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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한 왕우의 DVD 출시작 4편

비록 전성기를 한참 지난 이 노(老)액션배우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썰렁한 편이고 젊은 관객들은 그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무협 영화의 올드 팬들에게 만큼은 그의 방한은 뜻 깊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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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우의 디비디들

 

   왕우가 왔다 ~ !

 올해 부천국제영화제의 ‘왕우 특별전’의 게스트 자격으로 왕우(王羽)가 왔다. 비록 전성기를 한참 지난 이 노(老)액션배우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썰렁한 편이고 젊은 관객들은 그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무협 영화의 올드 팬들에게 만큼은 그의 방한은 뜻 깊은 일일 것이다.

 

왕우는 이소룡이 등장하기 직전까지 홍콩 영화계 최고의 스타였다. 그가 출연하고 장철(張徹)이 감독한 67년작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獨臂刀>는 당시 100만 홍콩 달러를 벌어들인 최초의 영화였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홍콩 영화 붐을 주도 했고 왕우는 홍콩 영화계가 낳은 첫 번째 '월드 스타'가 되었다. 또 그의 감독 데뷔작인 <용호의 결투 龍虎鬪, 1970>는 이소룡의 <정무문 精武門, 1972>을 비롯한 이른바 ‘무관(武官) 영화’의 서막을 연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검을 든 고대 무사들의 활약을 다룬 '무협 영화'가 홍콩 영화의 전부라고 생각되던 시점에 새로운 장(章)을 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소하다고 해서 왕우를 이소룡이나 성룡의 선배 배우쯤으로 보는 것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는 건전한 영웅상을 표현했던 후대 배우들과는 색이 꽤 다른, 뒤틀리고 뭔가 삐뚤어진 영웅이었다. 왕우 스스로가 끊임없이 변주했던 ‘외팔이’ 캐릭터에서 보듯 그는 육체적으로 불구이거나 <심야의 결투 金燕子, 1967>의 ‘은붕’처럼 막강한 무술 실력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는 나약하고 미성숙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육체적으로도 (건장한 이소룡 등에 비해) 어깨가 좁은 왕우는 현대적인 ‘건장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실제로 무술을 익히지 않았던 그의 액션 연기는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거칠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그의 육체적인 미숙함과 단련되지 않은 거친 액션 연기는 ‘무술’보다는 ‘싸움’을 연상시켰고 이는 ‘폭동’으로까지 이어지며 혼란기를 거치던 홍콩의 청년들에게나 독재 정권 아래에서 신음하던 한국의 청년들의 정서를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비틀어진 세상을 살아가던 젊은이들게게 왕우가 연기하는 ‘패배하는 영웅’은 기이한 동질감을 자아냈던 것. 

 


 왕우의 영화에서 ‘죽음’은 떼어놓을 수 없다. 그는 피칠갑이 되어 처절하게 죽거나(<심야의 결투>, <대자객 大刺客, 1967>) 죽지 않을 정도가 되어 간신히 살아나거나(<용호의 결투>) 주변을 피바다로 만들어 버린다.(<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돌아온 외팔이 獨臂刀王, 1969>) 그는 살아 있든 죽든 ‘피’를 뒤집어쓴다. 그럼에도 왕우 영화에서의 ‘복수의 달성’은 결코 명쾌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건 왕우가 연기하는 ‘영웅’ 캐릭터의 운명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불나방’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는 무엇인가를 위해 달려가지만 그 결과슴 허망하기 짝이 없으며 그는 때때로 그 무엇인가에 이르기 전에 죽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왕우의 인기는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그의 뒤를 이어 등장한 이소룡의 카리스마는 거의 절대적인 것에 가까웠고 홍콩을 떠나 대만으로 거처를 옮긴 왕우는 자신의 영화사를 세운 왕우는 자신의 스타 이미지를 복제한 고만고만한 영화들을 양산해 내며 자신의 인기 수명을 갉아먹었다.

  

 이 글에서는 부천까지 발걸음을 옮기기 어려운 (필자를 포함한) 관객들을 위해서 왕우의 대표작 DVD들을 골라 보았다. 아쉽게도 6,70년대 내내 매년 5편 정도를 촬영할 정도로 엄청난 다작(多作)을 했던 그의 후기작들을 DVD로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그의 초기작들 속의 젊은 왕우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왕우의 DVD 4선(選)

 

# 1. 외팔이 3부작 박스 세트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獨臂刀, 1967, 장철 감독

   - 돌아온 외팔이 獨臂刀王, 1969, 장철 감독

   - 신 외팔이 新獨臂刀, 1971, 장철 감독

 

 

 대중에게 ‘왕우 = 외팔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던 결정적인 영화. 엄청난 성공을 바탕으로 초짜 감독이었던 장철과 신인급 배우였던 왕우를 모두 톱스타로 만들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와 속편 <돌아온 외팔이> 그리고 쇼 브라더스를 떠난 왕우를 대신한 강대위를 내세운 <신 외팔이>까지 세 편이 수록된 박스 세트다.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돌아온 외팔이>는 극장 상영 후 공식적으로는 DVD로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었으며(VHS로 출시되지 않음) <신 외팔이>는 국내에 개봉되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외팔이’ 영화를 봤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왕우 스스로 <독비권왕 獨臂拳王>을 비롯한 외팔이 캐릭터 영화들을 많이 양산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 비슷한 아류작을 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조문탁 주연의 <서극의 칼 刀, 1995>으로도 리메이크된 바 있는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의 주인공 방강(왕우)이 한 팔을 잃게 되는 것은 어이없게도 (원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승의 철부지 딸 때문인 것으로 묘사된다. 이 영화 속에서 왕우는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의 의로운 남자를 연기하지만 주류 사회에서 떠밀려난 아웃사이더로서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그는 자신을 불구로 만들고 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람들을 위해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매우 격렬한 액션 시퀀스를 박력 있게 연출한 장철의 연출이 매력적인 작품. <돌아온 외팔이>는 전작의 히어로 방강이 강호의 악인들을 척결하기 위해 재등장한다는 호쾌한 오락 영화이며 <신 외팔이>는 당시 신인이었던 강대위를 ‘외팔이’ 캐릭터로 변신시켜 화려한 복수극을 선보인다.     

