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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사라진 헌책방 카페 '캘커타'

오늘 하루는 아이들과 함께 서울숲으로 나들이를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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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아이들과 함께 서울숲으로 나들이를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도시의 찬란한 네온사인보다 저마다 하나하나 사연 많고 이야기가 가득한 사람들이 사는 작은 창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너무 멀리 있어 아득하기만 한 밤하늘의 별빛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에는 지치고 외로워 자칫 나의 길을 잃을 때 가만히 그 자리에서 자신만의 빛으로 길을 보여주며 세상이 그래도 살 만한 곳이라는 걸 가르쳐주는 소중한 공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그런 소중한 별 중의 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오랜만에 헌책방 카페인 [캘커타]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그 다음 날 카페가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지켜줄 것만 같아서, 내내 마음속에만 두고 말았는데 그만 여러 가지 이유로 더는 운영할 수 없게 되었다는 글이 올라와 있더군요.

카페 캘커타


지난 5월, 꽃 냄새가 완연하던 날 이른 저녁에 방문한 북 카페 [캘커타]는 참 좋았습니다. 시끌벅적한 홍대 거리에서 조금 벗어나 청기와 주유소에서 외환은행 방면으로 걷다가 주택가 쪽으로 들어서면 한 귀퉁이에 수줍게 자리한 [캘커타]에서 감잎차를 마시며 지인과 이야기를 나눈 그 시간이 꿈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편안하고 사람 냄새 폴폴 나던 공간이었기에 언젠가 다시 와야지 했는데 그만 시간이 이렇게 가버렸네요.

아쉬움에 아이들과 다음 날 당장 [캘커타]로 길을 나섰습니다. 누가 기억해주건 말건 내게 그곳은 오래된 책 향기와 그 속에 담긴 무수한 사람들의 손길과 발자국을 통해 세상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하필이면 그날이 영하의 강추위를 자랑하던 날이라 따라나선 아이들은 이 추운 날에 도대체 엄마가 어디를 가자는 것인가 몹시 궁금해했습니다.

“엄마, 어디 가?”
“응. 캘커타.”

그러자 큰아이가 놀라며 “거기는 인도잖아. 우리 지금 인도 가는 거야?” 하고 묻네요. “아냐. 그곳은 말이야, 헌책이 가득 쌓여 있는 재미있고 따뜻한 북 카페야”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빨리 가보고 싶다. 너무 추워!”

벌써 겨울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릴 무렵에야 아이들과 도착한 [캘커타]는 조용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에서 일하는 장애우 세 분이 약간 놀란 듯 쳐다보시네요. “저… 오늘 이곳이 문을 닫는다고 카페에서 글을 읽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꼭 이곳을 보여주고 싶어서 오늘 찾아왔어요.” 내 설명에 그분들은 환하게 웃으며 어서 들어가 앉으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따뜻한 방으로 들어가 손을 녹이며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우와… 여기 책 많다. 이게 다 헌책이야?” 동네 허름한 헌책방의 퀴퀴한 냄새를 기억하는 둘째는 깔끔하게 진열된 책장을 보며 이것저것 살펴보았습니다. “와, 옛날 사진기도 있고, 녹음기도 있고, 신기한 것도 많다.”

책을 둘러보고 있으니 메뉴를 가져다줍니다. 플리트우드 맥의 LP판을 리폼하여 만든 메뉴가 정겨웠습니다. 그때 바깥에서 음악이 들려왔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LP플레이어를 타고 방안에 따뜻함을 불어 넣어주네요. 우리는 감잎차와 밀크 짜이를 시켰습니다. 잠시 후 차가 나왔는데 아이들이 왔다고 고구마랑 방금 구운 감자전이 3장 같이 나왔습니다.

메뉴를 고르는 아이들


“엄마, 여기는 진짜 좋다. 이런 거 안 시켜도 우리가 배고픈지 어찌 알고 척척 갖다주실까?”

