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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서 휴가 보내기 1. 예술의 전당 - 김성녀의 <벽 속의 요정> & 베를린 필 12 첼리스트 내한 공연

장마가 끝나면 7월 말부터는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산으로 바다로 떠날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공연장으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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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나면 7월 말부터는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산으로 바다로 떠날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공연장으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대부분의 공연장은 건축미가 돋보이기 때문에 도심 속에서도 새로운 멋을 느낄 수 있는 데다, 서늘할 정도의 쾌적한 실내 공간과 무엇보다 공연이 선사하는 재미와 감동에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다. 대표적인 복합 문화 공간, ‘예술의 전당’에서 미니 휴가를 즐겨봤다.

* 김성녀의 연기 내공, 벽 속의 요정

어느 신부보다 아름다웠던 김성녀
금요일 한낮인데도 자유소극장은 빈 자리를 찾을 수 없다. 지난해 ‘올해의 예술상’ 등을 휩쓸며 화제를 모았던 김성녀의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이 다시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김성녀는 뜻밖에도 출입구에서 걸어 나와 관객들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연극은 이렇게 관객들과 직접 호흡할 수 있어 좋다며, 소곤소곤 얘기 나누듯 아주 자연스럽게 극을 이어갔다.

스페인 내전 당시의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원작을 우리 실정에 맞게 재구성한 이 작품은 시대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벽 속에 갇혀 살아야 했던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요정으로 알고 자라는 딸, 그리고 남편의 부재 속에서도 가정을 꾸려가는 아내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앙증맞은 소녀, 그녀를 재우는 엄마, 벽 속에서 노래하는 아빠 요정. 그 소녀가 자라 학교에 다니고 결혼하기까지, 그 엄마가 14살 처녀에서 결혼해 할머니가 될 때까지, 그 아빠가 벽 속에 갇혔다 다시 자유를 얻기까지,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에 필요한 주변 인물들까지.. 모두가 무대에 오르지만, 무대 위 연기자는 오직 김성녀뿐이다.

아이에서 할머니, 여자에서 남자, 귀여움에서 요염함, 신사다움에서 껄렁껄렁함까지.. 그녀는 사람이 그려낼 수 있는 모든 표정과 목소리, 몸짓을 쏟아내 1인 30역을 소화해낸다. 분명 한 사람이 노래하고, 한 사람이 걸어가는데도, 세 사람이 함께 노래하고, 부부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신기함과 놀라움에 눈을 부라려 보지만 조금의 어색함도, 부자연스러움도, 공백도 찾을 수 없다.

행상을 나서는 장면에서는 객석으로 내려와 직접 달걀을 파는데, 그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관객들도 연기를 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이는 달걀을 사고 돈을 내는 시늉을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까먹고, 어떤 줄은 모두가 달걀을 옮기는 연기까지 해 보인다. 스승이 훌륭해서인지 관객들의 즉석 연기도 일품이다.

1인 30역! 연기자라고 해서, 연기 경력이 많다고 해서 아무나 도전할 수는 없는 무대일 것이다. 또한 그녀는 홀로 30인의 역을 이어가는 바쁜 와중에서도 배꼽 잡고 웃을 재미와 눈물짓는 감동까지 선사했다. 그렇기에 김성녀의 연기 내공이 돋보였던, 교복 입은 고등학생에서 백발의 어르신까지 기립 박수로 답할 수밖에 없었던 참으로 멋진 무대였다.

1인 30역의 신들린 연기

* 우아하면서도 열정적인 베를린 필 12 첼리스트

비 오는 토요일, 베를린 필 12 첼리스트를 만나기 위해 콘서트홀을 찾았다. 이름대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첼로 연주자들로 구성된 12 첼리스트! 물론 이 앙상블엔 다른 악기는 전혀 없고 오로지 12대의 첼로만이 존재한다.

5번째 내한 공연인 이번 무대는 최근 발매한 ‘Angel Dances’ 음반에 맞춰 ‘춤’을 테마로 하고 있다. 1부 ‘천사의 춤’에서는 그들이 아끼는 피아졸라의 곡을 비롯해 베르디의 ‘아베 마리아’ 등을 통해 천사에 대한 다양한 느낌을 다소 진중한 분위기 속에 연주했고, 2부 ‘세계의 춤’에서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러시아)’, 엔니오 모리꼬네의 ‘Once Upon a Time in the West(이탈리아)’ 등을 통해 각국의 춤을 보다 활기찬 느낌으로 들려줬다.

