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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과 고독이 키운 예술가, 모리스 샌닥

예술은 고립을 견디는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이는 모리스 샌닥(Maurice Sendak)의 일생을 살펴봐도 긍정할 수 있는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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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과 고독이 키운 예술가, 모리스 샌닥

글과 그림이 대위적 관계인 대작

그림책에서 글의 기능은, 움직임이 있는 영화와 달리 정지된 그림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페이지 수의 제한이 있는 그림책의 그림에 동적인 요소를 더해주는 ‘소리’의 역할을 글이 담당하는 일도 지배적이다. 또한 각각의 그림을 영화 프레임으로 볼 때, 끊어진 프레임을 연결하는 역할도 한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맥스가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도착하는 장면을 보면 다음의 글이 나온다.

「맥스가 괴물 나라에 배를 대자 괴물들은 무서운 소리로 으르렁대고, 무서운 이빨을 부드득 갈고, 무서운 눈알을 뒤룩대고, 무서운 발톱을 세워 보였어. 맥스는 호통을 쳤지. “조용히 해!”」


만약 그림으로만 괴물의 외형을 묘사한다면, 어지간히 상상력이 좋은 아이가 아니면, 으르렁대고, 이빨을 가는 소리까지 형상화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뇌는 글과 그림을 하나의 기호로 동기화하면서 두 가지 해석을 동시에 펼친다. 프랑스의 사진작가이자 이론가인 네를리쉬(Nerlish)는 글과 그림이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 하나의 단위로 작용한다고 말하고, 글과 그림이 각각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글과 그림 사이의 대화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단위로 작용하는 것이 아이코노텍스트(iconotext)라고 정의를 내렸다.(현은자, 『그림책의 그림 읽기』, 마루벌, 2004년, 37쪽)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자세히 보면, 글과 그림의 플롯이 이중적으로 흐른다. 펼친 쪽을 하나로 볼 때, 이 그림책은 모두 38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19개의 그림 장면과 10개의 문장이 들어 있다. 여기에서 글과 그림은 겹치기도 하고 독립적이기 하면서 특별한 대위 효과를 발휘한다. 그 효과는 그림책의 공간에 울림을 만들어낸다.


한편,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의인화 문제다. 어린이는 인간과 비인간을 명확히 구별하지 못하며 의인화를 통해 사물을 인격화하면 어린이가 상상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물 캐릭터가 그림책에 자주 등장한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도 맥스가 괴물과 서로 통하려면 동일화를 해야 하는데, 이 책에서 맥스는 늑대 옷을 입고 동물로 분한다. 늑대처럼 하고 나타난 맥스는 괴물과 동질성을 갖게 된다. 일반적으로, 동물이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의인화가 이루어지는 데 반해,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는 사람인 맥스가 동물이 되는 ‘역의인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정병규,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새롭게 읽는다」, <북페뎀 6호>, 한국출판문화연구소, 2004년, 178~179쪽)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맥스가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도착하기까지는 그림의 크기가 점점 커지다가,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겪는 모험 중 절정에 해당하는 괴물들과 노는 장면은 전면 그림에 글도 없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그림의 크기가 점점 작아진다. 화면의 크기가 곧 환상의 크기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1963년, 이 그림책이 출판되었을 때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와 같은 극단적인 말이 나오고 무서운 괴물이 등장하자, 학부모와 교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도서관에서는 책을 대출해주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은 자신과 닮은 주인공 맥스를 동일시하며 일상에서 느끼는 자신의 분노를 책을 통해 해소할 수 있기에 이 그림책에 열광했다.

아이들은 현실에서 부모에게 느낀 억압감을 부모와 직접 상대해서 풀기에는 너무 연약하다. 그림책은 그런 아이들의 억압된 분노를 표출해 줄 출구로서의 기능을 하기에,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어른들이 우려했던 폭력성과는 달리, 오히려 아이들의 정서를 순화해주는 순기능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긴 세월 동안 이 책에 열광하는 아이들이 그 증거다.

1964년에는 이 그림책으로 ‘칼데콧 상’을 받았지만, 유명한 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은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에 대해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고 어린이들을 무섭게 한다’라고 악평했다고 한다. (『똑! 똑! 똑! 그림책』 116쪽, 김이산, 현암사) 이 책의 작가 모리스 샌닥의 젊은 시절, 프로이트(Sigmond Freud)와 도널드 위니컷(Donald W. Winicotte) 등 심리학자의 이론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었고, 어린 시절 몸이 약해 침대에 누워 몽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샌닥에게 그들의 심리학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하다.


