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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5만 원권이 불편한 이유

하여간 제가 신사임당 5만 원권이 불편한 건 그들이 지폐에 새길 예정인 신사임당이 자연인 신사임당과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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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위인전이라고 얕볼 필요는 없습니다. 적어도 전 꽤 많은 걸 어린이 위인전을 통해 배웠어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딱따구리 그레이트북스의 아문센 자서전이군요. 그걸 통해 전 소위 ‘위인’이라고 교과서에 나오는 사람들도 그렇게 쫀쫀하고 뒤끝이 길 수 있다는 걸 배웠지요.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읽고 그가 뻔뻔스러운 강간범이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만큼 충격이 강할 수는 없겠지만, 뒤지다 보면 ‘위인전’이라는 책들도 은근히 놀라운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학습문고로 읽었던 신사임당의 전기도 저에겐 그중 하나였습니다. 저자는 어떻게든 아이들을 위해 ‘현모양처’의 이미지를 주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정작 떨어지는 정보를 보면 신사임당은 전혀 우리가 머릿속에 담고 있는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니 말이죠. 우리가 아는 현모양처들은 남편에게 처가살이를 시키지도 않았고 죽을 때 남편의 재혼을 막지도 않았죠. 적어도 신사임당은 요새 연속극에 나오는 며느리보다는 훨씬 편하고 시원스럽게 살았습니다. 요즘에 비교한다면, 그 사람은 늘 시어머니를 기죽이는 커리어우먼 첫째 며느리나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온갖 짓을 다하는 억척엄마들과 비슷했을 겁니다. 바로 그래서 유명해졌던 거고요. 덤으로 당시 그 사람이 살았던 조선시대의 풍습이, 사람들의 유교관습의 표준으로 삼는 과거의 관습과 거리가 있었고 당시 여자들의 행동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는 것도 말해두는 편이 좋겠군요. 남편 이원수의 처가살이만 해도… 이건 그냥 알아서 찾아보세요.

5만 원권 화폐 인물에 선정된 신사임당

하여간 제가 신사임당 5만 원권이 불편한 건 그들이 지폐에 새길 예정인 신사임당이 자연인 신사임당과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신사임당을 넣는 게 아니죠. 신사임당의 이름을 빌려서 그들이 생각하는 스테레오타입화된 현모양처의 이미지를 넣는 거지. ‘예술인 어쩌고’는 웃기지도 않는 핑계고요. 신사임당의 유령이 아직도 이 나라를 떠돌고 있다면 피켓을 들고 한국은행 근처에서 시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성미에 그걸 견뎌낼 리가 없을 것 같아요.

우리에게 옛사람들에 대한 정보들은 대부분 불확실하며 왜곡되어 있습니다. 특히, 그들이 종교나 도그마의 주체나 도구일 경우엔 더욱 그렇죠. 가까운 예로 ‘저 예수를 보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시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심지어 네 복음서에 나오는 묘사도 다 다른걸요. 사도 바울과 로마 시대의 수많은 신학자들, 정치가들, 번역가들을 거치면서 예수의 이름과 메시지는 당시 시대에 맞게 개조되었고 지금도 그 개조작업들은 꾸준히 계속되고 있죠. 거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복음서 작가들이 왜곡시킨 예수의 본모습을 찾으려 시도했지만 그가 그린 예수도 결국 카잔차키스의 예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예수는 돈 까밀로 신부와 성당에서 농담 따먹기를 하는 예수와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죠. (전 두 예수를 모두 좋아합니다만, 그건 이야기의 논지와 상관없는 이야기인 것 같군요.)

그래서 전 가끔 이런 상상을 해요. 우리가 예수를 만나 지난 이천 년 동안 예수와 기독교,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졌고 지금도 아주 가까운 곳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온갖 죄악과 우행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면 그는 그 책임을 받아들일까요, 부정할까요? 신자들은 당연히 부정하려 하겠지만 전 예수가 어떻게 할까 묻는 거죠. 이것 참 딜레마가 아닙니까? 제가 생각하는 예수는 아마 그 책임을 인정할 것 같습니다. 제가 다녔던 성당에서는 나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불쌍한 예수님!’이라고 외치는 말버릇을 가진 수녀님이 있었는데, 그분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이미 부정할 수 없는 죄악이 역사에 새겨졌습니다. 그것이 진짜 예수의 의도나 생각과 거리가 멀지는 몰라도 신과 기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건 부인할 수 없죠.

사실 이건 함정 문제입니다. 과거의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건 의미 없는 일이기 때문이죠. 여기서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들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에 대해, 또는 그들을 통해 이야기할 때 더욱 조심해야 하고 정직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들의 이미지에 새겨지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생각이고 우리의 행동이니까요.

제가 신사임당 5만 원권에 짜증이 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연인 심사임당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들이 5만 원권에 새기려는 얼굴도 신사임당의 얼굴이 아니라 분칠하고 가발을 쓴 그들 자신의 얼굴이에요. 성적 취향이 원래 그렇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렇지도 않다면 이 변태스러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죠? 저도 젊은이 취급을 받을 날이 몇 년 남지 않았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저 영감탱이들의 군내를 맡고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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