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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남자를 봤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여인의 고읍지

이번 사건은 고읍지가 살해된 사건이 아니라, 왕의 아들이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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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살인보다 왕명을 거역한 것이 더욱 큰 죄라는 논의가 주종을 이루었다.

1478년(성종 9) 1월 돈의문敦義門 밖 골짜기에서 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됐다. 살을 에는 추위에 밤새 얼어붙은 젊은 여자가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드러난 팔과 다리에 칼이 난자되어 지네가 지나간 것처럼 피부가 갈라져 있었고, 주위로는 독이 올라 퍼렇게 부어 있었다. 목에는 누군가 손으로 조른 자국이 선명했다. 눈은 감겨 있었지만 혀가 반쯤 뽑혀 나오다가 입 안을 가득 채운 모습이 끔찍했다. 숨이 막혀 괴로워하던 얼굴 표정도 그대로 응고되어 있었다. 여인은 누구이며 왜 이렇게 잔인하게 살해되었을까?

돈화문(1986)

이날 아침 성종이 상참常參(조선시대 대신들이 매일 편전에서 임금을 뵙고 정사를 보고하던 일. 이때에는 흑의黑衣를 입도록 규정돼 있었다.)을 받고 있는데 도승지 신준申浚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는 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들었다. 거기엔 휘날린 글씨로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그가 어제 집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신이 어제 저녁에 집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니 집사람이 작은 편지를 내보이며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최첨지崔僉知의 편지라면서 전했다’ 하였습니다. 신이 처음에 까닭을 몰라서 봉한 것을 열어보니, 가운데에 두 통의 편지가 있는데 한 통은 역시 봉하고 위에 쓰기를, ‘상전개탁上前開坼’이라 하였고, 한 통은 봉하지 않고 쓰기를 ‘빨리 상달上達하라’ 하였습니다. 신이 비로소 익명서匿名書인 것을 깨닫고 다시 보니, 겉에 다만 무명無名이란 두 글자만 씌어 있었습니다. 대저 익명서는 사실로 믿을 것이 아니지만 버릴 수 없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왕이 편지를 개봉하라고 명했다. 승지 김승경金升卿이 이를 살펴보았는데 고급 시전지로 보이는 종이에 “여자의 시체는 거평군居平君 부인이 질투하여 한 짓이니 가외加外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글씨가 급했고 매우 조잡했다. 거평군이라면 정종의 손자로 남이南怡의 난을 진압해 세조의 총애를 받은 공신이 아닌가. 투서는 거평군이 잔혹한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김승경은 순간 이것이 모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투서는 뭔가 의심스러운 비밀을 담고 있었다. 가외라는 자가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듯했다. 김승경이 곧 삼사三司의 당상 어세공漁世恭?윤계겸尹繼謙과 의논하고 낭청郞廳(조선시대 국내외의 기밀을 맡아보던 비변사의 종6품 관직으로 정원은 12명.)을 보내 가외를 잡아다가 여자 시체의 신원을 물었다. 아직 시체를 보여주기 전이었다.

“저의 팔촌 동생인 고읍지古邑之가 노래를 좀 하는데, 창원군昌原君의 구사丘史(임금이 종친 및 공신에게 데리고 다니라고 나눠주던 관노비.)로 그 집에서 심부름하였습니다. 얼마 전 창원군이 고읍지를 간통하고자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 여자의 시체가 그 아이일 듯합니다.”

이어서 가외가 고읍지의 용모와 복색을 말하는데, 여자의 시체와 일치했다. 가외에게 직접 가서 보게 하니 팔촌 동생이 맞다고 죽을상이 되어서 말했다. 그가 관리들을 붙잡고 하소연했다. “창원군이 고읍지를 간통하고 죽인 게 분명합니다. 착한 아이가 주인을 잘못 만나 저리 처참한 꼴이 되었으니 저세상에서 그 부모를 뵐 낯이 없습니다.” 가외는 무서운 줄 모르고 울부짖었다.

창원군 이성은 세조가 늘그막에 후궁 박씨로부터 얻은 왕자로 10세에 창원군에 봉해진 후 성격이 방탕하고 예법을 따르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는 목사牧使 노호신盧好愼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나 아들을 낳지 못해 다시 판관 한찬우韓禹의 딸과 결혼했는데 역시 아들을 낳지 못했다. 이성은 더욱 포악해졌다. 여자들과 음란한 짓을 하는 것을 타박한다고 장인을 하인처럼 멸시하고 길거리에서 재상을 욕보이는 패악질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정희왕후貞熹王后(세조의 비(1418~1483)로 성은 윤尹이다.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왕비에 책봉됐고, 1468년 예종이 14세로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했다. 이듬해 예종이 죽고 성종이 즉위하자 7년간 계속 섭정했다.)가 자주 꾸짖었지만 전혀 뉘우치지 않았다.

