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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더 잘 보고 싶어 영화를 만든 '징한 사람'

영화평론가 정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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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저 임권택의 영화가 궁금했고, 임권택에 대해서 끝없이 오해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웠고, 무엇보다도 그 이야기를 해야 했기에, 자신이 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기에 이 책을 시작했습니다.

열흘 이상 늦은 글입니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또한 이 글은 평소보다 훨씬 길어질 듯합니다. 이에 대해서도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 모든 글이 다 그랬지만 이 글은 특히나 사적이고 철저히 주관적인 글이 될 예정입니다. 말하자면 이 글은 오로지 저를 위해서 쓴 것입니다. 이 글의 논조와 비슷한 형식의 글을 굳이 찾자면 개신교 신자분들의 신앙 간증이나 워십 혹은 격렬한 연애편지 정도에나 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이 주장하는 바에 동의하지 못하실 분들, 이 글이 선택한 전략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실 분들께 미리 유감의 말씀을 드립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출처: 무비스트)

제가 처음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글을 제대로 읽은 건 고2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씨네21>을 읽으며 집에 오던 길이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분명히 저는 <한겨레>나 <씨네21> 같은 매체를 통해서 그의 글을 스쳐왔을 겁니다. 하지만, YES24를 즐겨찾기에 올려놓고 눈도장을 찍어둔 책의 발매일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헤아리실 여러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문장 위로 시선이 흐르는 것과 잠시라도 시선이 멈춰 그 문장의 이면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곱씹어보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스쳐 지나간 단어로만 이뤄진 글, 단어마다 한눈에 쉽게 뜻을 파악하고 쉽사리 동의할 수 있는 글은 짧게 소비되고 이내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하지만 어느 지점에선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논리에 궁지로 몰려서 그 어떤 반박도 마땅치 않은 문장을 만날 때, 내가 모르던 진실을 들춰내어 그 무게를 따지고 드는 문장을 발견했을 때, 그 자리에 멈춰서 한참을 생각해야 하는 그런 발견의 순간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글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널리 기억되는 피천득 선생의 「인연」 같은 글이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로 시작하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 같은 글을 우리는 마음에 담아두고 가끔 가슴이 답답한 날에 꺼내보며 위안을 삼습니다. 이렇게 읽는 사람의 가슴에 호소하는 글은 모두가 쉽게 동의하고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 안에 자신의 주장을 담은 글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글을 모든 이가 동의하면 그 글은 거짓말이거나 아무 말도 아닌 것과 다름없습니다. 연설문이나 사설, 평론은 글 쓰는 이의 가치관, 주장이 읽는 이의 가치관, 주장과 부딪히는 격돌의 장입니다. 그 사이에는 긍정과 부정, 두 종착지 간의 치열한 줄다리기가 계속됩니다. 이런 글은 필연적으로 어느 지점에선가 반발과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글을 접했을 때 그 안에서 사실과 주장을 분리해내고 개개의 사안에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를 정하고 전체적인 틀에서 동의하는지 동의하지 않는지를 가늠하지 못하면, 여러분은 그 글을 완독하지 못한 것입니다. (혹은 글쓴이가 그 글을 다 마치지 못한 것입니다.) 또는 평론을 읽다가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라는 문장을 만나면 그건 글 쓴 사람이 비겁하거나 자신이 평을 하는 대상이 어떤 건지 그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다는 뜻에 불과합니다. 그런 까닭에, 특히나 평론은 뇌리에 오래 남기 어렵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글 쓰는 사람이 글 쓰는 대상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결정하는 것도 막상 해보려면 쉽지 않습니다. 그 간단한 질문조차 내가 지금 어떤 맛의 무엇을 먹고 싶고, 여기서부터 얼마나 떨어진 식당에서 그것을 팔며, 가격은 얼마나 하는가 같은 여러 가지 변수를 파악하자면 고민이 한없이 깊어지는데, 하물며 어떤 대상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평하는 것은, 타인의 창작물에 대해서 공적인 자리에서 지지 혹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은 여간 고민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타인의 창작물이 어떤 의도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생산이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단독 작업이 대부분인 미술작품이나 음악을 평할 때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하물며 제작, 각본, 감독, 촬영, 조명, 편집, 연기 등 각 분야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이 제각기 조금씩 다른 비전으로 참여해 자신의 의도를 조금씩이나마 관철하는 작업인 영화에 대해서 쉽게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뇌리에 강렬하게 남는 평을 만나기가 어려운 이유는, 글 쓰는 이가 독자에게 부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독자에게 부정당하면서 오래 살아남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지지건 비판이건, 명확한 사실과 기준점을 제시하고 치열하게 파고들어서 그것이 생산적인 대안을 바라볼 수 있는 지점까지 도달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글 자체에 동의할 수는 없어도 그 글이 단순히 무시할 수는 없는 글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런 글을 쓴다는 게 말이 쉽지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어떤 대상에 막말을 하기는 쉬워도 그 막말에 질서정연한 논리의 세계를 밑받침으로 깔아준다는 건 어지간히 확신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글을 읽는 자와 쓰는 자 간의 끝없는 긴장상태, 동의하는가 하지 않는가를 끝없이 물어보는 치열한 글쓰기가 바로 평론입니다. 그 싸움에서 지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제 글의 주인공들에게 쓴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노상 좋은 소리만 하다가 글을 끝내는 저는 참 비겁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부끄럽습니다.)