상당히 많은 분석 자료가 있어서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이야기하는 데, 한편으론 수월하면서도 반대급부로 그만큼 더 예민한 정성이 필요해서 그간 차일피일 미루어 두었던 모리스 샌닥 작가론을 이제 이야기하게 되었다. 사실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지만, 『괴물들이 사는 나라』만 다루는 데 목적이 있지 않으므로, 이 정도로 해두고 작가 소개로 넘어가고자 한다.

고립과 고독이 예술가를 만들었네!

예술은 고립을 견디는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이는 모리스 샌닥(Maurice Sendak)의 일생을 살펴봐도 긍정할 수 있는 명제다. 모리스 샌닥은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유대인의 아들로, 뉴욕에서 태어나 브루클린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홍역, 폐렴, 성홍열을 앓아 허약했던 모리스 샌닥은 침대에 누워 유년기 대부분을 보냈다. 침대에 누운 꼬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창문 밖 세상을 관찰하는 것뿐. 꼬마 모리스 샌닥은 창 밖의 사물과 사람을 그림으로 그리고, 책을 읽으며 공상했다. 약골이었던 모리스를 염려한 아버지는 밤마다 책을 읽어주었다고 한다. 그는 그때 느꼈던 고립감과 아버지가 읽어준 책이 훗날 자신의 예술에 원동력이 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나는 어렸을 때 이미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고, 한편으로 다른 아이들한테서도 고립되어가는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이 나를 예술가로 성장하게 해주었습니다.” (//www.childrensbooks.about.com/)

모리스 샌닥이 최초로 자신의 것으로 갖게 된 책은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였다고 한다. 이전에 누나들이 도서관에서 빌려다 주는 책만 보던 모리스에게 『왕자와 거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것이었다. 그는 책의 냄새도 맡고, 물어뜯어 보려고까지 했다고 한다. 내용보다 먼저 눈을 사로잡은 빨간 천의 장정이 무척 좋아, 정작 그 내용은 몇 년이 지난 다음에 펼쳐 읽었다고 하니, 예술가의 잠재된 기질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선묘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I'll Be You and You Be Me』
모리스 샌닥은 고등학교 때부터 삽화를 그려 열아홉 살에는 『Atomics for the Millions(원자 이야기)』라는 교재에 삽화를 그렸다. 그 후 루스 크라우스(Ruth Kraus)가 쓴 『A Hole Is To Dig(구멍은 파라고 있는 거야)』의 삽화를 그려 삽화가로 인정받게 된다. 이런 재질을 유심히 지켜보던 하퍼 앤 브라더스(Harper and Brothers)사의 편집자 우슐라 노드스툼(Usula Nordstorm)의 권유로 첫 그림책 『The Sign on Rosie's Door(로지네 현관의 표지판)』을 펴낸다.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여름날 어린이들이 상상과 놀이를 통해 즐겁게 지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샌닥의 그림책은 이야기에 따라 적절한 그림 형식을 사용한다. 샌닥 스스로 “칼데콧에게서 유머와 이야기 전달의 테크닉을 배웠고, 디즈니에게서는 판타지 세계를 배웠다”라고 말한 바 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독특한 선묘화로 그렸으며, 『깊은 밤 부엌에서』는 만화와 대중 예술인 팝아트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또한 그의 3부작 중 하나로 알려진 『창 밖 저 멀리(Outside Over There)』는 영국과 독일의 낭만주의, 라파엘풍 이전의 예술, 거기에 현대 영화의 요소를 섞어 신비한 세계를 창조해 낸다.


한편 모리스 샌닥은 평소에 고전음악, 특히 모차르트 음악을 자주 듣는데, 이런 그의 취미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적>의 세트와 의상을 직접 디자인하는 일로 연결되었다. 또한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을 무대에 올리고 영화로도 제작했다고 한다.

그림책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영역에 두루 관심 있는 모리스 샌닥은 1990년에는 어린이를 위한 극장 ‘깊은 밤 부엌’을 만들어 연극 <피터팬>과 <헨젤과 그레텔>을 제작, 상연하였다.

