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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관한 5중주

거울에 관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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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우리 모두는 거의 매일 거울을 본다. 거울은 자신의 외피를 되비춰 준다. 그러나 우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겉모양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거울 속에서 웃거나 울고 있는 저 얼굴에는 자신의 속내에서 우러나온 표정도 있다.

오랫동안 써왔던 칼럼 <마녀의 그림책 작가앨범>을 닫았던 때는 동트기 전부터 매미들이 ‘앵앵’ 울어대던 여름날이었다. 오전 내내 울어대는 매미 소리 때문인지 나의 여름날도 소란스러웠다. 덩달아 내 안에서 울어대는 비상경보음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소리처럼 멈출 줄 몰랐고,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하루하루를 초조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내 나이 마흔에 사춘기 때에도 느껴보지 못했던 극심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고, 그리하여 나는 나대로 불안을 떨쳐볼 요량으로 여름 숲을 거닐며 길을 찾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도 요란했던 매미의 울음소리가 사윌 즈음, 나무껍질에 매미들이 벗어놓은 허물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내 방황의 이유가 ‘탈피’를 갈망한 데 있었음을 깨닫게 된 그날 이후, 막연하기만 했던 내면의 소란도 잠잠해졌다. 그리고 나는 이전과는 달리 별다른 저항감 없이 묵은 각피를 벗겨 내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순응하게 되었다.

매미 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을 즈음, 스산해진 밤이면 ‘스르르르’ 우는 귀뚜라미 소리가 어둠 저편에서 가뭇하게 들려왔다. 내 소란이 그 사이 가라앉았듯이. 그동안 내게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나는 늦깎이 대학원생이 되어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전파를 통해 내 목소리를 사방팔방에 알리게 되었다. 하루하루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무게가 내 어깨를 누르고 있는지, 항상 목뼈가 뻐근하다. 내가 내뱉는 단어 하나도 예전처럼 편안하지 않다. 누군가 이끌어주는 대로 살아왔던 지난 세월에 비하자면 홀로 떠나기로 결심한 이후 두 발은 늘 흙투성이이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내 삶의 지도는 내가 그려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있는 요즈음, 나는 또다시 일을 저질렀다. ‘마녀’답게 살자고 각오하며 ‘마녀’다움이 무엇인지 고민한 결과가 바로 이 칼럼이다. 예전에는 칼럼을 통해 그림책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는 그 범위를 넓혀 어린이와 청소년 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영화와 그림 이야기를 넘나들 것이다. 자작나무 빗자루를 타고 장르를 넘나드는 일이 마녀이기에 가능하리라 믿고 싶다. 너무나도 고요한 밤 그리고 너무나도 적막한 어둠, 그 속에서 ‘또각또각’ 자판을 두드리는 열 손가락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써낼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써야만 한다. '스크리보 에르고 숨(Scribo Ergo Sum)!'

거울에 관한 이야기들

마음이 울적하거나 억울한 기분이 들 때면, 나는 거울을 본다.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눈물방울을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기도 하는데, 그런 거울 속의 나는 낯설다. 나는 거울 속 나에게 타인에게 말을 걸듯 말을 건넨다. ‘거울 속의 네가 나 맞니?’ 혹은 ‘거울 저편, 그래 그쪽 세상이 혹시 진짜 아니니?’ 그렇게 의뭉한 생각이 들어 거울 속 나에게 말을 건네다 보면 어느새 눈물은 말라버리고 거울 속 나의 얼굴 위로 웃음이 번진다. 거울의 영어 단어 ‘mirror’의 어원의 뿌리를 캐어내 보면, ‘궁금해하다’ ‘이상하게 여기다’라는 뜻의 라틴어 ‘mirari’임을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거울을 보는 행위란 자기 자신을 궁금하게 여기는 인간 본능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자신을 보기 위해서는 자신을 내 시선의 틀 안에 머물도록 해야 하는데, 이때 거울이 시선의 틀이 되고 거울 속에 있는 나는 내 시선의 대상이 된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거의 매일 거울을 본다. 거울은 자신의 외피를 되비춰 준다. 그러나 우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겉모양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거울 속에서 웃거나 울고 있는 저 얼굴에는 자신의 속내에서 우러나온 표정도 있다.



