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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종교 비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킬킬거리며 읽는 중입니다. 재미있군요.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어요. 자신이 이전에 다른 책에서 했던 이야기를 많이 반복하고 있고, 그가 종교 비판에 사용하는 예는 다들 많이 알려진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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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킬킬거리며 읽는 중입니다. 재미있군요.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어요. 자신이 이전에 다른 책에서 했던 이야기를 많이 반복하고 있고, 그가 종교 비판에 사용하는 예는 다들 많이 알려진 것이죠.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명한 신의 존재 증명 같은 건 철학과 학생들은 대부분 배우지만 그 논리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도 없고요. 중세철학자들의 논리가 대부분 그래요. 시대의 환경 속에 갇힌 똑똑한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결론을 정당화하려고 괴상한 논리를 만들어 놓고 우쭐거리고 그렇죠. 도킨스가 그들을 한심하게 여기고 조롱해도 싸요. 지적으로 그들은 그렇게 정직하지 못했죠. 아니, 정직하더라도 그 정직한 정신 상태에서 은근슬쩍 자기를 속이고 있었어요. 시대 탓이니 그들이 어쩔 수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도킨스는 한 가지 면에서 그의 비판 대상보다 우월합니다. 그는 지적으로 정직해요. 우린 그의 논증 방식을 비판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는 뒤에 카드를 감추지도 않고, 논리를 멋대로 뒤틀지도 않으며, 결정적으로 자기가 다루는 영역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도킨스의 비판자들은 그런 면에서 다들 모자라죠. 사실 그가 비판하는 사막 출신 일신교들을 진지하게 믿으려면 이성과 논리를 적당히 포기할 수밖에 없어요. 모순투성이고 말도 안 되는 게 한둘이 아니니까. 적당히 게으른 사람들은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와 타협하며 살 수 있지만 그걸 이성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지적으로 거짓말쟁이가 될 수밖에 없어요.

아직 다 읽지 않아서 도킨스가 언급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거짓말과 교활한 타협 중 제가 가장 싫어하는 표현은 ‘성서적 진실’이라는 것이죠. 전 아직도 가톨릭 신자의 습관이 남아서 가끔 가톨릭 채널을 보는데, ‘노아의 홍수’와 같은, 성서에 기록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때는 이런 자막이 떠요.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성서적 진실과 일치하지 않으며 성서에서는 무슨 서 몇 장 몇 절에서는 이렇게 말을 하는데….” 이 사람들은 바이블 벨트의 근본주의자들처럼 ‘그냥 사실이 아니다’라고도 못해요. ‘성서적’이라는 말을 붙여 토론을 슬쩍 회피하려 하죠. 그럼 성서적 진실이 있고 역사적 진실은 따로 있나? 알게 뭔가요. 하여간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교양인이 기독교와 같은 종교를 믿으려면 이런 식의 서커스는 필수예요. 요새 근본주의자들이 설치고 다니는 것도 그런 서커스에 진력이 나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이전엔 게으른 신자였던 사람들이 무신론자가 되어 이탈하자 열성적인 바보들이 더욱 눈에 들어오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어느 쪽이건 깊이 신경 쓰고 싶지는 않군요.

근데 갑자기 기적이 일어나 도킨스가 욕하는 종교들이 모두 힘을 잃는다고 해도 (할렐루야!) 우리가 이런 자기기만의 홍수에서 구원받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건 종교만의 경우가 아니죠. 예를 들어, 80년대 한국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자기기만은 근본주의 기독교도들과 거의 맞먹었고 전 그걸 어렸을 때 얼이 빠질 정도로 확실하게 겪었죠. 그리고 그게 꼭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예외적 행동인가? 그럴 리가요. 많은 사람이 아이돌 그룹 팬들의 광기 어린 행동이라고 비웃는 것과 정확히 동일한 메커니즘을 따르는 소동은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죠. 정치적 자기기만이나 연예인에 대한 팬덤의 성격을 취하는 경우가 가장 많겠지만, 사실 사람들이 옳다고 믿고 그 믿음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는 모든 주제가 이에 해당해요. 여기선 이성이 통하지 않죠. 그럴 수가 없어요. 그냥 싫다는 게 논리가 무슨 소용.

우리가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도킨스는 이런 악순환이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게 사실이라면 한동안 어림없겠죠.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봐요. 어차피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류의 인위적 진화를 일으킬 날도 머지않았으니, 그때가 되면 이런 우리의 어리석음도 기계적으로 교정될 수 있을지 모르죠. 그렇게 새로 교정된 두뇌를 가진 우리의 후손이 지금 우리가 온갖 이름을 들먹이며 저지르는 우행을 어떻게 바라볼지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예요. 적어도 나쁘지 않은 SF 소재는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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