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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은 붓두껍에 목화씨를 몰래 감춰 왔다?

우리가 문익점에게서 높이 살 점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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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잊지 않고 목화씨를 주머니에 넣어 온 마음, 칭송의 대상은 그것이지 그의 정치적 행보가 아니다.

문익점은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중국의 강남 지방에서 3년 동안 귀양살이를 한 뒤, 귀국길에 목화씨를 몰래 붓두껍에 넣어 가지고 왔다 한다. 목화씨는 국외반출이 금지되어 있어 들키지 않고 갖고 나올 방법을 궁리한 끝에 붓두껍에 넣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목화씨는 몰래 붓두껍에 숨겨 들여온 것도, 국외반출 금지 품목도 아니었다. 더욱이 문익점은 강남 지방에서 귀양살이한 적이 없다. 『고려사』「열전 문익점 전」을 보자.

문익점이 본국으로 돌아오면서 목화씨를 얻어 갖고 와 장인 정천익에게 부탁하여 심었다. 처음에는 재배 방법을 몰라 거의 다 말라버리고 한 그루만 남았는데 세 해 만에 크게 불었다.

『태조실록』에는 좀 더 자세히 쓰여 있다.

계품사計稟使 좌시중 이공수李公遂의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 조정에 갔다가, 장차 돌아오려고 할 때에 길가의 목면 나무를 보고 그 씨 10여 개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 가져왔다.

『고려사』에도 『태조실록』에도 붓두껍에 목화씨를 숨겨 왔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다. ‘얻어 갖고’ 왔다거나 ‘주머니에 넣어 가져왔다’고 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나 『세조실록』『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마찬가지다. 문익점이 살았던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이르는 기록들에는 붓두껍에 몰래 숨겨 왔다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럼 강남에 귀양 갔다가 붓두껍에 숨겨 왔다는 이야기는 어디서 나온 걸까? 문익점의 목화가 널리 퍼지면서 나중에 덧붙여진 이야기다. 이를 테면 성공 신화인 셈이다. 자세한 전말을 알아보자.

문익점의 원나라 사행 전말

문익점은 고려 말, 강성현(지금의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서 태어났다. 강성현은 당시 진주에 속해 있는 속현이었다. 문익점은 서른 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공민왕 12년(1363) 원나라로 가는 사신 일행에 서장관으로 뽑혔다. 공민왕은 반원자주화 개혁정치를 폈던 왕이다.

원나라는 공민왕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특히 원 순제의 제2황후인 기황후는 공민왕을 몰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공민왕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기철은 공녀로 간 누이가 원나라 황제의 눈에 들어 황후가 되자 그 힘을 믿고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이다.

문익점과 장인 정천익이 처음으로 목화를 재배한 시배지. 경남 산청군 단성면.

기황후는 부원배 최유崔濡, 고려 출신 환관 박불화 등과 손잡고 원 순제를 부추겨 공민왕을 폐위시키고 원나라에 있던 충선왕의 셋째 아들 덕흥군德興君을 왕위에 앉히려 했다. 당시 고려는 원의 사위나라가 되어 있었으므로 원은 고려 왕을 마음대로 정하고 또 폐위시킬 수 있었다.

문익점 일행이 원나라에 도착한 직후, 덕흥군은 원나라가 준 군사 1만 명을 데리고 고려로 향했다. 그리고 순제는 원나라에 와 있는 고려인들에게 관직을 주면서 덕흥군을 왕으로 받들게 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원나라에 있던 고려인들은 공민왕과 덕흥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대부분 원나라가 미는 덕흥군을 선택했다. 공민왕을 선택한 사람은 이공수를 비롯하여 몇 사람에 불과했다. 문익점 역시 덕흥군을 선택했다. 이 대목을 『고려사절요』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처음에 황제가 원나라에 있는 고려 사람에게 모두 덕흥군을 따라 본국으로 가게 하니, 김첨수金添壽. 유인우柳仁雨. 강지연康之衍. 황순黃順. 안복종安福從. 문익점. 기숙륜奇叔倫 등이 모두 이에 붙어 따랐다. 홍순洪淳, 이자송李子松, 김유金庾, 황대두黃大豆는 피하여 따르지 않고 절개를 지켜 변하지 않았다.”

한편 덕흥군의 군사 1만은 최영과 이성계가 지휘하는 고려군과 압록강 이남의 수주隨州(지금의 평북 정주)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인 결과, 고려군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자 원은 덕흥군 옹립 계획을 단념했다. 문익점을 비롯하여 덕흥군 편에 섰던 사람들의 입장이 매우 난처해졌을 것임은 자명한 노릇이다. 공민왕의 눈으로 볼 때 이들은 자신에게 반기를 든 역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듬해인 공민왕 13년(1364), 문익점은 고려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마도 사신 일행이 귀국하게 되자 서장관 문익점도 돌아오게 된 듯한데, 이 대목을 『고려사』「열전 문익점 전」은 이렇게 기록하? 있다.

