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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빛으로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 윤미래

'윤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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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검은 행복’을 들으며 (혹은 인순이의 ‘거위의 꿈’을 들으며) 눈물을 흘릴 때 전 불안합니다. 수잔 손탁이 날카롭게 지적했던 대로,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 던지는 연민은 많은 경우 우리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알리바이에 불과합니다.

안녕하세요, 땡땡입니다. 바쁘다고 감기를 내버려 뒀더니 가벼운 폐렴 초기 증상이 와서 식겁하고 드러누웠습니다. 덕분에 찾아뵙기로 한 것이 예정보다 늦어버렸죠. 이렇게 연재 시일을 어기게 되면 독자분들 찾아뵙기가 참 부끄러워요. 제가 무슨 나라를 구하는 일에 매진하는 사람도 아닌데, 세상 고난을 혼자 짊어진 사람처럼 비실비실 앓는 모습이 어찌나 민망한지요. 앞으론 좀 더 날짜에 맞춰서 규칙적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환절기 건강 조심하시길 바랄게요. 그럼, 본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검은빛으로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 Baby Tasha 혹은 윤미래

3집 앨범 『T 3rd: YOONMIRAE』을 들고 돌아온 윤미래
(이하 사진 출처: 윤미래 공식 홈페이지)

제가 그렇게 나이를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내가 나이 먹었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어요. 한국 대중음악이 그런 현상이 유달리 심한데, 그 앞 세대의 문화적 유산을 다음 세대가 전혀 물려받지 못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잖아요. 그러다 보니 나이 차이가 대여섯 살 정도만 나도, 제가 아는 가수를 동생뻘 되는 분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 심심찮게 속출합니다.

예컨대 요즘 초등학생은 H.O.T를 모른다거나, 어떤 고등학생이 이승철을 두고 ‘신인치곤 노래 잘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박효신 같은 훌륭한 가수가 되시라’고 했단 이야기를 들을 때 내지는 동방신기가 콘서트에서 ‘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부르는 걸 듣고 ‘새로 나온 싱글인가 봐’라고 이야기하는 10대 팬이 있더란 이야기를 들을 때, 전 갑자기 늙은 사람 취급받은 듯한 당혹감에 휩싸입니다. 상대방과 제가 공유하는 문화적 토대의 두께가 너무 빈약해서야 같은 세대라고 부르기가 어려워지니까요.