Norman Rockwell, <거울 앞의 소녀 Girl at Mirror> 1954, 31?x29? inch
The Norman Rockwell Museum at Stockbridge, Massachusetts
(《The Saturday Evening Post》 1954년 3월 6일자 표지)


이번에 소개할 두 권의 책은 ‘거울’을 제목 안에 달고 있다. 그 첫째가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술래를 기다리는 아이」가 당선됨으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방미진 작가의 『금이 간 거울』이다. 이 책은 ‘가족과 학교에서의 단절된 관계와 소외감’을 테마로 한 편의 중편과 네 편의 단편으로 ‘관계에 관한 5중주’를 변주한다. 짜릿한 긴장과 섬뜩한 이야기인 중편 「금이 간 거울」과 단편 「기다란 머리카락」에서 작가는 미스터리 기법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작가는 존재감이 적은 아이가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도둑질을 하는 심리와 가족 구성원 간의 대화 단절에서 비롯된 공포감을 집안 곳곳에서 늘어나는 머리카락에 빗대 이야기로 꾸려나가고 있다.

주인공 수현은 소심하고 자신감이 없는 소녀로, 학교에서도 늘 눈에 띄지 않는다. 공부 잘하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인 남동생에게 쏠린 부모의 관심. 그래서 수현은 소외감에 시달려 왔다. 그런 수현이 어느 날,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작은 선물 가게에서 거울 하나를 훔쳤다. 첫 도둑질이다. 들킬까 봐 떨리는 마음 한편으로 도둑질에 성공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본 순간, 거울 속에 비친 두 눈 사이로 가로질러 난 금이 보였다. 훔칠 때는 미처 보지 못한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금이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라는 우리 속담처럼 첫 도둑질의 성공 이후 수현은 마음이 허허로울 때마다 도둑질을 한다. 엄마, 아빠가 동생 재현만을 예뻐하는 것 같아 시무룩해질 때면, 가슴에도 찌르르 울리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런 뒤에는 대담한 용기가 생겨 도둑질을 하게 된다. 도둑질한 물건이 하나 늘면 거울에 금도 하나씩 늘어난다. 범행 횟수만큼 늘어난 금, 아무래도 불길하다. 수현은 거울을 여러 차례 버렸다. 그리고 여러 차례 더 도둑질을 했다. 그때마다 버렸던 거울이 범행 장소에 나타난다. 그것도 금이 하나 더 생긴 채로. 다음 인용글은 수현이 그간의 도둑질을 반성하고, 불길하고 재수 없는 거울을 소각장에 버리러 갈 때 하는 혼잣말이다.

다시 거울을 들여다봤다. 거울 속에는 하얗게 질린 내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금이 간 거울 속 내 얼굴은 조각조각 깨어져 어긋나 있었다. 거울이 무서워졌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학교 뒷마당에 있는 쓰레기 소각장으로 갔다.

‘이따위 거울, 없애 버릴 거야. 다시는 도둑질도 안 할 거야.’

나는 거울을 소각장 벽을 향해 집어던졌다. 거울은 산산조각이 났다. 깨진 유리 조각을 살펴보니 다른 거울과 마찬가지로 뒷면이 회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냥 평범한 거울이었던 것이다.


마치 거울이 수현이를 지켜보는 듯 도둑질을 한 장소에 나타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수현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던 도둑질을 멈추게 되는 시점은 선생님의 외투에서 지갑을 훔친 사건이 계기가 된다. 마침 그때 다른 반 아이가 수현이 선생님 외투에 거울을 넣는 장면을 목격함으로서 아무도 의심하지 못한 수현이 연쇄 도둑질의 범인으로 확인된다. 사실 수현은 자신의 도둑질이 거듭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싫었다. 자신을 착하게만 여기는 집안 식구들과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불만이었다. 차라리 들통이 나서 모두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해도, 평생 도둑이란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해도, 남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음을 후련하게 생각하는 수현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어린 시절의 한 토막을 보여주고 있다. ‘거울을 훔친 게 들통 날까 봐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들키고 싶은 심리. 모두가 자신을 쳐다봐 주길 바라는 심리.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것이 싫었던 마음. 그래서 입을 꼭 다물고 가족과 친구들을 향한 원망만 무럭무럭 키웠던 어린 시절’을. 작가에게 있어 가족과 친구라는 관계의 그물망 속의 존재들은 각자의 거울 속에 갇혀 있다. 모두가 각자의 거울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거울 밖에서 서로 온전하게 소통하지 못한다. 핑계는 많다. 바쁘니까, 피곤하니까. 하지만 이 모두는 인간 존재를 분자화시킨 현대사회가 낳은 병의 증세다. 그렇다. 작품 속 인물들처럼 우리는 이미 가족끼리, 친구들끼리 직접 대화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마주하기’ ‘나란히 하기’가 너무나도 낯설어져 오히려 두렵기까지 하다.