     

# 2. 심야의 결투 金燕子, 1967, 장철 감독

 

 

 장철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심야의 결투(금연자)>는 호금전이 감독한 전작 <방랑의 결투 大醉俠, 1966>의 속편이지만, 상반된 두 감독(호금전, 장철)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작의 실질적인 주인공이 여성인 금연자(정패패)였던 것에 비해 <심야의 결투>에서는 제목(금연자)과 달리 은붕(왕우)이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부상한다. 한마디로 <심야의 결투>는 미성숙한 남성의 비뚤어진 로맨스 영화다.

 

 

 이 영화에서 은붕은 오직 자신이 사모하는 금연자를 강호를 끌어내기 위해 사악한 인물들을 제거해 간다. 결과야 ‘악인의 제거’지만 그의 목적은 결코 정의롭다고 할 수 없으며 은붕 역시 악인과 다름 없는 존재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은붕이 펼치는 싸움은 일종의 학살극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장철은 핸드 핼드를 사용한 연출을 통해 격렬한 액션 리듬을 만들어 냈고 초점 없는 눈의 무표정한 얼굴로 단칼에 적들을 베어버리는 왕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 하얀 옷을 피로 물들이며 처절하게 죽어가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


# 3. 대자객 大刺客, 1967, 장철 감독

 

 

 이미 부천 국제 환타스틱 영화제의 쇼브라더스 회고전에서 소개된 바 있는 <대자객>은 장철의 가장 정치적인 영화로 손꼽힌다. 사마천의 『사기』의 ‘자객열전’ 중 ‘섭정’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초기 장철의 야심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좌파 청년들의 폭동’이 이어지던 당시 홍콩의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이 영화 속에서, ‘전국시대(戰國時代)’를 살았던 자객 섭정(왕우) 속에는 당대 홍콩 청년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는 갈등하는 영웅이다. 액션 영화의 리듬으로는 늘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영화의 에너지는 오직 마지막의 처절한 복수 시퀀스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스승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고 옆 나라로 도망간 섭정은 노모의 죽음과 누이의 결혼 후에야 이미 제안 받은 복수를 감행한다. 왕우의 모호한 무표정은 인간적으로 고뇌하는 섭정의 얼굴에 비감(悲感)을 담아내고 그것은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배를 가르고 눈을 도려내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참혹한 자살로 마무리된다. <대자객>은 정치적인 테러 행위의 주체가 갖는 고통을 무협 영화의 틀에 담아낸 보기 드문 영화다.  

 

# 4. 용호의 결투 龍虎鬪, 1970, 왕우 감독

 

 

 부천 국제 환타스틱 영화제의 인터뷰를 통해 왕우 스스로 너무 추워서 고생했다고 밝힌, 문제의 마지막 장면을 우리나라의 남한산성에서 촬영한 <용호의 결투>는 ‘최초의 권격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따지고 보면 이소룡의 <정무문>은 이 영화의 줄거리를 쏙 빼닮았다.(오리지널리티를 논하기에 홍콩 액션 영화들의 줄거리들은 대부분 비슷하기는 하다.)


 <용호의 결투>는 왕우의 감독 데뷔작이자 쇼브라더스에서의 마지막 영화로, 홍콩에서 300만불의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중화민국 초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왕우는 좀 더 과묵하고 반듯한 청년을 연기한다. 하지만 철사장을 익힌 그의 손은 어느새 잔혹한 무기로 변신해 다수의 적들과 대결을 벌이며 점점 피로 물들어 간다. 

 



  위에 소개된 4편의 DVD들은 모두 새로운 리마스터링을 거쳐 오랜 세월의 흐름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의 깔끔한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오래된 필름들이잹로 간혹 화질 열화가 있고 <대자객>같은 경우 상대적으로 깔끔하지 못한 표현력을 선보이지만 제작 연도가 30여년 이상이 지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뛰어난 영상을 선보인다. 원본의 음향이 모노인 사운드는 (영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고 5.1 채널의 경우 과장된 효과음이 조금 거슬리지만 감상에 큰 문제는 없을 정도다.

 

 서플먼트로는 <외팔이 3부작 박스 세트><심야의 결투><대자객>에 수록된 오승욱 감독과 주성철 기자의 음성 해설이 만족스럽다. 오래된 홍콩 영화에 대한 지식이 없는 시청자라면 매우 유용한 정보들이 가득 담겨 있다. 그 외 <외팔이 3부작 박스 세트>에는 장철 감독에 관한 17분 가량의 다큐멘터리가 수록되어 있고 각 타이틀에는 예고편과 프로덕션 노트 그리고 스틸 사진 모음 등이 수록되어 있다. <대자객>에 수록되어 있는 감독, 배우들의 필모그래피에는 일부 작품들의 예고편이 링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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