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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제가 편지를 쓰기로 작정한 까닭은 지난주 내내 우리 시대 작가들의 편지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의 우정편지』의 편저자 김다은은, 편지는 일기와는 달리 적어도 한 명 이상의 독자를 향해 말하는 작가들의 문학 텍스트라 일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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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있을 미지의 독자에게,

제가 편지를 쓰기로 작정한 까닭은 지난주 내내 우리 시대 작가들의 편지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의 우정편지』의 편저자 김다은은, 편지는 일기와는 달리 적어도 한 명 이상의 독자를 향해 말하는 작가들의 문학 텍스트라 일러줍니다. 편지들을 읽으며 ‘내가 편지를 쓴 때가 언제였던가?’ 하는 아련한 그리움을 넘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리하여 맨 처음 생각나는 동무에게 편지를 썼고 이렇게 다시 미지의 독자에게 말을 겁니다.

막상 편지를 쓰려니 쓰고 싶은 욕망만이 넘실댈 뿐 모니터의 커서는 제자리에서 오래도록 깜박입니다. 첫 문장이 문제인 것이지요. 그다음 또한 문제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얘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여전히 막막하고 갑갑합니다. 책에서 소설가 권지예는 소설가 조경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작가인 우리는 고통 민감증 환자인지 모릅니다. 저는 가끔 이렇게 말합니다. “상처는 나의 힘, 나는 고통을 잉크 삼아 글을 쓴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고통스러울 때 글을 쓰는 일이란, 마치 고통의 피고름이 가득한 심장에 펜을 콕 찍어 글을 쓰는 동통마저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 고통의 잉크도 준비되어 있고 심장에 펜을 콕 찍어 쓸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작가들도 저러할 진데, 하찮은 잡문이나 쓰는 제가 독자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경란처럼 “여태 첫 문장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제 무능에 대한 한탄이 어느새 첫 문장이 되어 있습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태수는 친구 우석에게 죽음을 앞두고 말하지요. “그다음이 문제야, 그러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사는지.” 작가들도 작가가 되기 위한 그 불안하고 치열했던 습작 시절보다는 그다음이 문제인 모양입니다. 소설가 김나정은 소설가 이정은에게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전에 나는 글을 쓰는 게 재미있었다. 사는 게 고달파도 몇 시간 글을 쓰면 속이 후련했다. 까만 말을 타고 흰 들판을 휙휙 날아다녔다. 그런데 덜컥 등단을 하니 프로가 되었다는 중압감 때문일까? 등단 이후로는 글 쓰는 게 정말 힘들었다. (중략) 문학이 너를 끝끝내 괴롭힐 것 같으면 버리렴. 하지만, 끝끝내 버리지 못하겠으면? 지금 끝내면 난 죽을 때까지 미련이 참 많이 남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내게 중요한 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이지, 그 말을 서둘러 해버리자는 게 아닌 것 같다. 정은아, 문학 그 더럽고 질긴 사랑에 지금은 온 힘을 기울여주는 것이 예의일 듯싶다.」

또 다른 작가는 습작 시절의 그 죽음처럼 깊은 절망과 기다림보다 등단 후에 깨달은 문학이란 것이 더욱 아픈 울림으로 들려옵니다. 작가가 되겠다며 해발 600미터의 탄광촌으로 찾아든 자신의 행보가 얼마나 삶을 기만하고,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해야 하는 이들을 깔보았던 섣부른 충동이었는지를 작가는 고백합니다. 등단에의 무망한 기다림 끝에 자살을 결심하고 떠나려 했던 교정에 우체부의 빨간 오토바이가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그 작가를 오늘에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고백에서 저는 소름이 돋고 살갗을 파고드는 전율에 진저리를 칩니다. 소설가 박상우는 그 시절 자신의 문학적 사표였던 선배에게 편지를 씁니다.

「문학이 그것 자체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문학이 내 인생 전부라고 생각했던 젊은 날의 열정이 얼마나 가당찮은 것인지도 이제는 압니다. 의사에게 청진기가 있고, 축구선수에게 공이 있듯이 문학하는 사람에게는 ‘언어’라는 도구가 주어져 있을 뿐입니다. (중략) 작가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인간과 인생을 위해 참다운 글을 지어야 합니다. (중략) 요컨대 참다운 문학은 인위적인 ‘쓰기’가 아니라 자연스런 ‘짓기’입니다.」

「문학은 결국 ‘나’로부터 ‘다른 나’에게로 가는 인간적인 통로임으로 나를 끊임없이 연마하고 다듬어 인생의 본질적인 무늬에 더욱 자연스럽게 맞을 수 있는 글짓기를 할 수 있는 날이 당도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죽는 날까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중략) 나는 고작 문학을 ‘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형은 문학을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것이 깊은 깨침이 되어 오늘 지천명이 되었음에도 형은 여전히 내 부끄러움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미지의 독자여, 우리가 조금의 시간과 더 적은 수고만 있으면 만나고 읽을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이렇듯 깊고 깊은 동통과 죽음과도 과감히 바꾸려 했던 작가들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 태어나는 고통의 자식인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문학‘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학을 ‘살기 위해’ 지금도 어두운 동굴 속에서 신음하며 아파하며 피고름 맺힌 심장에 펜을 콕 찍어 짜야만 하나 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픈 것은 작가라는 외로움입니다. 소설가 윤성희는 일 년 먼저 등단한 선배 강영숙에게 외로움과 작가로 된 불안감을 토로합니다.