다음날 고읍지의 시체가 발견된 주위 인가를 대대적으로 수색했다. 수색 범위 안에는 이성의 집도 ?었다. 포졸들이 행랑을 수색하려 하자 이성이 인상을 쓰며 막아섰다. “너희가 어찌 내 집을 수색하느냐? 내 집은 통기統紀(통호統戶의 번호) 속에 들어 있지 않으니 물러가라”면서 수색을 거부했다. 의금부에서 성종에게 이 사실을 전하니 성종은 여자를 죽인 자는 기어코 잡아야 하기 때문에 집주인의 귀천을 따지지 말고 모두 수색하라고 명했다. 이성은 왕명을 보고도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그는 강제로 의금부에 끌려와 국문을 당했다.

1월 24일 성종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우부승지 김승경이 와서 아뢴 말 때문이었다.

당시 발견된 고읍지의 시체는 높은 곳에서 던져져 몸이 으스러져 있었다. 그런데 주변을 살핀 결과 창원군 이성의 집 동쪽 편에 붙은 산이 성에 이르러 끝나고 시체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웠다. 이성의 집 뜰을 죄다 살폈으나 조금도 핏자국이 없었다. 이에 곧장 성 위를 돌다가 끊어진 머리털 약간과 끊어진 노끈 한 자쯤을 찾았는데 모두 핏자국 투성이었다. 성 위에서 찾은 머리털을 시체의 머리털과 대어보니 길이와 굵기가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의금부에서는 이성에 대한 의혹이 짙어지자 좀더 신중을 기하고자 했다. 가외 혼자의 신원 확인만으로는 혹시 실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의문 밖에 버려진 시체가 정말 고읍지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부모?족친과 서로 아는 사람을 찾았으나 실패했다. “친척과 이웃 중에 아는 사람이 없겠는가? 고하는 사람이 있으면 면포綿布 200필을 주겠다”고 현상금도 걸었다.

그러나 가외 이외의 진술은 확보하지 못했다. 한편으로 수사는 점점 이성에게 집중되었다. 그의 종 동량同良을 잡아 족치는 과정에서 속옷에 묻은 핏자국이 발견됐다. 관원이 보고 이유를 물으니 동량은 주인에게 월형○刑(발꿈치를 베는 형벌) 당할 때 묻은 것이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금방 들통날 거짓말이었다. 다른 종은 그가 월형을 당한 시기는 이미 4~5년이 지났다고 고했다. 핏자국은 바로 며칠 전에 묻은 것이었다.

한번 입이 열리자 결정적 사실을 향해 여러 증거들이 모아졌다. 창원군의 종 원만元萬?석산石山, 여종 성금性今?도질금都叱今?무심無心 등이 모두 “우리 주인이 고읍지를 죽인 게 틀림없습니다”라고 실토했다. 이어 처음에는 아니라고 했던 종 동량?산이山伊, 여종 부합扶合 등도 이성이 고읍지를 죽였다고 실토했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의외의 인물이 등장했다. 종 원만이 “사실 읍지를 죽인 것은 홍옥형洪玉亨입니다. 저희는 억울합니다”라고 했던 것이다. 죽이기는 이성이 죽였으되 그 원인 제공자가 홍옥형이란 이야기였다. 관리들은 뜨악해서 그가 누구냐고 물었다.