첼로는 안정적이면서도 중후한 음색을 자랑한다. 그러나 오직 첼로에 의한 이 무대는 활로 현을 켜는 연주에 그치지 않는다. 현을 뜯고, 첼로 몸통을 때리고 문지르면서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느낌을, 화음을 전달한다. 실제로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를 연주할 때는 섬세한 부드러움을 강조한 반면, 블라허의 ‘에스파뇰라’에서는 활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현만 튕기며 독특한 느낌을 선사했다. 또한 그들의 연주는 강물을 흐르는 듯한 유연함은 물론, 고풍스러우면서도 거센 강인함과 탱고의 농익은 열정이 혼합돼 듣는 이의 온 마음을 뒤흔든다.

깔끔한 정장 차림에 색색의 넥타이를 매고 둥글게 앉은 그들은 2시간의 공연 동안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첼로를 통해서만 소통했다. 그러나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무언극 같은 그들의 행동은 오히려 웃음을 자아냈다. 예를 들어 첫 곡이 끝나고 두 번째 곡을 시작하려던 단원들은 수석주자인 게오르그 파우스트의 활이 가리키는 곳을 일제히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작을 미룬다. 공연장에 뒤늦게 도착한 관객들이 아직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배려와 재치에 공연장은 한결 푸근해진다.

그들의 공연은 한없이 우아하면서도 이렇듯 코믹하다. 그들이 국내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것은 뛰어난 연주 실력에 독특한 유머 감각을 겸비했기 때문이다. 클래식 연주자들이 악기를 통해 전달하는 재치와 위트! 그 절정은 카이저-린더맨의 ‘12 첼리스트를 위한 보사노바’에서 확인할 수 있다. 12명은 음악에 표정이라도 있는 듯 밝고 가벼운 연주를 이어가다 어느 순간 일제히 첼로를 옆으로 비켜 세우며 ‘우(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지른 목소리)’라고 외마디를 지른다. 게다가 첼로 연주로 파도타기를 선보이는 통에, 한없이 진중한 클래식 공연에서 웃음소리가 스며 나온다.

12 첼리스트의 연주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곡은 2부 마지막 곡으로 연주됐던 피아졸라의 ‘신비한 푸가(Fuga Y Misterio)’! 첼로의 강인함과 역동성, 탱고의 열정이 느껴지는 곡이다. 공연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뜨거운 박수갈채에 그들은 또다시 무대에 올라야 했다. 결국 그들은 2번의 커튼콜 무대에서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와 영화 ‘핑크 팬더’ 테마곡까지 선사하고도 다시 몇 번이고 무대에 올라 팬들의 환호에 보답해야 했다.

리허설 장면 - 평상복 차림도 멋지다^^

공연장에서 놀기

연극에 뮤지컬, 연주회는 물론 오페라와 전시회까지 모여 있는 ‘예술의 전당’은 그야말로 도심 속의 별세상이다. 우면산 자락에 위치해 공기도 좋은 데다 시간을 잘 맞추면 노래 부르며 시원하게 물을 뿜어내는 ‘세계 음악 분수’도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생각보다 먹을거리도 다양해 가족 나들이든 데이트든 손색이 없다. 굳이 공연을 보지 않아도 쉬엄쉬엄 산책만 해도 좋을 것 같다.

예술의 전당이 너무 멀다면 남산 자락에는 ‘국립극장’이 있다. 이곳 역시 주변과는 공기도 빛깔도 다르며, 8월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6시(비 오면 취소)에는 문화광장에서 무료 공연도 펼쳐진다. 특히 8월 3일부터 5일까지 열리는 <열대야 페스티벌>에서는 각각 신효범, 마야, 김종서의 미니 콘서트와 ‘빨간 모자의 진실’ 등 영화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무료다!

자금 사정상 원하는 공연을 보기 어렵다면 대신 부지런해지자! 잘 찾아보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다양한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다(^^).

김성녀의 벽 속의 요정
2006년 7월 6일 ~ 23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베를린 필 12 첼리스트 내한 공연
2006년 7월 15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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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Angel Dances
Die 12 Cellisten Der Berliner Philharmoniker 연주 | EMI/EMI(기획사) | 200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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