「전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오들오들 떨었어요. 사방이 막혀 있었는데도 바람이 부는 것 같았죠.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저는 일 년 전 선배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선배, 미안해요. 그 생각만으로도 저는 많은 위로를 받거든요.」

소설가 해이수도 소설가 친구 노희준에게 외로움을 말합니다. 그들은 소설가 해이수가 학생들과 함께 ‘신중히’ 한 학기를 보내면, 다음 학기에는 그 학생들을 노희준이 ‘까칠하게’ 가르치는 동갑내기 친구입니다. 또한 노희준이 ‘시비조’로 강의했던 아이들을 해이수가 ‘섬세하게’ 출석을 부르는 같은 학교의 동료 선생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문득’ 만나서 서로 ‘불현듯’ 딴소리를 하며 취했다가는 ‘별안간’ 헤어지기 일쑤니까. 그러나 그 간극 속에서 내가 발견한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는 모두 믿음 또는 이해의 소통을 갈망하는 결핍된 존재, 외로운 단자라는 사실이다.」

소설가 김영현은 후배 소설가 이명랑에게 “나이 들수록 실없어져야 한다. 허튼소리만 해야 해.”라고 일러줍니다. 이명랑은 김영현의 실제 삶에서 그 말의 뜻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닮고 싶어 합니다. 미지의 독자여, 삶을 살면서 주위에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앞서 보았듯이 박상우에게 마석규 선배 같은 분이 있다는 것은, 곧 이 지리멸렬하고 부조리한 삶을 견디도록 해주는 가장 큰 힘인 것이지요.

「선생님은 정말 그리하셨습니다. 그럴듯한 말로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유머로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고, 스스로 낮추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중략) 저 사람을 닮고 싶다.」

그런가 하면 시인이자 소설가요, 날카로운 평론가인 이승하는 문단의 권위적 편견과 교조적 선입견으로 괴로워합니다. 또한 허섭스레기만도 못한 문학상 수상 여부가 작가의 문학적 밀도와 질량을 표시하는 문단의 풍토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합니다. 일침을 가한다기보다는 그런 작단의 시류에 부적응 양상을 보이는 자신이 한스럽고, 심지어는 죄책감에 울어야 합니다. 시인은 시만 써야 하고 소설가는 산문만을 고집하라는 장르 고수의 협박은 대체 누가 만들어 놓은 작가의 감옥인 것인지요.

미지의 독자여, 우리 문단의 주례사 비평에 대한 힐난과 비판에서 익히 알고 있듯이, 몇몇 메이저 출판사와 그와 결탁한 영혼 없는 작가들의 글 생산과 뒷배 봐주기는 정말이지 끔찍한 지경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독자여, 그대도 이승하의 『뼈아픈 별을 찾아서』를 읽으며 나처럼 철철 눈물을 흘릴 것이 틀림없습니다.

「천상의 별을 찾는다고 네 발밑에서 / 지렁이나 개미가 죽게 하지 말기를 / 통증을 느끼는 것들을 가엾어 하지 않는다면 / 네 목숨의 값어치는 그 미물과 같지 / 아들아 네 등 뒤로 떨어지며 / 무수히 죽어간 별똥별의 이름은 없어 / 뼈아픈 별이기에 / 영원히 반짝이지 않는단다」 (「아들에게」 중에서)

이 편지의 수신자인 독자여, 당신에게 쓴 편지라는 것이 고작 책에서 읽은 것을 골라 적은 졸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독자는 이미 짐작하셨겠지요? 이 편지가 나의 신산스러운 일상을 전하고자 함도 아니요, 잡다한 세상의 소식을 들려주고자 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전 ‘우리 시대의 작가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글을 쓸까?’ 그것이 궁금했고 책을 통해 보게 된 작가들의 속살을 본대로 알려주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소설가 정영문이 소설가 은희경에게 쓴 편지에는 재미난 일화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선배가 그곳(시애틀)에 살던 무렵 어느 날 물가에 피크닉을 갔을 때 주위에 몰려든 까마귀들에게 어떤 음식-겨자가 들어간 유부초밥이었나요?-을 주자 그것들이 맛을 보고는 그 얼얼한 맛에 화가 나 사람들을 공격해 결국 피크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요.」

미지의 독자여, 저는 『작가들의 우정편지』를 읽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편저자 김다은이 “왜 우리 문학에서는 서간 문학이라 일컬어지는 편지가 문학 텍스트 혹은 한 문학 장르로 발전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나름의 해설을 실어준 것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미하일 바흐찐의 “장르는 형식적 실체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이면서 역사적인 실체”라는 시각에서, 우리의 편지문학이 식민지배와 군부독재의 정보정치로 인한 억압에서 발전하기 어려웠고, 전통적인 장르에 대한 신봉으로 편지문학이 들어설 공간이 없었다는 편저자의 설명에 “옳다구나!” 무릎을 쳤습니다.

어딘가에 있을, 혹은 바로 여기에서 만날 독자여, 이제 저의 편지를 마쳐야겠습니다. 제가 오늘 독자와 나눈 작가들의 생각은 어쩌면 당신이 그들을 다시 만날 때, 다르게 읽히고 제 생각과 다르게 생각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생각은 누구나 자신만의 것임으로, 그것은 작가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나는 나의 경험과 나의 시선으로만 대상을 보고 생각할 뿐입니다. 다만 여러분 혹은 당신이 작가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면서 그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편지를 받을 미지의 독자여, 그대에게 쓴 이 편지로 저는 행복하였습니다. 안녕히!

겨울이 어른거리는 땅 위에서 이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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