상이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돌아다니다 카페에 앉아서 그냥 논다. 사람 구경도 하고.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도 가봤냐고 묻자) 그곳은 영어헌책방인데 영화에도 자주 나오고, 거기 말고 내가 가는 곳은 다른 곳이 따로 있다.”

“앨범 작업에 커피의 힘도 도움이 됐나.”

“커피 좋아한다. 집에 있으면 아침나절에 아주 진하게 머그컵에 2잔을 마신다. 하루에 2~3잔 정도 마신다. ‘꺄뜨누아’라는 프랑스 브랜드의 커피를 좋아한다. 향이 좋아서. 영감을 주기보다는 정신을 깨워준다. 몸이 나른하거나, 정신을 깨워야 할 때 아주 좋다. 파리는 어두운 날이 많고 한국보다 기압이 낮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마실 때도 있다. 기분이 다운될 때도 좋고 향을 맡으면 정신이 빨리 돌아온다.”

“수석졸업까지 했던데, 파리는 치열한 예술의 경합장이 아닌가.”

“파리는 로망이 있는 도시다. 음악, 미술, 사진 등 유럽 쪽에서 문화의 꽃을 피웠던 도시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조합도 잘 돼있고. 그래서 전 세계에서 오고, 잘난 친구들이 많다. 생각이 다르고 그러니까 자극이 많이 된다. 친구들 자체가 자극이 될 때도 있고, 지내면서 자극이 되기도 한다. 아이디어적인 부분에서도 그렇고.”

“예전에 고종석씨가 파리는 걷기 좋은 도시라고 했다. 살아보니 진짜 그렇던가.”

“걷기 좋은 도시는 확실히 맞는 것 같다. 파리가 가진 문화가 잘 드러나 있고. ‘걷기가 좋다’는 것도 걸으면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 아닐까. 한국은 사실 걷기에 애로가 많지 않나. 파리는 대로가 적고 골목길이나 작은 길이 많다. 파리에 살면서 필요에 의해 산책을 많이 했다. 안 그러면 바깥에 나갈 일이 없으니까.”

“반면, 장 뤽 고다르 감독은 파리를 ‘미국과 달리 자기만의 독자적인 기억을 갖고 있긴 하지만 때로는 너무 많은 기억에 짓눌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곳은 유령의 도시, 과거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불길한 도시이다. 예술의 가치가 쇠퇴하고 있는….’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책에 그런 부분도 있다. 파리의 우울함 같은 것. 옛것에 대한 그들의, 뭐랄까, 집착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그런 부분. 예스러워서 멋있고 독특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어두운 색깔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불편하고. 그래도 재밌는 건, 파리지앵들은 잘 받아들이는 것 같더라. 익숙한 것이라서.”

“파리를 사랑하나. <사랑해, 파리> 혹시 봤나.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내가 나고 자란 서울도 사랑하지만, 청춘의 많은 부분을 보낸, 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파리 역시 사랑한다. <사랑해 파리>의 마지막 에피소드였나. 미국인 우체부 아줌마가 파리에 여행 와서 벤치에 앉아 눈물 흘리는 장면 있는데, 그 에피소드가 굉장히 기억에 많이 남았다. 또 파리의 우울한 모습 중의 하나를 보여준 에피소드도 있다. 줄리엣 비노쉬가 나온 에피소드인데,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도 기억에 남는다.”


For Jacqueline, 외로운 너와 나에게 건넨다

“이번 앨범 제목 ‘For Jacqueline’이나 앨범에 있는 ‘쟈클린’은 특정인을 지칭한 것인가?”

“재클린 오나시스냐는 등 주변에서도 얘기가 많은데(웃음), 특정인을 지칭한 것은 아니다. 그 이름이 듣는 사람에 따라 큰 의미가 될 수도 있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다. ‘쟈클린’은 일종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얘기다. 외로운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그렇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그것이 내가 될 수도 있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것이 될 수도 있는 거지. (‘지붕 위의 고양이’에 나온 장 마리 부부는 아는 사람이냐고 묻자) 아는 사람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여러 가지 파리에서의 일상을 담은 의미라고 보면 된다.”

“팬들이 블로그 등을 통해 열광하더라.”

