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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태 보러 갔다 독특한 연극 한 편 만나다, 연극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

그렇다, 유지태의 목소리는 참으로 근사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려 해도 나사가 조금씩 느슨해지는 기분이다. 덕분에 극에 전략적으로 집중하기는 했으나, 한참을 지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스토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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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유지태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만은(여자가 청각에 약하다는 설과 방송일 하는 사람이 목소리 좋은 남자를 좋아한다는 설의 교집합에 속하니 도리가 없다) 유독 귀가 쫑긋 세워지는 터라, 단 몇 미터 앞에서 들려 올 그의 멋진 목소리를 감상하러 공연장을 찾았다.

일반 소극장보다는 다소 큼지막한 무대. 그 무대 앞쪽에는 갖은 꽃이 활짝 피어 ‘귀신의 집으로 오라’는 제목을 의심케 한다. 드디어 유지태 등장! 순간 연극 무대라는 사실을 잊고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탄성. 186cm의 장신이 대형 스크린이 아닌 조그마한 무대에 올라 관객과 시선을 맞추며 멋진 목소리를 실어 나르니, 객석은 어느덧 헤실헤실 웃으며 극에 쏙 빠져들고 말았다.

그렇다, 유지태의 목소리는 참으로 근사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려 해도 나사가 조금씩 느슨해지는 기분이다. 덕분에 극에 전략적으로 집중하기는 했으나, 한참을 지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스토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극이 중반을 넘기도록 인우(유지태)의 집에 귀신이 사는 것인지, 인우도 귀신인지조차 판단할 수가 없다. 답답하다.

특별한 연기는 없었지만 유지태의 목소리는 역시 근사했다

객석에서 이렇게 자신의 머리를 탓하거나 구성의 난해함을 탓하고 있을 때, 무대에는 카메라를 들쳐 멘 PD와 퇴마사, 평론가가 등장한다. 타이틀은 모두 훌륭한데, 사실은 시청률 한 번 높여서 밥줄을 보전하려는 PD와, 승가고시도 안 보고 스님 행세하다 전향한 퇴마사, 외국의 유명 대학 출신인 척하지만 사실은 별 볼 일 없는 평론가의 조합이다. 빈 그릇이 요란하다고 이들의 등장으로 고요하던 무대는 순식간에 시장통이 돼버렸다.

귀신이 출몰하는 집을 방송에 내보내 시청률 한 번 찐하게 올려보려는 PD는 귀신이 보이는 것처럼 연기하는 퇴마사와 이에 시시콜콜 과학적 이론을 전개하며 딴죽 거는 평론가의 수다에 만족하며 카메라를 돌린다. 그런데 이 퇴마사와 평론가, 동작이 유난히 화려하다 했더니 지난해 뮤지컬 <아이 러브 유>에 나란히 등장했던 김태한과 방진의가 아닌가.

뮤지컬 무대의 화려한 음악과 의상에 자연스레 녹아났던 그들의 연기는 역시 연극 무대에서는 튄다. 다행히 이번 무대에서는 어색한 것이 아니라 활력소로 작용하는데, 방진의의 유독 비음 강한 수다야 익히 알았지만, 김태한의 액션 연기는 새로운 발견이다.

퇴마사인 그는 한 손에 방울 달린 술을 들고 주술을 외우는데, 희뿌연 눈동자를 드러내고 숨도 쉬지 않고 주절대는 모습이 영락없이 신내림 받은 수준이다. 게다가 팔다리를 번쩍번쩍 쳐드는 동작이며 허리를 앞으로 뒤로 퍽퍽 꺾어가며 도리질치는 모습이 진짜 퇴마사한테 전수받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실감난다. 덕분에 객석은 난해한 극 전개를 까마득히 잊고 그들의 튀는 연기를 유감없이 즐긴다.

퇴마사로 열연한 김태한

그의 실감나는 연기 때문일까? 드디어 퇴마사 눈에 모녀 귀신이 실제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퇴마사는 그들의 가엾은 영혼을 달래고자 살풀이에 들어가고, 도통 이해되지 않던 극의 전개도 실타래 풀리듯 아귀가 맞아간다. 물론 이 과정에서 김태한과 방진의, 또 엄마 역을 맡은 박명신의 연기는 더욱 빛을 발한다. 모두 머리며 옷이 풀어헤쳐지고, 신발이 벗겨질 정도로 몸을 내던진 열연을 보여준 것이다. 그 누구도 이 작품에 이 같은 액션(?) 연기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대는 그렇게 한바탕 살풀이를 하고 나서 고요함을 되찾는다. 귀신은 한을 풀고 제 갈 길을 찾아가고, PD와 퇴마사, 평론가도 뭔가에 홀린 듯한 마음을 추스르고 귀신의 집을 나선다. 남은 것은 인우(유지태), 그리고 인우의 실체에 대한 관객들의 의문. 그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하는 내레이터 영혼쯤 되는 것일까? 아니면 유지태를 무대 위에 올리려고 어쩔 수 없이 만들어낸 억지스러운 인물일까? 사실 이번 무대에서 유지태의 연기는 전혀 돋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모녀 귀신의 한을 풀어주려는 의식이 진행된다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는 ‘유무비’가 두 번째로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그리고 유무비는 유지태가 지난 2005년 설립한 제작사다. 이번 작품에 유지태는 원작에서 제작, 배우에 이르기까지 1인 3역을 과시했다. 흥행작이 아닌 창작극으로 도전하는 실험 정신은 돋보였지만, 실험 정신은 항상 객석이 극을 이해하는 정도와 반비례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또한 ‘유지태’라는 대형스타를 앞세우지 않고서는 관객몰이를 기대할 수 없는 한계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나 ‘유지태의 음성’ 하나만 기대하고 갔던 소극장에서 독특한 연출과 미처 몰랐던 김태한의 멋진 연기를 보고 왔으니 남는 장사라 하겠다. 아마 ‘유지태’를 보고자 갔던 관객도 다른 배우들의 열연에 눈길이 돌아갔을 것이다. 그것이 제작자인 유지태의 의도였다면 100% 성공한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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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
2007년 4월 10일 ~ 5월 27일
(화,수,금 오후 8:00 / 목 오후 4:00, 8:00 / 토 오후 4:00, 7:00 / 일 오후 4:00 / 월 쉼)
제일화재 세실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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