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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없는 SF 작가 듀나, 외계인의 지구침공을 이야기하다

중요한 건 매체가 아니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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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흔치않게 꾸준히 과학 소설을 쓰고 있는 듀나의 네 번째 소설집(공동단편집을 포함한다면 다섯 번째)이자 첫 번째 장편인 『대리전』은 외계인의 지구침략 이야기다.

일주일 동안 세 번의 이메일을 통해 얼굴 없는 과학소설 작가이자 영화 칼럼니스트 듀나를 인터뷰했다. 역시나 그/그녀는 자신의 일상과 취향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거나,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을 피했다.

한국에서 흔치않게 꾸준히 과학 소설을 쓰고 있는 듀나의 네 번째 소설집(공동단편집을 포함한다면 다섯 번째)이자 첫 번째 장편인 『대리전』은 외계인의 지구침략 이야기다. ‘외계인의 지구침략’은 작가가 후기에서 밝힌 것처럼 과학소설의 가장 뻔한 설정 중 하나이다. ‘도대체 왜 외계인은 지구를 정복하려는 걸까?’ 듀나의 『대리전』은 그 질문에 대한 나름의 ‘소박한’ 해답이다.

『태평양 횡단 특급』을 출간할 때, 한 인터뷰에서 다음에는 장편 작품으로 독자를 만나시겠다고 했는데, 『대리전』이 그 때 말씀하신 장편이신가요?

아뇨, 그 장편은 여전히 머릿속에서 굴리고 있는 중입니다. 2010년이 지나기 전에 완성하는 것이 계획인데 또 모르지요. 그런데 어떤 장편 이야기인지 모르겠군요. 인터뷰 때마다 완성하겠다고 호언장담한 장편 아이디어가 셋이나 되거든요. (둘이던가?)

이제까지 책으로 낸 작품들은 단편이 아니면 중편들이었는데 새롭게 장편을 쓰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단편 창작과 많은 차이가 있던가요? (개인적 느낌으로는 단편 같은 장편이었습니다만) 이번 작품이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의 작품인지도 궁금합니다.

음... 모르겠어요. 사실 전 이전에도 장편 시도가 있었습니다.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한 번 완성한 적도 있고요. 『대리전』의 경우는 왔다 갔다 했습니다. 장편으로 시작했다가 중간에 살짝 긴 단편으로 한 번 완성해서 발표해보기도 했고 그걸 기반으로 스토리들이 이어지는 픽스업 소설을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그러다 지금 형태로 굳어진 것인데, 이 갈팡질팡하는 과정을 제외하면 특별히 달라진 건 못 느끼겠습니다.

의미는... 별로 없어요. 이 정도 길이로 다듬어진 글이 나왔다는 게 중요하겠죠. 새로운 시도가 있다면 주인공이 예쁘다는 것?

이번 책은 특별하게 삽화가 들어갔습니다.

그건 시리즈(환상문학 시리즈)의 고정된 형식이었어요. 제가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대리전』에서 레즈비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레즈비언 문화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제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입 달린 머리에 불과해요. 여자여도 되고 남자여도 되고 동성애자여도 되고 이성애자여도 되지요. 어느 쪽이건 별 상관없어요. 전 지금까지 네 조합을 모두 써봤어요.

『대리전』의 경우는... 이성애 관계면 좀 교통정리가 안 되지 않았겠어요? 그 설정에서는 그게 가장 자연스럽지요. 제가 쓰는 이야기에서는 캐릭터나 심리묘사보다 설정이 더 중요해요.

『대리전』에 나오는 구혜선 돌피 인형은 듀나 님이 '현실에서'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개인적인 궁금증입니다)

맞아요! (당사자에겐 심하게 미안하지만) 그 사람 정말 인형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보고 있으면 마구 옷 갈아입히기 놀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세요? 심지어 전 그 인형에 대한 꿈도 한 번 꿨었어요. 그에 대해 한참 떠들어 댔기 때문에 제 게시판 고정 방문객들은 다 알고 있지요. 아마 다들 이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으이구, 드디어 저질러 버렸구나."

근데 돌피 혜선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에요. 돌피는 상표 이름이니까요. 하지만 구관 혜선은 그렇게 예쁘게 들리지 않죠? 하긴 그 인형은 구체관절 인형도 아니긴 해요.

듀나 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참 상상력이 기발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상력을 가능하게 한 원천들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구체적인 경험이나, 작품이 있으신가요?

