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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마지막 투덜투덜

이 글은 <듀나의 투덜투덜>의 마지막 회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좋아하거나 아쉬워하지 마시길. 어차피 전 장르문학을 다루는 다른 칼럼에서 1월부터 다시 찾아옵니다. 칼럼의 형식만 바뀌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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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듀나의 투덜투덜>의 마지막 회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좋아하거나 아쉬워하지 마시길. 어차피 전 장르문학을 다루는 다른 칼럼에서 1월부터 다시 찾아옵니다. 칼럼의 형식만 바뀌는 거죠.

그래도 마지막 회는 마지막 회니 뭔가 맺는 분위기의 이야기를 하나 해보죠. 그를 위해 제가 고른 작품은 알퐁스 도데의 단편 「황금 뇌를 가진 사나이」입니다. 읽으신 분도 많을 거예요. 말 그대로 황금 뇌를 가진 남자의 이야기죠. 먹고사는 것이라고는 머릿속의 금을 파는 것밖에 모르는 그는 순진무구하고 낭비벽 심한 여자와 결혼해 뇌를 펑펑 씁니다. 아내가 죽었을 때엔 정말 손톱만한 조각밖에 남지 않았죠. 이야기는 아내가 죽은 것도 인식하지 못하는 그 텅 빈 머리의 남자가 옷가게에서 죽은 아내를 위한 옷을 사려고 머릿속에 남은 마지막 금을 꺼내 가게 주인에게 들이미는 것으로 끝납니다.

도데는 이 처량한 남자를 글쟁이들의 은유로 사용했습니다. 이건 제 해석이 아니에요. 소설 앞뒤에 그가 직접 밝히고 있지요.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이 소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뻔해요. 머리를 쥐어짜며 돈을 버는 자칭 지식노동자들이라면 모두 여기에 동조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전 이 은유가 그렇게까지 정직하지는 않다고 말하렵니다.

일단 도데는 황금 뇌, 그러니까 글쟁이들의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유한한 재물로 봤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이들은 결코 타고나지 않습니다. 소설이나 시를 쓰려면 일단 외부에서 재료를 가져와야죠. 셰익스피어처럼 위대한 인물이라면 시시한 재료를 황금으로 만드는 연금술의 재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에 원래부터 있는 것을 그냥 끄집어내기만 하는 작업과는 거리가 있죠. 글쟁이들은 일방적으로 글을 쏟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과 대화를 합니다. 독자들은 단지 대화의 한쪽 방향만 볼 수 있을 뿐이죠. 언젠간 그들도 머리가 텅 빈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옵니다. 하지만 그건 천성적으로 타고난 무언가를 날려버린 게 아니에요. 연금술장치가 녹이 슬었을 뿐이죠.

게다가 ‘황금 뇌’라니요. 과대평가도 정도가 있지요. 황금을 쏟아내는 건 정말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쇠못이나 토해내지요. 그리고 사실 그래야 합니다. 화장실 수리하거나 벽에 그림을 거는 데에도 황금을 쓸 필요는 없지요. 글은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림일기를 쓰는 어린 아이들과 이명박 지지선언을 발표하는 연예인들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도데가 살던 시절 사람들이 ‘황금 뇌’란 비유를 뻔뻔스럽게 사용했던 건 19세기만 해도 글을 써서 대중에게 발표하는 사람들의 수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당연히 그들의 평준 질적 수준도 높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잖아요.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만 있다면 누구나 글을 써서 발표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당연히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황금’도 줄어듭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는 쇠못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죠. 이명박 지지선언을 하는 데에 셰익스피어의 명문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이건 글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음악이나 영화도 마찬가지죠. 곧 어린애들도 그림일기를 쓰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의 영화를 편집해 전 세계에 발표하는 날이 올 겁니다. 그건 사디 배닝과 같은 새로운 재능의 발견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린 그 부작용으로 그 몇 억 배나 되는 형편없는 작품들과 마주쳐야 할 겁니다.

여기서 가장 까다로운 것은 우리 자신이 그 쇠못들과 쓰레기들의 생산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상승되는 날이 올까요? 올 수도 있습니다. 옛날의 우편제도가 서간문학의 발전을 가져왔듯, 인터넷은 우리에게 글쓰기를 강요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전체적인 질적 저하는 거부할 수 없는 미래입니다. 인성 자체를 바꾸는 나노공학이나 뇌수술이 동원되지 않는 한, 우리의 발전 가능성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죠. 글이나 영화뿐만 아니라, 세상 전체가 그런 것 같습니다. 타고난 황금 뇌를 조금씩 쓰다가 죽어간 도데의 주인공과는 달리, 우린 그냥 우리가 쏟아내는 쇠못과 쓰레기에 압사당하고 말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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