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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칼 세이건이 지금 『에덴의 용』을 썼다면?

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을 다시 읽었습니다. 이 작품은 이전에도 몇 번 번역되어 읽은 적이 있는데, 새 번역본을 읽는 건 역시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뒤로 거의 30년의 세월이 지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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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을 다시 읽었습니다. 이 작품은 이전에도 몇 번 번역되어 읽은 적이 있는데, 새 번역본을 읽는 건 역시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뒤로 거의 30년의 세월이 지났어요. 소설이라면 언제 번역되어도 상관없지만 과학교양서인 경우라면 사정은 다르죠. 그동안 과학은 발전하게 마련이고 새 정보도 쌓이니까요.

영어로 출판된 과학책 중 가장 많이 판매된 『코스모스』의 작가 칼 세이건
그럼 『에덴의 용』은 낡은 책일까요?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이 책은 근처 초신성에 의한 공룡 멸망설을 진지하게 제시하고 ‘핑퐁’을 최첨단 비디오 게임으로 소개하고 있으니까요. 그밖에 제가 깜빡 잊었거나 놓치고 지나갈 만한 자잘한 점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과학적인 개념을 소개하고 기본적인 과학 교양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에덴의 용』은 여전히 유익한 책입니다.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죠.

일단 세이건은 좋은 작가이고 과학자입니다. 표현은 풍부하고 예시는 정확하며 자신이 쓰는 대상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지요. 심지어 그의 전공이 아닌 부분에서도 말입니다. 아시모프의 논픽션 책들이 여전히 팬들에게 사랑받는다면 세이건도 그러지 말라는 법 없죠. 『에덴의 용』은 그냥 좋은 책입니다.

다른 이유는 덜 재미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린 30년 동안 그렇게까지 엄청난 발전은 이루지 못했어요. 물론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정보사회가 발전하는 식의 기술적 도약은 있었지요.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이나 양자역학의 등장처럼 한 시대의 과학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한 혁명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에덴의 용』이 다루는 인간 두뇌와 지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세이건의 예측과 기술이 아직도 의미가 있는 건 그동안 우리가 쌓은 발전이 양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세이건이 지금 『에덴의 용』을 썼다면 다른 책이 되었을까요? 그럴 겁니다. 담겨있는 주장과 지식엔 큰 차이가 없었을 거예요.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엔 상당한 차이를 두었을 겁니다.

전 그가 책에 『에덴의 용』이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70년대는 근본주의 기독교와 창조론의 역풍이 별다른 의미가 없었던 때죠. 세이건이 『에덴의 용』에 수많은 성서 인용을 넣고 정보를 전달하고자 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도 그가 신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인문적 교양이 과학적인 지식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편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죠. 세이건은 온갖 종류의 사이비 과학을 증오하던 남자였어요. 지금 썼다면 결코 근본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하거나 잘못 인용될 만한 비유는 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에덴의 용』에서도 끝부분에선 사이비 과학을 비판하는 문장들이 조금 나오긴 해요. 하지만, 지금 발표되었다면 이와 관련된 챕터 하나를 더 추가했을 걸요. 세이건의 기준에 따르면 우리는 30년 전보다 특별히 똑똑하지 못해요. 오히려 평균을 내면 더 어리석어졌을 걸요. 이런 데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부터가 그 증거입니다.

수많은 과학자와 SF 작가들은 이성과 과학이 지배하는, 더 나은 미래를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십 년 동안 우리가 쌓은 과학과 기술의 양적 발전에도 우린 점점 더 많은 역풍에 시달리고 있죠. 인터넷과 정보 사회의 발전은 오히려 이런 역풍을 부채질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쓸모없는 정보과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이 돌아다니고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목소리를 내죠.

이런 경향이 쉽게 멈출 것 같지 않습니다. 과학이 더욱 분명한 해답을 몇 년 안에 줄 가능성은 거의 없고…. 사실 과학 자체도 잘못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해답을 줄 수 있는 때에도 오용되고 있기 때문이죠. 얼마 전 북핵사태 때 “과학적으로 대답하시죠!”를 외쳐댔던 전여옥 의원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과학에 대해 상식적인 개념만 알고 있어도 그런 말은 나올 수가 없죠. 사실 저번 줄기세포 소동도 마찬가지였고요. 이 모든 건 과학이라는 단어에 대한 미신적 숭상과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의견을 내는 ‘주류’ 과학자들에 대한 편리한 증오가 교묘하게 겹쳐진 결과였죠.

세이건은 과학자들의 방법론이 일반 세계에서도 적용되길 바랐습니다. 아름다운 생각이고 저 역시 남몰래 그런 시대가 오길 바라지만 그건 꿈입니다. 심지어 과학세계에서도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죠. 우리가 불완전한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이 비이성적인 혼돈 속에 정신 일부를 담글 수밖에 없어요. 문제는 그 비율을 어느 정도로 유지하느냐의 문제인데, 아까도 말했지만 과학은 그 해답이 아닙니다. 딱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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