자잘하죠. 특별히 의미 있는 구체적인 덩어리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건 몇 마디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개인과 장르의 성향인 것 같습니다.

작품을 창작함에 있어,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과학소설 작가들이 있으신가요?

전체적인 건 모르겠고 이번엔 통속적인 스페이스 오페라를 의도했지요. 은근히 데이빗 브린의 『스타타이드 라이징』이나 그 책이 속해있는 ‘업리프트’ 시리즈를 염두에 두었던 것 같습니다. 닮지 않아서 다행이지만요.

동시대의 과학소설 작가 중에서 주목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요?

글쎄요. 늘 바뀌어서요. 코니 윌리스의 책은 늘 즐겨 읽지요.

듀나 님에게 글을 쓰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천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여전히 그렇게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저에겐 별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글을 쓰는 것에 특별히 끌리시는 것이 아니신가요? 별 선택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글쓰기 외의 시도할만한 다른 매체가 없다는 뜻인가요?

네, 전 아직도 이 도구가 편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하지만 다른 소통의 방법이 없어요. 어쩌다 보니 이 방향으로 계속 흘러왔고요.

'장르 소설이 제일 쓰기 편하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어떤 이유로 그런지 궁금합니다. 또, 장르 소설의 매력은 무엇인지도 알고 싶습니다.

관습과 도구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아니까요. 저에게 장르는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나 잘 아는 친구 같아요. 특별한 매력보다는 편안함이 더 중요하죠. 사실 이 정도 단계에 이르면 매력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죠.

요즘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사라 워터스의 신작 소설을 기다리고 있어요. 얼마 전에 옵저버에 실린 서평을 읽었는데 반응이 꽤 좋군요. 기대돼요. 2차 세계대전 시대 배경의 연애소설들을 좋아하거든요.

장르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장르의 법칙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본인의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장르의 법칙'을 숙지하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장르의 공식과 관습을 알고 있다면 글의 독창성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진짜 의도에 집중할 수 있겠지요. 아주 극단적으로 예를 들어, 어떤 작가가 시간여행에 대한 글을 썼다고 생각해보세요. 시간여행은 뻔한 관습이니, 이 사람은 그 도구를 통해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겠지요. 그런데 독자들이나 평론가들이 그 책을 읽으면서 시간여행에만 집중한다면? 작가로서는 조금 짜증나겠지요?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장르 규칙에 익숙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어차피 제 글에서 하려는 이야기는 그렇게까지 복잡하거나 은밀하지는 않거든요.

과학소설은 과학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과학이 없다면 과학 소설도 없었을까요?

과학이 없었다면 당연히 과학소설도 없었겠지요. 세계를 보는 관점과 상상력의 기반인걸요. 하지만 과학이 없는 과학소설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어요. 장르는 운신의 폭이 꽤 넓은 곳이지요.

대부분의 소설들이 일인칭 화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소설 속 화자의 목소리가 듀나 님의 목소리로 착각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별한 효과를 노리고 1인칭 화법을 사용하시는 건가요?

아뇨. 역시 게으름의 문제예요. 일단 그게 편해요. 그리고 화자에게 이름을 지어줄 필요가 없지요. 전 캐릭터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게 싫어요. 귀찮고 어색하지요. 『대리전』의 경우는 내용 중간에 필요해서 결국 졸속으로 이름들을 만들어 붙여주긴 했는데, 그래도 거의 쓰지는 않았어요. 인칭대명사의 문제도 있군요. 전 '그녀'라는 단어를 굉장히 싫어해요. 그렇다고 그냥 '그'로 통일해 버리자니 엄청 불편하고요. 결국 자의반 타의반, 수다스러운 일인칭 화자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어요.

장르소설의 한계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건 장르소설을 벗어난 보편적인 질문이에요. 어떤 것에 한계가 있다면 그 한계는 대부분 그 대상의 존재 이유나 장점과 연관되어 있죠.

많은 과학소설을 읽어왔으리라 생각됩니다. 한글로 된 책을 많이 보셨는지, 영어로 된 책을 많이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어로 과학 소설을 쓰면서 한국어 자체의 한계에 부딪쳐본 적은 있으신가요?

어쩔 수 없이 영어책들을 접할 수밖에 없지요. 불편하지만 현실이 그런걸요. 전 늘 한국어와 충돌해요. 과학소설이 아닌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죠. 역시 불편하지만 현실이 그래요.

