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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채 · 리영희 · 이오덕 앞에 새겨진 이름 - 신채호 선생과 단재상

단재상은 대외적으로 화려하거나 대중적인 상은 아니지만, 단재상을 운영하는 출판사나 운영위원이나 수상자들은 한결같이 단재 선생의 위대한 민족정신과 학문정신에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는 그런 상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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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정신적 활동의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역사라면 조선민족의 그리되어온 상태의 기록인 것이다.

무엇을 ‘아’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는가. 깊게 팔 것 없이 간단히 말하면, 무릇 주체적 위치에 선 것을 아라 하고 그 밖에는 비아라 하는데, 이를테면 조선 사람은 조선을 아라 하고, 영국·미국·프랑스·러시아 등을 비아라 하지만, 영국·미국·프랑스·러시아 등은 각기 제 나라를 아라 하고 조선을 비아라 하며….”


1936년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단재 신채호 선생

위대한 한국의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은 살아 있는 인류적 양심으로 우리 가슴에 각인되어 있다.
위대한 한국의 역사학자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그의 『조선사 총론』을 이렇게 시작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 ‘일편단심’으로 조국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던 선생은 1936년 2월 21일 오후 4시 20분 여순감옥에서 순국했다. 1880년에 출생했으니 향년 57세였다. 2월 18일 뇌일혈로 쓰러졌는데,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차디찬 일제의 그 감옥에서 서거한 것이다.

선생이 순국했다는 비보를 접하고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선생은 “단재의 죽음으로 나라의 정기(正氣)가 쓰러졌다”고 애도했다. 단재 선생은 “내가 죽으면 시체가 왜놈의 발끝에 채이지 않도록 화장하여 재를 바다에 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선생의 유골은 가족들과 지인들이 여순에서 화장하여 봉안해 와서, 일제 당국이 모르게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선생이 살던 옛 집터에 모셨다.

우리는 그 차디찬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역사가인 단재 선생을 생각하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철저한 비타협 노선으로 일관된 민족해방운동을 펼쳤던 역사학자 신채호 선생. 선생의 삶과 사상으로 우리는 민족사의 빛나는 정신과 이론을 인식하게 된다.

선생은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민족정신을 심어주는 하나의 강렬한 상징 또는 원천이었을 것이다. 나는 항독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다가 나치에 총살당한 위대한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로 프랑스의 정신이 살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에게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있다는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자기 조국을 위해 숨져간 마르크 블로크와 단재 신채호는 공간을 뛰어넘어 늘 살아있는 인류적 양심이자 역사적 진실일 것이다. 행동하는 두 역사학자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가슴에 각인되어 있다.

한길사, 책 만든 지 10주년 맞아 단재상 제정

1986년은 한길사가 책을 만들기 시작한 지 10년째 되는 해였다. 나는 한길사의 10주년을 맞아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 10년은 참으로 치열한 역사적 한 시기였다. 국가사회의 전 구성원이 민주주의와 민족 문제를 온몸으로 껴안으면서 고단한 삶을 치열하게 살았다.

그 10년의 격동하는 역사과정에서 우리의 책 만들기가 진행되었다. 우리가 펴낸 『우상과 이성』으로 저자 리영희 선생이 감옥으로 갔다.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 송건호 선생 등이 필자로 참여한 『해방전후사의 인식』(제1권)도 수난당해야 했다. 그럼에도 한길사의 주요 기획인 ‘오늘의 사상신서’는 1986년엔 100권을 돌파하였다.

1986년은 그러나 무엇보다도 단재 선생이 순국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민족독립운동의 위대한 사상적·정신적 상징이자 실체였던 단재 선생의 순국 50주년을 한 출판인으로서 나는 그냥 방관할 수 없었다. 한길사는 이미 1979년부터 '한국근대사상가 선집'을 기획하기 시작해서 『한용운』『신채호』『김구』『박은식』『김창숙』『조소앙』을 펴낸 바 있다.

‘그래, ‘단재상’을 만들자! 선생의 민족사상을 오늘에 되살리고 학문적 업적을 계승하기 위하여 서거 50주년을 맞아 ‘단재상’을 제정하자.’

