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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프랑스 문화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프랑스 문화원에서 도서 바자회가 있다고 하는데 갈래?” “프랑스 문화원?” 순간 나의 기억은 한참 전의 어느 봄날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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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프랑스 문화원에서 도서 바자회가 있다고 하는데 갈래?” “프랑스 문화원?” 순간 나의 기억은 한참 전의 어느 봄날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느새 좁고 컴컴한 프랑스 문화원의 영상실 한 귀퉁이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프랑스 영화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요즘 소위 말하는 ‘아트 무비’를 상영하는 극장도 변변하게 없던 터라 프랑스 문화원은 영화 좀 본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거쳐 가야 하는 필수 코스 같은 곳이었다.

프랑스 문화원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 맞은편 경복궁 뜰 한 자락에 앉아 봄볕 아래 책을 펼치고 있으면 그야말로 문학소녀의 완성판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영화와 책을 볼 시간에 육아 잡지와 씨름하며 왕 초보 엄마로서 몇 년을 보내다 보니 어느 날 신문에 ‘프랑스 문화원 이전’이라는 기사가 실렸고 ‘한번 꼭 다시 가봐야지’ 하던 것이 늘 일상에 밀려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기만 했었다. ‘그 프랑스 문화원이란 말이지?’ 친구에게 “당연히 가야지”라고 답을 보내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렸다.

2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8번 출구로 나가 서울역 쪽으로 걸어가다 삼성프라자를 지나면 대한상공회의소 맞은편 우리빌딩을 발견할 수 있다. 빨강, 파랑, 하양의 삼색 국기가 걸려 있어 찾기가 쉽다. 오른편으로 무척 가까이 보이는 남대문의 모습이 이정표 역할을 할까? 도서 바자회는 11시부터였지만 30분쯤 일찍 도착한 친구와 함께 문화원으로 올라가 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유리로 만든 동그란 터널 모양의 문화원 입구는 마치 첨단을 소재로 한 영화세트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쟁이처럼 사뿐사뿐 걸어가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갔다. 입구의 작은 로비에 마련된 도서 장터에는 벌써 사람들이 찾아와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프랑스 문화원 입구

진열된 도서는 모두 프랑스 문화원 내 미디어 도서관에서 소장하던 책과 잡지로, 문화원에서는 이렇게 1년에 한 번 정도 도서 바자회를 여는데 가격은 90% 할인된 1,000원부터 최고 4,000원까지여서 발품만 잘 팔면 원하는 책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아이들에게 선물하려고 『땡땡의 모험』을 사려 했지만 벌써 누군가에게 팔렸단다. 그 소리를 들으니 왠지 기운이 빠졌지만 눈앞에 헌책방의 트렌드 ‘가로본능’의 책이 수북이 쌓인 걸 보니 호기심이 발동하여 이 책 저 책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게 되었다.

도서 바자회 모습

옆에서 친구가 “너는 프랑스 말도 모르면서 책 구경이 그리 좋으냐?”하고 물어본다. “글쎄, 우리말이든 프랑스 말이든 내 맘에 드는 책을 고르는 재미는 마치 보물찾기하는 것 같아”라고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이럴 줄 알았으면 불어 좀 미리 조금이라도 배워둘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내용일 텐데 읽지를 못해서 만져보기만 하고 내려놓아야 하는, 프랑스 문학작품을 다룬 책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대신 이것저것 아이들을 위해 낯익은 그림책을 골라보았다. 둘째가 좋아하는 『메들라인』을 1,000원에, 근사한 3D 입체 안경이 들어 있는 『이집트』『바다』 등의 과학책을 2,000원에, 『윌리를 찾아라』 같은 종류의 그림책으로 미국 인디언의 역사를 다룬 책을 1,000원에, 나일강과 이집트의 역사를 다룬 특집과 이집트 전역의 상세 지도가 실린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를 1,000원에, 마지막으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펴낸 것으로 한국과 만주, 사할린의 1906년부터 1907년 사이 모습을 독일인 헤르만 산더라는 사람이 찍은 사진으로 가득한 사진집을 4,000원에 구입하였다. 특히 이 사진집은 정말 보물을 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을사조약이 막 체결되고 나라 안이 격변의 소용돌이로 치닫던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생생한 모습과 그 배경이 되는 옛 서울, 다른 지역의 모습이 사진 속에 담겨 마치 말을 걸어올 것만 같았다.