“반겨줘서 기분이 좋다. (솔로앨범 2집 이후) 6년 동안 30대로서 가지는 고민을 담았다. 어떻게 보면 20대 때 할 고민을 30대 때 많이 한 것 같다. 이번 앨범을 내면서도 주저하고 망설였던 부분도 있었다. 기다려주신 분들이 있었던 만큼 결과물이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 앨범은 개인과 개인의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염려한 부분도 있지만, 기다리고 반겨주시니 고맙다.”

“팬들 반응은 많이 찾아봤나.”

“요즘 리서치할 시간이 많지 않아 자주 보진 못했지만, 반응을 본다. 비평에도 관심이 많다. 아직은 반가운 소리가 많아서 조금 안심하고 있다. 사실 ‘양치기 소년’ 같은 기분이 있었다. 2004~2005년부터인가, 계속 솔로 앨범을 내겠다고 했는데, 말에 책임을 지지 못해서 걱정이 많았다. 어떤 앨범을 만들어야할지도 고민이 많았고. 이번에 솎아낸 곡은 2곡 정도다. 작업까지는 안 갔고. 어떻게 보면 컨셉트가 명확했기 때문에 곡 때문에 흐트러지지 않았다. (컨셉트에) 맞춰놓고 (곡을) 썼다.”

“이전의 과잉감성을 것을 덜어내고 싶었다면서? 그래도 정재형이 지닌 아우라는 여전히 녹아있더라.”

“아무리 쳐낸다고 해도, ‘정재형’이라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지 않겠나. 방법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지언정, 전체적으로는 정재형이라는 감성이 그대로 있는 것 같다. (감성 면에서는) 관통하는 느낌이 아닐까한다.”

“이번 앨범, 다국적 산물이다. 작업하면서 어땠나. 음악적 욕심이 많아 자기검열도 꽤 했을 것 같은데.”

“작업 전에는 걱정을 했다. 청자들이 느끼기에 이질감이나 생경함이 있을까봐. 그런데 첫 곡 작업을 하자,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소통할 수 있다면 국적은 중요치 않더라. 음악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있어도 결과물에 대해서는 만족한다. 곡은 한 달 정도 파리에서 작업하고, 한국에서 보컬 녹음하고, 일본에서 믹서 마스터링 했다. 솔로앨범을 만들거나 영화음악을 작업하거나, 제일 힘든 것은 음악에 대한 책임감이다. 굉장히 고민이 많긴 했다. 음악을 하는 것은 늘 괴롭고 힘들다. 아이러니한 게, 자신감이 있으면서도 자괴감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존재다.(웃음)”

“술이 도움이 되진 않았나. 주변에 애주가들이 많다면서?”

“(술은) 전혀 도움 안 된다. 후벼 파면 후벼 파지. (웃음) 위로를 해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옆에 많다. 애주가를 못 찾아 술을 못 마시는 것은 아니고.”

“좀 생경한 노래가 있었는데. ‘1988’은 어떻게 나온 노래인가.”

“1988년을 즈음해 학교를 다녔는데, 시대의 부조리나 시대를 걱정하던 때였지 않나. 정의를 생각하고 데모했던 친구들을 떠올렸다. 노래운동을 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 친구들에 대해 일종의 자책감이나 미안함도 있었다. 그 친구들은 지금 뭐하나. 그런 얘기를 해주면서 박창학 씨에게 작사를 부탁했다. 친형도 당시 ‘운동권’이었다. 형이 삭발하고 단식투쟁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청춘의 단상, 날라리 동생이 형을 지켜봤던 그런 감정들….”

“음악을 듣는 방식도 데뷔했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바뀌었다. MP3 등 매체변화가 크다. 이승환씨는 더 이상 CD를 내지 않겠다고도 했고. 음악 만드는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나.”

“MP3는 더 많이 보급하도록 만들어진 매체 아닌가. 매체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방법의 변화에 민감해 하진 않는다. 지금은 예전처럼 앨범 하나를 통찰하는 시대는 아닌 거 같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고민은 있다. 방식에 대한. 음악 산업을 봤을 때, 산업구조나 메커니즘이 체계화되지 않은 것은 문제다. 아티스트들에게 정당한 수익배분 구조를 만드는 것이나, 뮤지션의 권리에 관해 (음악을) 사는 사람의 인식도 중요하다. 음악 산업 내 종사하는 사람의 공동노력과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어떤 뮤지션으로 남고 싶나.”

