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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김난주를 만나다

지난 사계절 출판사 방문 후에 아이가 이번에는 작가를 만나보러 가면 어떻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런데 마침 와우 북 페스티벌에서 ‘와우 북 판타스틱 서재’라는 행사를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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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사계절 출판사 방문 후에 아이가 이번에는 작가를 만나보러 가면 어떻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런데 마침 와우 북 페스티벌에서 ‘와우 북 판타스틱 서재’라는 행사를 하더군요. ‘판타스틱 서재’는 독자와 작가가 만나 책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을 통해 이 시대의 흐름과 이슈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시간으로 야외 카페, 갤러리 등과 같은 편안한 공간에서 책과 작가가 들려주는 즐거움을 느껴보는 행사였습니다.

그래서 쭉 훑어보던 중에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김난주’ 님의 이름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호~~ 지난여름, <커피프린스 1호점>만큼이나 제 관심을 끌었던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GO』『레볼루션 No.3』의 번역자인 김난주 님은 사실 일본 문학 전문번역가라는 타이틀만큼이나 유명한 작품의 번역자입니다. 나의 어린 시절 감동을 주었고 또 아이를 키우는 데 많은 영향을 준 『창가의 토토』를 번역한 분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는 『100만 번 산 고양이』『우리 누나』『겐지 이야기』 등과 고미 타로의 그림책에서 그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 분이랍니다. 그래서 푸른 하늘과 가을 햇살이 멋진 어느 토요일 홍대 앞으로 아이와 함께 나가보았습니다.

책 놀이터

홍대 앞 주차장 거리는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로 붐볐어요. 작가와의 만남 시간이 아직 여유가 있어서 아이와 출판사 부스를 하나하나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각 출판사가 저렴한 가격으로 책을 팔아서 책 구경도 실컷 하고 또 가지고 간 장바구니를 평소 사고 싶었던 책으로 가득 채우는 호사도 누렸답니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엽기과학자 프래니의 책과 <은하철도 999>의 모델이 된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등을 골랐고 저는 요즘 드라마로 방영되는 <이산>을 즐겨보는 큰아이를 위해 한겨레 출판사에서 나온 『한중록』을 골랐습니다.

야외무대 쪽으로 가니 여러 가지 퍼포먼스가 펼쳐졌는데 온몸 전체를 하얀색으로 뒤덮고 책을 든 채 꼼짝 않고 서 있는, 살아 있는 조각상 앞에서 사진도 찍어보고 마술도 감상하고 또 털보 일러스트레이터 강일구 님이 까만 도화지에 하얀색으로 그려주는 캐리커처도 받아보고 잔디 위에 마련된 야외도서관에 앉아 책도 읽어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야외무대에서는 작고한 권정생 작가의 작품을 독자들이 직접 낭독하는 시간도 있었는데요, 중간에 작가의 일생을 음악과 함께 팬터마임으로 엮어내는 공연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는 책 이야기’의 출판평론가 이권우, 그린비 대표 유재건, 동아시아출판사 대표 한성봉 님의 모습(퀸스헤드에서)
동상 퍼포먼스
재미있는 마술을 구경하고 있다.
털보 일러스트레이터 강일구 작가가 그려주는 캐리커처 체험을 하고 있다.
완성된 작품과 함께 작가와 사진 한 장!
권정생 작가 작품 낭독회에서 공연하는 팬터마임 회원들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시간이 되어 아이와 함께 작가와 만남의 시간이 준비된 장소로 갔습니다.

클럽 打의 간판

클럽 打의 입구

페스티벌이 열리는 주변 야외 카페나 클럽이 그 장소였는데 제가 찾아간 곳은 ‘클럽 打’라는 곳이었어요. 평소에는 유명뮤지션들의 공연이 끊임없이 열리는 이색 공간의 클럽이었지만 그날은 무대 앞 의자를 가득 채운 사람들로 문학에 대한 열기가 가득 채워져 있었지요.

시간을 맞추어 갔는데도 벌써 와서 앉아 있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정말 일본 문학과 또 번역자 김난주 님에 대한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답니다.

‘만나고 싶은 번역가 - 김난주와의 만남’이 열리던 클럽 打

편안한 느낌의 김난주 님은 인사와 함께 첫 이야기를 우리 문학계에서 일본 문학이 본격적으로 언제부터 독자들에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청중들에게 아는 일본문학가가 있는지 물어보자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등등 이름만 들어도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 일본 문학작가들의 이름이 쏟아져 나왔어요.

“지금은 일본 문학작품을 손쉽게 구해서 볼 수 있어서 이렇게 많은 작가들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지만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그렇지 못했어요.”