작년에 그런 경험이 한 번 있었습니다. 곡절 끝에 마침내 컴백한 업타운을 보고 제가 아는 남자 후배가 ‘신인 그룹인 거 같은데 리더가 엄청 늙었더라’라고 신기해하더군요. 뭐, 현역 힙합 뮤지션치곤 정연준이 좀 나이가 있는 건 사실이긴 합니다마는.^^ 아무튼, 참 기분이 묘했습니다. 온갖 흉흉한 사건에 휘말려 가요계로 돌아오지 못한 세월이 길었습니다만, 그렇다고 업타운이 이렇게 완벽하게 잊혔나 싶어 뒷맛이 좀 쓰더라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솔직히 저도 가끔 TV에서 업타운을 보면 어딘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윤미래가 없잖아요. 제시카 H.O. 양이 열심히 노력하고 활동해 주었음에도, 제가 아는 업타운과는 아무래도 거리감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제가 아는 업타운은 윤미래를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거든요. 좀 과격하게 표현해보자면, 프레디 머큐리 대신 로비 윌리엄스를 세워 무대 위에 오른다고 그 무대가 제가 아는 퀸의 무대가 되는 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TV에서 윤미래를 처음 봤을 때 전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서태지는 최고의 위치에서 홀연히 팬들 곁을 떠났고, 김성재는 가장 화려한 순간에 너무 허망하게 저문, 악몽 같은 시간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직후였죠. 다시 말하자면, 저로선 새로 나오는 음악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는 거예요. 김성재를 잃은 충격의 흔적이 역력한 이현도가 만드는 노래는 듣기가 어려웠고, 그때 즈음해서 등장했던 일군의 아이돌 그룹이 부르는 노래는 백 번 양보해도 서태지나 듀스의 빈자리를 대체할 수 없었어요. 그런 이유로 제가 듣고 다니는 곡은 늘 발표된 지 적어도 1, 2년 정도 지난 곡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TV를 보니 한 아가씨가 일군의 남자들과 함께 ‘다시 만나’(‘다시 만나줘’) 달라고 노래를 부르더군요. 유달리 반짝거리는 눈의 윤미래가 따다다닥 랩을 쏘아대며 폭발적인 성량으로 노래를 부르는 게 참으로 신기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나이를 열아홉으로 속여서 나왔다고는 해도, 실제로 열다섯이었던 앳된 모습을 숨기는 건 역부족이었어요. 그러니, 더 경이로울 수밖에요. 저 어린 사람이 저렇게 랩을 하는 게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하는 놀라움에 할 말을 잃었죠. 1996년이면 아직 한국 메이저 신에서 그렇게 제대로 된 랩을 하는 사람이 드물던 시절이었잖아요. 6학년의 저에게 윤미래는 세상에서 랩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윤미래에 대한 저의 첫인상은 ‘래퍼’였어요. 물론 그녀는 요즘 나오는 세칭 ‘한국식 R&B’ 가수들처럼 소를 몰지 않고도 노래 전체에 소울풀한 기운을 충만하게 채울 줄 아는 불세출의 보컬리스트입니다. 업타운 시절 ‘내 안의 그대’에서 보여준 짙고 강렬한 보컬은 동시대 그 나이 또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어요.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 어린 나이에 그렇게 청자를 압도하는 천부적인 재능의 보컬리스트가 나타난 건 국악인 이자람 정도를 제하고 나면 우리 시대엔 전혀 없다고 해도 좋을 겁니다.


하지만 전 윤미래가 ‘As Time Goes By’라거나 ‘하루하루’ 같은 발라드곡에서 보여줬던 그 짙은 보컬보단, ‘Combination Platter’나 ‘G火자’에서처럼 호기롭게 청자의 귀를 압도하는 랩이 더 좋았습니다. 최근 인터뷰에서 자신도 앨범에선 발라드를 하는 걸 즐겨도 무대 위에서는 아직 신나게 놀 수 있는 힙합이 더 편하다고 하더군요. 물론 대중이 원하는 것은 그녀의 소울풀한 발라드였고, 놀랍게도 생각보다 많은 분이 그녀의 힙합 앨범 『Gemini』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게 현실이지만요.

재미있는 게 뭐냐면, 윤미래는 노래보단 랩을 할 때 가사가 더 정확하게 전달된다는 겁니다. 아직 우리말로 노래하고 랩하는 것이 발음 때문에 신경 쓰여서 힘들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아마 역으로, 빠르게 가사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한국어 발음이 뭉개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으로 더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한 결과겠지만요. 그 과정에서 윤미래의 랩은 독특한 특성을 띠게 됩니다.

한국어 랩을 할 때 윤미래는 행여나 가사를 통해 전하려던 메시지가 오독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음절 단위로 끊어서 최대한 단호하고 명료하게 전달합니다. 그 결과 - 그것이 그녀의 의도이건 아니건 간에 - 그녀의 랩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세상에 던지는 단호한 선언 내지는 도발처럼 들립니다. 이 지면에서 이 정도씩이나 주관적인 진술이 허락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그녀의 랩을 들을 때마다 흡사 그녀의 라임이 제 귀를 파고 들어가 머리를 온통 뒤흔들어 놓은 다음에 척추를 타고 차르르 전류를 흘리는 듯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징하게 제 안에 울려 퍼지고, 그 가운데서 전 뭔가 중요한 비밀을 엿들은 듯한 감흥에 젖는 거지요.


