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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네 아름다움으로 세상의 울음을 그치게 해 주렴 - 최윤

그래도 여전히 세상의 한쪽이 비옥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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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이 이 작품을 쓰게 했다. 황량한 시간을 가로질렀기 때문이다. 오래 서랍 속에 갇혔던 압지처럼 다가오는 기쁨을 모두 빨아들이는 어두움이 짙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이 이 작품을 쓰게 했다. 황량한 시간을 가로질렀기 때문이다. 오래 서랍 속에 갇혔던 압지처럼 다가오는 기쁨을 모두 빨아들이는 어두움이 짙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세상의 한쪽이 비옥한 것은, 검은 구멍을 벌리고 빈곤하게 말라가는 불행한 영혼들보다,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빈번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났던 아름다운 그들로부터 ‘그녀’가 태어났다. 그 많은 남녀들로부터. 이 작품에서 그들이 스스로를 알아보기를. 이 작품이 그들에 대한 작은 헌사가 되기를.”

작가 후기에 남긴 말대로『마네킹』의 주인공인 지니는 참으로 아름다운 존재이다. 그녀가 마네킹 같은 모델로 애지중지 가꿔지고 있을 때도 그렇고 이후 갑자기, 문득 아주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여행을 시작하여 점점 인간의 삶에 다가설 때도 그렇다. 오랜 여행을 거치고 많은 사람을 만난 후에 드디어 지니는 어린 여신 같은 존재가 되어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한다. 지니가 “울 지 마 내 가 너 를 이 렇 게 사 랑 하 는 데.”라고 아이에게 말하는 순간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다시 살아나고, 어쩌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구원의 희망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세상은 아름다움을 뜯어먹고 산다

『마네킹』은 계간『문학판』에 5회에 걸쳐 연재된 작품이다. 작품에 나온 인물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결혼기념 다이빙에서 지니를 본 후 그 아름다움에 의해 자신의 존재가 바뀌는 변화를 겪는 ‘쏠배감펭’이나 그의 아내가 되었다가 신혼여행에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는 ‘핑크 아네몬’, 지니의 누나인 ‘불가사리’ 등 대부분이 바다생물을 딴 이름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쓰면서 느낀 즐거움 중 하나로 바다 속 생물도감을 독파했다는 것을 든다. 지상에 있는 생물들의 모습도 아름답고 종류도 다양하지만 바다 속에 있는 생물들은 마치 인간의 다양한 면모만큼이나 정말 다채롭고, 성격도 다 틀리고, 색채도 틀리다고 한다. 작품의 작은 모티브 중 하나가 자궁 속으로 들어가듯 물 속으로 하강하는, 원천으로의 회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인물들의 성격을 전부 바다생물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이 작품은 작가에게 꼭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건너뛸 수도 외면도 우회도 할 수 없는 소설이었다. 작가는 이 시대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옹호할 만한 아름다움의 실체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소설을 꼭 한번 쓰고 싶었다. 인물이나 줄거리 같은 것을 결정해가는 구상은 4~5년 전부터 했지만, 주제 자체는 참으로 오래 전부터 쓰고 싶던 주제였고 늘 자신에게 던지던 질문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소설의 제목이자 중요한 소재인 마네킹에 대해 두 가지 양면적인 뜻을 생각했다. 하나는 마네킹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뜻이다. 마네킹이라는 것은 본디 작은 사람이라는 뜻인데, 거기에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작가는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욕망을 늘 어떤 다른 대상들에게 투사하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인물들을 가리키는 뜻으로 마네킹을 썼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작가는 지니가 원래 직업도 모델이니까, 우리가 모델을 마네킹과 비슷한 존재로 생각하기도 하듯 지니를 마네킹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완벽에 가까운 외모와 비싼 상품들을 몸에 걸치고 있는 마네킹이 그렇듯 지니 역시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대신해주는 인물로 그려냈다. 작가는 어떻게 보면 지니 자체는 ‘빈자리’인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데 무수한 사람들이 지니를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욕망과 대가를 바라고 있으니 지니는 타인의 욕망들로 가득 차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타인의 욕망에 의해 살아왔던 지니는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을 떠나는 결정을 잠시 방심한 사이에 저지른 실수처럼 순간적으로 내린다. 짐을 챙기기 위해 침대 밑에서 가방을 꺼내면서야 겨우 자신이 아주 오래 전부터 여행을 계획했음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현관문을 나서면서도 누군가 말렸다면 아무런 저항 없이 되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곳과 저곳이 그다지 다르지 않고, 집 안과 길 위, 밖과 안에 대한 환상이 없는 상태. 오랜 시간 타인들의 욕망에 의해서만 움직여 왔기에 작품의 초반부에서 지니는 작가의 말대로 자신의 의지와 욕망이 없는 ‘빈자리’이다. 작가는, 사실 작품의 주인공격인 지니는 독자들이 읽어가면서 만드는 인물이고, 자신도 지니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누구라고 실체를 생각한 것보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과정이에요. 어떤 한 인물이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죠. 지니 같은 경우 자신을 찾는 과정 자체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과정이 된 것이에요. 그런데 사실 매우 잔인한 현실의 구조이기도 하지만 세상은 아름다움을 뜯어먹고 삽니다. 누구나 그래요. 그 아름다움이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이건 아름다움이 중요한 건 많은 사람들을 살게 하기 때문에 그래요. 단순히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살게 하는 것이죠. 이 작품 속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미는 정의되는 게 아닌 거 같아요. 지니의 여러 행각 중에서 하나라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면, 저는 그것이 매우 아름다운 세상으로 통할 수 있는 길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인물, 다른 언어

작가는 이번 작품을 쓰면서 소설이 마음속에 그려지는 리듬과 직접 언어화되는 리듬, 두 리듬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모든 이야기의 구성과 한 우주의 구성원은 다 정해졌고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 것이라는 서사적 구조까지 정해졌는데, 그들을 실제로 존재하게 하는 언어가 매우 느리고 꼼꼼하게 형성되었다고.