많은 분이 동의하는 사실이겠지만, 정성일의 글은 길고 어렵습니다. 한 번에 훌쩍 읽어낼 수 있는 글이 아닐뿐더러 그 글이 인용하는 수많은 다른 텍스트와 경구의 의미망을 죄다 연결해서 파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영화를 언급하는 통에 내가 지금 읽는 영화평의 대상이 되는 작품 자체를 몰라 글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더러 생깁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던 그때는 정성일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는커녕 완독하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또한 정성일의 글은 그 판단의 기준이 명확합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명확한 탓에 적지 않은 이들의 원성을 사기도 합니다. 저 역시 정성일이 가끔 저로선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평을 지나치게 단호한 자세로 내릴 때 당혹감을 느끼던 어린애였습니다. 그러니 정성일에 대해 제가 지녔던 인상이라 해봐야 ‘영화 참 열심히 보는 사람. 글 오지게 어렵게 쓰는, 깐깐하기 그지없는 사람’ 정도였을 뿐, 호오의 감정을 느낄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그의 글이 제 뇌리를 파고들어 그 이전과 이후를 완벽하게 갈라놨습니다. 얼마나 강렬했는가 하면, 단순히 정성일이라는 평론가 한 사람에 대한 인상이 바뀐 것에서 그친 게 아니라, 제가 ‘영화’라는 것을 꿈꾸고 사유하는 방법까지 송두리째 바꾼 것도 모자라서 그 이후의 모든 글쓰기에 유령처럼 자신의 흔적을 들이밀고 어떠한 대상에 대해 평할 때 그 자세는 어때야 하는가까지 결정지을 정도였습니다. 그 글은 바로 <취화선> 촬영장 100일 동행기였습니다. 길고 긴 그 글은 서문부터 저를 반쯤 ‘죽였’습니다. 조금 길게 옮겨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영화는 이상한 힘이 있다. 누구라도 영화를 보고 나면 쉽게 입을 열게 만든다. 우리는 소설을 읽고 난 다음 아무렇게나 말하지 못한다. 조이스나 프루스트 같은 미로를 헤치고 나온 다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친구들의 이름이 적힌 수첩을 들추면서 우리의 하루를 돌아볼 뿐이다. (중략) 그러나 영화는 보고 나오면, 그 영화가 난니 모레티건, 허우샤오시엔이건, 제임스 카메론이건, 데이비드 린치건, 임권택이건, 그게 누구의 영화건, 누구라도 영화관 문을 나서면서 방금 보고 나온 것에 대해서 금방 입을 연다. 심지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 화를 낸다. 그러나 우선 솔직하게 고백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우리는 영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보고 나온 영화에 대해서 격렬하게 비난하는 사람에게 그 장면이 그런데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라는 단 한마디 질문은 신기하게도 그 사람을 침묵시킨다. 우리는 영화를 그저 관념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영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과 같다. 그러니까 영화에 의지해서 칸트와 사드를, 라캉과 지젝을, 들뢰즈-가타리와 바타유를, (중략) 또는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중략)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서 영화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영화에 의지해서 철학을 사유하는 것이다. 이 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중략) 만일 당신이 정말 영화를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이라면 영화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기적과 같은 순간을 보면서 이 천지창조의 위대한 비밀이 과장 없이 가슴이 미어지도록 궁금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이 말은 프랑수아 트뤼포의 말이다. (중략) 올리비에 이세야스는 허우샤오시엔의 방 안과 세상 사이를 가르는 창문틀 너머 빛을 만들어 내는 조명의 자리를 들여다보기 위해 타이베이를 방문한다. 아무리 영화에 관한 평을 써봐야 알 수 없는 기적들이 거기 있는 것이다. (중략) 나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만드는 그 순간에 거기에 가서 그 위대한 비밀을 훔치고 싶었다. 하지만 감히 어떻게!

<씨네21> 제331호, 2001년 12월 11일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똑같이 영화감독을 꿈꾸는 동시에 글을 끼적이며 시간을 죽이는 어린애입니다. 그리고 그땐 모든 게 명확하고 단순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성일은 그 길고 유장한 촬영장 동행기의 극히 일부분, 서문에서부터 제 머리를 후려쳤습니다. 깨달음은 영화에 대해 호오를 너무 쉽게 선언하듯 내뱉어 버리면서 정작 우리는 영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서 시작해서, 단순하게 펄럭이는 깃발이나 내리쬐는 햇살에도 감독의 의도가 숨어있음을 알리고는, 무언가(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를 통해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은 반칙이며,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때 그에 대해 제대로 말할 수 없다는 것까지 이어졌습니다. (물론 모든 글 쓰는 이가 정성일처럼 글을 써야 한다는 소리가 절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정성일처럼 글을 쓰는 세상 역시 심심하고 끔찍할 겁니다.) 저는 그를 통해 세상에 대해서 명확하고 단순한 것처럼 말하려면 모호하고 복잡한 현실의 여러 면모를 얼마나 치열하게 살펴야 하는지를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의 태도에서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어떤 영화를 재미있게 소비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세상엔 이렇게나 영화에 대해 순정한 마음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역시 모든 이가 정성일의 방식으로 영화를 꿈꾸고 사랑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길.)