“덕흥군에게 의부依附하였으나 덕흥이 패함에 미쳐 돌아왔다.”

문익점의 귀국 일자는 『고려사』를 비롯해 여러 관련 기록을 종합하여 확인할 수가 있다. 그에 따르면 문익점은 원의 강남 지방에서 3년 동안 귀양살이를 한 게 아니라 바로 이듬해에 귀국했음이 틀림없다.

아마도 문익점은 돌아가면 처벌을 면치 못하리라는 각오를 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목화씨를 따서 주머니에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목화씨는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 될 소중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돌아온 문익점은 다행히 목숨을 잃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아마도 덕흥군에 의부한 죄를 물어 파직당한 게 아닌가 싶다. 그는 고향에서 장인 정천익과 함께 목화씨를 심어 길렀다. 정천익은 문익점과 재혼한 처 정씨의 아버지로서 진주에 살고 있었다. 그 뒤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목화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신화의 탄생

그런데 문익점의 목화가 성공을 거두면서 그를 미화하는 이야기들이 하나 둘씩 덧붙여지기 시작했다. 문익점이 덕흥군을 지지했던 사실은 어느새 덕흥군을 거부하고 공민왕을 지지한 것으로, 혹은 본의 아니게 덕흥군 편으로 오해를 받은 것으로 슬그머니 뒤바뀌었다. 그리고 공민왕에게 끝까지 충성하다 머나먼 강남으로 ‘귀양살이’를 갔다는 얘기가 덧붙여졌다. 나아가 목화씨는 반출 금지 품목이라 이를 ‘몰래’ 들여왔다는 이야기가, 또 ‘붓두껍에 숨겨 왔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문익점이 강남에 갔다는 강남설은 왕조가 바뀐 조선시대 들어 처음 나온다. 조선 태종 1년(1401) 3월 권근이 상소를 올려 문익점의 업적을 칭송하면서 그 아들 문중용에게 벼슬을 주자고 건의할 때다. 권근은 이렇게 말했다.

“고故 간의대부 문익점이 처음 강남에 들어가서 목면 종자 두어 개를 얻어 싸 가지고 와서 진양촌 집에 보내어, 비로소 목면을 짜서 진상하였으니, 이 때문에 목면의 일어남이 진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온 나라에 널리 퍼지게 되어, 모든 백성들이 상하가 모두 이를 입게 되었으니, 이것은 모두 익점이 준 것입니다.”

목화는 우리 의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안겨주었다. 겨울에도 베옷으로 추위를 견뎌야 했던 백성들은 따뜻한 면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은 씨아질, 물레질, 베틀로 면포 짜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 김준근의 「기산풍속도첩」.

권근이 왜 강남에 갔다고 했는지는 의문이다. 권근은 문익점이 덕흥군에 의부했었으며 귀양 간 적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권근은 문익점보다 20년 연하였지만 둘 다 이색의 문하생이었고, 고려 말의 정계에 함께 몸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남에 갔다고만 했을 뿐 귀양 갔다고는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권근은 목면이 필경 강남에서 나는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문익점이 어떤 연유에서인가 강남에 갔다가 가져온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그 역시 붓두껍에 몰래 감춰 왔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익점이 갖고 온 목화씨는 중국 강남에서 나는 다년생 목면이 아니라 화북 지방에서 나는 1년생 초면草綿임을 알아두자. 또한 당시 원나라의 국외반출 금지 품목은 화약, 지도 등이었지 목화는 아니었다.

아무튼 당대의 석학 권근의 ‘강남 발언’은 강남 귀양설을 낳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문익점은 태종 1년(1401년)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만약 덕흥군에 의부한 사실을 그대로 둔다면 공신 이름에 누가 될지 몰라 고심하던 차에,
1927판 『삼우당실기』에 실려 있는 김굉필이 쓴 문익점에 대한 시.
마침 권근의 입에서 문익점이 ‘강남에서’목화씨를 가져왔다는 말이 나오자 이를 근거 삼아 덕흥군 의부가 덕흥군 반대로 뒤바뀌어 강남 귀양설을 낳은 게 아닐까. 비슷한 이야기가 세조 때의 문신 남효온이 지었다는 『목면화기木?花記』에 실렸고, 남효온과 함께 김종직의 문인이었던 김굉필은 7언시로 그 내용을 읊어 감동을 더해주었다. 다음은 김굉필 시의 한 대목이다.