알런 파커 감독의 영화 <엔젤 하트 Angel heart> 중에서. 금이 간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는 엔젤. 자신이 쟈니일 수도 있다는 의혹이 거울 조각처럼 파편의 기억으로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런데 도대체 금이 간 거울 혹은 깨어진 거울은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 해답을 구하기 위해 알란 파커의 영화 <엔젤 하트>를 다시 보았다. 1953년, 뉴욕에서 사립 탐정을 하는 해리 엔젤(미키 루크)은 어느 날 싸이퍼(로버트 드니로)로부터 2차 세계대전 중에 부상당한 가수 쟈니 홰버리트를 찾는 일을 의뢰받는다. 쟈니의 행방을 찾는 일에 몰두하면 할수록 엔젤이 접촉한 사람들이 차례차례 시체로 발견된다. 사건을 해결하려고 할수록 쟈니의 행적은 더욱 묘연해지고 기억의 조각은 엔젤이 바라보는 깨어진 거울의 파편처럼 불쑥불쑥 되살아난다. 영화는 엔젤이 쟈니임을 끝에서야 보여준다. 오컬트 무비로 부두교의 제례와 붉은 피가 낭자한 이 영화를 불쑥 여기에 끌어들임은 다름 아닌 엔젤이 바라보던 금이 간 거울 장면과 동화 「금이 간 거울」에서 수현이 도둑질을 할 때마다 금이 가는 거울이 겹쳐지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금이 간 거울」을 보면서 막연했던 기시감의 원인이 바로 엔젤이 바라보던 ‘금이 간 거울’과 동종의 것인 까닭이다. 거울은 내면의 의식을 담아낸다. 수현의 불안한 심리와 엔젤의 망각 속에서 분열된 자아정체성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둘은 금이 가고 깨어진 불안한 것으로 형상화된다.

그렇다면 ‘금이 간 거울’이란 이중적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각박한 현대의 결락된 관계로 인해 분자화된 분열된 자아. 어쩌면 현대인은 바쁜 사회를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분열된 자아로 이 세상을 견디는 것이 편안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통합된 자아정체성이 없이 살아가는 것은 영화 속 엔젤의 경우처럼 언젠가는 자신의 목덜미를 노리는 날카로운 깨진 거울 조각으로서 무방비의 뒷모습을 비출 수 있다. 그때가 되어 조각들을 온전히 붙이기란 너무 늦은 일이 될 것이다. 사실 금이 간 거울은 이미 거울로서의 존재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거울이 거울로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금이 가지 않도록 잘 보존되어야 한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 여기에서 당장 구체적으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우리 모두가 바라보는 거울이 저마다 다르듯, 나로서는 그 방법도 다르다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

Cirque du Soliel의 주인공 소녀는 신문만 보는 아버지, 뜨개질만 하는 어머니 때문에 심심하다.


두 번째로 소개하는 책은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거울 속으로』다. 작가는 이미 『고릴라』『특별한 손님』에서 핵가족화된 현대의 가족 구성원들 간의 소통 부재와 소외감을 다루었다. 그런데 『거울 속으로』는 작가가 글과 그림을 모두 맡았다는 점 외에도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 전인 1976년에 출판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그림책 역사상 각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눈썰미가 있는 독자라면, 그리고 그 독자가 최근 한국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태양의 서커스’단의 <퀴담>을 보았다면, 몇몇의 그림이 <퀴담>의 앞쪽 장면과 유사함을 눈치 챌 수 있을 게다. 무대의 조명이 밝아오면 거실에서 뜨개질을 하는 어머니가 보인다. 그리고 신문을 읽는 아버지도 보인다. 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면서 한 소녀가 뭐라 말을 걸어보지만, 소녀의 부모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거울 속으로』의 토비가 느낀 소외감을 <퀴담>의 소녀도 느낀다. <퀴담>에서 긴 외투를 입은 투명인간이 떨어뜨린 중절모를 소녀가 쓰게 됨으로써 판타지의 세계로 빠지는 것과 달리 『거울 속으로』에서 판타지의 문지방 역할을 하는 것은 거울이다. 그런데 『거울 속으로』에서 토비가 빠진 거울 나라에는 <퀴담>에서처럼 중절모를 쓴 남자가 등장한다. 중절모를 쓴 남자의 우산도 똑같이 등장한다.