왜 하필 그 글이었는가, 그 글이 그가 이전에 쓰던 글과는 뭔가 달랐는가 하면 또 딱히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상투적인 말이 되겠습니다만, 그 글은 제게 운명적인 만남이었고, 위대한 존재에게서 온 모종의 전언 같았습니다. ‘너는 지금 충분치 않다’는 것을, ‘영화든, 글쓰기든, 너는 좀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 좀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매섭게 일깨워주는 전언 말입니다. 물론 정성일이 저 글을 쓸 때 누군가를 깨우치거나 훈계하려고 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 꾸준히 뒤를 쫓아 따라가며 존경하던 임권택이 현장에서 보여주는 마법의 순간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보고 깨달은 바를 독자에게 중계하고 싶었을 겁니다. 이를테면 순수한 시네필의 자세. ‘나는 이 영화의 비밀을 엿봤다’는 즐거움과 환희에 가득 차서 영화 친구들에게 그 기쁜 소식을 세상 끝까지라도 전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저는 그 마음의 크기와 그 깊음에 질려서 제 글쓰기와 제 영화감독에 대한 꿈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마치 연애할 때 한 번 마음을 빼앗긴 상대가 뭘 해도 아름다워 보이는 것처럼, 저는 그 후로 정성일의 글이 실린 지면은 빼놓지 않고 탐독하고 감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문투를 어설프게 흉내 내고, 그가 하는 것처럼 영화를 신 바이 신으로 탐독하려고 두 눈을 부릅뜨며 영화에 덤벼들었습니다. 저는 그가 <오아시스>를 보고 (저는 찾아내지 못했던) 엔딩 그 이후에 대한 영화의 정치적 판단을 발견해낸 것이 분했고, 그가 이창동이 직조해낸 <오아시스>의 환상과 현실을 들춰가며 영화에 던지는 윤리적인 질문에 감탄하며 그 통찰력을 제 것으로 빼앗아 오고 싶었습니다. 인터뷰 거부 선언을 하고 숨어들어 간 김기덕 감독에게 질문을 던져 그의 속살을 엿보게 해준 정성일의 영화에 대한 진심을 닮고 싶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이 띤 정치적 입장의 모순에 반기를 들면서 보여줬던 그 명쾌한 판단력을 제 것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영화 평론을 20년 가까이 해오면서 한국 시네필 1세대, 당대 최고의 평론가로서 입지를 단단하게 구축한 거대한 산을, 저는 중간 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 단숨에 오르고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영화 이론에 대해 기초적인 공부도 하지 않았던 제가 눈을 부릅뜬다고 해서 안 보이던 것이 갑자기 보일 리는 없었습니다. 당돌했고, 무모했으며, 당연히 실패했습니다. 저는 그다음 해에 보았던 영화학교 시험 두 개를 모두 문턱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의 글은 점점 저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글을 읽고 사유하는 시간의 기쁨도, 글을 쓰는 괴로운 즐거움도, 영화를 보고 꿈꾸는 것도 모두 멀어졌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재수를 준비하던 시절은 흡사 악몽 같았습니다.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의 학원을 아침 8시 반까지 가서 밤 12시가 되어야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1시가 훌쩍 넘는 생활의 무한반복이었고, 그것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정성일이 임권택과 4개월에 걸쳐서 총 64시간에 이르는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결과물이 600여 페이지의 책 두 권으로 나뉘어 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오래 고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달아날 곳이 간절하게 필요했습니다. 저는 하루가 다르게 새 교재를 사야 하는 학원에 다니던 터였고, 아버지에게 새 교재를 사야 한다고 돈을 받는 것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거짓말까지 동원해가며 기어코 두 권 합이 5만 6천 원에 달하고 크기는 우리말 큰사전에 육박하는 책을 사고야 말았습니다. 예전 임권택을 다뤘던 칼럼에서도 언급한 적 있는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였습니다. 그리고 단단히 각오를 하고 덤벼들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첫머리부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본문에서 조금 인용해 보겠습니다.

(전략) 두 명의 임권택으로 이해하는 것은 결국 임권택을 오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임권택은 시행착오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그 이전 영화가 이후 영화를 설명하고, 이후 영화는 이전 영화 없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것을 잊으면 안 된다. 임권택(의 영화들)은 자신이 영화에서 일으키는 이전과 이후의 공명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전을 통해서 이후를, 혹은 그 역을 긍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여기서 긍정은 우리의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이 인터뷰는 그 괴로움을 마주보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에 의해 짓밟히고, 그 안에서 절망하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다시 일어선 사람의 내면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부서져가는 인간들의 나약함에 슬프게 화를 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다시 희망을 다잡으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영혼에 혼신의 힘을 바쳐 예의를 다하는 예술가와의 만남이다. 나는 지금 이 기나긴 대화를 통해 임권택과 당신을 중재하는 중이다.