그녀는 70년대 후반 자신이 대학에 다니던 그 시절을 마지막 낭만주의 세대라고 말했습니다. 경희대 국어국문과에 다녔던 그때 시대가 주는 암울함은 대학생들에게 어떤 돌파구나 미래에 대한 희망 등을 이야기하지 못했고 자신 또한 어떤 대안도 없이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었는데 그때 새로 생긴 일본문학과에서 조교로 일하게 된 것이 일본문학과의 인연 아닌 인연이라고 했어요. 그 후 일본문학과 교수님으로부터 일본 유학을 추천받아 일본으로 건너가 생활을 하면서 새롭게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내가 나 자신을 살린다’라는 생각으로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준 거름 같은 시간이었다고 회고하였습니다.

그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번역하여 세상에 내면서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녀 또한 나처럼 두 딸의 엄마로서 처음 결혼과 임신이라는 사건 앞에서 어떤 선택이 필요했는데 그때 국문학을 전공한 일본 문학 번역가가 없다는 사실에 자신을 특화할 기회를 발견하고 시작하게 된 번역가의 길이 자신의 평생의 직업이 되었다네요.

역시 일본 문학 번역가인 남편 양억관 씨와의 번역작업에 대해 묻자 “간단해요. 긴 것은 그가 하고 짧은 단편은 제가 번역을 하죠.” 하며 웃었어요. 실제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 중 『플라이, 대디, 플라이』『연애소설』의 번역 의뢰가 들어왔을 때도 이 기준대로 양억관 씨가 장편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택하고 자신은 『연애소설』을 택했는데 나중에 번역을 마치고 나니 잘한 선택이었다고 했어요.

독자들과 열띤 이야기를 나누는 김난주 님

사실 책을 읽을 때는 감상적인 것보다 시니컬한 작품을 좋아하는데 번역하는 작품은 주로 감성적이고 센티멘털하여 독자의 페이소스를 자극하는 작품을 많이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시간을 두고 곱씹어 보면 볼수록 가깝게 다가오는 작품이 많다고 하네요. ‘번역공장 사장’이라고 한 독자가 칭한 것을 두고 사실 혼자 기획하고 책을 번역하여 쓰고 하는 일을 하니 1인 운영체제의 사장은 맞다며 웃었어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해서는 안 될 것들이 사라지고 해도 되는 것들이 많아졌지요. 독자들의 감성도 그렇게 다양해졌는데도 90년대 우리 문학을 짊어진 작가들이 그 요구에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했지요. 그 틈을 메우고 들어온 것이 바로 일본 문학인 것 같아요.”

수많은 일본 문학을 번역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95년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해서 화제가 되었던 유미리 씨와의 작업으로, 아사히신문과 우리나라 동아일보에 동시에 연재를 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번역했던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8월의 저편』이라는 소설로 밀양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였는데 작가가 힘겹게 작업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매일 아침 마감 시간 30분 전에야 작가로부터 팩스가 날아오면 대기하고 있다가 후다닥 작업을 해서 신문사로 넘겨야 하는 일이 계속되던 1년을 생각하면 김난주 님도 힘든 기억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일본말을 우리말로 옮길 때 번역자로서 김난주가 있다기보다 작품 속에 빠져들어 마치 내가 작가인 양 착각을 하며 등장인물들과 함께하는 식으로 본능적으로 작품에 다가가기에 아직 공포 소설은 번역할 엄두를 못 낸다고 했어요.

김난주 님과 함께

나보다 먼저 시대를 살고 나보다 먼저 두 딸을 낳고 나보다 먼저 그 아이들을 길렀으며 또 나보다 먼저 세상을 보고 자신의 삶을 가꾸어간 사람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또 뜻 깊은 일이네요. 한창 커가는 아이들과 그와 반대로 자꾸만 세상 한편으로 내몰리는 듯한 느낌으로 불안했던 저에게 번역가 김난주 님과의 만남은 ‘앞으로 나는 어떻게 나를 살릴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했답니다.

시간에 쫓겨 강의를 그만 끝내야 할 때 다들 아쉬운 듯했어요. ‘이런 이야기는 밤을 새워서 들어도 재미있는데 말이야.’ 저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지만 또 다른 기회에 다른 장소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기약하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입구에서 사인회가 있어서 저는 『GO』를, 아이는 『100만 번 산 고양이』를 가지고 가니 김난주 님이 환하게 웃으시네요. 사인을 받고 밖으로 나와 아직도 열기가 사라지지 않은 와우 북 페스티벌 행사장으로 향한 저와 딸아이는 한 가지 내기를 했답니다. 각 출판사 부스에서 번역가 김난주의 이름을 찾아내는 놀이지요.

“엄마, 번역자는 다른 나라 말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람이야?”
“응”
“그럼 나는 강아지 말을 번역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뭣이라?”

하하 호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책 향기 실컷 맡고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

[TIP]
* 와우 북 페스티벌 //www.wowbookfes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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