조금 위험한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종종 노래를 들을 때 그 노래와 그 노래 주인이 겪은 개인사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연상하곤 합니다. 말인즉슨 어떤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그 노래가 불러오는 감흥은 가수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하는 개인사와 완벽하게 분리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연상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좋은 예. 저는 방송에서 이승환이 몇 번이나 ‘MBC 다큐멘터리를 보고 만들었다’고 진술한 바 있는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를 들으며 어쩔 수 없이 그의 근간의 개인사를 연상하게 됩니다. 반면 그런 연상이 좋은 방향으로 흐를 때, 전 인순이가 카니발의 ‘거위의 꿈’을 부를 때 그녀가 겪어야 했던 삶의 질곡을 그 곡에 투영하며 더 깊이 감동합니다.

마찬가지의 방향으로, 윤미래의 랩이 특유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단호한 어조로 귓전을 파고들 때 전 그녀가 여태껏 - 결코 그녀에게 친절했다 할 수 없을 ? 거친 세상을 헤쳐 온 강인한 태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예컨대 그녀가 ‘If I fall five times, I come harder on my sixth. 절대로 포기하지 않지 난 아직’(‘Memories’)이라 노래하는 순간에 보여주는 그 삶과 노래를 대하는 태도가 일치하는 광경, 삶과 노래가 둘이 아닌 광경을 볼 때 전 할 말을 잃은 채 그저 귀 기울이고 그녀의 노래를 경청합니다.


예, 전 방금 조심스럽게 돌려서 그녀의 개인사를 언급했습니다. 요새 인구에 회자되는 노래 ‘검은 행복’ 가사에서도 언급이 된 바 있습니다만, 그녀를 처음 보았던 6학년의 저는 그녀가 혼혈이라는 걸 눈치 채지 못했어요. 그냥 ‘좀 이국적으로 생겼네’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죠.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녀가 혼혈이라는 걸 알았죠. 그러나 그 뒤엔 ‘하얀 화장, 가면’(‘검은 행복’)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진한 메이크업이 숨어 있었던 거죠. 소속사 사람들 생각엔 어떻게든 그녀의 유달리 짙은 갈색 피부를, 그녀가 혼혈이라는 사실을 가려야 할 것만 같았던 겁니다. 그걸 말하는 순간 그녀의 상품 가치가 떨어질 거라는 판단이 선행된 결과겠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엄마 핏줄은 OK 하지만 아빠는 안’(‘검은 행복’) 되는 건 한국 사회의 질기디 질긴 순혈주의 정서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 한 핏줄 한 민족’이라는 우스운 명제 말입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그럼 알에서 난 김수로 왕과 아유타국 출신 왕비 허황옥 사이에서 난 김해 김씨는 단군이랑은 피 한 방울 안 섞였는데 그네들은 한국인이 아니랍니까? ‘하나의 민족, 단군의 자손’이라는 건 조금만 생각해 봐도 설득력을 잃는 사기라니까요. 그런 그럴싸해 보이는 선전 앞에서 감동할 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인종주의자가 되는 겁니다.)

요새야 ‘하이브리드’라는 멋지고 긍정적인 뉘앙스의 단어를 자주들 사용하는 모양입니다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혼혈’이라는 말 대신에 ‘튀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사람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튀기라는 단어는 원래 사람한테 쓰려고 만든 단어가 아니에요. 사전에도 ‘종이 다른 두 동물 사이에서 난 새끼’라는 뜻이 1번으로 등재된 단어입니다. 그 단어를 사용하는 건 대상을 사람대접도 하지 않겠다는 무시무시한 세계관을 고백하는 일인 셈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길거리에 만연하던 것이 그리 오랜 옛날이 아닙니다.

상황이 이 정도다 보니, 한국에서 ‘너 꼭 혼혈처럼 생겼다’라는 말은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욕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말이 되었습니다. 폐쇄적인 한국 사회에서 혼혈로 산다는 것은 누구든지 트집 잡고 깎아내려도 된다는 주홍글씨와 함께 살아가는 것과 같아요. 그런 사정은 문화예술계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파트’로 유명한 가수 윤수일이나, 함중아, 박일준과 같은 이들도 한국 사회에서 말로 다 못 할 고통에 시달렸지요.