정성일,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현문서가, 2003
1권 「임권택을 말한다 1934-1984 (1)」 중 p17~18)

정성일은 누군가에게 제안을 받아서 이 책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이 책으로 부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 책을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이 책은 고작 수천 권 정도가 판매되었습니다. 제가 그 몇 안 되는 독자 중 하나였음을, 그것도 책이 나오는 당일에 샀음은 오래오래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을 겁니다.) 그는 그저 임권택의 영화가 궁금했고, 임권택에 대해서 끝없이 오해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웠고, 무엇보다도 그 이야기를 해야 했기에, 자신이 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기에 이 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200여 페이지에 이르는, 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에 대해 그는 ‘임권택과 당신을 중재하’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밝혀둡니다. 자신의 영화적 아버지가 그르지 않았음을 확인하고자, 여전히 그 끝을 다 알 수 없는 그의 깊은 속내를, 그를 이루는 정신적, 질료적 실체를 확인하고자, 세인들이 그에게 보내는 외면과 몰이해로부터 그를 해명하고자 이 기나긴 대화를 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임권택이라는 예술가에 대한 글인 동시에, 글쓴이 정성일 자신이 영화를 보고 이해하는 관점에 대한 글이고, 나아가 임권택이 동시대의 대한민국을, 영화를 통해 세상을 응시하는 방식, 그리고 그를 통해 ‘시네마’를 바라보고 세상을 사유하는 정성일 자신의 방식에 대해 간곡하게 설득하는 글이었습니다. 단순하게 ‘나는 이 영화를, 이 예술가를 옹호한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혹은 그것이 어째서 불가피한가를 혼을 바쳐 설득하고 그에 동의하기를 끝없이 권유하는 글인 것입니다. 이를테면 밤을 새워 적어 내려가도 끝이 나지 않을 연서 혹은 비장한 각오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한 자 한 자 새기는 도전장. 그저 ‘재수생 甲’이었을 뿐인 제 앞에 놓인 그 두꺼운 책은 그렇게 절절하고도 비장하게 첫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 글은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어떤 대상을 옹호하려면 얼마나 진심으로 간곡하게 달려들어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었고, 그 과정은 그 대상을 ‘이미’ 좋아하는 커뮤니티 간의 동의와 자기만족이 아니라 ‘전혀’ 좋아하지 않는 사람까지 염두에 두고 그들의 오해와 편견에 맞서서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지켜내고 관철하는 지난한 길임을 알려주었습니다.