글은 꾸준하게(매일 시간을 정해서 쓰는 식으로) 쓰는 편인가요?

그러고 싶지만 안 그래요. 몸이 안 따라주지요. 그래도 『대리전』을 쓸 때는 규칙적으로 진도가 나가긴 했어요. 작업 진도를 게시판에 공개했거든요. 효과가 좋아서 이번에도 다시 한 번 해 볼 생각이에요.

한국에서 과학소설 작가로 사는 것은 어떤가요?

생각 외로 나쁘지 않아요. 꾸준히 출판도 되고 있고 고정 독자들도 꽤 있는 편이고요. 단지 독자로서는 좀 짜증나지요. 책이 부족하니까요.

과학소설 독자로서 책이 부족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듀나 님이 직접 번역을 해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그리고 어떤 책이 번역되었으면 과학소설 독자로 행복하실까요?

아뇨, 전 번역은 못 해요. 한두 번 시도해보다 결론을 내렸죠. 제가 번역을 안 하는 게 세상만물에 이득이 된다고요.

새로 번역되었으면 하는 책이라... 예프레모프(Ivan Yefremov)의 『안드로메다 성운』요. 제대로 된 번역으로 한 번 읽어보고 싶군요. 영역판도 나와 있지 않은 모양이에요.

과학소설 이외에 어떤 책을 읽고 계신가요? 한국 작가들의 과학소설이나 한국 작가들의 책들도 읽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요샌 소설을 그렇게까지 많이 읽지는 않아요. 역사책이나 전기 쪽이 더 편하게 읽힙니다. 지금은 막 새로 나온 괴벨스의 전기를 사들고 커버를 쓰다듬고 있는 중이에요.

지식이나 정보, 아이디어를 주로 어디서 얻는 편이신가요?

그냥 여러 군데요. 보고 듣고 냄새 맡는 모든 것에서요. 어느 한 쪽에 쏠려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겠지요?

영화평, 칼럼, 소설 등 다양한 글을 쓰고 계십니다. 어떤 글을 쓸 때 제일 편하신가요?

제 게시판에서 내용 없는 잡담을 할 때가 가장 편하지요. 그 다음이 SF입니다.

듀나 님 책을 읽다보면, 생소한 책, 영화, TV 쇼 등과 마주칠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가상의 것'이라고 밝히신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재하는 것들인가요?

대부분 실재하지요. 가상의 것이라고 밝히지 않았지만 지어낸 것도 가끔 있겠지만요.

많은 사람들이 '과학소설'을 이야기할 때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과학 소설은 그동안 문학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등의 이야기를 하는데요. 정말 그런가요? 과학소설이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푸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글쎄요. 과학소설이 지금까지 쌓아온 여러 업적이 무시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요.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특별히 푸대접 받는지는 모르겠군요. 과학소설은 적어도 로맨스 소설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고 있지요.

『대리전』 작가 후기에 쓰신 것처럼, '구닥다리 SF 클리셰 목록' 중에서 지금까지 쓴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알려주셔도 좋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것들로는....

로봇과 인간의 사랑-「첼로」
로봇이 지배하는 세계-「기생」
고대 유적에서 발견된 외계 우주선의 잔해-「스퀘어댄스」
질병에 의한 인류의 멸망-「술래잡기」

이밖에도 많지요. 요새 새로 쓰고 있는 책은 '학대받는 초능력자'라는, 정말 원초적으로 구닥다리인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엔 '인간을 조종하는 외계 바이러스'와 '사악한 AI가 통치하는 가상현실'을 다룰 생각이에요. 쓰다보니 그렇게 되더군요.

소설이나 칼럼 속에서 세상을, 인간을 바라보는 듀나 님의 시선은 냉담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듀나 님은 세상과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냉담할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논리적인 결론이라고 생각해요.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면 제 맘에 안 들어도 받아들여야지요. 그게 정직한 태도고요.

인간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특별할 게 하나 없죠.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듀나 님에게 인터넷은 어떤 공간인가요? 인터넷에서의 소통은 비교적 만족스럽다고 생각하시나요?

인터넷은 세상과 똑같아요. 소통의 정도도 사람들이나 그룹에 따라 다르고요. 중요한 건 매체가 아니라 사람이에요.

온라인상에서 이메일과 글만으로 소통하는 것이 편하신지, 아니면 불편한 점이 없는 건지 궁금합니다.

전 임기응변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 이런 식이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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