Cirque du Soliel의 에 등장하는 긴 외투를 입은 투명인간.?
그의 손에는 중절모와 우산이 각각 들려 있다.

이를 두고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석연치가 않다. <퀴담>이 1996년 제작되었다고 하니, 정확히 모르긴 하나 아무래도 제작자들이 앤서니 브라운의 『거울 속으로』의 몇몇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퀴담>의 제작진이 앤서니 브라운의 『거울 속으로』에 이리저리 신세를 지고 있다면, 앤서니 브라운은 추상화가 르네 마그리트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퀴담>에서도 사용된 중절모를 쓴 남자 이미지는 마그리트의 <The Son of Man>(1964년)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이젤 속에 두 번이나 작은 이젤이 놓여 있는 풍경 또한 르네 마그리트가 <La Cascasde>에서 보여준 바 있다. 그뿐이 아니다. 갑작스레 성가대 아이들이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림은 <Golconde>를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듯하다.

Rene Magritte, <Golconde>, 1953, Oil on canvas, 31.9?39.37 inch,
The Menil Collection, Houston, Texas


다시 ‘거울’로 돌아와 『거울 속으로』를 살펴보자. 엄마, 아빠에게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해 거울 속으로 빠져든 토비지만, 거울 나라에서도 토비는 시큰둥하다. 그저 무표정하게 새로운 세계를 쳐다보는 토비도 모든 것에 무관심해져 버렸는지 모른다. 부모와 주변인들로부터 소외되어 관심 밖으로 밀려난 아이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증세이다. 무감정으로 주위 사람들의 무관심에 대처하는 자기 방어. 이처럼 여느 아이들처럼 활발하게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 토비로 하여금 웃음을 되찾게 해준 것은 포스터에서 튀어나온 사자다. 사자의 추격에 겁을 집어먹은 토비가 되돌아온 곳은 거울 이편의 현실 세계다. 자신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야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향해 빙긋이 웃어 보이는 토비에게 자신감이 생겼을까? 이야기는 ‘그러고 나서 토비는 저녁을 먹으러 아래층으로 내려왔답니다.’라고 끝을 맺는다.

그림책에서 토비만이 거울을 통해 전과 달라진 자신을 확인하고 웃음을 지었는데, 과연 토비가 무관심한 부모의 마음을 열 수 있을지는 독자들 상상의 몫이다. 거울 속 세계에서마저 고립되었던 토비는 거울이라는 내면을 비추는 장치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해 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독자들로서는 토비의 부모들도 각자의 내면을 거울에 비춰보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마지막 그림에서 입 꼬리가 올라간 토비가 기운차게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모습을 통해 해피엔딩을 희망해 볼 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타인을 보기 위해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 맨눈으로 보아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겨우 자신의 모습을 저마다의 거울을 들여다보되, 타인의 거울에 비친 타인의 아픔, 상처까지는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여유를 잃은 사회에서 가족이란 정겨운 옛 의미는 빛바래졌다. 설령 가족 중 누군가의 아픔을 눈치 챘다고 해도 어루만져줄 용기를 내지 못한다. 왜 아빠가 술을 마시는지, 왜 엄마가 지친 표정을 짓는지, 왜 언니가 툭하면 골을 내고, 오빠는 자신의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지 묻지 못한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거울 속으로』의 제목은 강력한 역설을 담고 있다. 자신의 ‘거울 밖으로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거울’ 속에 비친 타인의 아픔을 보듬어 주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방미진 작가가 『금이 간 거울』을 통해 그려낸 주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직접 소개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네 편의 단편은 모두 어린이들의 내밀한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마음을 여는 데 서투른 어린이들이 자신과 상대방을 감싸 안고 이해하게 되는 모습이 작가만의 독특한 소재를 통해 제각각의 소리로 ‘관계에 관한 5중주’를 멋지게 연주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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