문공 익점은 진양 사람으로 益公與漸晋陽人
천성이 어질고 바르며 학문을 좋아했네 天性慈詳志好學
고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니 登第高麗恭愍朝
때는 바로 지정 20년이었네 正是至正午二十
간원에 좌정언 벼슬 받자 拜至諫院左正言
사신 따라 원에 가 구속되었다 奉使入元遭局束
귀양 가 3년 만에 돌아오게 되었을 때 屯如三歲乃得還
가을 밭에 핀 눈같이 흰 꽃을 보았네 路見秋田花雪白
꺾어보고 갑절이나 좋아한 님은 摘取誇視倍歎賞
남몰래 낭탁에 넣어 가져왔다네 潛藏囊?來我國


여기서도 붓두껍이 아니라 낭탁, 즉 주머니에 넣어 왔다고 읊고 있으니 붓두껍설은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았던 듯하다.

그런데 김굉필의 시보다 300여 년 뒤인 1819년 남평 문씨 문중에서 간행한 『삼우당실기三憂堂實記』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문익점 이야기가 그대로 실려 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덕흥군을 따라 귀국하라는 원 순제의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에 강남 지방에 유배되었다가 3년 뒤에 풀려나 연경으로 돌아오는 길에 목면 밭을 보고 종자從者 김룡金龍으로 하여금 목화씨를 따게 하여 몰래 필관筆管(붓두껍)에 넣어 가지고 왔다.”

우리가 문익점을 기리는 까닭

문익점에 대한 전설과 신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기정사실화되었다. 퇴계 이황이 쓴 문익점의 ‘효자비각기’를 보면 ‘남쪽 변경에 귀양 갔다가 석방되어 돌아올 적에 길에서 목화 종자를 얻어 오직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만이 급하므로 금법을 무릅쓰면서 가지고 왔는데….’라 했으며, 1785년 정조 때 유생 김상추金相樞가 문익점을 제사 지내는 전라도 장흥의 강성사江城祠에 사액賜額(왕이 친히 현판을 내림)해달라고 올린 상소를 보면, 문익점이 강남에 유배 갔다가 목화씨를 몰래 들여왔다는 이야기가 완전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음은 김상추의 상소 내용이다.

“문익점은 사명을 받들고 원나라에 들어갔는데 공민왕이 어둡고 포악스럽다고 원에서 폐위시키고 새로 다른 왕을 세우려 하자 조칙을 받들 수 없다고 다투다가 드디어 검남?南(강남의 다른 이름)으로 유배되었습니다. 3년 만에 비로소 돌아오게 되자 목화씨를 몰래 붓두껍에 넣어 가져와 사람들에게 직조를 가르쳤으니 백성을 이롭게 한 사실이 이와 같았습니다.”

도천서원. 경남 산청에 있다.

정조 때 실학자 이덕무가 쓴 「한죽당섭필」은 한층 더 구체적이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길가 밭에 있는 풀의 흰 꽃이 솜털 같은 것을 보고 종자 김룡을 시켜 그것을 따서 간수하게 하였는데, 밭 주인인 늙은 노파가, ‘이 풀은 면화인데 외국 사람이 종자 받아 가는 것을 엄하게 금지하고 있으니 조심하여 따지 말라.’ 하였으나, 문익점이 드디어 몰래 세 송이 꽃을 붓두껍에 감추어 가지고 왔다.”

이 글은 이덕무가 경상도 함양에서 찰방으로 근무할 때 보고 들은 경상도의 풍속과 인물에 대해 기록한 것이니, 아마도 경상도 지방에서 널리 떠돌던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이덕무는 「앙엽기○葉記」라는 다른 글에서는 “세상에 전하기로는 문익점이 초면의 종자를 얻어 상투 속에 감추어 가지고 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당시 세간에서 목화씨를 숨겨온 장소로 거론된 것이 딱히 붓두껍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붓두껍이든 상투 속이든 문익점이 목화씨를 몰래 숨겨온 것이 아니라 주머니에 넣어 왔으며, 강남에 유배 간 일이 없었다고 해서 그의 업적이 빛을 잃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가 가져온 목화씨는 우리 의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안겨주었다. 문익점 이전에 원나라에 사신 갔던 수많은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문익점처럼 목화씨를 가져와 백성들에게 따뜻한 면 옷을 입힐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문익점에게서 높이 살 점은 바로 그것이다. 귀국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잊지 않고 목화씨를 주머니에 넣어 온 마음, 칭송의 대상은 그것이지 그의 정치적 행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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