물론 저는 고등학교 때처럼 그의 말에 홀린 듯이 모두 동의할 만큼 순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이 글이 범하는 심각한 긍정의 퍼레이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 책 역시 종종 애정에 홀려 객관을 잃은 부분이 없지 않았으며, 적지 않은 부분에서 임권택이 의도하지 않은 부분까지 너무 앞질러 해석해 버리고 스스로 도취하는 부분 역시 있었습니다. 전 적잖은 부분에서 의아했고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만난 정성일의 글은 반갑고 새로운 만큼이나 낯설고 불편했습니다. 그는 쇼트 자체보다 쇼트와 쇼트가 만나는 그 순간, 그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편집의 질서에 주목했고, 때로는 스토리나 등장인물의 선택보다도 그 쇼트가 만나는 부분에 더 큰 무게를 두고 노감독에게 집요하게 질문해 들어갔습니다. 때로는 조명의 밝기에 숨겨진 의도를 물었고, 점처럼 한없이 멀리 그려진 엑스트라의 움직임에서 오는 감흥에 대해 물었습니다. 어떤 질문은 대답을 찾았고, 어떤 질문은 정성일이 의도한 대로 답을 들었으며, 어떤 질문에선 그가 원하는 답이나 혹은 어떤 합당한 대답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가 영화를 서사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영화적인 사고방식으로, 영화의 메커니즘을 우선에 둔 방법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이 존경스러운 동시에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되레 그 불편함이, 다시 그와 동의할 수 없는 대목을 찾았다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정성일의 글을 읽으면서 끄덕끄덕 고개만 주억대는 것보다, 그렇게 그와 저 사이에서 다름을 발견하고 그 간극을 인정하는 것에서 비로소 생산적인 글 읽기가 시작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동의에 동의만이 계속되는 글은 결국 아무 글도 아니기 십상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 책을 읽으며 드디어 정성일의 글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게 아니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 역시 오만이었습니다. 저는 그해에 보았던 영화학교 시험에서 또 한 번 낙방했고, 수능 역시 모의고사에서 나왔던 평균치보다 한참을 못 보고는 미니멈으로 잡아두었던 목표 학교에 간신히 들어갔습니다. 제 생은 여전히 지리멸렬했고, 세상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모양새를 지녔다는 것을 조금씩 더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동의와 동의할 수 없음을 가르는 경계선에 서서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자리에 설 때,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가끔 정성일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다들 아시는 것처럼 몇 년이 흘러 저는 자그마한 웹진을 하나 차립니다. 애초에 필진끼리 돌려보며 낄낄거리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던 웹진은 제가 쓰던 코미디언에 대한 칼럼 한 편이 ‘불펌’되면서 예상하지 못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카페에 앉아서 혼자 차를 홀짝일 때조차 옆 테이블에서 제 글을 서로 추천하는 사람들의 대화가 심심치 않게 들렸고, 저는 그때마다 한없이 민망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주목. 전 무대의상을 채 입기도 전에 무대 위로 등 떠밀려 얼떨결에 올라간 신인가수가 된 심정이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이 지면을 담당하고 계신 담당기자님에게서 연재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상상하지도 못한 꿈같은 일이었고, 그것이 꿈같았기에 이 외줄타기에 실패해서 끝내 추락하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영화가 구경거리가 아니라 때로는 영화에 대한 사랑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정성일의 말에 대한 대구처럼, 저를 ‘목숨 걸고 TV 보는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뿌듯한 만큼이나 겁에 질렸습니다. 아, 내 글은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닌데. 그런 확신과 그런 열정으로 쓴 글이 아닌데. 매달 두세 명씩 ‘이 사람에게 애정과 주목을 주십사’ 하는 글을 쓰면서 매번 100% 확신하고 글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제대로 확신하지 못한 상태로 누군가를 옹호하는 글을 수천 수백의 사람들을 상대로 생산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어느 순간엔가 정성일이 다시 신기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그가 창간하고 부대끼며 살아낸 <키노>의 시대는 폐간으로 종언을 고했습니다. 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그다음 100년을 생각하며 태어난 잡지 <키노>는 만성적자에 시달리다가 100에서 딱 하나 모자란 99호를 끝으로 분리수거하듯 폐간되었습니다. 이? 그처럼 영화를 흡사 종교적인 태도로 접하는 관객은 찾아볼 수 없고, 영화는 대중예술이니까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말이 떠다녔습니다. 그는 종종 인터넷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네티즌은 그를 두고 ‘어려운 말로 독자를 미혹해서 뭔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글을 포장하는 것으로 자신의 문화권력을 유지하는 가짜 글쟁이’라고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정성일은 그런 지적에 ‘어려운 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쉽게 설명하겠는가. 이해하기 어렵고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거장들에 대한 글을 어떻게 쉽게 쓰겠는가’라고 말한 바 있지만, 여전히 ‘읽기 쉬운 글이어야 좋은 글’이라는 명제 앞에서 그의 글은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심지어는 정성일의 팬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정성일 키드’라는 빈정거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글이 길고 어려워서 대중을 현혹하는 글이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한 대구처럼, 저 역시 제 글이 쓸데없이 길고 어려운 지적을 통해 결국엔 제 잘난 척만 한다는 격렬한 비판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능프로그램은 예능프로그램으로 보면 그만’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졌지요. TV에 나온 연예인이 직접 그렇게 말하는데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예능프로그램을, 코미디언을 치밀하게 살피고 조망하는 작업은 무의미한 일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졸지에 무의미한 일에 정력을 소진하는 꼴이 되자 한없이 외로워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감히 제가 겪는 두려움에 비견해서 정성일의 외로움의 크기는 얼마일까 가늠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좀 외로워 보였습니다. 저는 그가 <씨네21>에서 동료 허문영, 김소영과 함께 ‘전영객잔’ 코너를 시작하던 때의 글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꺼내서 읽어 봤습니다. 또 잠깐 인용해 보겠습니다. 이번엔 좀 깁니다.