홍옥형은 다른 집의 여종 옥금玉今을 꾀어내 간통하고 창원군 집에 넘긴 인물이다. 홍옥형은 옥금을 핑계로 창원군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는 옥금의 기둥서방처럼 굴었다. 그런데 홍옥형은 올 때마다 옥금과 친한 고읍지에게 말을 붙이고 음흉하게 쳐다보길 여러 번이었다. 고읍지는 이 눈길이 싫었다. ‘옥금이 있는데 왜 날 쳐다보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홍옥형이 꿈에 나왔다. 읍지가 대문을 나오기를 기다려 그가 손을 낚아채는 꿈이었다. 놀라서 깬 그녀는 팔목을 한참 어루만졌다. 꿈에서의 섬짓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다음날 그녀는 옥금에게 조심스레 얘기했다. “꿈에 홍옥형을 보았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읍지는 홍옥형의 인상이 좋지 않으니 너도 그것을 알고 처신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당시 계집종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하는 불량배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창원군은 종친이라 가솔들의 노동력을 제법 후하게 계산해주고 있었다. 읍지는 자신의 친구가 이용당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옥금은 이 말을 오해했다. 사실 그녀는 얼마 전 홍옥형이 읍지와 대화하는 모습을 몰래 지켜본 적이 있었다. 옥형이 묻는 말에 자분자분 대답하는 읍지의 모습이 미웠다. 둘 사이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읍지의 옆얼굴이 너무 예쁜 듯 여겨졌다. 옥금은 질투심과 함께 증오심이 몰려왔다. 창원군의 심복 원만을 불러 이 사실을 왜곡해서 전했다. 읍지가 꿈에 홍씨를 볼 정도로 사이가 깊어졌으니 걱정이라고 말이다.

드디어 읍지의 ‘꿈 사건’이 전면화되었다. 이 말이 창원군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원만 앞에서 그는 쌍욕을 해댔다. “이년이 내가 이미 언질을 주었거늘 다른 놈을 속에 품어?” 속으로 고읍지에게 흑심을 품고 있던 그는 자존심이 짓밟힌 듯이 얼굴을 붉혔다. 노비들을 시켜 읍지를 붙들어 왔다.

“네가 꿈에 옥형을 봤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조선 시대 태형 장면
서슬 퍼런 창원군의 질문에 고읍지는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꿈에서 손을 잡혔다고 말했다간 바로 죽을 것만 같았다. 창원군은 읍지를 익랑翼廊(대문의 좌우 양편에 이어서 지은 행랑) 처마에 달아맸다. 치마와 저고리를 벗겼다. 거칠게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묶음머리가 터져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사방으로 흔들렸다. 앞에 버티고 선 이성의 코에 처녀의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환도環刀를 쥔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성욕은 그를 더욱 잔인한 사람으로 몰아갔다. 종들이 보는 앞에서 칼끝을 배 언저리에 대고 그었다. 읍지가 비명을 지르자 석산이 달려들어 헝겊으로 틀어막았다. 이성은 읍지의 새하얀 팔과 다리에 칼날을 대고 문질렀다. 계집종들이 고개를 돌렸다. 피부가 터져서 피가 줄줄 새나왔다. 창원군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얼마 후 그는 잘 처리하라는 말을 남기고 칼을 원만에게 내주었다. 원만은 차마 읍지를 벨 수 없었다. 그는 읍지의 입을 막고 필사적으로 목을 졸랐다. 빨리 죽여 고통을 끝내주고 싶었다. 그의 완악한 어깨에서 종살이의 처참함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렇게 읍지는 저세상으로 사라졌다. 방년 18세를 며칠 앞둔 늦은 밤이었다.

동부승지 이경동李瓊仝이 성종에게 보고했다. 창원군의 종 원만?석산?산이가 모두 승복했으니 창원군의 죄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월산대군月山大君?밀성군密城君?영의정 및 삼사의 당상이 함께 죄인들을 심문하기를 청했다.

성종은 종들이 일제히 입을 모아 창원군을 죄인으로 지목해 상세하게 사건의 내역을 고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성종의 얼굴은 곤혹스러워졌다. 잘못하다간 창원군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는 세조의 아들이라 성종에게는 웃어른이었다. 그를 법대로 죽였다간 정치적 부담이 생길 수 있었다. 웃어른을 죽인다는 사실 자체가 강상법을 강조해온 자신의 행보에 짐으로 작용할 것이었다. 성종은 뻔뻔하게 나가자고 생각했다.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사건에 관련된 사람이 모두 승복했다. 다시 창원군에게 물어서 만일 사실대로 말하지 않거든 증거에 의거해서 죄를 정해야 할 것이다. 이 뜻을 대군들에게 물으라.”

