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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함! 나가 있어! 무라카미 류의 『69』 &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그러나 두 작품이 과감하게 엄숙함에 도전했다. 도전할 뿐인가? 아주 ‘깡그리’ 뭉개버렸다. 주인공은 누구인가? 국내작가처럼 낯익은 작가, 무라카미 류의 『69』와 일본소설의 신선한 충격으로 통하는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바로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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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앞에서 몽둥이 들고 서 있는 선생, 병원에 온 환자를 부하처럼 다루는 권위적인 의사, 웃음이라고는 절대 짓지 않을 것 같은 근본주의적인 정치 사상가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세 글자, 바로 '엄숙함'이다.

이 세 글자만큼 인간을 난감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옆에만 있어도 숨이 막힌다. 웃고 싶어도, 숨 한번 크게 쉬는 것도 눈치 보인다. 등에서 굵은 땀 한 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리게 만든다. 또한 발가락 한번 움직이면 대단히 잘못할 것 같아서 온몸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엄숙함이라는 녀석은 그렇다. 인간의 유머러스함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그러나 두 작품이 과감하게 엄숙함에 도전했다. 도전할 뿐인가? 아주 ‘깡그리’ 뭉개버렸다. 주인공은 누구인가? 국내작가처럼 낯익은 작가, 무라카미 류의 『69』와 일본소설의 신선한 충격으로 통하는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엄숙함을 뭉개버렸을까? 그 비밀을 파헤쳐보자.

『69』의 배경인 1969년, 그때 일본은 정말 엄숙하기 이를 데 없었다. 왜 그랬을까? 당시 일본 열도는 학생운동에 휘청거렸다. 한국에서는 아저씨 셋이 모이면 정치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그 이야기의 주제가 바로 학생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모이면 계열이 이러니저러니 하고 노선이 어쩌고저쩌고 했던 것이다.

사회 분위기 탓인지 일본의 젊은이들은 학생운동에 관심이 없으면 회색분자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일단 학생운동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반대로 학교에서는 그것을 막기 위해 더욱 엄숙한 분위기를 조장했다. 그러니 젊은이들에게 그 사회는 ‘모 아니면 도’였다.

그런데 『69』의 주인공 ‘겐'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걸’을 찾았다. 겐은 엄숙한 그 시절에 축제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이유는? 멋져 보인다는 것이 겐의 설명이다. 어떤가? 엉뚱하지 않은가? 물론 겐처럼 시대를 비껴나는 엉뚱함을 지닌 주인공들은 많았다. 그러니 여기까지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약간 튀는 정도다.

하지만 본론이 시작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겐은 시대가 마음에 안 들어서 엉뚱한 짓을 하는 주인공이 아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지만, 선생에게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웃고 있냐고 묻거나 이 상황에 셰익스피어가 웬 말이냐고 대들기도 한다. 엉뚱함치고는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쉽게 웃고 넘길 것들이 아니다.

날카로움의 극치는 학교 침입 사건에서 발생한다. 겐은 좋아하는 여성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측근들을 데리고 학교에 침입한다. 그리곤 “상상력은 권력을 쟁취한다”라는 문구를 남긴다. 더군다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엄숙하기 이를 데 없는 선생님의 자리에 ‘변’을 남겨두고 온다. 선생님으로서는 기절초풍할 일을 벌인 셈이다.

사건이 알려진 후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학교에서는 운동권의 짓이나 반체제 인사의 항거 같은 식으로 생각한다. 운동권에서는 ‘정의’의 승리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었고 ‘변’을 남긴 것은 그 자리가 ‘변’을 남기기에 좋아보여서 그랬을 뿐이다. 이유는 정말 사소한 것이다. 그럼에도 엄숙한 분들은 자신들의 엄숙함을 위해 쑥덕쑥덕거린다.

