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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마녀님! 그림책의 역사를 알려 주세요.

‘그림도 대화도 없는 책이 뭐가 좋아서 읽는담?’ 앨리스는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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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도 대화도 없는 책이 뭐가 좋아서 읽는담?’ 앨리스는 생각했습니다.

루이스 캐럴의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주인공 소녀 앨리스의 생각은 21세기의 어린이들의 마음마저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림책이 글과 그림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 역사적으로 본다면 그림책은, 아직 언어가 시각 인식 능력을 앞서지 못한 어린이들을 위한 것으로만 오랜 세월 동안 여겨졌습니다.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유아들이 시각적 정보를 통해 글자의 해독 방법을 익히고, 책과 친숙할 수 있는 습관을 형성해주는 것을 그림책의 존재 이유이자 기능이라는 것이 계몽주의적 입장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전세계 그림책의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그림책이 다루는 장르나 대상연령의 구분이 없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부터 그림책에서도 내용과 형식에서 독창성, 혁신성, 실험성 등이 활발히 모색하기 시작하면서 바야흐로 미적 가치와 철학을 지닌 ‘그림과 글이 함께 있는 책’으로서 유아부터 노년층까지 독자의 층이 확대되었습니다.

‘마녀의 그림책 작가 앨범’ 첫 호를 세계적 명성을 지닌 그림책 작가들 중에 어떤 작가와 함께 개봉하는 것이 좋을지 내심 고심을 해오던 중, 첫 호이니 만큼 그림책 역사란 산맥에서 준령이 된 작가들을 아울러 다루는 것이 자칫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할 우를 저지르지 않도록 해줄 것이라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고봉을 소개하면서 다뤄지지 않은 작가들의 그림책이 중요하지 않아서 제외되었을 것으로 성급하게 판단하는 독자 분들이 계실까 우려되므로, 이 곳에서는 영미권 중심의 그림책 작가를 주로 소개했음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또한 그런 와중에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프랑스의 드 몽벨의 『이솝 이야기』나 독일 하인리히 호프만의 『더벅머리』와 같은 비영미권의 우수한 그림책이 아쉽게도 누락되었음도 밝힙니다.

현대 그림책의 원형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영국의 케이트 그리너웨이와 랜돌프 칼데콧은 모두 19세기 말에 어린이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였습니다. 두 작가는 각자의 이름을 딴 상으로 오늘날까지 추모되고 있는데, 1955년 이래로 우수한 삽화의 작품에 수여되는 케이트 그리너웨이상과 전미도서관협회 주관으로 매년 최고의 문학성을 지닌 미국 국적 작가의 그림책에 수여하는 칼데콧상이 그것들입니다.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 삽화가이자 작가인 비어트릭스 포터는 『피터 래빗 이야기』(1902년)를 통해 사실적 묘사의 우아한 수채화를 통해 유아용 그림책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녀의 삽화는 많은 삽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또한 미국 출판계를 자극하여 192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아동 도서를 만드는 출판 부서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그림책 출판의 개척자로는 『세 마리의 새끼 고양이』의 커트 비즈, 『백만 마리 고양이』의 완다 가그를 꼽을 수 있습니다. 완다 가그가 판화제작자로서의 경력을 살려 손으로 쓴 듯한 글자를 이용하여 간결한 문장의 본보기를 보여준 『백만 마리 고양이』는 무려 50쇄를 거듭하며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초기의 그림책은 삽화가가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편 새롭게 등장한 글과 그림을 분업해서 작업하는 방식으로 출간된 그림책을 이야기할 때,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1936년)의 작가 먼로 리프와 삽화가 로버트 로슨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들은 1937년에 칼데콧 상을 제정하는데 혁혁한 공헌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방식은 세계 대전 후의 미국의 베이비 붐 시대에도 이어지는데, 아이들이 잠자기 전 침대 곁에서 부모가 읽어주는 용도의 그림책(bedtime book)의 등장과 함께 ‘책 읽어주기’의 중요성이 조명받게 됩니다. 전직 교사인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과 페르난드 레제로부터 그림을 배운 허드는 ‘베드타임 스토리’의 영원한 고전이 된 『잘자요 달님』을 1947년에 출판하였습니다.

또한 1942년부터 대량 판매 시장을 통해 유통되기 시작한 시리즈는 저렴한 가격에 미국의 동네 가게에서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소리 내어 부모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모습은 50년대 아이가 있는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는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고, 이런 유행을 타고 시리즈의 하나인 쟈네트 세브링 로리의 글과 구스타프 텐그렌의 삽화를 그린 『포키와 그의 친구들』(1942년)은 대중적 명성을 얻습니다.