21세기의 첫 10년, 우리는 이제 TV에서 쉽게 혼혈인을 만납니다. ‘파충류 소녀’ 김디에나를 필두로, 만인의 연인 대니얼 헤니, 매끈한 조각상 데니스 오, 의지의 표상 하인스 워드, (한국인 혼혈은 아니지만) <미녀들의 수다>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에바 포비엘, 매혹적으로 엉덩이를 돌리며 춤을 추는 BABY V.O.X Rev.의 명사랑까지.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드디어 혼혈인에 대한 차별과 경계를 푼 걸까요?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된 걸까요?

글쎄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위에서 거론한 사람들 중 ‘한국에 뿌리가 있음을 잊지 않’는 ‘의지의 표상’ 하인스 워드를 제하고 나면 모두 코카시안/아시안 혼혈이잖아요. 전 지금의 혼혈인에 대한 우호적인 시선이 ‘백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내재한 건 아닐까 두렵습니다. 하얀 살결, 높은 콧대와 큰 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랜 갈망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제가 걱정하는 건 혹시나 우리가 대니얼 헤니나 명사랑에게 환호를 보내는 일이 사실은 그들이 가진 백인의 외모를 사랑하는 일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겁니다.

위에서 전 하인스 워드를 빼놓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건 우리가 아프리칸/아시안 혼혈인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선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인스 워드나 인순이의 인생 역정에 감동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는 그들이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혼혈이라는 쉽지 않은 ‘장애’를 극복하고 ‘수퍼볼 MVP’가 되기까지, ‘국민 가수’가 되?까지 겪었던 그 고난의 과정에 감동하는 거란 말이죠. 전 지금 우리 사회가 그들 자체를 용인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성공 스토리’를 소비한단 말을 하고 싶은 거에요.

만약에 그들이 ‘수퍼볼 MVP’가 아니라 미국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 미스터 하인스 워드였다면, 혹은 경기도 포천 출신 옆집 아줌마 김인순 씨였다면 우리가 지금 그들을 그렇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자랑스러운 일원으로 생각할까요? 우린 그런 이중적인 시선을 부정하려고 별짓을 다 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동통신사 광고에선 인순이의 ‘거위의 꿈’을 BGM으로 깔아놓고는 혼혈인을 ‘다른 인종의 장점이 합쳐진 사람’이라고 정의하기까지 하죠. 그 광고를 기획한 분들껜 죄송한 이야기지만, ‘혼혈’이든 ‘순혈’이든 그냥 다 같은 사람이라고 인정하기만 해도 되는 걸 애써 특별한 존재로 정의하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폐쇄성을 증명하는 일이에요.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윤미래의 아버지는 아프로-아메리칸, 우리가 흔히 말하는 흑인입니다. 그녀의 유달리 짙은 피부색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죠. 한국에서 혼혈인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복잡합니다만, ‘흑인’ 혼혈로 산다는 것은 온갖 편견을 견디고 헤쳐나가야 할 투쟁의 문제가 됩니다. 검은 피부를 보고 너무나 간단하게 ‘더럽다’는 연상까지 달려가는 시선의 폭력 속에서 산다는 건 솔직히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괴로운 일이에요.