그러게 말이다. 딸아, 그게 바로 사람 사이의 情이 아닐까? 처음 본 사람도 내 집에 온 사람이라면 따뜻하게, 편안하게 쉬었다 가도록 마음을 쓰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고맙게 받을 줄 아는 것, 또 나중에 받은 마음을 필요한 곳에 꼭 다시 되돌려주는 것… 거기서부터 세상은 다시 살 만한 곳으로 시작되지 않을까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공간이 오늘로 없어진다는구나.

감자전 한 조각, 차 한 모금 번갈아가며 맛나게 먹는 아이들을 보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네요. 그러나 아이들도 자기들만의 몫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이들의 느낌 그대로를 존중해보기로 했습니다.

“엄마, 여기 천정이 계란판이다. 넘 재미있다. 우리도 방에 계란판으로 천장을 꾸며볼까?” 둘째는 마치 몰래 혼자 올라가 본 다락방에서 여기저기 신기한 물건을 꺼내 보듯이 말했습니다. 그 사이 첫째는 사인북을 꺼내 일하시는 분께 내밀었습니다. 수줍어하시는 그분께 아이가 “맛있는 전이랑 고구마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가 이곳이 오늘로 마지막이라고 했어요. 기념으로 사인을 받아 두고 싶어요”라고 설명하니 자신의 이름을 써주었습니다. 내친김에 사진도 한 장 찍었지요.

앉은뱅이 탁자들이 놓인 북카페


“여기 있는 책은 모두 어떻게 되나요?” 궁금해서 물어보니 다른 헌책방에 팔거나 아니면 주인장의 집으로 가져갈 것 같다고 했습니다. 방 한구석이나 책장 모퉁이에서 먼지가 쌓인 채 천덕꾸러기가 되던 신세에서 벗어나 이제야 그럴듯한 책꽂이에 가로가 아닌 세로로 정갈하게 제자리를 찾은 헌책들이 새로운 주인의 손에서 다시 한번 새 출발을 할 날을 기다리며 다소곳하게 있는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새하얀 종이에 화려한 색깔의 새 책들이 저마다 주인을 유혹하는 거대 서점의 경쟁과 승패, 우열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헌책방의 책들은 임자 만나 팔려가는 책을 보며 남은 책이 시샘의 눈길을 주기보다는 ‘자네, 이제 주인 만나 가는구먼. 축하함세’ 하면 ‘내, 먼저 자리 떠서 미안하구먼. 자네도 좋은 주인 만나게’ 하며 서로 아쉬워하는 마음이 느껴진다고 하면 너무 비약이 심한 걸까요?

저렇게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며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이 몇 시간 뒤면 이곳에서 이사를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고 이 작은 공간을 지켜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어울려 책도 읽고 문화를 논하고 함께 여행도 가는 즐거운 공간 하나가 또 사라지는구나 하는 마음에 괜스레 가벼운 내 주머니만 원망스러워지더군요. 가끔 들렀던 나조차 이러한데 정작 이곳을 지켜가고 가꾸었던 주인장과 일꾼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구경에 열심인 꼬마


시간이 얼추 지나 일어서야 할 때가 되어 우리는 [캘커타]를 나섰습니다. 몇 번이나 잘 있으라, 잘 가시라 인사를 주고받고 나왔지만 올 때보다 갈 때의 마음은 저나 아이들이나 무거웠네요.

“엄마, 나도 나중에 크면 저런 북 카페 하나 만들고 싶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아는 사람들 모여서 책도 읽고 이야기도 하고 재미있게 놀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저기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둘째가 손을 호호 불며 이야기합니다.

캘거타 북카페 지키미와 함께


엄마도 그렇단다. 아이들과 집으로 오는 길에 깔끔하게 단장하고 최신식 서비스를 갖춘 북 카페를 하나 지나오면서 지금 우리가 잃어 가는 것은 무엇이고 또 나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일까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작지만 사람 냄새 가득한 그런 공간이 더는 사라지지 않고 메마르고 지친 영혼의 이정표로 늘 함께 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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