(왕가위의 말을 빌려서) 우리 다시 시작하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이 그때이다. 혹은 그것이 <씨네21>이 지금 이 난을 마련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 난을 맡기면서 (사석에서) 제일 먼저 한 말은 여기에 ‘꼭 영화에 관한 평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첨언’이었다. 그러고 난 다음 (공식적으로) 이 난을 소개하면서 <씨네21>이 걱정스럽게 덧붙인 말은 ‘이젠 영화비평을 진지하게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을 듣는다’라는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객관적 상황의 환기였다. 절대적으로 구석에 몰린 상황. (중략) 다시 시작한다는 것. 나와 나의 동료들에게 보내는 하소연. 왜 우리는 버림받았는가? 왜 더 이상 영화에 관한 글은 읽히지 않는가? 혹시 우리는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닌가? 비평이라는 것은 영화를 만든 쪽과 보는 쪽 사이의 (서로가 서로의 방식으로 견뎌온) 두 개의 역사, 두 개의 주관성, 두 개의 삶, 두 개의 태도, 그냥 한마디로 만드는 것과 보는 것 사이의 대화의 활동이다. (중략) 결국 영화에 관한 평이란 무엇인가? 그건 홍상수를 ‘홍상수’라고 말하는 것이다. (중략) 괄호 안을 괴물이나 천사, 혹은 욕망이나 무의식, 또는 브레송이나 타란티노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건 전혀 다른 일이 된다. 우리는 질문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지, 대답을 하거나 혹은 진단을 내리거나 검산을 마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사실상 영화라는 같은 법칙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환기해야 한다. (중략) 위대한 영화를 쓸 때 우리는 위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찮은 영화를 쓸 때 우리는 하찮아진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위대함과 하찮음을 점점 구분하지 못한다. 혹은 하찮은 영화 앞에서 자기만 위대한 척한다. 눈이 멀어갈 때 점점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보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그때 이데올로기가 날뛴다. 우리는 상상력을 동원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해야 한다. 랭보가 그의 어머니에게 보낸 충고. “문자 그대로, 그리고 그 모든 의미로.” 우리의 배움, “보이는 그대로, 그리고 그 모든 의미로.” (중략) 그러므로 첫 번째 다시 시작한다는 것. 이 글은 표류하는 것에 대한 조난신호이며 구조의 메시지이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혹은 삶. 그런데 영화에서 삶이란 무엇인가? 고다르는 영화가 삶보다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랭보의 말을 빌려) 그 어떤 진짜 삶은 지금 여기가 아니라 그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화는 삶의 대변자이다. 그 영화에 대해서 쓸 때 우리는 삶의 대변인으로서 증인의 자리에 서는 것이다. 이제 영화에 관한 글은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씨네21>의 10주년을 맞은 호 바로 다음 그러니까 플러스 1호에 실리게 될 서문, 또는 10주년의 두 번째 시작의 첫 번째 책에 실리게 될 이야기, 세 번째 (혹은 정성일의 첫 번째) 전영객잔에서의 무한정 계속될 것만 같은 외로운 일기 끝.

<씨네21> 제501호, 2005년 5월 11일

그는 그 외로움의 자리에서 ‘절대적으로 구석에 몰린 상황’에서 ‘우리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며 결국에 영화평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습니다. 그리고 글 같은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일 년이 되어가는 제가 동감한다는 것부터 어불성설이었지만, 저 역시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하게 한 시발점을 다시 되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시나 소설이나 수필이 아닌, 평론을 쓰도록 했던, 평론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처음 품도록 했던 그 시작점을 말입니다. 보이는 그대로 그리고 그 모든 의미로 쓰는 것. ‘A’를 ‘A’가 아니라 ‘B’라고 말하지 않는 것. 응당 호출되어야 하는 질문을 바르게 질문하는 것. 그러나 그 단순한 결론을 위해 끝없이 뿌리쳐야 하는 수많은 의미망의 함정에서 달아나는 일을 반복하는 끝없는 도주. 저는 정성일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그가 확신도 박수도 없는 외줄 위에서 어떻게 추락하지 않고 도주하는가, 어떻게 살아남아 어떻게 바르게 질문하는가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그가 임권택의 현장을 궁금해 했던 것처럼. 하지만 감히 어떻게? 그리고 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2007년 4월 5일 목요일 저녁 7시,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1번 출구, 민주언론시민연합 서대문 교육관 2층. 이날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관하는 제60기 언론학교 커리큘럼의 일환으로 정성일이 ‘한국영화 100년사와 비판적 전망’이란 주제로 강연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이날 친구의 권유로 도강을 감행했고, 이내 수강생이 아니라는 사실이 탄로 났고, 정신없이 사과를 하고는 한없이 밀려오는 자괴감과 부끄러움에 자리를 뜰까 하다가, 나중에 수강료를 내기로 하고 그냥 듣는 게 어떠냐는 민언련 활동가의 제안에 그러겠노라 말하고 자리에 눌러앉았습니다. 좌석은 맨 앞의 두세 줄 정도를 빼놓고는 만석이었고, 정성일은 먼저 교실 안에 들어와서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정성일이 마침내 입을 열어 던지는 첫 마디.

