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미개봉 신작 DVD 2편

그런 점에서 DVD는 '일방적인 메뉴'에서 자신의 영화 감상의 세계를 좀 더 확장시킬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다. ‘흥행’ 때문에 묻혀진 작은 영화들을 그나마 제대로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양극화’는 비단 경제적 현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극장가 역시 1000만명이 넘는 관객이 드는 ‘대박 흥행작’들이 등장하는 한 편에 1000명도 안되는 관객들만을 만나고 2,3일만에 간판을 내리는 영화들이 비일비재하다. 한마디로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은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공통 분모이며 그건 문화 소비의 현장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흥행’이 곧 영화의 ‘질’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흥행작들의 질이 무조건 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관객들에게 주어진 메뉴에 그다지 선택의 폭이 다양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여러 개의 스크린을 거느린 멀티플렉스에는 그야말로 '장사가 될 만한 영화들'로 가득 차 있고 관객들은 배급사와 극장들이 제공하는 '제한된 메뉴'만을 선택해야 한다. 이런 현상들은 선택의 폭이 더 좁은 지방의 관객들에게 더욱 두드러진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DVD는 '일방적인 메뉴'에서 자신의 영화 감상의 세계를 좀 더 확장시킬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다. ‘흥행’ 때문에 묻혀진 작은 영화들을 그나마 제대로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는 국내에서 극장 개봉을 거치지 못하고 5월에 DVD로 출시되는 두 편의 영화를 소개하려고 한다. 두 편 모두 2005년작이며 꽤 독특한 재미를 갖추고 있는 작품들이지만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국내 개봉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두 편의 작품들은 특정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첫째, 두 영화의 감독들은 영화계의 각 분야(각본가와 배우)에서 오랜 기간 일해 온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뒤늦게 영화 데뷔작을 연출했으며 두 작품은 이들의 괜찮은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둘째, 두 편 모두 비슷한 소재나 장르의 분위기의 영화들을 참조하면서도 독창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들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두 편 모두 각국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음에도 (영화제용 영화라는 선입견에서 느껴지는) 지루함을 찾아보기 힘든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 (Everything is illuminated, 2005)


 금년도 전주 영화제에서 공개될 예정인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는 <스크림> 시리즈와 <맨츄리안 캔디케이트>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했던 배우 리브 슈라이버의 장편 영화 연출 데뷔작이다. 원제인 <Everything is illuminated>는 ‘모든 것을 빛을 얻는다’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가족의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수집하는 유태인 주인공 조나단 샤프란 포어(엘리아 우드)의 '사소해 보이는' 컬렉션이 지닌 ‘사소하지 않은 가치’를 설명하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리브 슈라이버는 유태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홀로코스트’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무거운 주제에 짓눌리지 않고 밝은 톤으로 영화를 이끌어 가면서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하는 녹록치 않은 연출력을 선보인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를 비롯한 정통 '홀로코스트' 영화들의 사실적인 비장감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홀로코스트의 실체'에 접근하는 방식을 취한다. 즉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사실적인(또는 사실적으로 보이는) 역사적 주제를 직시하게 하는 대신 '홀로코스트 세대'의 후손들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는 여정에 동참하게 함으로써 '주제'가 지닌 피로감에서 벗어나게 하고 있는 것.

 

 

 

 그런 점에서 주인공 조나단이 개인의 사적인 기념물들을 수집하는 ‘컬렉터’라는 사실은 중요한 모티브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미국계 유태인 조나단은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개인의 사소한 기억들의 기념물을 수집하는 사람이다. 즉 그가 역사를 찾아가는 방식은 마이크를 들고 생존자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공적인 기록’의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의 궤적을 되묻는 '사적인 기념물의 수집' 방식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조나단은 자신의 내면의 울타리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미스테리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적인 기억'과 '역사적 사실'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돋보기 안경을 쓰고 자신과 가족의 세세한 기억들을 쫓아 우크라이나까지 온 사람이며, 그에게 과거와 기억이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과 동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파트너로 ‘과거의 기억’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미국화된’ 우크라이나 청년 알렉스(유진 허츠)와 ‘장님인 척 하는’ 선글라스를 낀(즉 역사적 현실을 보지 않으려는) 알렉스의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것은 흥미롭다. 조나단은 ‘기억’을 애써 복원하려 하는 사람이지만, ‘역사의 현장’을 살아가는 알렉스와 그의 할아버지는 ‘기억’에 무관심하거나 ‘기억’을 떠 올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역사-기억'에 이토록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들이 여행자-가이드의 관계로 맺어져 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유머는 이들의 이런 상반된 태도에서 출발한다. 

