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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원작과 비교하며 보기 - 귀족놀이 & 모래여자

수많은 연극 포스터 앞에서 갈피를 못 잡고 서 있는 입장이라면 역시 익숙한 노래가 나오는 콘서트나 화려한 무대 볼거리가 있는 뮤지컬로 발길을 돌리게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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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수혜자의 할 일은 더욱 많아진다. 제대로 고르기 위해 더 많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앎의 과정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인다면야 내실을 다지는 기회가 되겠지만, 자칫 선택 자체를 회피하기 쉽다.

연극 보기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연극 포스터 앞에서 갈피를 못 잡고 서 있는 입장이라면 역시 익숙한 노래가 나오는 콘서트나 화려한 무대 볼거리가 있는 뮤지컬로 발길을 돌리게 마련. 싫어해서가 아니다. 다만, 익숙하지 않을 뿐.

이렇듯 연극 고르는 것이 쉽지 않다면 원작이 친숙한 작품부터 골라보자(쉽지 않아 골라봤다)! 책이나 영화로 접했던 작품은 사전 지식이 있기 때문에 선택에도 자신이 붙고, 무대도 훨씬 집중해서 바라볼 수 있다. 무엇보다 원작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게 고른 작품 둘, 연극 <귀족놀이>와 <모래여자>를 소개한다.


연극 <귀족놀이>

몰리에르의 희곡 『서민귀족』이 에릭 비니에의 연출로 6월 초 국립극장 무대에 올랐다.

서민 출신의 벼락부자 주르댕은 ‘아름다운 두 눈에, 사랑으로 죽을 것 같은’ 후작부인을 만나면서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귀족놀이’에 뛰어든다. 주르댕은 음악과 무용, 검술, 철학 선생을 각각 불러 귀족이 갖춰야 할 소양을 배우지만, 정작 선생들은 자기 분야가 최고라며 ‘교양 없이’ 싸움질이다. 그러나 사랑의 환상에 빠져있는 주르댕은 후작부인에게 향하는 모든 과정이 마냥 즐겁고 기쁘기만 하다.

연극 <귀족놀이>의 즐거움은 역시 ‘활자의 시각화’를 들 수 있다. 무엇보다 돋보였던 화려한 의상! 귀족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며 예닐곱 장의 예복을 껴입는 장면에서는 현란한 색채 물결에 잿빛도시에 익숙한 눈이 아리기까지 하다. 선생들과 후작부인의 교양 있으면서도 능청스런 몸놀림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거기에 우리의 전통미를 살린 국악 연주와 오페라, 무용까지 곁들어져 무대는 풍성하기 그지없다.

한편, 귀족놀이에 심취한 주르댕은 딸의 결혼까지 반대하는데, 이유는 상대 클레옹트가 서민이기 때문. 그러나 클레옹트의 명석한 하인은 클레옹트를 터키 왕자로 꾸며 결혼을 성사시킨다. 왕자의 장인이 된 주르댕은 그에 걸맞은 ‘마마무쉬’라는 작위를 받게 되고, 그동안 갈고닦은 소양을 한껏 뽐내며 환희에 젖는다.

주르댕의 허위 작위식이 열리면서 무대도 절정에 달한다. 백색 옷에 이상한 고깔모자까지 눌러쓴 배우들은 그들만의 코믹한 터키어와 전례로 귀족놀이의 진수를 보여준다. 관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동화돼 박장대소(拍掌大笑)를 금치 못하는데, 결국 몰리에르의 각본대로 극 중이나 극 밖의 모든 사람이 우스꽝스러워졌음을 깨닫게 된다.


<귀족놀이>는 한국과 프랑스 수교 120주년을 맞아 오는 9월 파리에서 다시 무대에 오른다. 몰리에르의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우리 배우들의 연기력과 한국적인 멋이 더해져 한층 재미있었던 <귀족놀이>가 현지에서도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길 기대해 본다.


연극 <모래여자>

읽고 나면 애장도서 목록에 넣게 되는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가 연극으로 상연 중이다.

곤충채집에 나섰다 우물 같은 모래집에 갇히게 된 남자. 사방은 온통 모래뿐이고, 모래더미에 깔리지 않기 위해서는 날마다 모래를 치워야만 한다. 씻을 물은커녕 마실 물도 부족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저항하지만, 결국은 그 저항하는 몸짓마저도 또 하나의 현실이 되고 마는데….

『모래의 여자』가 무대 위에 오른다고 했을 때 가장 기대했던 것은 바로 ‘모래집’이었다. 책을 읽을수록 모래집의 형태가 궁금해져 삽화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그 실체가 궁금했다. 결과는? 글쎄, 책의 묘사와 비교했을 때 특별히 다른 점은 없다. 하지만 뭔가 그 2% 부족한 듯한, 역시 ‘코보가 삽화를 넣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연극 <모래여자>는 소설과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일단 원작에서는 ‘교사’였던 남자의 직업이 ‘회계사’로 설정된다. 이른바 ‘하이 클래스’인 만큼 틀을 것이 많아서인지 모래집 안에서의 저항도 더욱 격렬하다. 여자도 초현실적 인물로 표현돼, 극을 이끌어가는 여자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미 죽은 상태로, 실재하는 인물은 모래를 연구하는 여자로 설정된다.

결정적인 차이는 역시 결론 부분이다. 소설은 남자가 탈출할 수 있으나 그 시기를 미루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희곡은 남자와 여자가 죽은 자가 되어 영원히 모래집에 남는다. 소설은 모래 안과 밖의 현실이 결국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표현했다면, 희곡은 산 것과 죽은 것, 있는 것과 없는 것까지 그 의미를 넓힌다.

개그맨 김대희가 남자 역(최지훈과 더블 캐스팅)을 맡았다. 연극영화과 출신답게 연기력은 기본 이상이었으며, 적시적지 코믹한 대사처리로 관객의 웃음까지 자아냈다. 그러나 역시 농밀함은 미흡했다. 그 부분은 희곡도 마찬가지다.

소설 『모래의 여자』의 강한 흡인력은 남자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따라 모래 안과 밖의 현실이 결국은 하나라는 점을 깨닫는 데 있다. 그래서 탈출을 꿈꾸면서도 정작 기회가 왔을 때 그 시기를 미루는 남자의 마음에 십분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극에서는 모래집에 대한 강한 저항에서 체념과 적응, 또 다른 발견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미흡했다. 물론 무대이기에 시간과 공간적으로 제약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뫼비우스 띠의 굴절부위를 자연스럽게 넘기지 못한 느낌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문득 소설 속의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본다. 아니, 소설 밖의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여전히 여기가 아닌 그 어딘가의 다른 삶을 꿈꾸고 있지는 않은가? 『모래의 여자』를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귀족놀이

2006.6.3 ~ 6.11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모래여자

2006.6.2~7.30
대학로 사다리아트센터 세모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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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튀프 서민귀족』 J. B. P 몰리에르 저/극예술비교연구회 역 | 동문선 | 2000년 04월
이 작품은 주인공 주르뎅의 맹목적인 신분상승 욕구를 풍자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자기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리고 자만심을 가지고 신분상승을 꿈꾸면 어떻게 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 sjn81님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저김난주 역 | 민음사 | 2001년 11월
모래를 파내는 생활과 대학에서의 이념 갈등, 모래 속에서 만난 여자와 도시의 아내. 모래 구덩이의 남자와 남자의 과거가 얼기설기 얽혀 기괴한 풍경을 엮어낸다. 남자는 탈출할 수 있을까? 좀더 말하면, 인간은, 이미 던져진 인간은 탈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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