베이비 붐 세대에 태어난 많은 어린이들이 성장하자 그림책을 통한 이들의 읽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테오도르 기젤은 수스 박사란 가명으로 필수 영어 어휘 200자를 선정하고 재미있는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라임과 어구의 반복을 통해 쉽게 아이들이 언어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그림책들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로도 소개된 바 있는 『모자 속의 고양이』(1957)은 미국 어린이들의 좋아하는 그림책 순위 목록에서도 여전히 상위권을 지키는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그림책에서 다루어지는 소재는 백인 중심의 서양 문화였습니다. 이러한 고질적 관습을 깨고 흑인 어린이가 등장한 그림책이 나타났으니, 에즈라 잭 키츠의 『눈오는 날』(1962년)이 그것입니다. 이로써 그림책에서도 인종적 편견을 타파하고 여러 문화를 다루는 새로운 인식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모리스 샌닥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1963년)을 통해서 어린이의 심리 내면에 존재하는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는 모습을 완성하여 기존의 아동 문학에서 단골 소재였던 옛날 이야기나 전설 등의 한계를 탈피하고 소재의 다양화를 시도했습니다. 1970년대 그림책 매출의 저하와 함께 출판계는 반성적 자세로 돌아서서, 그림책은 사람의 평생을 지배하게 되는 사고 방식이나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고 믿고, 어린이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작품을 발표할 능력을 가진 창의적인 작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월트 디즈니 풍의 애니메이션 만화의 기세에 눌린 출판계는 시각적인 자극을 찾는 어린이 독자들의 호응에도 부응하기 위하여 삽화가가 그림 뿐 아니라 이야기까지 완성하는 작품을 주로 출판하게 됩니다. 이 때 주목을 받게 된 토미 드 파올라는 『위층의 나나, 아래층의 나나』같은 창작 그림책으로, 윌리엄 스타이크는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로 어린 독자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편, 우리 나라 어머니들이라면 한 번씩은 꼭 들어보셨을 이름인 에릭 칼은 생동감 넘치는 선명한 색상의 동물과 곤충을 꼴라쥬 기법을 활용하여 표현하고 아이들의 사고력을 향상시켜 줄 수 있는 즐거운 놀이 같은 독서를 가능하도록 책 만들기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배 고픈 애벌레』(1969년)의 작품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아이들이 책을 읽는 독서 행위는 더 이상 읽기 그 자체의 평면적 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만들기, 그리기 등의 연계 활동으로 확대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80년대에 들어서는 동양과 서양이 그림책 속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그림책 작가 미츄마사 아노는 『아노의 여행』(1979년)이란 글자 없는 그림책을 통해 고독한 여행자가 유럽의 이름 모를 도시를 여행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80년대에는 그림책 속에서 초현실적인 화풍의 그림들이 실험되고 어린이들의 상상의 세계를 그려나가는 이른바 판타지적인 소재가 아이들의 상상력의 공간을 확장시켜주었습니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작품 『쥬만지』(1981년)에서 보여준 상상력은 영화의 세계로 연장되고 그의 또 다른 작품 『쟈투라』(2001년)의 우주 공간은 영화 속에서 3D로 제작되어 연말 상연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아노의 여행』에서와 같이 글자 없이 그림으로만 구성된 그림책은 90년대에도 계속됩니다. 데이비드 위즈너는 『이상한 화요일』(1991년)에서 한 마을에 벌어진 개구리들의 습격을 그림으로만 전개하고 있습니다.

9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 그림책 시장은 분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르쿠스 피스터, 킴 푸브 오케손 등 유럽국가의 그림책 작가의 작품 이 속속 번역 출판되기 시작하였고, 유리 술레비츠, 이보나 흐므엘레프스카 등의 예전 사회주의 국가 출신의 작가들의 그림책들도 간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번역 그림책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국내 작가의 창작 그림책들도 탄력을 받고 성장하게 되어 류재수님의 『노란 우산』과 이호백님의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2000년)는 2002년, 2003년, 뉴욕 타임스 최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되는 2 연패라는 기록을 이뤄냈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림책은 어린이들의 전유물로만 생각되었지만, 이제는 그림책을 모으는 사람이 주변에 한 두 분씩 늘어납니다. 희귀한 그림책을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퀸츠 부흐홀츠의 『순간들의 수집가』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지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합니다. 저도 그런 수집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저런 그림책을 한 두 권씩 모으다 보니, 문득 혼자 보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그림책이 많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각자의 시선으로 쉽다면 쉽게 어렵다면 한없이 어렵게 볼 수 있는 것이 그림책이고 무한한 층위에서 읽히는 글과 그림이 바로 그림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는 ‘마녀의 그림책 작가 앨범’ 컬럼을 통해 그림책 작가와 삽화가들 한 분 한 분 소개하면서 여러분들과 함께 그림책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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