“여러 인물들의 언어가 다 틀렸습니다. 자신들의 존재가 틀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틀리기 때문에 전부 언어가 틀려요. 그 언어 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야지 인물들의 말을 각각에 걸맞게 돌려줄 수가 있는 거죠.”

작가의 이런 노력은 각 인물에 따라 변하는 문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불가사리, 쏠배감펭, 우뭇가사리처럼 각 인물의 이름을 딴 각 장의 제목에 따라 문체는 확연히 틀려진다. ‘그녀의 몸 말은 춤이 되었다’처럼 지니를 그려내는 장의 제목은 예외적으로 인물의 이름 대신 그녀로 지칭되는데, 지니가 나오는 장의 문체는 그녀의 변화에 따라 처음에는 망설임을, 나중에는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준다. 반면 남성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상어를 그려내는 장에서는 공격과 파괴의 욕구를 잘 드러내는 짧은 단문이 많다.

문체를 통해서는 남성적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작가는 일관적으로 여성적인 세계를 옹호하고 있다. 그는 아름다움의 실체를 추구하는 것이 이번 작품의 목적은 아니었다고 한다. 아름다움이라고 보여주는 것보다는 그 언저리를 무수히 떠다녔는데, 작가는 아름다움은 확실히 여성하고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성은 모성성과는 달라요. 여성이 가지고 있는 특성인데 그것을 우리가 생물학적 성으로 얘기하면 안 좋을 것 같아요. 남성적이 아닌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이름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여성성이라고 수식을 하는데 확실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남성적 세계관에서 벗어난 것임은 확실해요. 지니를 위한 어머니의 기도는 대부분 하느님 ‘어머니’로 시작을 합니다. 대부분 바리데기 같은 여성신을 많이 불러요. 마음의 평화이건 세계의 평화이건,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녀가 불러내는 신들은 여성신이 먼저죠.”

추함과 공격과 파괴, 소위 ‘남성적’인 상어의 세계와 대립되는 게 뭐가 있을까. 작가는 아무리 둘러봐도 지금은 남성 아니면 여성이니까 그것을 여성적이라는 이외의 다른 형용사로 수식하기가 참 어려운 거 같다고 한다. 작가는 여성성에 훨씬 큰 대안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척 좋은 현상 중 하나로, 많은 남성이 실제 그 세계를 지배해왔던 남성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지금은 용어가 없기 때문에 그냥 여성적이라고 부르지만, 아마 조만간 다른 언어가 태어나야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문학은 인간 정신이 여기까지 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실험

 문학평론가 김경수 씨는 이 작품에 대한 해설에서 “소설이 현실의 반영이라고 하는 하나의 일반 이론이 압도적인 위세를 떨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소설이 현실의 은유나 환유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열린 독서라고 퇇다면, 최윤의 신작 장편『마네킹』이 환기하는 맥락은 여기서 시도된 제한적 독법보다 훨씬 풍부해질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까지도 작가가 의도한 또 하나의 측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썼다. 주제와 문체, 서술방식 등에서 전통적 기법의 틀을 벗어나 다채로운 소설 문법을 시도하는 작가는 전통과 실험의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사실성이 하나인가,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매우 다양한 시선이 있고, 그 모든 것이 사실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시각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이 주류가 된다고 해서 그것만이 현실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문학은 무엇보다도 상상의 작업이에요. 즉 상상하는 것을 최대한 극대화하면서 인간이 머무는 곳, 혹은 인간의 사유가 닿는 곳을 탐사하는 것이거든요. 그랬을 때 재현적 방법, 즉 증명해서 실증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현실이라는 것은 한정되어 있어요. 그 ‘한정’을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이나 혹은 역사적 서술의 아류가 문학이라면 참 불행할 거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제 작품은, 특히 『마네킹』 같은 경우, 우화적이기도 하고 환상적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 이전에 그냥 소설입니다. 지극히 사실적인 소설이에요.”

작가는 작품을 읽는 독법 자체도 일반적으로 굉장히 한정되어 있다고 본다. 그는 주류와 관습적인 글쓰기를 웬만큼 벗어난 코드의 작품들을 얼마만큼 읽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그는 읽는 법 자체도 매우 빈곤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문학은 앞으로 할 것이 많아요.” 작가는 힘주어 말한다. 작가는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의 소설은, 모든 종류의 문학작품은 결국은 인간 정신이 여기까지 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인간이 인간의 영혼을 읽고 표현하는 작업이 소설인데, 어떻게 읽어주는가에 따라서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영혼의 깊이와 두께가 드러난다고 본다. 그는 소설가는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그것을 ‘소설적 모험’이라고 불렀다. 

한때 작가는 오후 5시쯤 퇴근하면 머리가 개운할 기계적인 직업인이 되고 싶기도 했단다. 하지만 지금은 삶의 90퍼센트, 아니 24시간 모두를 글 쓰며 보내고 있는 것 같다고. 더군다나 문학계간지『파라21』에 편집주간으로 참여하면서부터는 취미생활마저 문학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작가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핸드폰을 끄는 것은 물론 교수 연구실 전화기의 코드까지 뽑아버리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호방하면서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작가와 작가가 창조해내어 독자들에게 맡긴 등장인물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리고『마네킹』의 후기에 작가가 남긴 말이 떠올랐다. “삶에서나 소설에서나 잘 사랑하는 법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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