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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필레이션 테이프 단상

컴필레이션 테이프를 만드는 건 반쯤 사라진 유행입니다. 제가 ‘반쯤’이라고 말한 건 이 전통의 절반은 컴필레이션 CD를 통해 살아남았기 때문이죠. 아니, 완성되었다고 하는 게 더 옳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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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를 하고 있는데, 20년쯤 전에 제가 직접 녹음해 만든 테이프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습니다. 실험 삼아 한 번 들어봤죠. 아직 소리가 들리더군요. 잡음이 심하긴 했지만 늘어지지도 않고 괜찮았어요. 마치 골동품상에서 발견한 SP판을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컴필레이션 테이프를 만드는 건 반쯤 사라진 유행입니다. 제가 ‘반쯤’이라고 말한 건 이 전통의 절반은 컴필레이션 CD를 통해 살아남았기 때문이죠. 아니, 완성되었다고 하는 게 더 옳은 것 같습니다. 맘에 드는 음악의 파일을 모아 자기 맘에 드는 순서대로 정리한 다음 CD로 구우면 끝입니다. 이건 LP판이나 다른 테이프의 음악을 따서 테이프를 만드는 것과 거의 같은 작업이죠. 단지 잡음이 없고 깔끔하며 반영구적입니다.

하지만 세상엔 컴필레이션 테이프를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라디오를 이용하는 것이죠. 나름대로 만드는 사람이 간섭할 수 있는 전자와는 달리 후자는 통제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옛날엔 인터넷 사이트가 없었으니 무슨 음악이 언제 나올지는 방송국에서 미리 예고하지 않는 한은 알 수가 없었죠. 플레이어 안에 미리 테이프를 넣어두고 좋아하는 곡의 제목이 언급되면 허둥지둥 달려가 버튼을 누르는 수밖에. 이게 성공하리라는 법도 없습니다. DJ의 코멘트가 음악 시작 전후에 들어갈 수 있고, 음악이 끝나기 전에 프로그램이 끝날 수도 있고, 타이밍이 늦어서 처음 몇 초를 놓칠 수도 있고, 테이프가 짧아서 음악이 끊길 수도 있으며, LP판이 튀어서 한자리에서 빙빙 돌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서스펜스가 넘칩니다! 이런 식으로 녹음에 성공한 음악들이 하나씩 쌓이면 만드는 사람의 취향과 우연이 반반씩 합동 작업을 한 독특한 컴필레이션 테이프가 만들어집니다. 제가 지금 듣고 있는 테이프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인데, 그 통통 튀는 선곡이 그래서 더 재미있습니다.

이런 고생의 결과를 가끔 감상하는 건 즐겁습니다. 이 테이프에는 음악만이 담겨 있지 않아요. 1980년대 또는 90년대 초반의 시간 자체가 담겨 있지요. 당시 사람들의 음악 취향, 녹음된 특정한 날의 방송 상태, 심지어 그 안에는 저 자신도 담겨 있습니다. 음악이 끝나자마자 나오는 ‘탈칵’ 하는 소리는 당시의 제가 허겁지겁 플레이어로 달려가 녹음을 중단시켰기 때문이죠. 그건 제가 낸 소리입니다. 별건 아니지만 들을 때마다 시간여행을 하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요.

테이프를 듣고 있자니 이런 생각도 듭니다. 지금처럼 녹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엔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베토벤 시절의 음악회가 너덧 시간을 끌었던 것도, 그만큼 관객들에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희귀했기 때문이었죠. 요새야 점심값만 며칠 분 투자하면 전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들과 지휘자들을 골라 말러의 천인교향곡을 집이나 사무실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옛날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을 그냥 듣는 것도 평생에 한 번뿐인 기회일 수도 있었죠. 대중적인 음악회가 보편화된 19세기에도 그 유명한 곡을 평생에 단 한 번도 직접 감상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도 많았을 겁니다. 평생 단 한 번만 들었던 사람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을 거고요.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런 그 사람들에게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순수음악이었을까요? 아뇨, 그들에게 5번 교향곡은 평생에 단 한 번 희귀한 경험을 했던 그 특별한 날 전체를 담은 사적인 추억이었을 겁니다. 그들에게 다른 연주자의 5번 교향곡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르죠.

매력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나 여러분이나 그 사람들의 경험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 사람들이 부럽거나 하지는 않죠. 5번 교향곡은 그런 식으로 감상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수학 공식과 같이 물리적 실체를 초월해 존재하니까요. 카라얀에서부터 두다멜에 이르는 수많은 지휘자들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현대의 음악애호가들은 이전 세기의 불쌍한 음악애호가들보다 ‘5번 교향곡’의 진정한 실체에 더욱 정확하게 도달합니다. 여기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건 그냥 좋은 겁니다. 우리가 그런 옛날의 특별하고 달콤한 기억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것도 우리에게 문명의 이기들이 제공하는 선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건 여러분이 더 이상 컴필레이션 테이프를 만들지 않는 이유와도 같습니다. 물론 이런 테이프는 지금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의미하죠. 당시 저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만든 테이프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잖아요. 훨씬 좋은 음질로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 과정이 매혹적이라고 해도 고생을 사서 할 필요는 없지요. 과거의 기억은 과거이기 때문에 매력적인 겁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어요. 지금은 파릇파릇 젊은 사람들도 나이가 든 뒤에 감상적으로 회상할 (잠재적으로) 불편한 물건들과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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