도서 바자회에서 구입한 책

책을 고르고 나서 시계를 보니 시간이 좀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문화원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둥근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평일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한산한 분위기의 도서관은 햇살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은 일반 서비스와 회원전용 서비스로 나뉘는데 일반 서비스는 그냥 시간 날 때마다 들러서 신문이나 잡지, 책 등을 읽어보거나 프랑스 위성방송 청취, 인터넷 검색, 복사 및 인쇄 등을 할 수 있고 회원으로 가입하면 문화원의 모든 자료(DVD나 CD 포함)를 열람할 수 있고 자료를 대출할 수 있으며 프랑스 문화원의 시네마테크인 ‘시네프랑스’의 입장료를 할인받을 수 있다. 그 외에 각종 공연이나 행사에 할인 혜택이 있는데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4월 21일부터 9월 2일까지 열리는 <오르세 미술관展>에도 할인혜택이 있다고 담당자분이 귀띔해 주었다.

어학 및 DVD 코너
잡지 코너. 프랑스에서 발간되는 잡지를 읽어볼 수 있다.

도서관은 이용자의 편의를 생각하여 꾸며졌다. 폭신하고 둥근 소파 앞에서 잡지를 읽거나 둥근 테이블에 여럿이 앉아도 불편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영역을 구별해 놓은 테이블이나 기능적인 책꽂이 등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내 눈길을 끈 것은 어린이 서가였다. 그곳에는 한쪽에 공간을 만들어서 주저앉아 편안하게 책을 읽도록 했는데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방석이 아름다운 우리 자수를 이용한 색동 방석이었다. 옹기종기 모인 방석이 얼마나 예쁜지, 어른인 나도 그곳에 앉아서 책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보통의 책꽂이도 있었지만 한쪽 벽면에 책 박스를 두어서 키 작은 아이들은 그곳에 책을 집어넣도록 배려한 것도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였다.

도서관 전경. 이용자의 편의를 생각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미디어 도서관 내 어린이 코너

미디어 도서관에는 책 외에 2,000장에 달하는 영화 DVD 코너가 있는데 어린이용은 따로 분류를 해두었다. 시중에서 잘 구할 수 없는 어린이용 DVD는 교육을 위해 각종 단체나 학교에서 대여해간다고 한다. 음악 CD도 있어서 한쪽에 마련된 영상실에서 음악을 듣거나 DVD를 볼 수 있다.

신간 어린이책 코너

도서관 구경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데 입구 쪽 안내문이 눈길을 끈다. ‘작가들의 자화상展’이 열린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의 특색 있는 자화상 전시회라고 한다. 프랑스 문화원에서는 이렇게 연중 재미있는 전시와 연주회, 강좌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문화원을 나설 때쯤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나는 향기로운 커피 냄새가 친구와 나를 유혹했다. 맛난 커피와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으로 평일 오전의 여유로움을 끝내고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 <귀여운 반항아>의 주제곡을 흥얼거려 보았다. 추억은 이런 거겠지? 책 한 권과 노래 한 소절, 마치 날아가는 화살을 다시 붙잡은 듯한 하루의 경쾌함, 여기에 사는 즐거움!

[TIP]
프랑스 문화원(//www.france.or.kr/)
- 위치: 서울시 중구 봉래동 1가 10번지 우리빌딩 18층 (우)100-161
- 문의: (전화)02-317-8500, (팩스)02-773-4447
* 임시 연장 개관 (미디어 도서관과 자료실): 4월 19일, 16일(오후 6시~9시까지)
* 오르세 미술관 전시회(//www.orsay2007.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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