 

 

 

 사실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졌던 ‘트라침브로드 마을의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환기시키는 영화다. 하지만 참담한 과거의 기억에만 매몰된, 조울증에 빠진 영화는 결코 아니다. 주인공들은 ‘자본주의화된’ 우크라이나의 현재를 뚫고 과거로 여행한다. 젊은이들에게 ‘역사’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삶 역시 중요하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는 현재적인 삶과 비참한 역사를 대비시키며 '현재의 삶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한다. 비극적인 사건의 실체가 영화의 중후반부에서 밝혀질 때까지 현재의 우크라이나의 시골을 관통하는 자동차의 모습에는 흥청거리는 러시안 뮤직을 배경으로 깔고 ‘채식주의자 미국인’을 이해 못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우직한 모습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그들은 순수한 '현재적인 삶'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역설적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통해 ‘살아있다는 것의 기쁨’을 노래하는 영화다. 비참한 죽음의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인들의 모습과 달리 ‘기억’을 소유한 유태 청년들역사를 직시하면서 힘차게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특히 해바라기가 가득한 우크라이나의 평원의 모습은 '인생은 살만하다'고 말하는 듯 하다.   

 1.85:1 아나몰픽 영상을 지원하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 DVD의 영상은 2005년작답게 별다른 잡티 없는 깔끔한 영상을 선보인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자연 풍광을 담은 실외 장면들은 화사한 자연광을 이용한 화사한 색감이 인상적이다. 인물 묘사의 날카로움이 블록버스터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고 밤 장면이 조금 묻히는 경향이 보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알아내기 힘들 정도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영상 퀄리티를 선보인다.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에서 들을 수 있었던 집시 음악과 분위기가 유사한 우크라이나 음악이 특히 인상적으로 묘사된다. 관악과 퍼커션이 강조된 전통 음악의 흥청거림이 음향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작품 자체가 분리도가 강조된 영화가 아니므로 깔끔한 대사 표현력과 적절한 음향 효과가 안정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서플먼트로는 극장용 예고편과 추가 장면(Additional scenes, 18분 29초)이 전부다. 호평을 받은 작품의 서플먼트로는 지나치게 단촐한 구성이기는 하지만 추가 장면은 본편에서 삭제된 7개의 장면들 속에 캐릭터들에 대한 좀 더 긴 소개와 주인공들의 환타지 장면 등 보다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어 부족한 서플먼트의 아쉬움을 약간이나마 상쇄시킨다.   

키스 키스 뱅뱅 (Kiss Kiss Bang Bang, 2005)

 마치 6,70년대의 B급 영화를 연상시키는, 노골적으로 '섹스와 폭력'을 의미하는 제목의 <키스 키스 뱅뱅>은 <리썰 웨폰>시리즈의 창조자(Creator)인 동시에 형편없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각본들을 구원해온(물론 엄청난 돈을 받고) 1급 각본가 쉐인 블랙의 영화 데뷔작이다. 역시 헐리우드의 특급 제작자이자 쉐인 블랙의 친구이기도 한 조엘 실버가 제작한 이 영화는 사실 쉐인 블랙이 영화 안에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모두 해 본 다소 비싼 실험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키스 키스 뱅뱅>이 난해한 ‘예술’을 하고자 한 영화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사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고전 헐리우드의 스크루볼 코미디와 괴상한 범죄와 희한한 사건들이 이어지는 펄프 픽션(타란티노의 <저수지와 개들>과 <펄프 픽션>을 생각하면 쉬울 듯...)의 세계가 결합한 것 같은 <키스 키스 뱅뱅>은 대사에 방점이 찍힌, 영락없는 각본가의 영화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대가’ 레이몬드 챈들러의 소설 이름을 고스란치 차용한 5개의 챕터로 나뉘어진 이 영화는, 우연히 헐리우드에 배우가 되러 온 해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해리라는 이름은 <더티 해리>시리즈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터프 가이 형사의 이름이기도 하다)가 겪는 4일간의 황당한 사건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사건들에는 당연하게도 살인과 음모 그리고 로맨스가 얽혀들어 있다. <키스 키스 뱅뱅>은 작심하고 만들어낸 오마쥬 영화다. 이 영화에서 콤비를 이루고 있는 좀도둑 해리와 게이 페리(발 킬머) 콤비는, 쉐인 블랙이 창조한 <리썰 웨폰>을 비롯한 버디(buddy) 형사물들의 변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근친상간’으로 점철된 비극을 캐내는 사립 탐정의 이야기를 다룬 로만 폴란스키의 필름 누아르<차이나 타운>의 블랙 코미디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한편으로는 뉴욕의 좀도둑인 해리가 혼돈으로 가득 찬 헐리우드라는 ‘이상한 세계’를 여행한다는 점에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나 마틴 스콜세지의 <특근>의 헐리우드 버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마디로 <키스 키스 뱅뱅>은 필름 느와르 또는 하드 보일드 액션 스릴러에 대한 농담 같은 영화다. 영화의 시작부터 나레이션을 늘어 놓는 해리는 두 번이나 설명을 빼놓았다고 필름을 되돌리고 멋진 대사를 늘어 놓으며 싸움을 걸어 놓고는 두들겨 맞으며 여자 친구의 고백에 화가 나 호텔 밖으로 쫓아내는 소심한 남자다. 그의 파트너인 게이 페리 역시 해리의 멍청한 행동에 균형 감각을 부여하기는 하지만 ‘게이’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한 동시에 해리의 돌출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인 무즴력한 캐릭터다. 또 해리의 옛 여자 친구인 하모니(미셀 모나한)는 섹시한 분위기와 달리 충동적인 성격을 주체하지 못하는 트러블 메이커이기는 마찬가지다. 고전적인 느와르의 주인공들이 ‘도덕성’이나 '정의로움'이 결핍된 ‘반영웅’의 모습으로 완성되는 것에 비해 이들은 말 그대로 영웅이 되기에는 ‘마이 모자란’ 영웅들이다. 쉐인 블랙은 좌충우돌하는 주인공들이 사건에 얽혀들고 어쨌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경쾌하게 그려내면서 장르의 클리쉐(장르 영화의 관습적인 장치)들을 마음껏 비틀고 조롱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은 미심쩍다. 이들은 어쨌든 사건을 해결했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해리의 목소리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결말은 ‘믿거나 말거나’라는 식이다.