“글쎄, 어느 순간에 안정적이어야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면 그래야겠지만, 지금은 안정적인 것보다는, 여행하듯, 음악을 위해 안주하고 싶지는 않다. 음악 하면서 멋진 뮤지션으로서 늙는 것이 바람이랄까. 그렇다고 절대적인 사명의식을 갖고 음악을 하진 않는다. 너무 작가주의 같다거나 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다.”


영화음악, 때로는 나의 힘

“만나기 전날, TV에서 <Mr. 로빈 꼬시기>가 하던데, 괜히 반갑더라.”

“그 영화 덕분에 공부를 많이 한 느낌은 있다. 이전에 무거운 영화들을 주로 해서 밝아지자고 해서 고른 영화다. 좋은 기회가 될 거란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해보니 뜻한 만큼 밝은 느낌이 안 나오고 예전처럼 톤 다운된 느낌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선 시행착오가 있었달까. 그러면서 나와 내 곡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내가 아무리 밝게 써도 잘 안 되는 면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어떤 식으로 맞춰야 하는가 하는 고민도 있었다.”

“영화감독 중에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을 좋아한다던데, 좋아하는 영화음악감독 누가 있나.”

<빨간 풍선>은 아직 못 봤는데,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음악 감독 중에는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인 <그녀에게> <나쁜 교육>에서 영화음악을 맡은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나 존 브라이언(<펀치 드렁크 러브> <이터널 선샤인>)도 좋아한다. 이번 앨범 작업하면서 영화를 잘 못 봐서, 이제 좀 보려가려고. 최근에 본 영화는, 루마니아 영화인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영화음악을 하는 이유가 대중음악보다 클래식에 가까운 연주형태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솔로앨범 등과는 다르게 작업하겠다. 우문이지만, 어느 게 더 좋나.”

“영화음악은 클래식은 아니지만, 클래식에 가까운 음악들을 할 수 있어서 좋다. 한식과 양식 만들 때 레시피가 다르듯, 각각 작업방식도 다르고, 마음가짐, 스타일 등이 다 다르다. 영화음악이나 앨범, 클래식 다 재미있다. 사실 솔로앨범 좋다고 하면 영화음악 안 들어올 것 아니냐.(웃음) 솔로앨범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로앨범 작업할 때면, 막다른 길이나 끝까지 몰아넣는 기분도 있다. 영화음악처럼 1년마다 할 수는 없지만, 솔로앨범을 통해 깨닫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계속 병행할 예정이다. 클래식도 계속 할 거고. 영화 시나리오도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클래식-영화음악-팝 등 음악 사이에 균형을 맞추기가 힘들진 않나.”

“사실 균형이 중요하다. 음악성을 갖춘 만큼 내가 하는 음악에 대한 생각도 중요하고. 내가 생각하는 뮤지션으로서의 대중성과의 조화도. 예전에는 (앨범 작업을 할 때) 벼락치기 스타일이었다. 발동을 거는 데 시간이 걸린 적 있었는데, 차츰 바꿨다. 그래서 이번에는 준비를 더 많이 했다. 특히 대중음악이니까. 예전 같으면 클래식하고 아방가르드한 느낌도 많이 썼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음악도 많이 했고, 클래식은 따로 풀고 있기 때문에, 이번엔 팝을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실험적인 부분들을 가져왔다.”


글쓰기, 또 다른 소통

“이번 앨범에도 기억이나 슬픔이 여전히 담겨있다. 우울함까지.”

“앨범에 전 곡을 작사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가사를 통해) 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결국 이미지에 대한 얘기 같다. 그것들을 옮겼고. 음악 만들 때, 소설처럼 이미지를 상상하게 만들고자 했다. 이번 앨범을 하기 위해 몇 년 전에 《마담 피가로》 기고를 시작했다. 한 6~7개월 했다. 소소한 일상을 담아, 나에 대한 얘기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하는 고민을 계속 했다.”

“책을 쓴 것도 그런 차원인가.”

