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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력과 마력의 작가 김훈

책 읽는 자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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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김훈 씨와의 인터뷰는 요긴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매그넘 풋볼』의 많은 사진들 중에서 몇 장을 고르고, 거기에 몇 마디의 주절거림을 붙인 것"이 그가 생각하기에 "요긴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펴내는 책은 『매그넘 풋볼』의 많은 사진들 중에서 몇 장을 고르고, 거기에 몇 마디의 주절거림을 붙인 것이다. 아마도 이 주절거림은 요긴한 것은 아니다. 공을 찰 때 땅과 공은 몸에 저항하지만, 그 저항을 몸이 받아들일 때 땅과 공은 우리 몸과 함께 뛴다. 땅과 공과 저항과 하나가 된 몸은 이미 말하여지는 것이 아니다."
-『공차는 아이들』에서

어쩌면 김훈 씨와의 인터뷰는 요긴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매그넘 풋볼』의 많은 사진들 중에서 몇 장을 고르고, 거기에 몇 마디의 주절거림을 붙인 것"이 그가 생각하기에 "요긴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폐허와 전쟁터와 탄광촌, 그리고 가난과 억눌림 속에서"도 즐겁게 공을 차는 풍경을 포착한 '매그넘'의 사진들에 대한 김훈 씨의 해석에 대하여 말을 하는 것보다는, 직접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것이 더욱 요긴한 일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그래서 나의 질문은 궁색하고 공허했으며, 동상(凍傷)과 연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는 노동으로 혹사당하여 군데군데 벌겋게 상처 입은 그의 손은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2002년 여름은 월드컵 광장의 붉은 함성으로 소란했다. 함성은 단순하고도 열광적이었다. 그 광장의 함성 속에서 나는 공과 사람과의 운명적인 관계에 대하여 말하고 싶은 간절함을 느꼈다. 함성이 잦아든 후에 인간에게 남는 것은 여전히 공뿐일 것이다. 나는 좀 긴 글을 쓰고 싶었다."
-『공차는 아이들』에서-

'삶의 현장'을 관찰하기 위해 작년 한겨레신문의 사회부 기자로 뛰었던 김훈 씨는 월드컵 당시 젊은이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함성을 질렀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거리 응원을 지켜보며 "집단적 신명의 힘"의 개가를 올렸다며 놀라워 했지만, 그는 그런 말을 "전혀 신뢰할 수 없고, 오직 인간이 공을 찬다는 것만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과 사람과의 운명적인 관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사람의 생물학적 조건을 말하고 싶었던 거죠. 직립보행의 생물학적 조건. 개들은 네 발로 뛰니까 잘 뛰잖아요. 안정되어 있고. 난 그런 개의 모습을 보면 열등의식을 느껴요. 이 직립보행을. 이 직립보행이 행복한 결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거든요. 여자들 가슴이 늘어지는 것이 직립보행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인간이 직립보행한 후 가장 망가진 신체가 여자의 가슴일 거예요. 하지만 앞으로 볼록해야 성적인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앞으로 나오게 하려 애쓰잖아요. 하지만 그건 자연스럽지 못한 거죠. 가슴은 직립보행 때문에 늘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거지요. 그런데 늘어지는 것은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거기서 엄청난 문제가 생긴 거죠. 한 시대의 윤리와 미의식과 인간의 자연스러움이 모두 문제가 된 거죠. 공 차는 것은 직립보행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움을 회복할 수 있는 신나는 일이죠. 발을 차는 거니까. 몸의 시원성(始原性)을 되찾는 거죠."

목발을 짚고 있는 소년이든, 차도르를 두른 이슬람 여성이든, 빈민가의 아이들이든, 파리 공원의 남자든 누구나 공을 차며 즐거워하는 사진들을 보며 글을 쓰는 작업이 그는 불편하고 힘들었다고 말한다. 자꾸 그 사진에 얽매이게 되니까 말이다.