“오늘은 제가 이 수업에서 그간 늘 해오던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오랫동안 꿈꿔오던 일이 드디어 눈앞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 강의가 아마 당분간 제가 하게 될 마지막 강의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에게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얼굴을 보기가 무섭게 감독 데뷔 소식을 이런 식으로 전해 듣고 나니 어안이 벙벙해지더군요. 그러고는 종종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진심임을 강조하는 특유의 제스처와, 글이 아니라 말을 할 때조차 ‘~ㅂ니다’로 끝맺는 특유의 말투로 수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는 현재 영화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배급사에 종속된 제작 구조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과거 그 어떤 체계적인 배급망도 없던 시절부터 어떻게 제일제당과 동양제과가 영화업에 뛰어들어서 어떤 식으로 전국에 걸쳐 배급망을 장악하게 되었는지를 유장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한참 이야기가 재미있어질 때면 그는 ‘5분만 쉬었다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했고, 시계를 보면 한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정말 말로 다 옮기는 것조차 어려운 마당에 변변찮은 글로 그의 이야기를 이 자리에 옮기는 건 불가능합니다만, 제가 듣고 싶던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가 평론을 하면서, 아무도 읽지 않는 연서를 매번 적어 내려가면서 그 과정에서 어떻게 지치지 않고 멸망하지 않는지가 궁금했을 뿐입니다. 저는 계속 답을 기다리며 숨을 죽였습니다. 그러다가 정성일이 자기 나이쯤 되면 어지간한 일에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자 허탈해졌습니다. 결국 나이를 먹으면 초연해질 수 있다는 건가. 저는 그건 옳은 이야기인 동시에, 전부를 다 이야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은 점차 당장 출발하지 않으면 귀가하기 어려울 정도로 늦어졌고, 저보다 더 먼 곳에 사는 청강생들은 염치 불구하고 한 명씩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Q&A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참을 무슨 질문을 해야 할까 마음속으로 질문을 조율하던 저는 제 차례가 되자 결국 <천년학>에 대한 이야기로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임권택 감독님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이제 곧 개봉합니다. <천년학>은 중간에 거대 자본이 철수를 하지 않았습니까? 명색이 우리 시대 최고의 거장이 만드는 100번째 영화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제작이 되어서 이번에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만, 개봉관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260여 개죠.”
“예. 하지만 전 그중 반 수 이상이 일주일을 못 버티고 교차상영이나 조조상영만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슬프게도 제 예견은 적중했습니다.) 그렇다면 정성일 선생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이 영화가 우리 시대에 ‘도착’한 것이, 영화에 맞는 ‘바른 시간’에 도착한 것일까요? 자본에 이미 외면을 당했고, 관객으로부터도 외면당할 것이 자명해 보이는 이 시기에 말입니다.”

이 질문에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어지간한 일에 더 이상 상처입지 않는다’던 정성일은 조금은 코믹하게 한숨을 쉬며 ‘제가 그 영화 기획인데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면…’이라고 서두를 떼고 말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늘 하는 말입니다만, 우리는 윤이상을 들으면서 그게 어렵다고 해서 윤이상을 탓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요. 클래식을 들어도 악보 보는 법을 알고, 기타라도 칠 줄 알고 듣는 것과 그렇지 않은 상태로 듣는 건 큰 차이가 납니다. 지식이 전제된 상태에서 접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피카소나 달리를 보면서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건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프루스트나 조이스를 읽으면서 그 난해함에 치를 떨지언정 그 사람들을 탓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최근에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다시 읽으려고 새로 샀습니다. 읽어봐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럼 이해가 가능할 때까지 거푸 읽는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영화에 대해선 쉽게 말합니다. 마치 우리가 돈을 주고 표를 샀으니 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느끼든 그건 내 자유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임권택을, 허우샤오시엔을, 장률을, 한 번 보고 어떤지 너무 쉽게 말합니다. 그건 영화를 아주 천박하게 소비하는 겁니다. 더 이상 관객은 영화를 배우는 자세로 보지 않습니다. ‘내가 돈을 냈으니 나에게 즐거움을 줘’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현대의 극장은 이미 테마파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는 절대로 한 번 봐서 이해가 가능한 작품이 아닙니다. <취화선>이 그랬고, <짝코>가 그랬고, <만다라>가 그랬고, 모든 작품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관객들은 한 번 보고 마치 자신이 그 영화를 다 안다고 믿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천년학>이 그렇게 흥행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영화가 바른 시기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관객들에게 외면받는다고 해서 그 작품이 우리에게 도착한 시간의 의미가 없는 걸까요?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때 막연하게 세상과 자신의 이상이 일치하지 않는 순간에 그가 그걸 어떻게 견디는지가 궁금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의 방법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맞서 싸우는 것이더군요. 자신이 지지하는 영화가 세상과 부딪혀 깨어지더라도, 깨어질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견결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 마치 질 줄 알면서도 싸워야 할 싸움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 순간은 위안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거대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저 역시 설령 제 글이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라 하더라도 제 믿음이 유효한 이상 그 싸움을 계속 해야 한다는 말 같았으니까요. 그래서 그날은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오래지 않아 그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야 진작 들은 이야기여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마감 맞추느라 바빴지요. 그러다가 최근에 그가 <낙타(들)>의 감독 박기용과 함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영화제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의 개최에 즈음해서 영화 전문기자 이동진 씨와 한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그러고는 그를 따라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다시 또 그의 말을 옮겨봅니다.

