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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유목은 인간의 본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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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는 사물의 본성을 파악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어둠으로써 밝음을 이해할 수 있고, 악으로써 선을 알 수 있다. 피아노의 건반처럼, 흑과 백을 나눠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사물의 올바른 정의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대조는 사물의 본성을 파악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어둠으로써 밝음을 이해할 수 있고, 악으로써 선을 알 수 있다. 피아노의 건반처럼, 흑과 백을 나눠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사물의 올바른 정의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그렇다. 우리는 개념을 통해 사고한다. 정의된 개념들의 상호관계를 따지는 것이 바로 논증의 과정이다. 그러나 언어는 불완전하다. 내가 사고하는 것과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의 불일치성,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는 측에서의 착오로 인해 언어는 온전한 신뢰를 확보하기 힘들다. 우리는 언어로 소통하지만, 역설적으로 언어 때문에 오해와 불신 나아가 갈등을 빚는다. 이런 의미에서 대조를 통한, 이분법적 사고는 위험하다. 그것은 때로 사물의 정확한 의미와 개념을 놓고, 여러 색으로 분화되는 개념들을 흑과 백으로 한정지어버린다.



 

아탈리의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은 유목민과 정주민을 흑백으로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책은 어쩌면 호모 노마드에 대한 찬양으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근래 들어,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관점에서의 서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착민의 시각에서 노마드의 역사는 미개, 그리고 야만으로 이해된다. 중국의 고대 정착 국가들은 번번히 북방 노마드에 의해 전복되었다. 만리장성은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로마의 멸망도 마찬가지였다. 끊임없는 이동을 기반으로 하는 노마드의 삶의 양식은 미개와 야만을 넘어 정착 국가의 체제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탈리는 정착민의 사관을 뛰어넘어 600만 년에 이르는 인류사를 노마드적 관점에서 새로 쓴다. 인류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까지도 내다본다(사실 이 부분은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분량을 줄여 탄력적으로 썼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600만 년에 이르는 인류사에서, 인류가 정착해 살았던 것은 전체의 0.1퍼센트에 그치는 시기일 뿐이라고 그는 적는다. 5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동남아프리카의 어느 나무에서 뛰어내려온 것을 시작으로, 60억 세계 인구 중 10억이 출장, 관광, 이민 등을 이유로 이동하게 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노마디즘은 인간 진보의 주요 동인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신인류의 대안은 노마드의 세계에서 찾아야 한다. 그들은 불, 언어, 종교, 민주주의, 시장, 예술 등 문명의 실마리가 되는 품목을 고안해냈다. 반면 정착민이 발명해낸 것은 고작 국가와 세금 그리고 감옥뿐이었다.” 노마드적 패러다임에 대한 찬양이 극대화된 부분이다. 노마드는 정신적, 물질적으로 현대 생활의 기반이 되는 것을 거의 모두 제공했다고 아탈리는 적는다.

실제로 그런가? 우리가 향유하는 시장과 민주주의, 예술 그리고 많은 것을 유목생활이 제공한 것일까. 유목성에 대한 찬양은 가끔 이보다 더 지나치게 표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유목과 정주는 대조되어야 할 개념도, 분리될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같이 있어왔고, 언제나 상호작용해왔다.

아탈리는 유목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사라지리라는 경고, 변화하지 않으면 쇠퇴하게 된다는 경고는 예나 지금이나 있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정주 역시 인간의 본성이다. 정주와 유목은 꼬리를 물고 반복됐으며 인간의 역사는 이러한 반복 속에서 씌어졌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이동하는 인간, 노마디즘에 대한 편파적인 찬양은 정주를 격하시키고 논의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작가는 역사를 바라보는 새 관점을 제시하기 위해서인지, 편향적인 어조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지만 책에서 아무런 시사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노마디즘을 통한 세계화는 기술과 산업의 발달에 의존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정착민의 노마드 탄압으로 인해, 완전한 세계화는 좌절되고 말았다. 여기에서 아탈리가 말하는 세계화는 상업적 세계화나 문화적 세계화처럼 국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 인류로서의 세계화를 의미하며 이러한 의미는 마지막 장인 「트랜스 휴먼」에서도 드러난다.

아탈리에 의하면 인류는 진정한 세계화의 기회를 다시 한 번 맞고 있다. 그것에는 “디지털 노마드”로 불리는, “디지털을 통한 가상적인 유목” 역시 도움을 줄 것이다. 세계를 수없이 바꾸어놓았던 정주와 노마드의 순환이, 다시 한 번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그는 예언한다. 국경은 무의미해질 것이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화가 도래할 것이다. 이런 세계화에서 아탈리가 이상적인 인간으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트랜스 휴먼”이다.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는, 공존을 중시하는 인간상이다.

변화의 물결은 이미 들이치기 시작했다. 국경을 뛰어넘은 초국적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민주주의적인 집결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노마드의 시대가 다시 한 번 오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문호 개방, 이동, 이주민의 수용은 최우선적으로 국가가 받아들여야 할 시책이 될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예를 찾아보자. 국가 간 협력과 그것을 위한 개방이 중요한 시대에 스스로를 닫아 걸어놓고 있는 북한은 여러 측면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의 경우 개방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식했으며, 이를 통해 국가적 잠재력을 높게 평가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문에서 아탈리는 미래 한국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노마디즘이 자기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다른 이들로부터 고립되는 자폐증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면 변화의 시대에 결국 우리는 쇠퇴하고 말 것이다.

다시 한 번, 말고삐를 쥐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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