나는 이우성 성균관대 교수(한국사)와 의논을 했다. 이우성 교수는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다시 변형윤 서울대 교수(경제학)와 강만길 고려대 교수(한국사)와 의논을 했고, 이 세 분을 ‘단재상 운영위원’으로 모셔 단재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세 운영위원과 의논하여, 단재상은 한국사·한국사상·한국사회 연구에 뛰어난 업적을 낸 연구자에게 주며, 그 연구의 방향 및 내용이 단재 정신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규약을 만들었다. 사실 단재상은 여느 다른 상과는 달리 학문과 창작의 정신과 지향, 그리고 실천성이 깊이 고려되어야 한다.

단재 선생의 이름으로 주는 상이란 당연히 그러해야 할 것이었고, 단재상의 시상을 통해 나름대로 민족사회와 민족구성원에게 민족 문제와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그 어떤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 그리하여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심사과정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수상자의 민족과 국가사회에 대한 삶의 자세와 지향까지 깊이 고려하였다.

시상식은 민족주의적 지식사회의 ‘풍경’

1998년 『20세기의 문명과 야만』(한길사)으로 제12회 단재상을 받는 이삼성 선생.

나는 단재상의 시상식을 좀 다르게 하고 싶었다. 민주주의 문제와 민족문제, 인간의 현실 문제를 성찰해보는 기획이자, 이 시대가 요구하는 그 어떤 문제의식을 제기하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수상자의 연설은 중시되었다. 80년대 중반 이후 민족주의적인 지식사회의 한 풍경을 단재상 시상식을 통해 관찰할 수 있었다.

제1회 수상자는 『조선전기 토지제도사 연구』(지식산업사, 1983)를 저술한 김태영 경희대 교수였다. 『조선전기 토지제도사 연구』는 과전법(科田法)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토지제도의 성격을 규명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로 평가되었다. 김태영 교수는 수상연설에서 말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단재 선생은 우리 민족사의 가장 참담한 시기를 가장 훌륭하게 살다 가신 분입니다. 역사학자로서, 독립운동가로서, 독립운동 이론가로서, 선생은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최선의 실천력을 발휘하신 분입니다. 아마도 한 인간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신 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987년 제2회 단재상은 『민족경제론』(1978, 한길사)의 저자 박현채 선생에게 주어졌다. 박 선생은 『민족경제론』뿐 아니라 『한국농업의 구성』(1981, 한길사), 『한국경제와 농업』(1983, 까치), 『한국자본주의와 민족운동』(1984, 한길사), 『한국경제구조론』(1986, 일월서각) 등을 통해 한국사회경제 연구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을 제기하면서 이 땅의 주체적인 사회과학 모색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 운영위원의 견해였다. 박현채 선생은 수상연설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오늘의 수상을 나 자신의 경제학 연구에 대한 업적 그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그와 같은 연구결과를 평가하게 하는 역사적 상황의 진전에서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나의 경제학 연구의 성과는 역사 앞에 충실한 삶을 다짐하면서 역사적 요구가 있는 곳에는 참여하겠다는 원칙 위에 세운 소신입니다.”

이경의 숙명여대 교수(경제학)는 박현채 선생의 이론은 “주로 경제학의 체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면서 역사에 대한 깊은 인식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으로, 선생의 민족경제론은 단순한 이론체계가 아니라 온몸으로 살아온 인생의 반영기도 하다”라고 했다.

이오덕 선생의 우리말 우리글 운동

제3회 단재상을 받은 고 이오? 선생. 아동문학가인 이오덕 선생의 수상소감은 선생의 교육정신과 문학사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작품'이었다.

1988년 제3회 단재상은 교육운동가이자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에게 주어졌다. 한국사·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자가 아니라 교육운동가이자 아동문학가에게 단재상을 주게 되었는데, 이는 단재상운영위원회가 이오덕 선생의 교육철학·아동문학론을 그만큼 높이 평가한 것이다.

『시정신과 유희정신』(1977, 창작과비평사),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1977, 청년사), 『삶과 믿음의 교실』(1978, 한길사) 등으로 아동문학과 어린이 교육운동에 새로운 문제의식과 방향을 제시한 이오덕 선생은 어떻게 보면 단재 선생의 정신과 실천에 참으로 일치한다고도 할 것이다.

‘이오덕 선생의 교육이론과 문학사상’을 주제로 한 강평에서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은 “이오덕 선생을 단재상 수상자로 결정함으로써 단재상은 그 역사적 의미와 현실적인 실천의지를 더욱 넓혔다. 이오덕 선생의 교육관은 단재 선생의 반제의식과 직결된다”라고 했다.