얼마 ? <씨네21>을 통해서 정윤철 감독이 저를 인터뷰했을 때 정 감독이 마지막으로 ‘왜 영화를 그렇게 만들고 싶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 속에는 아마도 ‘당신이 영화를 만들면 세상이 깜짝 놀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란 뉘앙스가 들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유치하지 않습니다. 또 그런 영화가 있지도 않습니다. 제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는 딱 한 가집니다. 오랜 세월을 영화를 보고 또 영화 책을 읽으면서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같은 자리를 뱅뱅 맴돈다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가슴에 두 손을 얹고)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겁니다. 그게 정말 너무 괴롭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입니다.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해결 방법은 하나입니다. 다른 이와 고민을 나누고 같이 해결해나가는 방법입니다. 그러려면 영화를 만드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제 소망은 사실 영화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보고 싶다는 생각인 셈입니다. 그게 저의 가장 큰 욕망입니다. (중략) 이동진 기자도 영화를 더 잘 보고 싶으시잖습니까. <익사일>을 봤을 때, <레이디 채털리><밀양>을 봤을 때 혹은 홍상수나 박찬욱의 신작을 봤을 때 단번에 핵심을 보고 싶잖습니까. 그런 핵심이 희미하게 보이고 스스로가 불안해질 때 괴롭지 않습니까. 영화에 대한 사랑이 의심스러울 때 너무 불안하지 않습니까. 사랑을 확인받고 싶지 않습니까.

<[인터뷰] 정성일 평론가, 영화제 개최에서 감독 데뷔까지>, 이동진닷컴
네이버 ‘이동진의 영화 풍경’, 2007년 7월 16일


전 이 글을 읽고 그야말로 질려 버렸습니다. 아니 세상에,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오로지 영화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보고 싶다는 이유뿐이라니. 영화에 대한 사랑을 확인받고 싶다는 것뿐이라니.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영화를 더 잘 보고 싶다는 하나의 이유를 위해 영화를 만드는 지경까지 이른 겁니다. 트뤼포의 말처럼,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마침내 영화를 찍는 영화광의 3단계를 그는 차곡차곡 밟아가는 겁니다. 정성일은 <스틸 라이프>의 지아장커가 촬영 현장에선 식곤증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질까 봐 점심을 거른다는 말을 듣고 ‘지독한 놈’이라고 중얼거렸다는데, 저 역시 이 인터뷰를 읽으며 몇 번이나 ‘징한 인간 같으니’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건 도저히 어지간한 열정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경지의 세계였습니다. 아니, 차라리 순정한 사랑의 경지더군요. 저는 그 글을 본 후로 소위 ‘정성일 키드’라는 비아냥 섞인 호칭마저도 제겐 과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따라잡아 볼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니 말입니다.

왜 갑자기 ‘요주의 인물’에 정성일을 썼는지 궁금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일단은 그가 집행위원장인 영화제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이 7월 27일까지 CGV압구정에서 열리고 있기도 하고, 그가 곧 감독으로 데뷔한다는 점도 물론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글이 이 칼럼의 마지막 글이기 때문입니다. 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만성피로에 허약체질인 제가 건강이 심각하게 안 좋아진 것도 있고, 워낙에 밑천이 얄팍한 사람이 되다 보니 계속 퍼내기만 하고 재충전이 안 되어 문장 하나를 생산해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한계를 만난 까닭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군 입대가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터라 신변 정리를 시작해야 할 필요도 느끼고요. 원고 올라오는 속도를 보면 다들 아시겠지만, 저는 뭐든지 굼뜬 사람이 되어 놓아서 지금부터 미리미리 해두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마지막 글이라고 생각하니 누구를 써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원래는 한 번 더 쓰고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마음 가는 사람이 도저히 없는 채로 시간이 흐르더군요. 결국은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고 한 번쯤은 써야만 하는 사람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글쓰기의 원형에 대해서 말입니다. 저는 정성일을 닮아가려고 노력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안 좋은 방향으로만 빗나간 케이스일 겁니다만, 정성일에 대해 쓰면서 어쩌면 여러분께 저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빗대어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임권택이 장승업에 대한 영화를 찍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돌려서 했던 것처럼, 정성일이 임권택에 대해 꾸준히 조명하고 그를 지지하슴 것이 사실 그가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처럼. 저도 이 글을 통해서 누군가를 지지하는 글을 짧게나마 생산해왔던 제 게으른 글쓰기에 대한 변명을 칼럼 말미에 달아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주제넘고, 실패한 글 같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리는군요.

그동안 단순한 사실관계조차 심심찮게 틀리고, 사람 이름을 잘못 쓰기도 하고, 단어 선택을 잘못해서 여러 독자분께 심려도 끼쳐드리고, 연재도 노상 늦었음에도 언제나 제 글을 달갑게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글에 조금이라도 좋은 점이 있다면 다 독자 여러분이 달가워해 주신 덕일 겁니다. 또 미욱한 필자를 데려와서 고생이 많으셨던 채널예스에도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언젠가 또 다른 지면에서 좋은 모습으로 만나 뵐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때 다시 반갑게 인사드리겠습니다. 다들 건승하시길.

2007년 7월 25일 아침, 탈고를 끝내며
tintin

※ 편집자가 알립니다.
'영화를 더 잘 보고 싶어 영화를 만든 '징한 사람', 영화평론가 정성일' 편을 마지막으로 <땡땡의 요주의 인물> 연재를 마칩니다. 그 동안 <땡땡의 요주의 인물>에게 관심 가져 주신 독자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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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땡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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