“책은, 뭐랄까, 불편하고 힘든 부분이 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데, 머뭇거리는 부분도 있었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부분을 음악 말고 글로 어떻게 풀어야할지 궁금했다. 또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겁도 많이 나고 기대도 많이 된다.”

“어떤 내용인가. 설마 예찬만 하진 않겠지.”

“욕도 많이 쓰고, 파리의 부조리한 부분도 담았다. 거지 같은.(웃음) 어떤 외국인이 서울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 친구가 한국 사회에 대한 부조리를 자연스럽게 풀듯이. 내가 본 파리에 대한 기억을 푼 것이지. 예찬이나 비평을 하기에 섣부른 부분이 있어서,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사진도 그림도 있을 테고, 예술적인 감각들이 묻어나겠다.”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긴 하지만,(웃음) 예술적인 감각이라기보다는 한 과정이랄까? 사실 옛날 분들 보면 글과 그림에 능통한 분들이 많지 않나. 음악을 음악으로서만 하는 건 오산이라고 본다. 파리에 있는 친구들만 봐도 패션, 미술,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집단이 만들어지고 문화를 이끄는 경우가 많다. 이전에도 그래왔고. 예전에는 음악을 음악으로서만 배우고 구현하고자 했는데, 그렇게 하면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결국 다른 것을 통해 배우고 새로운 시선이나 아이디어를 구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뮤지션이라서 음악으로만 얘기하는 게 아니고 여러 다른 것을 시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럼 책은 계속 낼 거냐는 질문에) 이번에 반응 좋으면 또 책을 낼 수도 있겠지.(웃음)”

“소통의 방법을 다양화하는 셈이 되겠다. 글쓰기를 해보니 어떤 게 좋던가.”

“글을 예전부터 쓰고 싶었다. 물론 글도 힘들지만, 소통의 방법을 발전시켜 본 거다. 《마담 피가로》에 기고한 것도 들어가지만, 새로 쓴 것이 대다수다. 글을 쓰면서 나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감성에 의해 기억하는 것과 조금 다르더라. 글로 써보니 기억이 구체화되고 일상의 기록이 보였다. 글쓰기 덕분에 가사도 또 다른 시선과 느낌을 만들어줬고. 이번 앨범은 글쓰기를 통해서도 내용이 예전과 다르게 구체화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도움이 됐다는 얘기지. 새로운 도전이 될 수도 있었지만, 가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노래를 만들듯이 글도 썼다. 이번 앨범이 대부분 ‘낮 프로젝트’였다. 한 10시 반에서 11시에 일어나 카페에 가서 3시까지 글쓰기를 하고 3시부터 11시까지 앨범 작업을 했다. 하루하루 글과 음악작업을 같이 했기 때문에 연관성이 많다. (시너지 효과가 나겠다고 했더니) 나야 할 텐데.(웃음)”

“어떤 책을 좋아하나. 좋아하는 작가는?”

“고전을 좋아한다. 앙드레 지드나 기욤 아폴리네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좋아한다. 그리고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쓴 뮈리엘 바르베리도. 박완서의 『호미』에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이름 없는 풀들과 공감하는 그런 부분.”

정재형의 이번 앨범은 그래도 좀 더 마음의 결 혹은 일상의 결이 묻어난다고 할까. 아침에 빵 사러가고, 분주한 북역까지 러닝을 하고, 파리의 카페 소음을 참고, 일요일 오후의 풍경도 있다. 바쁘게 흘러가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외로운, 슬프고 외롭게 살아가는 ‘Jacqueline’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 혹은 자신을 향한 위무. 뺐다곤 하지만 정재형은 한편으로 여전하다. 1995년 베이시스로 데뷔, 햇수로 14년째. 그때와 같으면서도 다른 음악들. 그의 초상을 단 한 컷으로 묘사할 수 없는 이유다. 냉정과 열정을 오간 정재형의 어떤 모험기이면서도, 외로운 자신과 당신에게 보내는 어떤 속삭임. ‘돌아왔다’는 표현도 좋지만, 그저 온몸으로 그들을 받아들이고 맞이하는 건 어떨까. 정녕 반갑다면, 버선발로 뛰어나가는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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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정재형의 Paris Talk

<정재형> 편/<정재형> 외 사진13,5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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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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