이게 무슨 소리인가. 물증을 찾아오라는 말이었다. 이미 여러 명의 종들이 일제히 자백했고 정황이 옥수수 이빨처럼 가지런하게 맞았는데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한가. 하지만 왕은 창원군이 아직 승복하지 않았고, 증거도 없다는 이유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재조사를 지시했다. 대군들은 여러 증거가 이미 명백하니 창원군이 비록 승복하지 않아도 죄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우선 창원군이 쓴 칼을 찾아야 했다. 성종은 “종부시宗簿寺로 하여금 추국해 아뢰게 하라” 하고는 제조提調(중앙의 각 사 또는 청의 우두머리가 아니면서 각 관아의 일을 다스리던 직책)를 시켜 이성을 국문하도록 했다. 성종은 내관內官 조진曹疹과 주서注書(조선전기에 문하부에 속한 정7품 벼슬) 양순경梁舜卿을 창원군의 집에 보내 칼을 찾았다. 하지만 살인에 사용됐다는 환도는 이미 사라져서 없었고, 철갑상어 껍질로 칼집을 만든 고급스러운 삼인검三寅劒 두 자루가 나왔을 뿐이다. 내관들은 돌아와 왕에게 아뢰었다.

“창원군이 말하기를 고읍지는 자신이 모르는 여자이며, 전에도 여인을 살해한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의 집안에는 삼인검과 삼진검三辰劒이 각각 한 자루씩 있을 뿐이고 환도는 없었습니다.”

창원군 이성이 고읍지를 모른다고? 왕조차 이 말에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기가 부리던 종을 안면부지의 사람이라고 잡아뗀 것이었다.

이에 삼사의 당상 어세공과 윤계겸이 창원군에게 고읍지를 구사로 들일 때의 입안立案을 보자고 요구했으나 창원군은 없다고 잡아뗐다. 구사는 정부에서 종친이나 공신들에게 나눠줬던 노비이므로, 입안 문서가 보관되어 있어야 정상이다. 창원군이 읍지를 모른다고 한 것은 이 서류를 고의로 폐기시켰다는 걸 의미했다. 즉 서류를 잃어버린 죄는 물을 수 있지만, 살인에 대한 죄는 이로써 피해갈 수 있다고 창원군은 생각했다. 삼사에서 왕에게 강제 수색 영장을 발부해달라고 요구했다. 환관 조진曹疹과 한림翰林 최진崔璡이 창원군의 집에 들이닥쳤다. 그러나 창원군은 그들에게 “이? 입안을 보냈다”고 말을 바꾸면서 집 안에 들이지 않고 버텼다.

앞서 이성의 노비들은 고읍지를 죽인 칼의 모양과 장식이 모두 이성의 것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의금부에서는 이성의 집을 수색해서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이성은 종 원만이 칼의 모양을 거짓으로 말했고, 다른 노비들도 거짓으로 승복했다고 울면서 아뢰었다. 이성은 “고읍지를 본 적도 없는데 어찌 죽일 수 있겠습니까? 원만에게 사정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라며 책임을 돌렸다.

이에 성종은 사건의 관계자를 다시 심문하도록 했다. 물론 이성도 다시 조사해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하고, 증거를 충분히 갖춘 후 의금부 등에서 재론할 것을 명했다.

성종의 재조사 명령에 승지들은 모두 반대했다. 이성은 삼사의 낭청이 집을 수색할 때 명을 거역하고 들이지 아니했으니, 사람을 죽인 죄는 작으나 명을 거역한 죄는 크니 다시 물을 필요가 없다고 아뢰었다. 성종은 “경들은 나의 뜻을 알지 못한다. 내가 면대해서 말하겠다”라고 입을 막았다. 성종은 곤혹스러웠다. 그해 2월 17일 승정원에 물었다.

“내가 창원군이 살인한 것을 무조건 의심한다는 것도 아니고, 또 죄를 주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의 웃어른이기 때문에 고읍지의 출처를 친히 물은 후 처리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승지들은 이성에게 다시 한번 입장을 설명하는 기회를 줘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다. 이때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 이정李의 입에서 그간 이성의 당당한 태도를 설명해주는 결정적인 말이 나왔다.

“고읍지의 출처는 박귀남朴貴南이 알았으나 창원군은 굳게 숨기고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박귀남이 죽었으니 다시 알아볼 곳이 없습니다.”

박귀남이 원래 고읍지의 주인이었던 모양이다. 갑사甲士(오위 가운데 중위中衛인 의홍위에 속한 군사. 부유한 양반 자제들 가운데에서 용모가 준수하고 무예에 뛰어난 사람들을 선발해 서울과 중부 지방의 수비를 맡겼다.)였던 그는 상소를 올린다며 의장儀仗에 충돌한 죄로 참형을 선고받았다가 겨우 살아나 근신하던 중 최근 돌연 죽었다. 그는 왜 죽었을까. 한창 나이에 그것도 왜 하필 최근에 죽었을까. 하지만 이 부분을 문제삼는 이는 없었다. 말을 꺼낸 이정 또한 창원군이 이 사실을 알고 버틸 것이니 물어봐야 소용없다는 얘기였다.