모리스 샌닥은 1956년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첫 번째 책 『The Sign on Rosie's Door(로지네 현관의 표지판)』 이후, 1963년 칼데콧 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또한 안데르센 상(1970년), 로라 잉걸스 와일더 상(1993년) 등을 포함해 많은 상을 받았고, 그의 작품은 연극이나 소설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모리스 샌닥의 내밀한 심리를 알고 싶다면 초기 작품을 보자

모리스 샌닥이 그림책 작가로 본격적 활동을 펼치는 데 적극적 지원자가 되어준 사람이 동화 작가 루스 크라우스(Ruth Krauss, 1901-1993)다. 그녀의 제안으로 모리스 샌닥은 『A Hole is To Dig』에 그림을 맡음으로써 그림책에 발을 들이게 된다. 한편, 그녀의 자유로운 사고 전개와 아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언어 감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 탁월성을 인정받고 있다. 모리스 샌닥은 그녀의 글에 다시 한 번 그림을 그린다. 『I want to Paint My Bathroom Blue(우리 화장실을 파랗게 칠하고 싶어요)』라는 제목의 그림책인데, 이 그림책에서 모리스 샌닥은 종이의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수채 물감을 투명하게 썼다.


덧칠하지 않아 윤곽선까지 또렷한 이 그림책은 무척이나 따듯한 느낌이다. 모리스 샌닥이 글까지 직접 쓴 건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어린 시절 방안에서만 지냈다던 모리스 샌닥의 유년기를 떠오르게 한다. 한 소년은 자신 있었다. 어른들은 허락하지 않겠지만, 소년은 자신의 집 화장실을 파랗게 칠하고 싶다. 그리고 흔들의자도 예쁜 파란색으로 칠하고 싶다. 그런 다음 부엌은 노란색으로 칠하고, 응접실은 하얀 바탕에 알록달록한 거북이를 그려 넣고, 천?은 녹색으로 칠하고 싶다.

이왕이면 여기저기에 채광이 잘 되도록 커다란 창을 그려 넣고, 집 밖의 벽에는 재밌는 그림을 크게 그리고 싶다. 문은 흰색으로 칠하고, 손잡이는 분홍색으로 칠하고, 콧노래를 부르다 보면, 행복감에 도취할 듯한 소년의 꿈. 집 밖으로 나가 마음껏 뛰어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소년 모리스 샌닥의 꿈만 같다. 소년은 이런 집은 눈에 보이는, 실재하는 집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집은 무지개 같은 집이라고 말한다.


나와 내 친구들 모두가 사는 집. 즉, 이 집에는 친구도 없이 외톨이였던 모리스 샌닥의 쓸쓸함이 묻어난다. 모리스 샌닥이 글을 쓴 게 아닌데도, 마치 외로웠던 시절을 회상하며 모리스 샌닥이 글 작가 루스 클라우스에게 호소라도 해서 루스가 모리스 샌닥을 위해 써준 한 편의 시 같다. 친구와 사랑하는 가족이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무지개 동산에 언젠가는 녹색의 풀과 나무가 자란단다. 그리고 그 밖 너머에는 파란 바다가 넘실거린단다.

판권연도를 보니, 1956년이다. 즉, 루스와의 첫 작품이 나온 바로 그해 작품이다. 초창기 루스 클라우스의 지대한 협조로 모리스 샌닥이 공동 작업에 임한 것은 이 그림책 말고도 『I'll Be You and You Be Me』가 있다. 『A Hole is To Dig』까지 포함한 초기 세 작품에서 보여주는 모리스 샌닥의 붓질은 전위적이지 않다. 어쩌면 아직 어떤 변형을 시도할 만큼은 노련하지 않은 모리스 샌닥의 초기작을 통해, 우리는 그의 섬세한 심리, 깨지기 쉬운 예민한 기질을 느낄 수 있다.

친형 잭 샌닥과 함께 작업한 『Circus Girl』

개인적으로는 널리 알려진 중기 이후의 작품 그림보다는 초기 세 작품과 그의 친형 잭 샌닥(Jack Sendak)과 함께 작업한 『Circus Girl』의 가늘면서도 섬세한 펜 촉감을 더 좋아한다. 갈수록 다양한 기법을 작품에 도입하면서 작가적 역량이 커진 건 사실이지만, 한 인간의 가장 진솔한 내면을 살펴볼 수 있는 고백적 기록은 아무래도 데뷔작 내지는 초기 작품에 더 많다는 게 지금까지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판단이다. 여기에서는 소개하지 않았지만, 특히 잭 샌닥(Jack Sendak)과 함께 작업한 『Circus Girl』은 그의 내면 본연의 풍경을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다만 여기서 내가 그 작품을 소개하지 않는 것은, 엄밀히 따져 『Circus Girl』은 그림책이라기보다는 글 중심의 책이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주인공 소년에 대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