이오덕 선생의 수상연설은 선생의 교육정신과 문학사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작품’이었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출판협회 강당에서 열린 수상식에는 문익환 목사 등 200여 명이 참석했는데, 모두 이오덕 선생의 신념에 찬 수상연설을 경청했다.

“말이 근본이다. 글은 말에서 생겨난다. 그런데 지식인들의 글은 말에서 너무 멀리 떠나 있다. 글이 살아있는 말이 아니고, 삶에서 우러난 겨레의 말법으로 쓰는 글이 아니고, 글에서만 쓰는 말, 밖에서 들어온 말, 남들이 쓰는 말을 따라서 쓰는 글이 되었다.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은 무식하고, 생각이 얕다고 생각한다. 말을 떠난 글이 이제는 횡포를 부려 순수한 우리말을 쫓아내고 주인 노릇을 하면서 겨레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 즉 말이 으뜸이던 역사가, 글이 으뜸이 되어 말이 글의 지배를 받는 잘못된 역사가 되었다. 이제라도 어머니가 가르쳐준 말, 조국이 가르쳐준 말, 내 말을 도로 찾아 배워야겠다.”

나는 이오덕 선생을 1980년대 초반부터 만나 이런저런 책을 기획했는데, 선생은 늘 우리말 우리글에 대해 말씀했다. 선생은 함석헌 선생의 말과 글을 높이 평가했다. 나는 이오덕 선생을 만나면서 계속 우리말 우리글에 대해 집필하시라 독려했고, 이렇게 하여 『우리글 바로쓰기』 전 3권(1989)과 『우리 문장 쓰기』(1992)를 출간하게 된다.

『우리글 바로쓰기』『우리 문장 쓰기』는 선생이 저술한 수많은 책 가운데 불후의 명저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권변호사 조용환 씨는 언젠가 나에게 말한 바 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못지않게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쓰기』가 중요한 책이라고.

그 어떤 한글학자·국어국문학자보다 선생의 우리말 우리글 운동은 80년대 90년대의 역사변혁기, 우리정신 우리 사상을 바로 찾아가는 운동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고, 그런 차원에서 단재상이 이오덕 선생에게 주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이자 참 선생’

1986년 제4회 단재상은 김진균 서울대 교수(사회학자)에게 주어졌다. 『사회과학과 민족현실』(1988, 한길사)의 저술뿐 아니라 80년대 학술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지식인·학자로서의 실천이 높이 평가받았다.

『사회과학과 민족현실』은 그의 1980~1984년 해직교수 시절에 구체적으로 체험한 삶에서 우러나온 저술이었다. 이종오 계명대 교수는 김진균 교수를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이자 참 스승”이라고 축사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한국지식인의 창조성과 역사성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며 그 대표적인 지식인으로서 김진균 교수를 내세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80년 ‘지식인 134인 선언’과 관련하여 해직되었지만, 한국산업사회연구회 초대회장, 청년학교 교장, 4월혁명연구소 소장,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등을 맡아 80년대 학술운동·지식인운동을 선도했다. 나는 김 교수를 1980년 3월 22일 오후 서대문 네거리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해 ‘서울의 봄’에 선생은 서울대 학생들과 함께 ‘민주화 행진’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이후 한길사가 펴내는 무크지 <한국사회연구>의 편집위원과 1985년부터 전개된 ‘한길역사강좌’ 등에 참여하면서 우리와 함께 여러 일을 하게 되었다. 선생은 1986년 8월 안동 병산서원에서 열리는 한길사 10주년 기념 ‘지식인 대토론대회’에 주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늘 ‘큰형’같이 편안했던 선생은 해직 시절 안암동 우리 회사를 늘 방문하곤 했는데, 일이 끝난 후 우리 직원들과 함께 종로 2가에 있던 고고클럽을 가기도 했다. 선생은 2004년 2월 15일에 별세했다.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단재상 수상연설을 통해 김 교수는 ‘자본주의와 공동체적 삶’이라는 주제로 ‘민중에 기초하는 민족의 사회과학’을 제창했다.

