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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마크 트웨인 말년 분위기", 커트 보네거트 마지막 책 『나라 없는 사람』

이건 거의 법칙이나 다름없는데, 장수하는 풍자가들에겐 장기인 유머가 말라붙는 날이 옵니다. 대부분 그들은 모든 유머를 포기하고 컴컴한 비관주의 안에 안주하며 인생을 끝내고 말죠.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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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거의 법칙이나 다름없는데, 장수하는 풍자가들에겐 장기인 유머가 말라붙는 날이 옵니다. 대부분 그들은 모든 유머를 포기하고 컴컴한 비관주의 안에 안주하며 인생을 끝내고 말죠.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세상은 그들이 원하는 것만큼 좋아지지 않고 직업상 인간의 추악함은 너무나도 눈에 잘 들어오니까요. 한동안은 유머로 이겨보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죠. 그 유쾌하던 마크 트웨인이 말년에 얼마나 서글프고 우울한 남자로 전락했는지 아시죠?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 1922~2007)
아무래도 이 리스트에 한 사람을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커트 보네거트 주니어 말이죠. 전 지금 그가 죽기 전 5년 동안 잡지에 발표한 에세이를 모은 마지막 저서인 『나라 없는 사람』을 읽고 있는데, 딱 마크 트웨인 말년 분위기입니다.

이 책에 유머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겁니다. 죽을 준비를 하는 노인네가 갑자기 스타일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죠. 여전히 보네거트는 인간이라는 처량한 동물에 대해 농담을 하고 있고 몇몇 농담은 책 안에 실크스크린 포스터 형태로 담겨 있습니다. “어젯밤 꿈에 플란넬 천으로 만든 케이크를 먹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담요가 없더라!” 같은 거죠. 전 그래프를 그리며 이야기의 공식을 설명하는 그의 문예창작 강의도 좋았답니다. 『나라 없는 사람』은 보네거트가 썼을 법한 책이고, 그가 죽은 뒤에 읽는 감흥은 남다른 바가 있습니다. 그가 여전히 마크 트웨인보다 친절하고 상냥한 남자라는 점도 덧붙여야겠군요. 그는 아무리 비관주의와 인간 혐오에 빠져도 보통 사람들의 선량함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나라 없는 사람』은 컴컴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네거트가 떨어질 수 있는 가장 깊숙한 밑바닥에 떨어져 있는 거죠. ‘내가 죽기보다 싫었던 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열한 세 사람의 이름이 부시, 딕, 콜린이 될 때까지 살아 있는 것이었다’라며 자길 폐암으로 죽이지 못한 담배 회사를 고소하겠다고 을러대는 여든두 살의 노인네의 모습을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 물론 그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오니 좋죠. 그게 우리에게 익숙한 보네거트 유머니까 그것도 좋고.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담배 회사 고소까지는 농담이지만, 그 뒤에 그가 쓴 많은 글, 특히 그가 ‘C학점 상류계급’이며 비정한 정신병자들이라고 부르는 부시 행정부에 대한 에세이에는 유머도 없습니다. 그냥 욕이고 한탄이죠. 하긴 세상이 노골적으로 우스꽝스러워지면 유머리스트는 할 일이 없습니다. 손가락이나 빨아야죠. 풍자가에 대한 제 이론이 정말이라면 그 이유는 이들이 직업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아무리 피가 튀고 폭탄이 터지고 사람 목숨이 날아간다고 해도 코미디는 여전히 코미디고 코미디를 코미디의 소재로 삼을 수는 없으니 그들의 직업은 무의미해지지요. 이럴 때 그들의 분노가 터지는 건 당연하다고 해야겠습니다. 오히려 실제 세계의 우스꽝스러움 속에 숨어 있는 추악함과 어리석음이 더 잘 보일 테니 말이죠.

여기까지 이르면 전 무의미한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아니, 세상은 보네거트에게 조금 더 잘해주어도 되지 않았을까요? 그가 죽으면서 “Everything was beautiful, and nothing hurt”라고 말할 수 있게 도와줬어야 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요? 네, 압니다. 이게 의미 없는 소리라는 건. 우리가 사는 커다란 세상은 작가 따위엔 신경도 쓰지 않지요. 앞으로 점점 더 그렇게 될 겁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그가 ‘C학점 상류계급’이라고 칭한 사람들 중에서도 보네거트의 책을 읽은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 투덜거렸던 이야기들은 허공에 외친 메아리에 불과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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