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영'에겐 바로 지금이 기회!
문근영 주연의 <사랑 따윈 필요 없어>가 흥행에 실패했다는군요. 이번 주에 거의 막을 내리는 모양인데, 50만 명도 보지 않은 모양입니다. 문근영 최초의 흥행 실패작이라고 기사까지 뜨더군요.
문근영 주연의 <사랑 따윈 필요 없어>가 흥행에 실패했다는군요. 이번 주에 거의 막을 내리는 모양인데, 50만 명도 보지 않은 모양입니다. 문근영 최초의 흥행 실패작이라고 기사까지 뜨더군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 따윈 필요 없어>는 그렇게 좋은 영화도, 재미있는 영화도 아니었으니까요. 결정적으로 영화는 기획 자체가 이상했습니다. 소설이라면 모를까, 방영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일본 드라마를 영화로 만들면 비교하며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2시간 안팎의 짧은 러닝타임으로는 원작의 스토리를 요약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고요. 아무리 나무 액터스에서 우겼다고 해도 아저씨뻘인 김주혁을 문근영의 파트너로 설정하면 꼴이 우스울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찍은 키스신도 문근영 보호를 위해 뺐다면서요? 김주혁 캐릭터에게 붙인 줄리앙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이 잠재 관객들에게 끼친 부정적인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군요. 영화 보며 돋을 닭살이 두려워 극장 근처에도 가지 않은 문근영 팬들도 꽤 될 겁니다. 적어도 10만 정도는 그 이름 때문에 날아갔을 걸요.
이 모든 건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영화가 망한 걸 보고 뒤늦게 “이랬으니 망했지!”라고 분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이 이야기들은 모두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나왔거든요. <사랑 따윈 필요 없어>의 개봉은 이전부터 떠돌던 이야기와 선입견을 확인시켜준 행사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그래도 문근영 팬들은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팬들의 인내엔 한계가 있죠. 물론 작년 수능 소동 이후 팬의 수가 꽤 줄기도 했고. 아니, 팬의 수가 줄었다기보다는 안티의 수가 늘어났죠. 결과는 마찬가지지만.
그런데도 그 사람들은 그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문근영의 스타 파워를 믿었던 걸까요? 하긴 <어린 신부>와 <댄서의 순정>의 흥행 성공을 보면 그런 착각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둘 다 문근영이 주연했다는 이유만으로 성공한, 시시한 영화들이었지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전 <사랑 따윈 필요 없어>를 만드는 사람들도 대부분 자기네들이 시시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았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이 만드는 건 ‘문근영이 나오는 시시한 영화’라는 점이었죠.
어떻게 보면 이 시시한 영화들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은 문근영 자신입니다. 결국, 그 영화들을 최종적으로 선택한 사람은 문근영 자신이니까요. 하지만, 정작 그렇게 비난하긴 쉽지 않아요. 그렇게 보이지도 않고. 문근영의 ‘국민여동생’ 이미지는 전적으로 문근영에 의해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심지어 그 사람이 정말로 ‘여동생’으로 나왔던 <연애소설>이나 <장화, 홍련> 때 만들어진 것도 아니죠.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문근영 이미지는 <어린 신부> 이전엔 그렇게까지 일방적이진 않았습니다. 심지어 <장화, 홍련>의 히트를 끼고 방영된 <아내>에서도 문근영의 캐릭터는 결코 아기처럼 귀엽지 않았지요. <어린 신부> 이후 시작된 이미지 착취가 몇 년 동안 가능성 있는 배우 하나를 말아먹은 거예요. 슬슬 스타 시스템의 징그러움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문근영과 나무 액터스가 그동안 벌어들인 돈이 얼마건, 이건 결코 밟아서는 안 되는 길이었어요. 스타의 이미지란 원래 허약하게 마련입니다. 그 스타가 아직 자신의 의지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미성년자라면 더욱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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