무라카미 류는 묘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겐을 통해서 보여주는, 노골적인 비꼼 때문이다. 비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거운 주제로 사회변화를 운운하며 정의와 대의를 입에 달고 사는 이중적인 이들을 풍자한다. 게다가 『69』는 직접적인 반어체를 사용해 이러한 풍자를 극대화시킨다. 그것을 하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카레빵 하나로 주린 배를 채우고 나머지 돈은 저축했다. 사르트르, 주네, 셀린 카뮈, 바타유,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사서 읽기 위해서,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사실은 나긋나긋한 여학생을 꼬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 ‘책’ 속에서

이것은 앞말에서는 당시의 기성세대가 바라는 말을 올려놓았다가 뒤에 가서 뒤통수를 치는 방식이다. 솔직함을 내보이는 동시에 무거운 척하는 사회를 비꼬고 있는 셈인데 이런 무자비한 비꼼을 거치고 나면 엄숙함은 온데간데없어진다. 쓰라린 상처만 남을 뿐이다.

그렇다면 『공중그네』는 어떨까? 주인공은 이라부, 정신과 의사다. 정신과 의사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턱을 괴고 앉아서 환자에게 이것저것 질문하는 정숙한 아저씨가 떠오르지 않는가? 하지만 이라부는 아니다. 외모적으로 보면 도저히 의사 같지 않아 보이며, 정신상태를 보면 혹여 유아기에서 성장이 멈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치료법은 어떨까? 놀라지 마시라. 어느 야쿠자는 뾰족한 것이 무서워서 병원에 왔다. 그런데 이라부는 다짜고짜 핫도그처럼 생긴 거대한 주사, 소위 비타민 주사라는 것을 들이댄다. 환자가 뾰족한 것이 무서워서 왔는데 무슨 짓이냐며, 도저히 안 되겠다고 발악하니까 이라부는 환자를 놔주기는커녕 포박해버린다. “찌른 뒤에 주삿바늘 부러지면 성가시거든…….”이라며 인정사정없이 푹 찌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도 총 쏴보고 싶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야쿠자 시켜달라는 것이다.

서커스에서 공중그네를 자꾸만 실패하는 것에 위기를 느낀 단원이 환자일 때는? 일단 비타민 주사부터 꺼낸다. 그런 다음에 하는 말은? 공중그네를 타보고 싶다는 것이다. 글이 안 써지는 여성작가에게는? 글쎄, 비타민 주사가 문제가 아니다. 자신을 데뷔시켜달라며 원고지를 내밀어서 환자를 기겁하게 만든다. 이라부, 정말 맙소사다!

어처구니 없는 의사, 이라부는 상당히 유머러스한 남자다. 그래서 『공중그네』는 웃긴다. 공공장소에서 함부로 보면 안 되는 금서 중 하나로 뽑힌다. 그런데, 이 사실이 재밌지 않은가?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소위 ‘웃긴 소설’들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혹은 미숙한 청소년들, 겁 없어서 막 행동하는 청년들이었다. 그도 아니라면 로맨틱한 소설의 여자 주인공들이었다. 의사는, 흰 가운 입은 그들이 주인공이 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오쿠다 히데오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69』에서 무라카미 류는 최대한 비틀어서 엄숙함을 약 올렸다. 그런 뒤에는 ‘뻥!’하고 차버렸다. 그렇게 하여 씁쓸하지만, 통쾌한 웃음을 짓게 만들어준다. 반면에 『공중그네』에서 오쿠다 히데오는 그것을 해체해버렸다. 그리곤 몇 가지 양념을 넣어서 새롭게 조립했다. 그럼으로써 ‘엄숙함’이라는 것을 ‘코믹함’으로 탈바꿈시켜 웃음을 선사해 준다. 숨 막히던 그것이 키득키득 웃게 만드는 대단한 녀석으로 돌아온 것이다.

‘엄숙함’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그대여! 무라카미 류와 오쿠다 히데오가 준비한 만찬 중에서 어느 것이 더 구미를 당기는가? 이런! 이 질문 때문에 혹여 엄숙한 표정으로 인상 찡그리며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1초 안에 마음 가는 책에 손을 뻗고 외치자. “엄숙함, 나가 있어!”라고. 어차피 어느 만찬이든 당신을 흡족하게 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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