밀성군 이침李琛도 이성의 죄가 종묘와 사직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니, 왕이 친히 묻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보았다. 윤필상?홍응洪應?정효상鄭孝常도 “전일에 종부시에 내려 국문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친히 물으신 것입니다” 하면서 임금이 세세한 데까지 친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했다. 성종은 답을 피했다.

며칠 후 성종은 결국 고집대로 실행했다. 후원에 나아가 직접 창원군의 사건에 관계된 노비를 심문했다. 전일에 추국을 감독했던 월산대군 이정 이하 당상관이 이 자리에 전부 입시入侍했다. 감옥의 죄수들이 차례로 들어와 성종 앞에 섰다. 성종이 “작은 일이라면 내가 어찌 친히 묻겠는가? 오늘 너희는 실정을 말해야 한다” 하고 승지 김승경으로 하여금 반복해서 심문하게 했다. 결과는 전과 동일했다. 새롭게 밝혀진 사실 또한 없었다.

사건 조사는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더이상 결정을 미루기 힘들었다. 성종은 신하들에게 나지막한 음성으로 물었다. “왕자를 담당 관아로 하여금 죄를 주게 하는 사례가 없다. 내가 직접 판단하고자 하는데 어떤가?” 이에 정인지鄭麟趾와 윤사흔尹士昕이 “법대로 보자면 창원군은 사람을 죽인 죄로 교형?참형에 해당하나 이 경우에는 법률에 의해 처리하는 것은 면제하고 정부와 육조에서 함께 의논해 죄를 결정해주십시오” 하고 화답했다. 드디어 성종이 결론을 냈다.

“이성이 고읍지를 살해한 죄는 크다. 가장 중한 죄는 삼사가 전교를 받들고 수색하는 것을 거역한 것이다. 다만 물증이 없어 법대로 처벌하기가 곤란하다. 외지에 보내도록 하되 출입을 금지한다면 안치安置와 같으니 이를 고려하라.”

지방에 잠깐 보내 근신시키되 출입을 완전히 막지는 말라는 얘기였다. 승지 등이 모두 아뢰기를 “이성의 성생활이 광망해 만약 금하지 않으면 스스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소재지의 수령 또한 금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출입을 금지시켜주십시오”라고 요구했다.

사람을 잔인하게 죽였지만, 창원군은 물증을 은폐하고 자복하지 않고 버팀으로써 죄를 면했다. 그는 자신이 왕자 신분이라 고문당하지 않을 것을 알고 수사관들이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에 전력을 기울여 자신을 방어했다.

한편 종 원만이 주인이 시키는 대로 고읍지를 죽인 것, 종 석산이 새끼로 고읍지를 매달은 것에 대해 각각 장 90대와 도 2년이 선고됐다. 종 동량?산이 등도 고읍지의 시체를 성 밖에 던진 죄로 각각 장 60대, 도 1년에 처해졌다. 또한 이들은 고읍지가 피살된 것을 알면서도 고하지 않은 죄가 더해져 도합 장 100대를 때린 뒤에 변방의 종으로 보내졌다. 천금과 계집종 부합?성금?도질금?잉질덕?무심은 잔읍의 노비로 보내고 비부婢夫 석근石根은 천민으로 격하되었다.

조정은 한 살인자를 둘러싸고 허수아비 춤을 춘 꼴이었다. 그들이 고읍지의 죽음을 통해 핵심적으로 파악하고 논해야 했던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인간이 이토록 잔인하고 뻔뻔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 답변이 아니었을까. 이성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행위를 재논리화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밟게 했어야 했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고읍지의 시체가 발견된 날 아침 도승지 신준에게 전달된 익명의 투서를 누가 작성한 것인지도 밝혀내지 않았다. 전혀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 편지는 대개 범인에 의해 씌어지는 것인데도 말이다.

이번 사건은 고읍지가 살해된 사건이 아니라, 왕의 아들이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었다.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살인보다 왕명을 거역한 것이 더욱 큰 죄라는 논의가 주종을 이루었다. 조선의 법은 모든 곳에 정확히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한 법의 적용을 받은 이들은 창원군 이성의 종들이었다. 이성은 27세에 요절한다. 고읍지 사건이 있은 지 6년 만이었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조선이 버린 여인들>은 ‘글항아리’과 제휴하여 매주 수요일 총 10편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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