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그룹 잉크의 멤버였던 이만복이 잉크 해체 후 방황했던 이유는 그가 흑인의 외모를 지녔기에 사회에 쉽게 수용되지 못해서입니다. 사람들이 흑진주처럼 예쁜 윤미래에게 기를 쓰고 하얀 분칠을 해댄 것은 그런 이유일 거예요. 그리고 윤미래는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은 죄책감’(‘검은 행복’)을 견디며 굳세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신은 어딨냐고 왜냐고 책임지지 못할 날 왜 이 땅에 보냈냐고’ 말하다가도 ‘끝까지 나의 삶을 찾아’(이상 ‘Memories’) 가겠다고 다부지게 다짐하면서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검은 행복’을 들으며 (혹은 인순이의 ‘거위의 꿈’을 들으며) 눈물을 흘릴 때 전 불안합니다. 수잔 손탁이 날카롭게 지적했던 대로,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 던지는 연민은 많은 경우 우리의 무고함을 증명하는 알리바이에 불과합니다. ‘나는 당신의 사연을 듣고 당신의 슬픔에 공감하며 가슴 깊이 아파합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사실은 ‘나는 당신을 괴롭게 한 저 사람들과는 다릅니다’라고 말하는 거란 소리죠. 저는 양식 있는 시민이라면 ‘검은 행복’(혹은 인순이의 ‘거위의 꿈’)을 들으며 가슴 깊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나 폐쇄적인 사회의 일원으로서 윤미래에게 (혹은 혼혈인에게) 가한 침묵의 폭력, 시선의 폭력에 동참했던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다시 1996년으로 돌아가서, 그해 발매되었던 앨범 중에 주목해야 할 앨범이 하나 있어요. 인순이의 정규 8집 앨범 『The Queen Of Soul』이 그것입니다. 스스로 여왕이라 호명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타이틀의 이 앨범에서 인순이는 박진영이 작곡해 준 댄스곡 ‘또’를 타이틀곡으로 걸고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 춤추고 포효했어요. 그녀의 나이 마흔이었습니다.

그녀를 그저 <열린 음악회>에 단골로 출연해 ‘밤이면 밤마다’를 부르는 성인가수 정도로만 여기던 (저를 포함한) 젊은이들은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셈이죠. 그 후 10여 년간, 인순이는 세대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나이를 잊은 열정’의 디바로 군림했습니다. 그녀가 조PD의 ‘친구여’에 피처링을 하고 같이 무대에 올라 놀라운 무대 장악력을 선보이며 젊은이에게 환호받을 수 있었던 건 분명히 96년의 『The Queen Of Soul』 덕분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해에 윤미래가 데뷔했지요.

전 이게 상당히 상징적인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1996년 그해, 우리는 앞으로 10여 년간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대체 불가능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디바의 귀환/탄생을 목격한 겁니다. 마흔의 인순이와 열다섯의 윤미래가 가요계를 뒤흔들었던 그해는, 돌이켜 보건대 범상치 않은 한 해였어요. 우리 사회에서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 온갖 차별을 견딘 닮은꼴의 두 디바는, 초대받지 못한 그곳에서 꿋꿋이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며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데 성공한 겁니다. 11년간, 우리는 기꺼이 그들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그 진경에 홀려 살았어요. 감히 말하건대, 그 세월 그들이 펼쳐보인 재능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 것은, 우리 문화판에, 폐쇄적인 한국 사회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4년간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윤미래의 새 앨범 『T 3rd: YOONMIRAE』의 포문을 여는 첫 곡 ‘Black Diamond’에서 Tiger JK는 그녀를 소개하며 이렇게 외칩니다. ‘Once again, Top of the world. Allow me to introduce the Queen, the black diamond, Tasha.’ 저는 이 대목에서 11년 전 윤미래가 데뷔했던 그해에 나온 앨범 『The Queen Of Soul』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순이가 스스로 ‘소울의 여왕’을 자임하며 귀환했던 해 데뷔한 그녀는, 11년이 지난 지금 스스로 세상 앞에 당당히 여왕임을 천명합니다. 누구도 쉽사리 부인할 수 없을 여왕의 권좌에 오른 그녀는 이제 겨우 스물여섯. 앞으로도 더 오랜 세월을 반짝거릴 겁니다. 전 지금 ‘검은 다이아몬드’ 윤미래가 뿜어내는 빛이 무척이나 찬란한 나머지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그 부끄러움은 차라리 축복 같은 부끄러움입니다. 전 더 오래 부끄러워질지언정, 그녀가 더 오래 반짝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호 <요주의 인물>의 주인공은 검은 다이아몬드, 부인할 수 없는 여왕, Baby Tasha 윤미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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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땡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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