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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영상물의 한계

우린 발레리나 강수진을 ‘국위를 선양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여기고 사랑하지만 과연 우리 중 몇 명이나 강수진의 공연을 직접 봤을까요? 내한공연에서 본 사람과 직접 독일에서 본 사람을 다 합쳐도 겨우 몇 만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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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발레리나 강수진을 ‘국위를 선양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여기고 사랑하지만 과연 우리 중 몇 명이나 강수진의 공연을 직접 봤을까요? 내한공연에서 본 사람과 직접 독일에서 본 사람을 다 합쳐도 겨우 몇 만 명입니다. 몇 년이 더 지나면 강수진도 은퇴할 거고, 그렇게 되면 그 공연에 대한 기억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흐릿해지겠지요.

정말 대안은 없을까요? 공연 녹화라는 게 있죠. 분명히 어딘가에 기록되기는 했을 거예요. 하지만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는 공연 녹화물을 제작하지 않아요. 적어도 제가 알기에는요. 결국 우리가 그걸 볼 가능성은 별로 또는 거의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과연 우린 무엇을 보고 강수진이라는 예술가를 평가해야 하는 건지. 우린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 건지.

만약 기록된다고 해도 그것이 공연을 얼마나 제대로 보여줄까요? 발레의 경우, 그건 겨우 차선책의 차선책일 뿐입니다. 전 발레 공연 녹화물을 그 자체로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어요. 그것은 우리가 공연을 직접 볼 수 없고, 또 봤더라도 그 기억을 계속 간직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택하는 대안이죠. 오페라는? 전 오페라는 조금 더 나은 것 같아요. 역시 공연의 온전한 느낌을 전달하는 건 어렵지만 발레처럼 무대의 공간적 균형이 중요시되지는 않죠. 음질만 충분히 좋다면 오페라의 녹화물은 발레보다 덜 불만스러워요.

물론 때깔이 더 좋게 다듬을 수 있죠. 세상엔 훌륭한 오페라 영화가 몇몇 있습니다. 잉마르 베리만이 하나 만들었고 프랑코 제피렐리나 조셉 로지와 같은 사람도 그와 근접하는 작품을 몇 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전 발레 공연물을 그 자체로 좋아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오페라 영화를 그 자체로 좋아하는 AV팬은 본 적이 없어요. 오페라 영화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대부분 팬은 영화적으로 음악과 화면이 더 잘 짜였어도 가수들이 립싱크 하는 오페라보다 공연실황 녹화를 선호하거든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영화나 텔레비전을 위해 만들어진 클래식 영상물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아요. 전 얼마 전에 나탈리 드세이가 주연한 스트라빈스키의 <나이팅게일> 뮤직비디오라고 할 수 있는 영상물을 봤는데, 어쩜 그렇게 지겨웠는지. 몇몇 CG는 인상적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작품이 덜 지루해지지는 않았죠.

위에서 제가 예를 든 베리만이나 제피렐리의 영화는 그래도 훌륭한 작품이에요. 세상엔 근사한 가수들을 동원해 만든 형편없는 오페라 영화가 더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가끔 텔레비전에서 해주던 장 피에르 포넬의 <피가로의 결혼>이죠. 미렐라 프레니, 헤르만 프라이, 키리 테 카나와와 같은 쟁쟁한 성악가들이 칼 뵘의 지휘에 맞추어 근사한 음악을 들려주었지만 영상 자체는 어쩜 그렇게 시시했는지.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애당초부터 <피가로의 결혼>이 영화라는 매체와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니 전적으로 포넬의 책임은 아닐지도 모르죠.

그럼 영상매체의 영역에서 오페라는 늘 실황공연이라는 박쥐와 같은 영역에 갇혀 있어야 할까요? 지금으로서는 그게 대세인 듯해요. 물론 여기에도 발전과 변형은 있죠. 최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된 몇몇 작품은 HD로 녹화되어 세계 곳곳에서 영화처럼 극장상영 되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2월에 ‘메트 오페라 온 스크린’이라는 제목을 달고 호암아트홀에서 상영되었죠. 가보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여전히 박쥐처럼 보이는 건 마찬가지. 영상물이라는 매체와 오페라, 더 넓게 보아 클래식이라는 예술 영역의 자연스러운 조화는 아직 멀었어요. 기본적으로 이것들은 21세기 영상매체를 위해 만들어진 예술이 아니에요. 전 얼마 전에 도리스 되리가 무대 연출을 한 모차르트의 <가짜 여정원사>의 DVD를 봤는데, 되리가 영화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면 결코 그런 모양으로 찍어 편집하게 두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

대안은 없을까요? 아무래도 있을 거예요. 위에서 언급한 베리만이 <마술피리>에서 대안 하나를 보여주었어요. 관객과 무대를 무시하지 않고 그들 역시 영화의 일부로 끌어들인 다큐멘터리 형태의 극영화를 만든 것이죠. 물론 그건 진짜 공연 녹화에 적용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모험적인 감독이 개입한다면 새로운 길을 여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그런 모험이 언제 본격적으로 시작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요. 한동안은 어려울 거예요. 간신히 중간치기를 하는 것도 어려운 세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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