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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는 시선

아마 한국 영화도 언젠가 이 영화상의 후보에 오르긴 하겠죠. 오르면 ‘국위선양’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거고. 하지만 그건 국위선양에 목숨 거는 그 아저씨들이 어깨 힘을 어느 정도 푼 뒤에야 가능할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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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카데미상 후보작들이 발표되었습니다. 이전엔 뒤늦게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통해서야 접할 수 있는 소식이었지만 그동안 세상이 좋아졌죠. 요샌 CNN 사이트에 들어가 생중계로 후보작 발표를 볼 수 있습니다.

올해는 분위기가 어떤가요? 흠… 일단 마틴 스콜세지가 <디파티드>로 또다시 아카데미에 도전한다는 사실을 덧붙여야겠군요. 수상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인상적인 영화지만 그의 전작들만 한 힘은 없는 것 같거든요. 작은 영화로 선전한 작품으로는 <미스 리틀 선샤인>이 있군요. 엄청나게 신선한 영화는 아니지만 이야기의 느낌이 좋았고 캐릭터들이 무척 사랑스러운 영화였지요. <타이타닉>의 두 주연배우였던 케이트 윈슬렛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모두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물론 엄청난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여우주연상은 헬렌 미렌에게 돌아가겠지만요.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올해 미렌에게 상을 주지 않는다면 아카데미는 그 뒤로 몇십 년 동안 욕을 먹겠지요. 그 이외에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귀향>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서 탈락했군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에 밀린 걸까요? 하지만 <판의 미로>는 공식적으로 멕시코 출품작이라고 알고 있는데… 뭐, 사정이 있겠죠.

참, <왕의 남자>는 후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사실 기대도 안 했어요. 좋은 부분이 많은 영화였지만… 글쎄요. 솔직히 이런 영화상에서 경쟁력이 그렇게까지 높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해당 시기에 만들어진 한국 영화 중 아카데미 회원들의 구미에 가장 맞는 영화였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요.

하긴 그런 게 좀 있습니다. 한국에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내세우는 영화는 모두 조금씩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요. 당시 만들어진 최고의 영화는 당연히 아니고, 은근히 나들이 옷 입고 서울 구경 온 촌 아가씨 분위기의 선정을 하는 경우가 많죠. 웃기는 건 정작 이런 선정의 대상이 되기 전에 그 영화들이 지녔던 고유의 장점도 선정 과정 중의 정치와 나들이 옷 단장, 눈치 보기 속에서는 은근슬쩍 사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칸이나 베를린과 같은 국제 영화제에 선정되는 영화는 사정이 다릅니다. 그 경우엔 일단 칼자루를 영화제 측에서 쥐고 있으니 이런 식의 눈치 보기가 해당사항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 때문에 무슨 영화가 출품되건 우린 큰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고른 사람들도, 레드 카펫을 타는 영화인들도 자기네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지요. 낯부끄러울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내세우는 영화를 보면 사정이 달라요. 괜히 안쓰럽고 보고 있으면 몸 어딘가를 긁고 싶어집니다.

왜 이렇게 어색한 걸까요. 그거야 우리가 아카데미를 보고 거기에 대응하는 관점이 한심할 정도로 촌스럽기 때문입니다. 우린 이 행사를 철저하게 국가주의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어요.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도전하는 건 영화 올림픽에 참여하는 것이고 거기에 후보로 오르거나 상을 타는 건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휘날리며 국위선양을 하는 것입니다. 모 은행 광고에 나와서 열심히 국가를 위해 ‘뺑이’를 치는 불쌍한 비보이들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물론 이 모든 건 사정이 다릅니다.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은 할리우드 동네 영화제의 장식에 불과하고 정말로 거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지 않았다고 <귀향><판의 미로>보다 못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거고요. 여기서 상처받는 사람은 시시때때 국위 선양의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죠. 그게 누구건 간에요. 솔직히 우리가 지금까지 계속 후보에 오르지 못했던 것도 그 사람들이 지나치게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 한국 영화도 언젠가 이 영화상의 후보에 오르긴 하겠죠. 오르면 ‘국위선양’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거고. 하지만 그건 국위선양에 목숨 거는 그 아저씨들이 어깨 힘을 어느 정도 푼 뒤에야 가능할 걸요. 그래야 눈이 뚫리고 정치와 홍보에도 더욱 유연한 태도로 대응할 수 있을 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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