 

 헐리우드 기준으로는 저예산이라고 할 수 있는 1500만불의 예산으로 촬영된 <키스 키스 뱅뱅>은 이 작품보다 몇 배의 제작비가 든 작품들에 비해 전혀 싸구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쉐인 블랙은 조명에 상당한 공을 들였고 그에 따라 영상 역시 세련된 도시풍의 영상의 느낌이 잘 살아 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주인공 해리가 회상하는 어린 시절의 장면은 일부러 색감을 날려버린 장면이므로 화질을 논하기는 무의미하며 전체적으로는 최신작에 걸맞는 날카로운 표현력을 선보이고 있다.

 

 

 

 돌비 디지털 5.1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역시 우수한 표현력을 지니고 있다. 블록버스터 수준의 날카롭고 세밀한 음향 표현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후반부 카 체이스 장면에서는 적절한 음장감을 전해주면 간간히 등장하는 총격 장면의 표현력 역시 격렬할 정도는 아니어도 만족스러운 효과를 전해준다.


 서플먼트로는 주연 배우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발 킬머와 감독 쉐인 블랙의 음성 해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가벼운 영화의 분위기처럼 음성 해설 역시 가볍게 진행되는 편이다. 심지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방귀를 뀌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브로크백 마운틴>에 빗대어 속편은 <브로크백 뱅뱅>이라는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한다. 그 외의 서플먼트로는 극장용 예고편과 촬영시의 장난들과 NG를 모은 개그 릴(Gag Reel)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사람을 남기는 독서와 인생 이야기

손웅정 감독이 15년간 써온 독서 노트를 바탕으로 김민정 시인과 진행한 인터뷰를 묶은 책이다. 독서를 통해 습득한 저자의 통찰을 기본, 가정, 노후, 품격 등 열세 가지 키워드로 담아냈다. 강인하지만 유연하게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손웅정 감독의 인생 수업을 만나보자.

쉿, 우리만 아는 한능검 합격의 비밀

한국사 하면 누구? 700만 수강생이 선택한 큰별쌤 최태성의 첫 학습만화 시리즈. 재미있게 만화만 읽었을 뿐인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가 저절로 풀리는 마법! 지금 최태성 쌤과 함께 전설의 검 ‘한능검’도 찾고, 한능검 시험도 합격하자! 초판 한정 한능검 합격 마스터팩도 놓치지 마시길.

버핏의 투자 철학을 엿보다

망해가던 섬유공장 버크셔 해서웨이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거듭난 과정을 보여준다. 버크셔의 탄생부터 버핏의 투자와 인수 및 확장 과정을 '숫자'에 집중한 자본 배분의 역사로 전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담아 가치 투자자라면 꼭 봐야 할 필독서다.

뇌를 알면 삶이 편해진다

스트레스로 업무와 관계가 힘들다. 불안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그냥 술이나 마시고 싶다. 이런 현대인을 위한 필독서. 뇌과학에 기반해 스트레스 관리,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수면과 식습관에 관해 알려준다. 처음부터 안 읽어도 된다. 어떤 장을 펼치든, 삶이 편해진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