확실히 성공작은 문제작이기도 하다. 『깊은 밤 부엌에서』가 출판되던 해인 1970년, 미국의 보수적인 사서와 교사들은 벌거벗고 생식기(그래 봤자 어린아이 고추)가 드러난다는 이유로, 이 책을 서가에 꽂아두지도 않고, 심지어는 불매운동도 펼쳤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미키(꼬마 아이 이름)의 생식기를 펜으로 검게 칠하거나 테이프를 덧붙여 아이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성교육을 더 구체적으로 하는 지금으로선 웃지도 울지도 못할 에피소드다. 어쨌거나 『깊은 밤 부엌에서』는 어린 소년의 벌거벗은 모습을 담아 ‘성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의혹을 받으며 한동안 논란거리가 되었다.



『깊은 밤 부엌에서』『괴물들이 사는 나라』『창 밖 저 멀리』와 더불어 소위 모리스 샌닥의 ‘3부작’으로 불린다. 이 세 권의 책은 어린이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요소를 한데 묶어 다룬다. 모리스 샌닥은 『깊은 밤 부엌에서』로 1971년 칼데콧 영애상을 받았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꽤 보수적인 미국인들은 여전히 이 책에 혐오감을 감추지 못한다고 한다. 의심 많은 보수주의자는 프로이트의 남근 선망 이론까지 들먹거리면서, 미키가 벌거벗고 다니는 것을 은근히 탐닉하고, 우유가 상징하는 원관념이 무엇이냐며 혐의를 묻는다. 게다가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비행기는 무엇이며, 남성의 성기를 연상케 하는 우유병에서 미키가 성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장난스러운 말까지 한다며 모리스 샌닥을 의심하고 있다. 그럼 우유병 속에 빠져 노는 미키의 말이 대관절 무엇이기에 모리스 샌닥을 음탕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는지 알아나 보자.

“나는 우유 속에 풍덩 빠져있고 내 안에도 우유가 있어(I'm in the milk and the milk's in me!)" 보수적 교육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이 부분이 어린이의 유아기 성욕 혹은 자위행위의 판타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억지 해석한다.


이 그림책을 그리게 된 심리적 동기는 성적인 것에서 꽤 동떨어져 있다. 1968년 심장마비로 죽음의 문전까지 가본 모리스 샌닥에게 일련의 시련이 있었다. 애견, 어머니, 아버지의 죽음 등으로 사랑하는 것과 결별한 모리스 샌닥은 시련의 도시, 뉴욕을 떠나 지금의 코네티컷으로 이사한다. 당시를 회상하며 모리스 샌닥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뉴욕 시에 작별인사를 하는 마음으로 그림책 작업을 하였다. 주인공 미키가 케이크로 구워지기 전에 반죽에서 나온 것은 나의 죽음과도 같은 절망을 극복한 것을 상징한다.”(현은자, 김세희 공저, 『그림책의 이해』, 현암사, 108쪽)


『깊은 밤 부엌에서』의 그림은 만화풍이다. 어린 시절 병으로 누워 지낼 때 미키마우스 등의 디즈니 등장인물을 자주 옮겨 그렸던 모리스 샌닥은 만화처럼 면을 분할한다. 또한 이 그림책을 기획하는 데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한 제빵회사 광고라고 밝혔다. ‘당신이 자는 동안 우리는 빵을 만든다’라는 문구가 밤새워 빵을 만드는 뚱뚱한 제빵사를 등장하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그림책이 심리학적, 사회학적 논쟁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이는 모리스 샌닥이 이 글을 집필한 시기에 겪은 일련의 죽음에 대한 공포심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무의식이 알게 모르게 그림과 글로 반영되었다고나 할까? 어떤 분석가는 미키가 천상에서 우유를 제빵사들에게 나눠주고 우유병의 곡면을 타고 어딘가로 내려와서 깊고 달콤한 잠에 빠지는 장면을 두고, 죽음을 딛고 부활한 예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는 평을 한 바 있다. 우유를 구해 주어 제빵사가 맛있는 빵을 구워 새벽에 배고픈 사람들에게 내어줄 수 있게, 천상까지 가서 우유를 구한 미키의 행위를 인류를 위한 부활의 약속으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듯하다.

그림책 연구가 그림책 내용과 결부된 작가의 심리 탐구로 이어지거나 혹은 그림책 내용의 사회적 영향으로 이어질 때, 작가가 그림책보다 더욱 중요한 해체의 대상이 된다는 것. 휴, 정말 글 함부로 쓸 일, 그림 아무렇게나 그릴 일 아닌 것 같이 느껴져 어깨를 움츠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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