『매그넘 풋볼』중 마음에 들어 하는 사진 몇 장을 골랐지만 그중 그는 브라질리아 바닷가 사진을 가장 좋아한다. "회화적인 사진인데 그 사진이 좋았어요. 공놀이를 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그는 이 사진을 보고 "이런 꿈속 같은 풍경 속에서, 나는 공 차는 사람이기보다는, 왼쪽 모래언덕에 앉아 있는 사람이고 싶다"고 읊조렸다. 그는 자신이 "어떤 풍경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한다. 자신은 "밀려난 관찰자일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또 "고립되는 것을 좋아하며 또 고립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홀로 사물과 현상 그리고 풍경을 관찰해낸 그의 결과물은 허공에 뜬 언어가 없고, 유야무야(有耶無耶)하지 않다. 아름답다.

그는 자신에게 당대의 현실을 읽는 힘은 없다고 생각한다. 또 현실에 대하여 정돈된 생각을 피력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며, 또 인간의 사유 속에서 나온 원리가 이 "징글맞은 현실"을 설명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또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사유로 만들어진 책을 읽는다.

"어떤 원리가 인간의 형상을 설명하거나 인도해주기를 우리가 바라잖아요.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거든요. 인간의 형상이라는 것이 인간의 사유 속에서 나온 원리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니거든요. 원리에 의해 인도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원리와 인간은 작동방식이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부질없죠. 사회과학이 이 사회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사회과학으로 설명되는 사회란 있을 수 없어요. 그런 사회는 존재하지 않아요. 하지만 또 책을 읽는단 말이죠. 책 읽는 자의 고뇌죠."

요즘 인간을 수억 만 년 동안 지배해왔으며, 지금도 유효한, 이 세계의 작동원리인 약육강식의 법칙을 인간이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지 생각하고 있다는 그는 "그것도 참 쓸데없는 생각인 것 같아. 뭐 해결책이 있겠어", 중얼거리며 한숨짓는다. 일의 문제에서도 그러하다. "일하는 게 가장 싫은" 그는 노동의 가치를 숭상시하는 것은 돈 있는 사람이 노동자를 짜내기 위한 허황된 가치 같다며 마땅치 않아 한다. 단적으로 얘기하면 3D 업종을 기피하는 세태에 대하여 근로의식이 저하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자신의 존엄을 방어하려면 더럽고 위험한 데는 안 가야지. 왜 거기를 가라고 해요? 가지 말라고 해야 맞는 말이죠. 도망가야 해요, 도망. 도망을 가면 도망간다는 둥 비겁하다는 둥 얘기하지만 도망가야 해요. 그게 가장 아름다운 윤리예요. 집에 불이 나 타잖아. 그것을 끌려고 덤비면 안 되는 거예요. 도망가서 자기 생명을 온전히 보전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나중에 싸울 수가 있다고." 그러나 다시 한숨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도망 못 가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도망을 가. 그냥 불구덩이 속에서 죽는 거예요. 열심히 일해야 한다구. 그렇게 일해서 도시 빈민이 되는 거예요.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의 앞날은 도시 빈민이에요. 도리가 없어요. 대안이 없죠."

하지만 이 대안 없는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견뎌가며 늙어가며 생명을 보전하는 것이 삶이다. 지독한 삶인 것이다.

"삶은 풍화이며 견딤이며 또 늙음이다. 살아서 무엇을 이룬다는 일도 그 늙음과 견딤 속에서만 가능하다. 삶은 그림보다 무겁고, 그림보다 절박하고, 그림보다 힘들다. 그리고 삶은 그림보다 초라하다. 그림보다 꾀죄죄하고 그림과는 비교할 수 없이 훼손되어 있는 것이 삶의 올바른 풍경이다."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에서-

그는 "들뜨고 무지몽매하고 버러지 같은 희열"로 가득찬 "애처로운 나이를 지났다는 것을 참 다행이라고 느"낀다. 그는 늙고 풍화된, 그 훼손된 삶을 긍정한다. 그리하여 『매그넘 풋볼』을 보고서 "공처럼, 몸처럼 정당하게 움직여지는 세상을" 꿈꾸며, 이 복잡한 현실에서 건져올린 몇 개의 확신을 가지고 "겨우", 그러나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목소리로 얘기하게 될 것이다.

*편집자 주: 위 인터뷰는 웹진 <북키앙> 69호(2003년 3월 1일자) 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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