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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지 않아?? 한상원 밴드 콘서트

몇 해 전, “저는 재즈가 싫어요”라는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재즈바로 끌고 간 선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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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저는 재즈가 싫어요”라는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재즈바로 끌고 간 선배가 있었다. ‘재즈=흐느적거림’이라는, 그야말로 단순무식한 논리를 가졌던 필자의 귀에 그곳은 바로 신천지였다. 재즈도 머리를 흔들고 어깨를 들썩이며, 아니 스탠딩으로 즐길 수 있구나!! 물론 '재즈’라는 이름으로, 그 종류에 따라, 악기 편성에 따라 표현되는 다양성을 모두 받아들이지는 못했으나, 분명 ‘흐느적거림’조차도 더 친숙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연말 재미를 보장하는 대형 콘서트를 뒤로하고 과감히 그 열정의 향연에 동참한다.

평일 저녁, 대학로에 있는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무대에 국내 펑크 뮤직의 대표주자 한상원 밴드가 올랐다. 빛바랜 티셔츠에 헐렁한 청바지 차림으로 무대 구석에 선 한상원은 그들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공연구성만큼이나 군데군데 빈 객석에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개념을 초월한 듯한 그의 표정은 언제 봐도 유쾌하다. 평소 클럽 공연 때보다 다소 화려한 차림의 보컬 유진하는 어떤가? 허스키하고 끈적이면서도 강약이 뚜렷한 그 묘한 음색의 매력은 여전하다.

무대는 기승전결이 따로 없다. ‘Funk Station’ ‘Soul Power’ ‘이탈’ 등이 이어지자 후끈 달아올랐다. 게다가 이번 공연에는 비보이 그룹 ‘리버스크루’와 비트박스 ‘은준’, 힙합 디제이 ‘렉스’까지 동참했다. 이 뜻밖의 조합이란! 결국 신명나게 놀아보자는 것이다. 자,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단연 ‘즉흥성’을 들 수 있다. 실력이 미진할 경우 즉흥성은 준비하지 못한 미숙함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실력가의 즉흥무대는 그들의 최고점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열정의 릴레이다. 무대 위에서 보자면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의 재해석이며, 무대 밖 팬으로서는 라이브로만 맛볼 수 있는 단 한 번의 멋진 선물이다.

펑크머신 한상원 밴드


실제로 밴드의 연주가 계속되는 사이 무대 저편에서는 렉스의 감각적인 디제잉이 더해진다. 은준의 비트박스도 정말이지 신기에 가깝다.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기계보다도 정교하고 현란한 리듬에 모두 넋을 잃은 표정이다. 그러나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된다. 리버스크루의 환상적인 몸놀림도 봐야 할 것이 아닌가. 날고 돌고 솟았다 꺾어지고…. 그러고 보니 이들의 공통점이 또 있다. ‘사람이 맞나?’ 의심스럽다는 점. 더불어 세상의 잣대가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삶을 만들어가는 자유영혼을 지녔을 것이라는 점이다.

무대 위 한상원의 표정만큼 그 자유로움을 속 시원히 대변하는 것은 없다. 보컬이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러젖힐 때도, 리버스크루가 남들보다 세분화된 관절로 현란한 춤사위를 펼쳐보일 때도, 그리도 자신이 그 리듬을 이끌어가며 기타를 매만질 때도 흥에 겨운 표정이 역력하다. 그는 자주 그만의 독특한 미소를 머금고 객석을 바라보는데, “정말 재밌지 않아?”라고 묻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표정은 ‘일어나라’는 말보다 더 강력히 모두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다.

고독의 승화 한상원의 솔로 연주


한상원은 말했다. 모두에게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지만 사람은 외롭다고. 그렇게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것 같은 막막함 속에 그때의 고독을 표현한 곡이라며 ‘Solitude’를 연주했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할 말을 잃는다. 애써 묻어둔 고독이 고개를 들고 위로를 구하는 듯하다. 그리고 나면 한상원의 신명나는 연주도, 기타를 쥐어뜯는 열정도, 객석을 바라보는 묘한 미소도 그 깊은 고독에서 다져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실 객관적인 눈으로 보자면 이번 공연은 엉성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콘서트라고 하지만 특별한 무대장치도 없고, 클럽 공연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유진하의 보컬과 밴드의 독주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클럽 공연이 구성 면에서는 훨씬 낫다. 또 밴드와 렉스, 은준, 리버스크루의 조합이 뜻밖이었던 만큼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보인다. 한상원은 마지막 곡이라는 말도 없이 무대에서 퇴장해 팬들을 당황케 하는가 하면, 객석은 ‘펑크 뮤직’에 맞지 않게 상당수가 ‘점잖게’ 앉아 있다. 분위기로 봐도 술까지 곁들일 수 있는 클럽 공연이 한 수 위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자유영혼’을 떠올려 본다. 한상원은 무대를 열며 “사회적 지위나 배경, 자신의 위치 등을 모두 잊고 즐기자”라고 말했다. 공연을 즐기는 데, 또한 무대를 구성하는 데 정해진 방법이나 갖춰야 할 틀은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무대 위에서 그것을 몸소 실천하고, 객석에서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느끼고 즐기면 된다. 한상원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 한상원 음반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펑크 뮤직에 대해 잘 모른다(필자는 모두 해당한다)… 그럼 어떤가? 음악을 들었는데 신나면 어깨춤을 추고 즐기면 그만이다.

한상원 밴드 콘서트


한상원 밴드의 공연을 보고 있으면 그 같은 자유로움이 느껴져 좋다. 객석을 다 채울 필요도 없고, 꼭 이름을 알릴 필요도 없다. 넘치면 넘치는 대로,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여는 작은 축제! 멋지지 않은가? 사회적 기준을 넘어선 자유의지를 느끼고 싶다면 한상원 밴드의 공연을 추천한다. 한상원은 새해에도 어딘가의 클럽에서 기타를 쳐대며 특유의 미소를 날리며 묻고 있을 것이다.

“음악도, 이 무대도, 우리 인생도 정말 재밌지 않아?”

한상원 밴드 콘서트 "Funk Machine"
2006년 12월 27일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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