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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카데미 감독상 받은 마틴 스콜세지

문제는 타이밍에 맞추어 상을 주는 건 정말 어렵다는 것입니다. <디파티드>는 분명 스콜세지 최고 걸작은 아닙니다. 그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보면 그냥 중간급 정도죠. 그러나 아카데미가 늘 적절한 시기에 배우들에게 상을 준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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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틴 스콜세지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수상 결과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람들이 많았을 거예요. 물론 <디파티드>는 스콜세지의 마지막 영화도 아니고 그가 더 나은 영화를 만들어 아카데미를 찾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지만, 그래도 이 괴상한 기록은 빨리 깨는 게 좋았습니다.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는 사람이 미국을 대표하는 영화상을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문제는 타이밍에 맞추어 상을 주는 건 정말 어렵다는 것입니다. <디파티드>는 분명 스콜세지 최고 걸작은 아닙니다. 그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보면 그냥 중간급 정도죠. 그러나 아카데미가 늘 적절한 시기에 배우들에게 상을 준 건 아닙니다. 폴 뉴먼이나 알 파치노와 같은 배우들도 최고 걸작으로 상을 수상한 적은 없죠. 생각해 보세요. <컬러 오브 머니>나 <여인의 향기>가 과연 그들의 최고 걸작인가요?

다시 스콜세지로 화제를 돌린다면, 과연 언제 그가 상을 받았어야 정상으로 보였을까요? 이게 은근히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민 스트리트>? 당시 그는 무명이었고 이 작품도 아카데미상용은 아니었지요.

<택시 드라이버>? 아카데미에서 온전한 대접을 받기엔 지나치게 자극적인 영화였지요. 사람들은 이 악몽같은 영화를 지지하는 대신 익숙한 아메리칸 드림의 이야기를 펼치는 <록키>를 옹호하는 쪽을 택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스콜세지는 그 때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어요.

차라리 몇 년 전에 만든 <앨리스는 더 이상 이곳에 살지 않는다> 쪽이 더 가능성 있는 영화였습니다. 안전하고 기분 좋은 아카데미용 영화였지요. 하지만 당시엔 더 센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차이나 타운>, <대부 2>, <컨버세이션>이 모두 당시 영화였지요. 물론 스콜세지는 당시에도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른 건 <성난 황소> 때부터였습니다. 80년대 최고의 미국 영화로 손꼽히는 작품이고, 다들 이 때 스콜세지가 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주장하죠. 그 때문에 정작 상을 받은 로버트 레드포드의 <보통 사람들>이 이와 비교되어 필요이상으로 저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여담이지만 툭하면 배우 출신의 감독에게 패한다는 스콜세지의 징크스가 시작된 해이기도 해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물론 <성난 황소>는 걸작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 중 과연 얼마나 이 영화를 진정으로 ‘사랑하나요?’ 분명 굉장한 영화적 성취이고 놀라온 연기와 연출로 채워진 작품이지만, 이 작품에 진심으로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습니다. 레드포드의 <보통 사람들>에서는 그게 가능했지요.

그가 다음에 후보로 오른 영화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었습니다. 걸작입니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가장 훌륭한 예수영화죠. 하지만 이 영화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엔 주변 사정이 지나치게 시끄러웠습니다. 스콜세지 역시 후보가 되는 것으로 만족했을 거고요.

드디어 아카데미 감독상 받은 마틴 스콜세지
<좋은 친구들>은? 역시 스콜세지의 걸작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도 사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너무 차갑고 냉정하지요. 캐릭터들 역시 동정할 구석이 전혀 없고요.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은 감상적이고 괴상한 영화였지만 적어도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았습니다. 못 타는 건 당연했어요.

<순수의 시대>는? 그는 역시 감독상 후보엔 오르지 못했습니다. 공동 각본가로 각색상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요. 전 이 영화를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상을 받기엔 지나치게 문학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갱스 오브 뉴욕>은? 글쎄요. 다들 좋은 영화지만 스콜세지 수준의 걸작은 아니야... 정도로 생각했겠죠. 게다가 <시카고>나 <디 아워스>가 더 재미있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애비에이터>는? 역시 좋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사랑하기는 쉽지 않죠. 주제에서부터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아주 모범적인 스콜세지의 영화지만, 관객들에게 확 다가오기엔 조금 차갑습니다. 전 이 영화로 그가 아카데미상을 탔으면 훨씬 구색이 맞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훨씬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이고 역시 거장의 향취를 풍기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 쪽에 손을 들어주는 건 그만큼이나 당연했습니다.

슬슬 분위기가 잡히지 않습니까? 이 영화들이 수상의 기회를 놓친 데엔 다 그럴싸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수많은 걸작들을 만들었지만 관객들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며 설득시키는 작품은 의외로 적습니다. 대부분 예술적 자의식과 스타일로 관객들을 압도하는 편이죠. 마틴 스콜세지에게 상을 줘야 해!라는 압박감만 없었다면 <디파티드>가 상을 탈 기회도 훨씬 적었을 겁니다. 이번 해 후보작들 중 <디파티드>는 가장 아카데미와 어울리지 않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상을 탄 건 어느 순간 그의 존재감이 영화를 넘어섰기 때문이죠. 스콜세지는 몇 십 년 동안 미국 영화계의 중심과 아카데미의 변방에서 활동하는 동안, 그 고유의 가치와 무게를 쌓아올렸습니다. 아카데미는 언젠가 고개를 숙여야 했어요. <디파티드>가 상을 받은 건 그 영화가 바로 그 압력이 최대한인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게 의미가 있을까요? 결국 우리가 평가하는 건 수상한 상의 숫자가 아니라 영화의 가치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올림픽이 아닌 이상, 예술계열의 상이란 타협과 정치의 산물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디파티드>가 상을 받은 것에 미심쩍어하는 사람들도 지금의 분위기가 썩 좋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럼 된 거죠. 아카데미란 기본적으로 업계 사람들의 잔치니까 말입니다. 괜히 냉소적으로 굴면서 이런 분위기를 깰 필요는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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