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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특유의 요괴 문화를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은 - 『주작의 활』

부한국 TV에는 여전히 검열이 있다. 물론 공중파 방송이란 아이부터 노인까지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가 대상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제한과 차이를 두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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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TV에는 여전히 검열이 있다. 물론 공중파 방송이란 아이부터 노인까지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가 대상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제한과 차이를 두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프로그램을 심야시간으로 옮긴다거나, 아예 공중파에서는 하지 않는 것도 동의할 수 있다. 요즘에는 케이블 프로그램이 다양해져서 공중파가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 수가 있으니까.

그러나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일전에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의 사주풀이를 했다가 미신 조장 등의 이유로 주의인가를 받은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미신 조장’ 같은 규정이 있는지는 생각도 못했다. 사주나 역학이 과학과 일치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을 미신 조장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개발독재의 유물에 불과하다. 그런 사고방식은 박정희 정권에서 ‘근대화’를 기치에 내걸고 시골의 무당집이나 토속신앙을 말살하려 했던 것에서 기인한다. 폭력적인 근대화 탓에 과학이나 기독교가 아닌 전통적인 무속신앙은 완전히 ‘미신’으로 찍혀버렸다. 하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미신 조장’이란 이유로 TV에서 사주나 역학을 배척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사주나 역학이 어느 정도 과학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입증되었고, 점이나 굿 역시 전통문화의 일부분이다. 점이나 굿을 미신이라는 이유로 배제해야 한다면 제사 역시 미신에 불과할 것이다.

사실 불만을 말하고 싶은 것은 사주나 역학 때문이 아니다. 똑같은 ‘미신 조장’이라는 이유로 TV에서 볼 수 없는 귀신이나 요괴 때문이다. <이야기 속으로>나 <토요 미스테리 극장> 등 사람들이 겪은 공포체험이나 귀신 목격담을 재현한 프로그램은 공중파에서 잠시 방영하다가 사라져버렸다. 똑같은 이유다. <전설의 고향>이 픽션이라는 명목으로 그나마 전래의 귀신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만, <이야기 속으로>는 현대의 귀신 이야기라는 이유로 사라져야만 했다. 이런 프로그램을 위해서 귀신이 있나 없나를 논쟁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귀신이나 요괴는 우리의 전통문화에 속하는 것이고, 현대의 문화산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만 동의하면 된다. 일본은 국가에서 온갖 괴담이나 귀신 이야기 등을 모은 ‘괴이 요괴전승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관리까지 하고, 그것이 『이누야샤』『나루토』 같은 뛰어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힘이 된다.

이노우에 준야의 『주작의 활』을 보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면서 짜증이 났다. 왜 한국에서는 귀신이나 요괴 같은 것을 사라져야 할 것, 믿으면 안 되는 것으로 몰아붙이는 걸까. 설사 믿지 않더라도, 그것을 다양하게 즐기는 것은 필요한 일이 아닐까? 『주작의 활』은 신기를 받아 요괴와 싸우는 내용이다. 아주 특별한 것은 없지만, 각자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팀으로 구성되어 요괴들과 싸워나간다는 구성은 일본 만화에서 전형적으로 보던 것이다. 그런 전형성이 균형감 있게 잘 짜여 있다. 게임에도 참여하고,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 <요괴대전쟁>에서 캐릭터 디자인도 했던 이노우에 준야의 이력답게 주인공과 요괴의 설정과 묘사는 꽤 훌륭하다. 요괴가 등장하는 문화상품으로 크게 부족한 것이 없다.

일단 『주작의 활』의 배경이 되는 곳은 소교토로 불리는 K현의 미야코노시다. 소교토라 하는 곳은 한때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를 연상하게 할 만큼 과거의 도시계획과 건물이 잘 보존된 곳을 말한다. 함부로 그런 이름을 붙일 수는 없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 소교토라는 이름을 쓸 수 있게 허용해준다. <음양사>에도 나오듯이 교토는 동서남북으로 잘 정비된 도시였고, 마물이 침입하는 것을 막고자 여러 장치를 해 놓았다. 『주작의 활』의 배경인 미야코노시 역시 그런 설정이 있고, 요괴와 싸우는 신비한 마을로서 제대로 활용된다.

로쿠조 신사에서 기묘한 사건이 일어나 신주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얼마 후 고등학생인 요스케는 신사에 놀러 갔다가 실수로 조그만 사당을 부수고, ‘주작의 활’이란 신기를 얻는다. 그리고 신사의 무녀며 귀신과 요괴를 볼 수 있는 전학생 요모기를 만난다. 신기를 얻은 사람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바쳐야 하고, 누군가에게 조종되는 요괴인 권족을 물리쳐야 한다. 이후 요스케는 ‘청룡의 창’을 받은 학교의 선생 에조, ‘현무의 방패’를 받은 초등학생 이로리, ‘백호의 발톱’을 받은 켄지와 함께 권족에 맞서게 된다. 주작의 활은 원거리에서 마음으로 조종을 하여 어떤 것이라도 명중시킬 수 있고, 현무의 방패는 무엇이든 방어할 수 있다. 청룡의 창은 중거리 공격용이고, 백호의 발톱은 근거리에서 빠르게 적을 공격한다. 『주작의 활』의 주인공들은 전대물처럼 각각 다른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팀을 이루어 더욱 강한 능력을 발휘하고, 계속해서 미야코노시에 나타나는 권족을 물리쳐간다.

『주작의 활』이 탁월한 걸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주작의 활』은 일본 특유의 요괴 문화를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은 작품이다. 작은 설정부터 요괴의 갖가지 특징, 신기를 가진 인간과 요괴의 대결 등 크게 빠지는 것이 없다. 『주작의 활』은 요괴에 대한 사회적 기반이 충분히 공유된 다음에 안정적으로 나올 수 있는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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