단재 선생의 위대한 민족정신을 되새기는 자리

단재 신채호 선생 사적비. 선생은 1936년 여순감옥에서 옥사한 후 이곳에 와서 묻혔다. 사진은 1985년 '남한강 유역 민족사의 전개와 민중의 삶'을 주제로 한 제3회 한길역사기행 당시 찾아갔던 때의 모습이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단재상은 학술상과 문학상으로 확장되었다. 이선영 연세대 교수(국문학)와 고은 시인, 소설가 최일남 선생이 문학부문의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다.

제5회 단재상의 학술상은 고려대 최장집 교수, 문학부문은 소설가 조정래 씨가 수상했다. 제6회 단재상은 숙명여대 이만열 교수(한국사)와 김남주 시인이 수상했다. 제7회 단재상은 학술부문은 선정되지 못했고 윤정모 씨가 장편소설 『들』로 문학부문을 수상했다. 단재상은 때로는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단재 신채호’라는 이름이 그만큼 무겁기 때문이다.

그 이후의 단재상 수상자는 이균영(한양대 교수·한국사), 신경림(시인), 리영희, 고은, 강만길, 이이화(한국사), 최명희(소설가), 황석영, 노동은(목원대·음악학), 이삼성(한림대 교수·정치학), 염무웅(영남대 교수·문학평론), 김종철(영남대 교수·영문학), 임철우(소설가), 정도상(소설가), 서중석(성균관대 교수·한국학), 민족문제연구소, 김동춘(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 선생 등이었다.

올해로 제21회를 맞는 단재상은 한승헌 변호사와 박원순 변호사가 공동으로 수상하게 된다. 한승헌 변호사는 자신이 참여한 사건의 변론을 집성한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 실록』(전 7권, 범우사)으로, 박원순 변호사는 권력에 의한 고문을 다룬 『야만시대의 기록』(전 3권, 역사비평사)으로 수상하게 되었다.

두 인권변호사의 이 장대한 작업은 우리 현대사를 지배한 권력의 성격과 실체를 규명하는 준엄한 역사실록문학이라고도 할 것이다. 인권변호사로서의 빛나는 헌신의 기록이다.

사실 단재상을 시상하는 자리는 그 어느 상보다도 시상식장의 분위기가 한층 고양되었다. 점차 민족정신·민족사상을 생각하는 또 하나의 공간이자 사건이 되어갔다. 역대 수상자의 연구주제 및 면모를 통해 단재상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터이지만, 때로는 수상자들이 단재상을 받았기에 단재 정신에 걸맞지 않은 다른 상을 사양하는 사례도 생겼다.

주체적인 민족출판을 강조한 단재 선생

단재상은 대외적으로 화려하거나 대중적인 상은 아니지만, 단재상을 운영하는 출판사나 운영위원이나 수상자들은 한결같이 단재 선생의 위대한 민족정신과 학문정신에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는 그런 상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한 출판인으로서 20년 이상 단재상 뒤에서 심부름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현재 단재상운영위원으로 이이화·이만열·임헌영 선생이 참여하고 있다. 초기에 운영위원으로 참여하신 이우성 선생은 처음부터 나에게 ‘소박한 상금’을 강력하게 말씀하신 바 있다. 단재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은 적도 있는 이 선생님은 단재상의 정신과 방향에 대해 참으로 깊이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한 시대의 민족적 지성을 모시고 단재상을 운영하는 그 자체가 우리에겐 ‘민족교육’ 같은 것이었다.

단재 선생은 책 만드는 사?들에게 참으로 의미 있는 글도 남겼다. 나는 책을 만들면서 때때로 단재 선생의 ‘출판관’을 떠올리기도 한다.

‘서적자’, 곧 출판인은 ‘구서’(舊書)와 ‘신서’(新書)를 간행해야 한다는 것인데, 구서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 사상과 정신을 새롭게 해석해서 담아내는 출판행위를 의미하고 신서는 날로 새롭게 전개되는 세계와 문명을 제대로 담아내는 책을 의미한다. 출판의 존재 이유와 기능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일찍이 안중근 의사는 “하루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한 개인이나 국가·민족공동체의 삶에서 그 구성원의 ‘독서’는 그 국가·민족공동체의 존재·발전에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안중근 의사는 우리에게 힘차게 말하고 있다.

신채호 선생은 특히 주체적인 민족출판을 강조했는데, 선생의 출판정신·출판관은 이 험난한 글로벌 시대에 더욱 빛나는 대목이다. 한 출판인으로서 나는 안중근 의사와 단재 선생을 통해 독서의 아름다운 가치와 책의 존엄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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