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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다이라 아즈코의 단편 「애드리브 나이트」를 각색한 이윤기의 <아주 특별한 손님>을 보면 주인공 보경이 자신이 잠시 대역을 하게 된 여자의 방에서 그 여자의 양말을 신어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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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라 아즈코의 단편 「애드리브 나이트」를 각색한 이윤기의 <아주 특별한 손님>을 보면 주인공 보경이 자신이 잠시 대역을 하게 된 여자의 방에서 그 여자의 양말을 신어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원작을 비교적 충실하게 옮긴 것으로 책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루미는 몇 번 뒤척이던 끝에 잠들기를 포기했다. 마사코가 서랍을 열 때 보았던 감색 양말을 꺼내 신어보았다. 메이커 상표가 붙은 그것은 루미의 발에 딱 맞았다. 얼굴은 모르겠지만 발 사이즈는 똑같구나, 하고 루미는 생각했다.」

주인공 이름이 루미코에서 보경으로 바뀌고 감색 양말이 흰 양말로 바뀐 걸 빼면 달라진 게 별로 없죠. 사실 기본 의미도 크게 다를 건 없습니다. 하지만 이윤기의 영화를 보면 같은 장면이라고 해도 느낌이 훨씬 강합니다. 더 시적이고 풍성하게 느껴지지요.

이유는? 우리가 직접 볼 수 있는 피사체가 예뻐서? 사실이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죠. 진짜 이유는 다이라 아즈코가 명쾌한 논리의 문장으로 주인공의 동기와 행동을 분석한 그 장면에서, 이윤기는 논리, 분석, 설명을 빼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차분하게 양말을 갈아 신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의미는 더 커집니다. 일단 관객의 해석 가능성이 커져요. 보경은 자신이 대역을 맡은 여성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을 수도 있고, 양말을 신는다는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대역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좋은 상징적 장면이 그렇듯, 그건 그냥 더러운 양말을 갈아 신는 일상적인 행동일 수도 있어요. 이 모든 의미는 하나의 장면 안에 동시에 존재하면서 일종의 화음을 만들어냅니다. 원작 소설에서는 바이올린 독주였던 게 작은 실내악곡으로 바뀐 것이죠.

이윤기의 영화에는, 소설에 나오지 않지만 언급할 가치가 있는 장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원작 소설에서 (여기서부터는 소설과 영화 모두의 스포일러!) 주인공 자신이 딸 역할을 하는 남자의 임종을 제대로 접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보경은 남자가 죽고 친척들이 떠드는 동안 남자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이지요. 이 장면도 역시 원작 단편보다 훨씬 근사합니다. 물론 보경이 하는 말은 뻔해요. 딸을 대신해서 “죄송해요”라고 말했던 거죠. 관객도 다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미를 모를 때 그 행동은 더 아름답습니다. “죄송해요”라는 뻔한 단어 주변을 가능성의 아우라가 둘러싸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영화가 직접적으로 문장의 의미를 전달하지 않자, 비교적 뻔한 문장 자체보다 보경의 그 행동에 집중하게 되는 거죠. 자기 말을 듣지도 못하는 죽은 남자에게 다른 누군가를 대신해서 화해의 말을 전달하는 것 말이에요.

<아주 특별한 손님>의 한 장면
하지만 이윤기는 <여자, 정혜>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그 근사하게 쌓아놓은 장면을, 원작에도 없었고 영화에도 있을 필요가 없는 후반부의 장황한 설명으로 망쳐버립니다. 그 장면에서 보경은 자신이 거기서 뭐라고 말했는지를 그대로 고백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그 엉뚱한 아르바이트를 제안받았을 때 무슨 위치에 있었는지까지 다 말해버려요. 물론 그 역을 맡은 한효주에겐 문제가 될 게 없지요. 그런 고백 장면은 배우에겐 좋은 경험이고 자신의 역량을 과시할 기회니까요. 하지만 영화 전체를 통해 보면 그건 정말 군더더기일 뿐만 아니라 공든 탑을 작정하고 무너뜨리는 행동이지요. 이럴 때마다 전 <행잉 록의 피크닉>의 감독 피터 위어가 한 유명한 말을 떠올립니다. “미스터리의 가장 큰 단점은 가끔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은 이윤기가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방식이 지극히 ‘문학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좋은 말이 아닙니다. 훌륭하게 영화적인 어휘를 정성껏 쌓아놓고 원작에도 없는 문장과 단어와 논리로 그걸 부숴버리는 것이죠. 그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건 원작에 대한 존중보다는 문학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장황함은 그의 필모그래피 중 비교적 범작에 속하는 <러브 토크>에서 더 잘 드러나죠. 재미있게도 그건 다른 두 편과는 달리 오리지널 각본입니다. 아이러니죠. 그리고 아마 그건 앞으로 이윤기가 타파해야 할 장벽이기도 합니다. 그가 몇몇 각색물을 더 시도해보면서 그 아이러니의 영역을 탐구해보길 제가 바라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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